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쌀 시장 개방의 현황과 과제

한국농업의 오랜 숙제인 쌀 시장 관세화 문제가 주요 농정 현안으로 부상했다. 관세화 전환 관련
토론회가 수시로 열리고, 언론도 관세화 기사를 쏟아내는 등 농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까지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 역시 민관합동기구인 ‘쌀 산업 발전 포럼’을 최근 발족시키고 연말까지 관세화 전환 여건을 검토할 계획이다.

관세화, 왜 문제가 되나
정부가 쌀 관세화 논의에 불을 지핀 이유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관세화란 일정한 관세를
물리면서 시장을 활짝 여는 ‘전면 개방’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쌀 수입을 통제할 길이 완전히 사라진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될 때 우리나라는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의 의무 수입쌀을 설정하는 대신 전면 개방을 10년 미뤘다. 관세화 유예, 다시 말해 ‘부분 개방’을 택한 것이다. 관세화 유예 마지막 해인 2004년 우리나라는 주요 쌀 수출국과 협의를 거쳐 관세화 시기를 10년 더 연장했다. 대신 의무 수입쌀을 매년 2만 톤씩 늘리기로 했다. 의무 수입쌀은 관세화로 전환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2015년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의무 수입량은 직전 연도인 2014년의 40만 9,000 톤으로 고정된다. 국내 쌀 수급 상황과 관계없이 경기 지역 생산분만큼의 쌀을 매년 영구히 수입해야 하는 셈이다. UR 협상에서는 ‘관세화 유예 마지막 해인 2004년에 한국이 개방을 연기하길 원한다면 이해 당사국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렇지만 2004년 쌀 협상에서는 관세화 유예가 끝나는 2015년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관세화를 선언하면 다시 ‘관세화 유예’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과연 우리 쌀 산업
이 관세화 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느냐는 것이다. 특히 쌀 시장은 경제적 득실보다
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하며, 따라서 관세화 논의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상 유지 가능 VS 2015년 개방 불가피
관세화 유예 연장 여부가 논란이 된 것은 우루과이라운드(UR) 후속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UR 협정문은 각국의 농산물 관세를 선진국은 6년(1995〜2000년), 개도국은 10년(1995〜2004년)에 걸쳐 평균 10%씩 감축하도록 했다. 또 세계무역기구(WTO)는 이후의 농산물 관세 감축을 다룰 DDA 협상을 2001년 출범시켰다. 그렇지만 DDA는 협상 타결 시한인 2004년을 넘겨 여전히 안갯속을 걷고 있다. 관세화 유예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이를 토대로 한다. 장경호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DDA 협상이 장기 표류하면서 WTO 회원국들은 선진국과 개도국 지위에 따라 각각 2000년과 2004년 이후에는 추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계속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는 의무 수입쌀 확대라는 추가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해영 한신대 교수는 “2004년 쌀 협상에서도 우리나라는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무수입쌀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며 “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는 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수입물량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고 했다.정부 입장은 다르다. ‘2004년 쌀 협상에서 2015년 이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의 특별취급(관세화 유예)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2015년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쌀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한국과 필리핀을 제외한 WTO 모든 회원국이 ‘예외 없는 관세화’라는 UR 원칙에 따라 농산물을 관세화로22 개방했다”며 “DDA 협상 지연을 떠나 우리 쌀도 UR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역시“의무 수입량을 늘리지 않은 채 관세화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이해 당사국으로부터 제소당할 것”이라며 “2015년 개방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세화 전환,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현재로선 관세화 전환론이 우세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자유무역협정(FTA)과의 관계가 불명확하다. 정부는 쌀 관세화는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문제며, FT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쌀 관세가 정해지면 미국이 한·미FTA에서 예외품목으로 뒀던 쌀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또 ‘한·중 FTA 협상에서 중국이 쌀을 공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농정당국이 강하게 추진했던 조기 관세화는 통상 당국의 제동으로 흐지부지됐다.
대내적인 준비도 아직 미흡하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은 “쌀 시장이 개방되면 100% 완전미가 수입될 텐데, 과연 우리 현실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익재 전북 새만금농산 대표는 “우리 쌀은 밥맛을 떨어뜨리는 동할미(금 간 쌀)와 쇄미(싸라기) 비율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수입쌀 둔갑 유통이 성행하지만, 단속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논의는 신중히, 결정은 신속히
관세화 선언으로 우리가 이득을 챙기려면 가급적 관세화 유·불리 논의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우선 관세화 전환에 대한 정부 의지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관세화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면서도 관세화의 핵심인 쌀 관세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는다. 상대국에 미리 우리 패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농가 홍보도 미약한 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쌀 표본농가 1,282명을 대상으로 관세화를 물었더니 447명(34.9%)은 “관세화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충남 예산에서 30㏊ 규모의 벼농사를 짓는 박진수 씨는 “정부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데, 일선 농가들이 어떻게 관세화란 걸 알겠느냐”라며 “관세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농업인 비율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관세화 논의에 앞서 우리 쌀 산업을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관세화를 선언하면 다시 ‘관세화 유예’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과연 우리 쌀 산업이 관세화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느냐는 것이다. 특히 쌀 시장은 경제적 득실보다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하며, 따라서 관세화 논의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쌀 관세, 얼마나 될까 
쌀 시장이 관세화로 전환되면 누구든 관세를 내고 마음대로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된다. 관세화 논의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쌀 관세를 얼마나 높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와 ‘관세가 붙은 외국 쌀이 수입될 것이냐’에 따라 관세화의 득실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 쌀 관세는 얼마나 될까.
관세는 국내외 가격차이인 관세상당치(TE)를 기초로 한다. 국내산 쌀값이 1㎏에 1,000원이고 외국쌀이 200원이면 그 차액인 800원을 다시 외국 산 쌀값으로 나눠 백분율로 계산한 것, 다시 말해 400%(800원÷200원×100%)가 관세상당치다. 200원짜리 외국 쌀이 관세 400%(800원)를 물고 한국 땅을 밟으면 국내산과 같은 1,000원이 되는 원리다.
UR 농업협정문에 따르면 관세상당치는 1986〜1988년 수입 가격과 국내산 도매가격 자료를 활용해 산출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기간에 우리나라는 쌀을 수입한 적이 없다. 협정문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인접 국가의 수입 가격이나 수출 가격을 활용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뒀다. 따라서 당시 일본의 수입 가격 또는 중국의 수출 가격을 적용해야 한다.
관세상당치는 우리나라가 계산해서 WTO에 제출하면 된다. 따라서 어떤 가격 자료를 사용할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 문제지만 검증 과정이 있기 때문에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 2003년 관세화로 전환한 대만은 1㎏당 45 대만달러의 관세상당치를 WTO에 통보했다. 종가세(물품 가격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조세)로 환산하면 560%쯤 된다. 일본은 1㎏당 351.2엔의 관세상당치를 설정하고 1999년 쌀 시장을 개방했다. 당시 환율로 계산한 종가세는 1,000% 수준이다.
2004년 쌀 협상 당시 학계에서는 관세상당치를 최소 400%에서 최고 500%까지 다양하게 분석했다. 만약 우리나라 관세상당치가 400%로 결정되면 관세가 곧바로 400%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UR 농업 협상은 개도국 농산물 관세를 1995〜2004년에 10% 줄이도록 했다. 따라서 당장 관세화를 선언하면 우리 쌀 관세는 360%가 된다.
정부나 연구기관이 내놓은 관세화 관련 자료는 대개 관세상당치를 440%로 추산한다. 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차원이다. 관세상당치 440%에서 10분의 1을 감축하면 396%가 되는데, 이를 토대로 ‘우리 쌀 관세가 대략 400%가 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DDA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가 더 내려갈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다면 쌀을 특별품목으로 분류해 관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 품목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선진국이 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관세를 100% 포인트 정도 내리고, 의무수입물량을 20만톤가량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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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쌀 경쟁력은
만약 관세가 400%로 확정된다면 우리 시장에서 외국쌀의 가격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
9월 30일 국제선물시장에서 미국캘리포니아산 중립종은 1톤당 675달러에 거래됐다. 1달러당 1,100원의 환율을 대입하면, 80㎏ 한 가마에 6만 원 정도 된다. 여기에 관세 400%인 24만 원이 붙으면 최종 수입 가격은 30만 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국내산 도매가격 17만 4,000원의 두 배 수준이다. 국제 쌀값이 급락하거나 환율이 대폭 떨어지지 않으면 수입 가능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다만 중·단립종보다 가격이 저렴한 동남아산 장립종(인디카 쌀)은 수요층이 넓지는 않지만, 수입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9월 30일 기준 태국산 장립종의 국제시세는 1톤당 430달러로 미국산 중립종에 견줘 36%나 저렴하다. 2008년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하기 전까지는 200달러대에서 거래됐다.

다른 나라 쌀 관세 문제는
1995년 WTO가 출범할 때 쌀 관세화를 미뤘던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필리핀 3개국뿐이다. 이
가운데 일본은 중간에 관세화로 전환했고, 필리핀은 우리처럼 관세화 유예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필리핀 모두 쌀 관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한 일본은 TPP 회원국과 양자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쌀 관세 인하 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TPP 협상은 원칙적으로 관세 철폐에 예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이에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신문(일본경제신문)은 일본 정부가 밥쌀용 쌀 관세는 그대로 유지한 채 센베이(얇게 구운 쌀과자)와 사케(쌀로 만든 일본정통 술)에 사용되는 가공용 쌀 관세를 내리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MMA 방식의 의무 수입쌀 부담 때문에 1999년 4월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했다. 현
재 주식용 쌀 관세는 778% 수준이며, 가공용은 가공 정도에 따라 34~550%가 부과된다. 연간 소비량은 밥쌀용이 715만 톤, 가공용이 60만 톤 정도다.
지난해 6월 말로 관세화 유예 조치가 끝난 필리핀은 관세화 ‘의무 면제(웨이버)’를 추진하다 벽에 부딪혔다. 필리핀은 2012년 6월까지 두 번의 관세화 유예를 거쳐 3차 유예를 추진했지만, ‘추가 유예의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미국·호주·캐나다의 반발을 샀다. 이에 필리핀은 ‘국내 사정 때문에 관세화전환이 어렵다’며 아예 관세화 의무를 면제해달라는 요청서를 WTO에 제출했다. 현재 주요국과는 의무수입물량을 조금 늘리는 선에서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다른 농산물의 추가 개방을 요구하는 나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리핀이 ‘의무 면제’ 협상에서 실패하면 쌀 관세를 정하고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쌀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로 우리나라만 남게 된다.

25※필자 김상영: 농민신문 편집국 농정부 기자. 농업기자포럼 회원. 1999년 농민신문에 입사해 2006년부터 최근까지 농림축산식품부 출입 기자였다. 지금은 국회와 학계를 담당한다. 관심 분야는 식량, 통상, 농촌복지, 농가소득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