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품격,좋은 농사를 짓는 자부심이죠”

원중연 원가자농 대표

“내비게이션만 믿고 갔다간 사람이 안 사는 빈집으로 갈 수도 있어요.” 경고를 듣고 주변을 꼼꼼히 살폈건만,야속하게도 이미 차는 막다른길에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연결도 되지 않는 오지였다. 차를 돌려 겨우 제 길을 찾았을 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언덕 너머까지 이어졌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산 중턱에 ‘원가자농’의 모습이 드디어 나타났다. 반백의 머리를 길러 질끈 묶은 원중연 대표(64)가 웃으며 맞았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헤맨다는 위로도 함께 했다. 첩첩산중 2만 평 농장에는 다양한 쌈채소, 양파, 감자 등 40여 종의 유기 채소와 유기농 돼지 400여 마리가 함께 자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농약병이 굴러다니고 비료 포대가 산더미에, 주변이 엉망이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배추 한 포기 못 자라는 땅이라고 했어요. 농사꾼 자존심이 있지, 끝까지 한번 해봐야겠다….” 원중연 씨는 이미 양채류 농사로 이름난 농부였다. 경기도 파주, 충청남도 당진, 전라남도 영광 등을 돌며 계절을 고려해 셀러리, 양상추를 키웠고 이것으로 성공했다.

축사에는 닭도 드나든다. 원 대표는 돼지들을 축사에 자유로이 기르다가 날이 풀리면 돼지를 유기 채소밭에 방목한다.

농장에서 직접 만드는 유기질 퇴비
처음부터 유기 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건 아니었다. 화학 농업을 같이 짓던 중 유기농을 확신하게 된 일이 일어났다. 쥐가 파먹은 유기농 파프리카 모종에서 새 잎이 난 것이다. 농사에 잔뼈가 굵은 그가 보기에도 떡잎도 없는 대에서 싹이 새로 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곧바로 화학농을 포기하고 전부 유기농으로 바꾸었다.
농약 치던 땅에 유기 작물을 심으려면 먼저 땅심을 회복시켜야 했다. 원대표는 쌀겨와 미네랄, 설탕물 등을 부지런히 뿌렸다. 원가자농이 있는 해발 800m까지 유기 비료를 가져오는 일에는 힘과 비용이 크게 들었다. 원대표는 아예 농장 안에서 비료를 만들기로 했다. “소와 외양간이 집집마다 안에 있었어요. 분뇨가 어떻게 밖으로 나가. 그게 그 집 농사의 품격을 말해주는데. 우리 아버지 시절에만 해도 쇠똥을 모아 퇴비로 쓰고 했던 걸 떠올렸어요.” 유기 채소에서 나온 부산물을 돼지가 먹고, 돼지의 분뇨는 다시 퇴비가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채소밭에 방목하니 오·폐수가 흘러나갈 걱정도 없다. 아니, 더 이상 오·폐수가 아니라 ‘원가자농 특제 유기 퇴비’다.

국내 최초 ‘방목 유기 축산 인증’, 동물복지의 초석이 되다
원중연 씨는 2008년 유기농 인증과 2010년 유기 축산 인증을 받았다. 그전까지 자유롭게 풀을 뜯고 흙을 밟으며 자란 돼지는 오히려 유기 인증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쌀겨와 도토리, 콩비지 등을 섞어 유기 배합사료를 만든다.

인증을 위해서는 시멘트 바닥과 축사를 갖추고 돼지에게 유기 사료를 사서 먹여야 했다. 원가자농은 오히려 전통적인 유기농에 가까웠지만 인증기관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원중연 씨는 몇 번이고 담당 부서를 찾았다. 서류도 26건이나 작성했다. 방목 방식으로 유기 축산 인증을 받으려는 사례가 없었기에 품질관리원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인증이 통과된 후에 품질관리원장이 농장을 방문했다가 ‘이게 진짜 유기농’이라면서 원 대표의 농사 방식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게다가 원중연 씨가 유기 축산 인증을 준비하며 만든 자료는 후에 축산농장 동물복지 인증제의 초안을작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부부는 험준한 오대산 자락에 있는 농장을 함께 일구어왔다.

농민의 연구가 높이는 농업의 품격
돼지 축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사료가 보였다. 원가자농의 돼지가 먹는 건 특제 자가 사료. 쌀겨와 도토리 찌꺼기, 콩비지, 게 껍질 등으로 원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쌀겨가 많으면 비계만 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다는 재료들을 여러 차례 섞어본 후 가장 좋은 배합을 찾았다. 원중연 씨는 사람이 먹어도 무방하다며 사료를 맛보았다. 사람에게서 거부반응이 나는 사료를 돼지에게 먹이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연구 끝에 만든 사료가 돼지의 품질을 높인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고기 구울 때 나온 기름이 하루가 지나도 안 굳고, 구운 고기가 다음 날에도 단단해지지 않아서 성분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2013년에 내가 연구비를 받아 연구했어요. 여기서 나온 게 ‘약이 되는 고기’에요. 수술한 환자가 먹는 고기.”
2014년에는 대산농촌재단의 ‘농업실용연구’ 과제로 가족농에 적합한 경축순환 규모와 적정 퇴비량을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원중연 씨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상지대학교 경제학과 최덕천 교수가 후속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 논문이 그해 학계에서 좋은 반응과 관심을 받았다.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를 찾아서
생산한 고기는 대부분 유기농 전문 매장을 통해 판매된다. 원중연 씨는 자신의 돼지를 가치를 알아 보는 소비자에게 팔겠다고 한다.
“누구나 하는 방법으로는 맛의 차이를 낼 수가 없어요. 농촌진흥청 실험과제를 하느라 자가 배합사료 대신 일반 유기농 사료로 돼지를 30마리 길러다가 납품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소비자들이 단박에 알아보더라고요. 그 고기는 기분 좋게 반값에 팔았어요.”
생협에 납품한 이후 원가자농의 고기는 항상 완판이다. 돼지 사육 두수도 250마리에서 400여 마리로 늘렸다.
“저 바위를 보세요. 저게 화강암이에요. 저 바위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주변을 변화시켜야 해요. 그럼 좋은 땅이 만들어집니다. 좋은 이웃이 있으면 내 품격도 저절로 올라가잖아요?”
원중연 씨는 농사꾼의 ‘지력 관리’에서 인생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신 넘치는 목소리에서 그가 만들어갈 우리 농업의 품격이 기대된다.

글 ·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