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농민이 모이면 달라지는 것들

2014년 세계 가족농의 해를 맞이하면서 소농과 가족농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이
야기하고 있다. “소농이 세계를 살린다”는 말이 구호처럼 쓰이고 소농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나와 내 이웃들의 농사짓는 삶은, 여성 농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밑에서부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논농사 4,000평, 냉해 피해 보상은 정부미 5자루
1992년 결혼한 첫해, 논농사 4,000평을 지었는데 냉해 피해를 보았다. 생산비는커녕 그해 들어간토지임대료를 포함한 생산비를 고스란히 빚으로 넘겼다. 정부로부터 보상받은 건 고작 20kg 정부미 5자루였다. 올해 강원도 횡성에는 가뭄 끝에 내린 것은 비가 아닌 우박. 이 때문에 많은 농가가 피해를 보았다. 우박을 맞은 옥수수, 단호박, 담배 등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의 보상이 있긴 하지만 피해에 비해 미약하다.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상기후로 인한 농가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가 떠맡아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민들이 농사짓고 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해마다 다시 씨앗을 뿌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동안 냉해, 우박, 기습적인 집중호우등으로 여러 번 위기를 겪었지만 농사짓기를 포기하지 않고 살고 있다.
처음엔 돈 벌 생각으로 논두렁에 제초제도 치고, 농약도 쳤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더 이상 석유로 농사짓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IMF 때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 값과 농약 값, 비료 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돈을 따라가는 농사가 아니라 돈을 적게 들이는, 석유 안 쓰는 농사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논과 밭을 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지만 내 몸에도 건강하고, 먹는 사람들도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농부로서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더 나아가 화학비료도 쓰지 않는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 중이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은 농산물은 정말 볼품없지만 어렵
게 농사짓는 노력을 알아주는 소비자들의 믿음과 지지가 큰 힘이 되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여성 농민의 지위를 높이는 데 내디딘 첫걸음, 제철꾸러미사업
2011년 4월, 여성 농민 6명과 함께 꾸러미사업을 시작했다. 모두 60세 이상이고 지역에서 한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다. 이분들과 한마음으로 움직이며 횡성읍 공동체에서 1년간 수습과정과 생산자 의무교육(식량주권, 종자주권, 전통농업 등)을 이수하는 등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현재는 1명이 늘어 7명이 활동을 하고, 소비자 100가구에 매주 제철 채소를 보내고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텃밭에 작물을 심어 놓은 줄도 모르고, 남편들이 로터리를 치거나 제초제 치는 바람에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지금은 확실하게 인식이 되어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여성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농사 계획을 세우고 남편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농약 없이는 농사짓지 못한다던 사람들이 이제 손수 천연 자재를 만들어 사용할 만큼 친환경 농사에 익숙해졌다. 돼지감자 잎을 달이거나, 고사리 삶은 물, 은행잎 삶은 물로 병충해를 잡고, 토착미생물을 활용해 땅을 살리기도 한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한 결과다.

꾸러미사업을 통해 여성 농민 스스로 지위와 역할을 깨닫고, 친환경 농업의 중 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텃밭을 가꾸고 꾸러미를 보낸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동체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여성 농민 스스로 지위를 높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90일 이상 영농에 종사했거나, 연간 100만 원 이상농산물 출하 실적이 있거나, 1천㎡ 이상의 농지를 경영 또는 경작하고 있어야 농업인이라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 농민들은 농지나 농산물판매 출하 통장이 배우자 명의로 되어 관리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꾸러미사업을 시작하면서 일정 소득이 생기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를 관리하는 본인 명의의 통장을 개설했다. 법적으로 농업인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 근거를 바탕으로 ‘횡성언니네텃밭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이제 어엿한 농업경영주로 농사를 짓게 되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25년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여성 농민의 법적지위 인정’을 여성 농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게 되었다.

종자에는 수천 년 내려온 역사와 문화,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가 담겨 있다. 토종 씨앗 지키기로 농업과 농촌의 뿌리를 단단히 할 수 있다.

회원들은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있다.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나아가 화학비료도 쓰지 않는 친환경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 중이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은 농산물은 정말 볼품없지만 어렵게 농사짓는 노력을 알아주는 소비자들의 믿음과 지지가 큰 힘이 되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역의 학교에 친환경급식자재를 납품하는 등 판로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해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함께 모여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싹 트기 시작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모두가 함께 공감하며 더 큰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처음엔 새로운 방법에 대해 의심하고, 불안해했지만, 지금은 어느새 같은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한미소가 지어진다.

농촌의 뿌리를 단단히, 토종 씨앗 지키기
전통적으로 농가에서 수확이 끝난 후 얻은 종자를 보관하는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씨앗에는 수천년에 걸쳐 전해 내려온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가 담겨있는데 이런 씨앗이 이제는 초국적 자본기업에 장악되었다. 농사짓기 위해 씨앗을 해마다 새로 사야하고, 생산비는 점점 올라가고,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촌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씨앗을 지키고, 농촌의 뿌리를 단단히 하는 일에 여성 농민들이 나섰다. 처음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할 때 농민들 내부에서 사회적으로 돈도 안 되는 농사를 어떻게 대안이라고 할수 있냐며 조롱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농민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토종 씨앗 지키기 사업은 유전자변형식품이 우리의 밥상을 점령하게 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로 GMO 반대 생명운동연대와 함께 시작했다. 2005년 원주신림농협과 안동교구에서 얻은 토종 씨앗을 횡성에 심었다. 여성 농민들과 친환경농산물 생산자, 환경운동 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씨앗을 나누어 심었다. 그해 붉은 기장과 수수 농사를 잘 지은 강종섭 할머니와 김옥선 할머니 덕분에 그 씨앗 일부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에게도 분양할 수 있었고, 여성농민회의 ‘통일텃밭’사업과 결합하여 전여농의 핵심 사업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됐다.
기업에서 사서 쓰는 씨앗을 토종 씨앗으로 바꾸는 순간 달라지는 것이 많다. 우선 종자를 사지 않으니 돈이 들지 않는다. 개량된 종자는 농약과 비료, 물을 적절하게 줘야 다수확을 할 수 있지만 토종씨앗은 전통 지식에 기반을 둔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농약 등의 생산자재비가 많이 들지않는다. 이제 농민들도 판로만 있다면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겠다고 한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중심이 되어 토종 씨앗 기금을 조성하는 등 제2의 생산자인 소비자들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농민들이 토종씨앗으로 지속 가능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횡성에서는 전통 씨앗을 지키고, 식량 주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여성 농민의 힘 을 모아 지역 내 토종 씨앗 채종포를 운영하고 있다.

횡성에서는 지역 내 토종보유현황조사, 토종 씨앗 채종포 2곳 운영, 1농가 1품종 토종 씨앗 지키기 사업, 토종농산물지원조례제정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과 수집 활동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있다. 우리 전통 씨앗을 지키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고, 나아가 농업과 농촌을 단단히 하는데 여성 농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빛을 발하고 있다.

농업과 농촌의 긍정적인 변화가 지속할 수 있도록 여성 농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농사짓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농이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 여성 농
민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큰 기계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작게 먹을거리를
길러내고, 아이들을 키워내고, 지속 가능한 농촌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 농민들이다.

여성 농민들이 만드는 의미 있는 변화, 지역이 함께 지속 가능하도록
2002년, 여성 농민들이 농촌에 정착하는데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횡성여성농업인센터가 설립됐다.
내 문제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지역의 여성 농민들의 문제이기도 한 아이들 교육문제, 여성농업인 고충상담, 여성농업인 교육문화사업, 도농교류 사업 등을 지역 차원으로 확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횡성여성농업인센터장으로서 다양한 사업들을 지역민들과 함께했다. 지금도 센터에서는 여성 농민들이 마음 편히 농사지을 수 있게, 그리고 마음 놓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정책적인 도움과 지역 차원에서의 지원 등을 폭넓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수행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들과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여성 농민들의 지혜와 슬기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농사짓기 시작한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지역 여성 농민들과 함께 도전하고 해결해 나갔던
움직임들, 내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이루고 있는 여성 농민들과의 교류, 지속하고 있는 공동체가 자랑스럽다.
농사짓는 대부분의 사람은 소농이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 여성 농민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큰 기계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작게 먹을거리를 길러내고, 아이들을 키워내고, 지속 가능한 농촌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 농민들이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 여성 농민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다시 이야기하게 될 날을 기대한다.

※필자 한영미: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대표. 강원도 횡성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는 언니네텃밭 오산공동체를 이끌며 지역 여성 농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있다. 최근‘토종씨앗지키기운동’을 펼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여성 농민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