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안은 숲, 새로운 바람을 맞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흑림 Schwarzw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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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에 덮인, 깊은 숲 속에 들어섰다.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고 헤매던 숲. 걸음을 옮기려니 부실한 발이 야무진 눈밭에 속절없이 푹푹 빠졌다. 이러다간 운명이 아니라 발이 묶이겠다 싶었다. 고개를 드니 쨍하게 파란 하늘, 쭉쭉 뻗은 가문비나무 숲길의 끝에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었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_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중

100년이 걸린 인공조림, 흑림
독일 남부 쥐라Jura산맥 서쪽 면에 펼쳐진 길이 200킬로미터, 폭 60킬로미터의 울창한 삼림지대, 검은 숲이라는 뜻을 지닌 ‘흑림-슈바르트발트Schwarzwald’ 이다.
250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흑림이라 불렀다. 너무나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로 숲 속으로 들어가면 햇빛을 볼 수 없다 해서 지어진 이름처럼 흑림은 울창한 숲이었고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생활했다. 헨젤과 그레텔의 아버지처럼.
그런데 중세를 거쳐 근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숲은 마구잡이 벌목으로 급속도로 황폐해졌다. 1800년대 초, 숲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움직임 속에, 예전의 너도밤나무 대신 수형이 곧고 빨리 자라는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림사업이 펼쳐졌다. 그렇게 100년, 오늘의 ‘흑림’이 만들어졌다.

매년 8천 시간을 가동하는 풍력발전기의 내부
매년 8천 시간을 가동하는 풍력발전기의 내부
흑림지대의 풍력발전기는 시민이 출자해 세워졌고 수익금도 시민에게 돌아간다.
흑림지대의 풍력발전기는 시민이 출자해 세워졌고 수익금도 시민에게 돌아간다.

시민들이 세운 풍력 발전기
태양, 물, 바람, 그리고 축분까지. 흑림의 거점 도시인 프라이부르크는 다양한 대체에너지로 원자력발전소의 대안을 제시했고, 지금은 ‘세계의 환경수도’로 이름나 매년 수백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프라이부르크 안내를 맡은 위르겐 하트위그Jurgen Hartwig 씨는 샤우인스란트 산 전망대 부근에 설치한 대형 풍력 발전기의 내부 시설을 보여주었다. 총 길이 100m, 너비 16m. 프로펠러 하나의 크기는 25m, 무게는 4톤이란다. 설치비용은 200만 유로(약 30억 원)라는데, 여기에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시민 500명이 조합을 만들고 출자를 해서 만들었죠. 2003년부터 10년간 매년 8천 시간 정도를 가동했습니다. 하루 평균 900kW, 최대 1,400kW, 연간 300만 kW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어요. 수익금은 출자한 시민에게 돌아갑니다.”
발전기의 주인은 시민. 국가가 하는 일은 바람과 물과 태양이 만들어준 전기를 비싼 가격에 사주는 것뿐이란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이러한 일이 특별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흑림지대의 마을. 프라이부르크는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책을 펼친다.
흑림지대의 마을. 프라이부르크는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책을 펼친다.
샤우인스란트 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프라이부르크 시내.
샤우인스란트 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프라이부르크 시내.

다시 자연림으로
인공조림으로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숲으로 인정받았던 흑림에 또 다른 변화가 일고 있다. 경제성이 좋아 심었던 가문비나무를 골라 베고 예전처럼 너도밤나무를 심는다. 가문비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강한 바람에 잘 버티지 못한다는 단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란다.
다시 100년이 걸릴 후대에 대대로 물려줄 자연림으로의 회귀. 지속 가능성을 향한 흑림의 ‘눈부신 고립’이 놀랍다.

글·사진 /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