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일상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호주 블루마운틴과 카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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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호주는 6월부터 겨울이다. 지난 5월, 늦가을에 찾은 블루마운틴은 마치 여름처럼 초록이 생생했다. 사철 내내 초록빛을 뿜는 유칼립투스 나무 덕분이란다.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블루마운틴은 1만 3천950ha에 달하는 광활한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에코 포인트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폭신폭신할 것 같이 완만한 고원이 유난히 푸른 하늘 아래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블루마운틴 이름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곳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증발된 유액이 햇빛과 만나 푸른빛을 띤다하여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스카이웨이’라 불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을 날 듯 흔들흔들, 절벽에서 뚝뚝 떨어지듯 내려가
면 울창한 원시림에 다다른다. 무려 5억 년 전에 만들어졌고,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1400년 동안 살았던 곳이란다.

탄광의 세자매봉은 원주민의 전설을 입고 블루마운틴의 명소가 되었다. 흔적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연장
탄광의 흔적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연장
세자매봉은 원주민의 전설을 입고 블루마운틴의 명소가 되었다.
세자매봉은 원주민의 전설을 입고 블루마운틴의 명소가 되었다.

향긋한 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나무 바닥이 놓인 길(보드워크)을 따라 걷는다.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바닥을 깔아, 키 큰 나무들이 보드워크 안으로 자연스레 침범(?)해 있다.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자 하는 의지. 그런데 중간 중간 설치된 미술 작품들은(유명한 작가의 작품일지는 모르겠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원시림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잔이 타고 다녔을 법한 나무줄기, 쥐라기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고사리 나무를 보며 걷다 보면 탄광의 흔적이 보인다. 석탄을 캘 때 필요한 연장과 탄광 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 1878년 처음 문을 연 탄광은 1930년대를 마지막으로 폐쇄됐다고 했다.

레일웨이는 석탄 차를 개조한 열차다.
레일웨이는 석탄 차를 개조한 열차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명물인 ‘레일웨이(ScenicRailway)’는 원래 석탄을 나르던 석탄 차를 개조한 것이다. 52도의 가파른 경사로 400m의 궤도를 단숨에 오르면(심지어 뒤를 보고 오른다) 온몸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블루마운틴의 또 하나의 명물은 ‘세자매봉’. 아름다운 세 자매를 탐한 마왕을 피해 주술사는 세 자매의 부탁을 받고 세 자매를 바위로 변하게 했는데, 마왕이 이 사실을 알고 그 주술사를 죽여 세 자매는 영영 그 자리에 남았다는 전설의 세자매봉은 사실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들은 꼭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세월은 흐르고 또 그 흔적을 남긴다. 1400년간 이곳에 살던 원주민은 어디로 갔는가. 석탄을 캐며 더 나은 삶을 꿈꾸던 고단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랜 세월 속 수많은 이야기가 유칼립투스 나무가 뿜어대는 유액처럼 햇살을 만나 부서진다. 푸른 안개다.

글·사진 /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