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예술문화로 힐링하다

양희전 물뫼힐링팜 대표

38-1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사람들은 삶의 쉼표를 찍는다. 올레길을 걷거나 한라산을 오르며 호흡을 가다듬고 삶의 어려움과 힘듦을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물과 산이 평화롭게 펼쳐진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머무르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농업과 문화를 공유하며 치유하는 공간 ‘물뫼힐링팜’이다. 이곳의 대표 양희전 씨(43)를 만났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나누며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힐링’. 양희전 씨는 이 ‘힐링’을 주제로 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18년 전부터 했다고 한다.
“환경문제도 심각해지고,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들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치
유하고 돌봐줄 수 있는 힐링센터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그의 생각을 실현해줄 수 있는 첫걸음은 유기농사였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고, 유기농사에 대한 주변의 시선도 탐탁지 않았지만, 대학을 마치고 다시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부모님의 땅을 임대해 감귤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틈틈이 한방의학, 침술 등 대체의학도 공부하며 인간의 몸과 정신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정들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농업과 문화를 접목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물뫼힐림팜
농업과 문화를 접목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물뫼힐림팜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는 긍정의 에너지
2008년 체험농장을 만들고 ‘물뫼힐링팜’이라 이름을 지었다. 지명인 ‘수산’을 빌려 와 자연을 담고, 그 자연 속에서 머물며 쉬는 의미를 담았다.
“이렇게 공간이 생기고, 이곳에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만 추구하는 것들이 점점 속도를 내면서 실현된 거죠.”
이곳에서는 텃밭에서 유기농산물을 수확하거나 토종 약초를 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힐링푸드 체험, 몸과 의식을 이완시키며 정신을 맑게 하는 명상체험, 승마체험, 흑돼지 먹이주기 등을 하며 유기농업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휴식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유기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기농을 근간으로 먹거리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또 먹을거리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게끔 하고 있어요. 음식을 먹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감사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 몸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작용하게 된다고 믿어요.”

생태텃밭에서 자라는 농산물을 수확하고, 힐링푸드 만들기, 명상, 승마체험 등 을 할 수 있다.
생태텃밭에서 자라는 농산물을 수확하고, 힐링푸드 만들기, 명상, 승마체험 등 을 할 수 있다.

아직 정식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농장 홍보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찾아오거나, 이곳을 지나다 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고 쉬면서, 체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유기농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고, 또 다양한 문화, 체험 요소를 고루 갖춘 물뫼힐링팜은 우프(WWOOF) 농장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1년에 50여 명의 세계 각국의 우퍼들이 찾아오는데,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머문다고 한다. 이들은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함께 문화체험을 나누기도 하며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간다.

“맨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오랜 준비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농장의 완성도는 48%라는 양희전 씨. 많은 사람에게 유기농의 중요성을 알리고, 치유와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서는 앞으로 체험의 특색도 강화하고, 쌀을 제외한 자급기반을 만드는 것도 부지런히 가꿔나가야 할 그의 몫이다.

흑돼지들? 일하려고 있죠
양희전 씨는 현재 감귤 3,000평, 유자 2,000평, 생태텃밭 800평, 토종 약초밭 300평에 농사를 짓고 있다. 그 중 감귤밭에는 새끼 흑돼지부터 어미 돼지까지 20여 마리를 방목해서 키우고 있다.
“처음 돼지를 키울 때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와서 먹였어요. 버려지는 음식물을 재활용도하고, 돼지들이 크고, 저한테는 먹거리가 생기니까 너무 좋았죠.”
토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축산진흥원에서 토종 성이 가장 강한 흑돼지를 구해 기르기 시작했다. 이 토종 흑돼지를 유기농업에 활용하면 어떨까. 돼지들이 자유롭게 밭을 다니며 풀을 뜯고 땅을 파니, 자연히 제초가 되고, 경운작용이 되었다. 사소하게 시작한 생각이었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되었다.
“보통 거름을 주면 토양 위에만 주기 때문에 비가 오면 빗물에 다 씻겨 내려가기 일쑤인데, 돼지들이 땅을 파면서 흙의 영양분들을 표면과 땅속으로 고루고루 섞기 때문에 그럴 일이 적어요.”

그리고 흑돼지를 키우면서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과 가공 중 발생한 농산부산물을 사료로 이용해, 양질의 거름도 생산해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토종 흑돼지로 소시지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음식체험거리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농가 소득을 창출할 수도 있다. 친환경 농업의 어려움을 토종흑돼지를 활용해서 해결하고, 더 나아가 부가가치를 높이게 된 것이다.

흑돼지가 풀을 뜯으며 자연스럽게 제초작업을 한다.
흑돼지가 풀을 뜯으며 자연스럽게 제초작업을 한다.

새로운 팜파티, 농업이 문화를 만나 추구하는 가치
“여기에 다양한 사람이 많이 와요. 세계 각국의 우퍼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 여행자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까지. 그동안 만나는 사람이 늘 농업인뿐이었는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양희전 씨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응원해 주는 가족들
양희전 씨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응원해 주는 가족들
양희전 씨는 농업에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더해 그 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다.
양희전 씨는 농업에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더해 그 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다.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는 더 질레의 공연은 밝고 유쾌하다.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는 더 질레의 공연은 밝고 유쾌하다.

그 중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함께 공연밴드를 만들었다. 하모니카 부는 수수형, 노래하는 로즈벨과 제주거지 훈. 밴드 이름은 ‘더 질레(The Jille)’. 제주어로 ‘길에서’라는 뜻이란다. 길에서 함께 노래 부르며, 사람들과 문화로 소통하는 이들이 펼치는 공연은 유쾌하고 즐겁다.
“제가 생각했던 힐링은 단순한 육체적인 치료였는데, 마음과 정신까지 감동하고 치유할 수 있는 요소들까지 다 갖췄을 때 온전한 힐링이 되더라고요.”
이들은 앞으로 7월부터 월 1회 정기적으로 팜파티를 열 계획이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팜파티는 농업의 가치를 공감하고, 지속 가능한 삶과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시간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농업이 이제 생산만이 아니라 문화를 이끌어야 해요. 다국적 기업과 소농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농만의 가치와 철학을 견고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삶과 유기농업의 중요성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더해 농장의 철학과 가치를 견고히 해나가고 있는 양희전대표.
그가 시도하는 농업과 예술문화의 만남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글·사진 /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