농업정책, 지속 가능한 농촌정책으로 전환하자

‘새로운’ 농업정책?
그동안 우리나라의 농업문제, 농정문제에 대해서 많은 진단과 대책이 제시되었고, 농림축산식품부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거나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거의 관례적으로 농업 현황 진단과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도 농식품부는 농정패러다임 전환을 가장 근본적인 농정변화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장 농어업인과 학계 그리고 소비자 단체에서도 농정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질문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같은 농정전환이라는 주제가 워낙 큰 그림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업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인식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같다. 현 정부 들어서서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정책들이 기존 정책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농업이 당면한 문제들을 어떤 방향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필자 나름의 견해를 피력해 보기로 한다.

‘농가소득향상’ 정책이 가져온 우리 농업·농촌의 문제
우리나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정책 영역별로 농업정책, 농촌정책, 식량정책, 식품정책 등으로 부서가 구분되어 있다. 이 중 농업정책 분야에서 우리 농업의 당면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첫째,농업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전체 GDP에서 농림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농업 인력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농업 종사자 감소, 고령화, 후계자 부족 문제 등이 제시되고 있다. 셋째, 농가 수익성 악화와 도농 간 소득 격차 확대이다. 농가의 농업소득이 감소하고 농외소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1990년대 중반 농산물 시장의 개방 이후로 도시 가계와 농가 간의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개방화 및 소득 악화에 따라 농가의 경영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농어촌 인구의 전반적인 감소와 고령화, 정주환경의 낙후와 그에 따른 농어촌 공동체의 해체, 농어촌 환경파괴의 심화 등이 지적된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농업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농업 생산성 증대와 산업화 지원 정책의 결과물이다. 농업 생산성 증대에 따라 공급과잉이 발생하면서 농산물 가격 이 하락하고 농업 수익성이 감소하여 농가의 경영 불안정성이 심화하면서 농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 농업 인력과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다

이런 농업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예전에는 좀 단순했다. 농촌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인이었기 때문에 농업소득을 증대시킬 방안을 마련하면 나머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즉, 농업소득이 증가하면, 농가의 경영 안정성이 증대하고 농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유입인구도 늘어날 것이며 도농 간 소득 격차도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농업 성장도 지속할 수 있다. 또 한편, 농업 수익성이 증대하면 농업인들의 소비 여력이 증가하고 이를 목적으로 한 다양한 사업체가 농촌 지역에 창업할 것이고 주변 환경을 쾌적하게 하기 위한 각종 시설 투자가 증가할 것이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산업화, 전문화를 촉진하는 정책이 1980년대까지 전 세계 농업정책의 일반적인 기조였던 것은 바로 이런 선순환 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당면한 농업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농업 생산성 증대와 산업화 지원 정책의 결과물이다. 농업 생산성 증대에 따라 공급과잉이 발생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농업 수익성이 감소하여 농가의 경영 불안정성이 심화하면서 농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 농업 인력과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보조금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정부 보조금이 주로 생산량을 기준으로 지급되다 보니 농업인들이 남보다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서,시장에서의 판매이익보다 정부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더 많은 생산을 하려는 농민들에게 정부가 시설보조비를 지급하면서 농업인들 간의 경쟁 관계는 불공정 경쟁으로 바뀌게 되고 농촌 지역에서 주민 간 위화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또 생산성 증대를 위한 경쟁과정에서 과도한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게 되면서 농업인들의 투입비용은 증가하고 환경은 더 파괴되는 전체적인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농업 정책, 산업적 시각에서 농촌적 시각으로
이런 상황이 세계적으로 농정개혁을 하게 된 배경이다. 즉, 선진국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농업 과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농정개혁을 시도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과정을 잘 살펴보면,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성장시키려고 하다 보니 지역과 삶의 공간으로서의 농촌에서 많은 문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0년대 선진국에서 특정 산업 발전에 의존했던 도시들이 줄줄이 망했던 사례는 지역개발 학문 분야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발전 이론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농업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농촌지역에서 나타나는 경제, 사회, 환경 문제의 한 분야로써 농업생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위 농업적 시각에서 농촌적 시각으로의 전환이다.

앞에서 우리나라 농업문제로 제시한 것도 이제는 농촌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다. 농업성장의 정체문제는 농업생산량(액)만 많아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생산과정에서의 지역내 농가 간 협력문제, 환경문제, 그리고 생산물의 판매 문제는 다양한 문제들이 연관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량생산을 하면 자동으로 대량소비가 발생하는 식량부족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분야를 고려하는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농업기술 개발을 통한 농업 생산성 향상이나 식량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국내 농산물 생산의 증산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진국도 이 부분에 투자하고 있고 우리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도면밀한 정책적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즉, 농업 생산성 향상이 미치는 다른 부분에 대한 영향과 파생되는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농업 생산성 증대를 위해서 대기업 농자재 생산 회사를 지원해서 저렴한 가격에 농업인들에 각종 자재를 지원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농민들을 지원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대기업이고, 결국에는 농업 생산과 기술을 농업인들이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의존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해서 생산물이 증가하면 시장가격은 내려가고 이것은 결국 농업 수익성의 악화를 초래해서 농가 경영을 불안하게 하고, 농업 종사자의 이농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농업문제를 농업부문 안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국한해서 보는 시각으로는 현대 사회에 맞는 해법을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농촌정책을 중심으로 농정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다.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농업문제를 해결하는데 굳이 선진국의 사례를 적용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농업의 고유한 특성이 있어서 우리에게 적합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농업 분야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우리가 살아온 방식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또 다른 문제만 더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런 부분을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으로 즉, 농촌정책을 중심으로 정책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선진국들의 농업정책이 유사한 방식으로 수렴하게 된 것이다.

지속 가능한 농촌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은 무엇보다 농촌사회에 전반적인 환경보전을 중시하는 인식이 일반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성과를 정책 목표나 성과지표에서 제외하고 환경보전 성과를 우선적 지표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이를 토대로 한 사회적, 경제적 분야의 성과도 함께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선진국들의 농업정책이 유사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개도국들이 선진국의 정책을 일부 받아들여서 정책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2000년대 중반까지 실시했던 농산물 시장가격지지정책을 비롯한 각종 농업보호정책은 당시 세계적으로 대부분 국가가 시행하던 정책이다. 말하자면, 2000년 이전에는 농업보호정책을 중심으로 농업정책의 세계적 동조화가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최근에는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농촌정책이 동조화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환경보전을 지속 가능성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의 개념을 경제, 사회, 환경의 균형적인 발전으로 이해하면서 여전히 경제적 성과와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를 하면 지속 가능성을 달성할 수 없다. 즉, 세 분야의 성과가 서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경제적인 성과에 대한 관심을 일부러 축소시키고 다른 부분을 부각해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농촌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은 무엇보다 농촌사회에 전반적인 환경보전을 중시하는 인식이 일반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성과를 정책 목표나 성과지표에서 제외하고 환경보전 성과를 우선적인 지표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이를 토대로 한 사회적, 경제적 분야의 성과도 함께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현재 선진국 농촌정책이 경험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세계적 변화를 고려하여 우리나라의 농업정책도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농촌정책으로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김태연: 단국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농촌개발에 관한 이론, 정책, 사례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자문위원, 농림축산식품부 국민공감 농정위원회 희망농업 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