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마을’의 힘

권윤주 양평 가루매마을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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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서울에서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양평의 작고 조용한 마을, 옥현 2리. 이 가루매마을은 연간 방문자가 1만여 명이 넘는 마을이다. 지난 20여년간 마을이 조금씩 성장하고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 바로 권윤주 가루매마을 운영위원장(56)을 만났다.

‘내 것’에서 ‘우리 마을’ 것으로
마을에 도착하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초등학생들이 고무줄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진행하는 마을 사람들도 다들 활기차 보인다. 체험장 옆으로 펼쳐진 넓은 배 밭.
이곳의 배들은 작지만 단단했다.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키우기 때문이다.
“친환경 농업으로 생산한 농산물인데,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거죠. 믿을 수 없으면 직접 와서 보라고 해서 시작한 게 바로 ‘배따기축제’에요.”
소비자를 직접 만나 친환경 농업을 이해하고, 농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렸다. 다양한 체험을 하고 난 이후 배 밭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배를 따서 먹을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 덕분에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점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권 위원장 개인 농장에서 시작한 작은 이벤트였는데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체험객들이 밀려들었고, 1999년부터 시작해 4년째인 2002년부터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마을 사업으로 꾸리기 시작했다.

넓은 배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배를 따서 먹을 수 있도록 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넓은 배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배를 따서 먹을 수 있도록 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함께하는’ 마을을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다
처음부터 체험마을이 잘 운영된 건 아니다. 사실 가루매마을은 마을 공동사업을 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지형적으로 4개 부락으로 나누어져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주변에는 이렇다 할 관광 자원도 없는데다가 마을 주민의 평균나이는 74세로 고령화되어 있다. 2004년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신청했지만 3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체험마을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평가였다. 체험 마을로 성장하기에 조건이 미흡했고, 체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약했다.

이제 주민들은 마을의 공동목표를 공감하며, 따뜻한 마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주민들은 마을의 공동목표를 공감하며, 따뜻한 마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수확체험을 할 때면 우선 제 것보다 마을 사람들한테 먼저 기회를 주고 그랬죠. 웃음교육도 많이 하고, 칭찬도 많이 해드리고. 어르신들은 이해하고 믿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리고 눈에 보여야 믿지요. 보고, 느끼고, 믿기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렸어요.”
마을을 활성화하고, 마을 주민을 하나로 묶기 위해 권윤주 위원장은 외부 강사를 초청해 주민 웃음 교육도 실시하고 짚공예 교육을 받게 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동체의 목표를 공유하고 이해하기 위해 단합하고 화합하는 시간도 가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 창출이었다. 주민들의 소득을 위해 권 위원장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바로 ‘행복한 수레’였다.

마을 주민에게 움직이는 가게 하나씩, 1인 농산물 판매장 ‘행복한 수레’
“캐나다에 연수를 갔을 때 수레에 농산물을 놓고 파는 걸 봤어요. 그걸 우리 마을에 응용한 거죠.
1차 농산물은 생산해서 판매하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어요. 가공사업도 농산물 공급시스템이 연중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거래를 지속할 수 없죠. 체험객을 상대로 상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서 팔자고 한 거죠.”
체험이 끝나갈 무렵, 체험장 앞에 들어오는 수레에는 주민들의 사진이 있는 현수막이 걸린다.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생산하고 가공한 농산물들(말린 나물, 참깨, 수수, 땅콩 등)을진열한다. 1인 농산물 판매장으로 재탄생하는 수레에서는 자연스럽게 직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물건을 팔면서 스스로 배우는 거에요. 옆에 사람이 나보다 많이 팔아. 그러면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보고 자신의 방법을 바꾸는 거죠. 자연스럽게 전략을 취하고, 답을 찾아 나가게 되더라고요.”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가공한 농산물에는 주민사진과 함께 연락처가 있는 스티커가 붙는다.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가공한 농산물에는 주민사진과 함께 연락처가 있는 스티커가 붙는다.
1인 농산물 판매장 행복한 수레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농산물을 팔면서 스스로 배운다.
1인 농산물 판매장 행복한 수레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농산물을 팔면서 스스로 배운다.

주민들은 1인 농산물 판매장 ‘행복한수레’를 통해 1인당 하루20~30만 원의 수익을 올린다.
“체험이 있을 때 점심 준비는 마을 주민이 해요. 식사 재료는 식사 준비 당번인 마을 주민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죠. 재료를 공급하고, 일하고, 재료비와 수고비를 받아가는 겁니다.”
‘농산물 현지 소비’, ‘농산물 현장 판매’, 그리고 ‘농외소득 창출(일자리 창출)’. 세 가지가 모두 이상적으로 실현되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이다.

권윤주 위원장은 한 발 앞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농업의 가치를 높이고, 함께하는 농촌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권윤주 위원장은 한 발 앞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농업의 가치를 높이고, 함께하는 농촌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함께 힘을 모으면 강해진다
권 위원장을 믿고, 마을 공동의 목표에 공감한 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살리는 일에 기꺼이 동참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활력이 돌았고, 공동체는 더욱 단단하게 결속되었다.
이제 권 위원장은 2012년 1월부터 양평농촌나드리의 이사장으로활동하며 양평지역 체험마을 간의힘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양평농촌나드리는 지난 2005년 전국 최초로 민 주도로 구성된 체험마을협의회로 양평의 20여 개 농촌체험마을이 참여하고 있다. 양평나드리는 도농교류를 위한 홍보, 체험마을 주민과 지도자 양성교육, 그리고 체험마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행정 업무를 해결해 주는 등 마을과 행정 사이의 문제해결을 위한 일종의 중간지원 역할을 한다. 이렇게 체험마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해 양평군의 농촌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 위원장은 올 초, 양평농촌나드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체험마을들이 수익사업에 있어 해결하기 어려운 세금과 관련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지원하며, 지역 내 향토사업을 유치하여 운영할 예정이다.

“농촌에서는 혼자만 잘살 수 없어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배려하고, 모두 잘사는 것, 그게 중요하
죠. 그리고 소농이 잘살아야 해요. 소농이 강해지면, 우리 농촌도 강해질 겁니다.”

여전히 부락은 나누어져 있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목표는 하나로 단단히 뭉쳐있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함께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협력하고 상생하는 가루매마을. 작은 힘을 모으며 더욱 단단하고 강한, 지속 가능한 마을의 힘을 키워가는 권윤주 위원장의 상생 리더십을 기대한다

글/사진·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