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유럽일주

-2012년,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의 농업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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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나는 80일간의 유럽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갈 곳은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약 3개월간 세 나라의 농업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함께 생활하면서 알아볼 생각이었다. 또한 FTA 협상으로 더욱 가중되는 수입 농, 축산물에 대한 우리 농업의 해답을 찾아오겠다는 포부도 함께였다.
내가 이용한 프로그램은 우프(WOOF)였다. 우프란 농가에서 1일 5~6시간씩, 1주일에 5~6일간 농장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주로 젊은이들이 외국 여행을 할 때 많이 이용한다. 내가 한 농가당 머문 기간은 평균적 1주일에서 2주일 정도였고, 농가에 머물면서 이웃 농업인들과 대화하기도 하고 인근에 있는 농업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소비자와 농민의 경계를 허물다_커뮤니티농장과 일요장터
독일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로베르토(Roberto) 씨 농장. 유기농으로 채소를 재배하는데 총 4ha 중 2ha를 커뮤니티 농장으로 운영한다. 베를린 시내에 거주하는 소비자회원 70명은 매월 65유로(약 9만 5천 원)를 농장주에게 지급한다. 농작물이 수확되면 매주 수요일에 베를린 시내 6개 지역 대표 회원에게 농산물을 배송하고 지역 회원들이 농산물을 찾아간다.
일반마켓에서 사면 50유로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회원들은 15유로에 유기농 농산물을 이용하고, 회원들은 회의를 하여 작목을 결정한다. 수익이 나면 회원들이 결정권을 갖는 일종의 인베스트팜(자본투자농장)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회원은 농사기간 중 4일간은 농사일에 참여해야한다는 것. 회원들은 안전한 품질의 유기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고, 근거리 농산물 이용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여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며, 정치적 또는 환경적 활동을 이유로 회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일요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하고 문화를 즐긴다.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일요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하고 문화를 즐긴다.
베를린의 일요장터. 화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손님을 맞는다.
베를린의 일요장터. 화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손님을 맞는다.

농장주인 로베르토 씨는 농산물 수확이 없는 겨울철에도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고, 본인이 자영하는 2ha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주로 토, 일요일에 베를린 시내에서 열리는 마켓에서 직거래하고, 품질이 떨어지거나 팔리지 않은 채소나 과일 등은 주스로 만들어 직거래 판매나 유기농 식당, 카페에 납품하는데 여기서도 20%의 이익을 얻는다.
주말이 되면 커뮤니티 농장 회원 가족과 지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농장을 방문하여 농장일도 도와주고, 농장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으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로베르토 씨처럼 커뮤니티 농장을 운영하는 농가는 베를린에 3농가, 독일 전체로는 약 30농가가 있다.
커뮤니티 농장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클라인가르텐이 있다. 도시민을 위한 녹색 휴식처로 전철역 인근 등 도심의 공공용지에 조성된 것이 인상적이다. 도시민들이 정성을 들여 농사도 짓고 꽃과 나무도 심어 아름답게 만들어 가꾸며, 가족과 이웃이 함께 휴일을 보낸다. 클라인가르텐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토, 일요일이 되면 베를린에서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장터가 열린다. Prinzessing Garten은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민 판매장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다. 이곳에서는 교육프로그램도 있고, 식당도 운영한다. Mauer Park Market은 일요일마다 열리는 장터다.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장터에서 문화를 즐기고 있다. 농장을 아름답게 조성하는 것도 농장과 농업인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키우는 경쟁력, 커지는 농업의 영역
독일 카이저슬라우턴(Kaiserslautern)에서 1시간 거리에 소재한 20ha의 농지에서 감자를 생산하는 모리츠(Moriz) 씨 농장은 최근 콩으로 작목을 전환했다. 콩을 수확한 후 두부나 간장을 만들어 판매할 계획도 있다고 하는데,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작목과 가공품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농외소득을 위해 윈드밀 풍력전기시설을 설비할 계획이라 했다.
프랑스 Rennes에서 1시간 거리에 소재 한 Samuel씨 농장은 50ha(약 15만 평) 농지규모, 착유우 40두 규모 유기농 낙농가인데 유기농 인증 받는데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여 1리터당 45유로 센트(약 650원, 일반우유는 1리터당 32유로 센트)를 받으며 일부 우유는 농장에서 직거래하고, 육우의 경우에도 도축 및 가공은 육가공공장에서 한 후 소고기 1kg당 11유로(약 1만 6천 원)에 사전예약제로 직거래 판매를 한다. 농가민박을 운영하고 채소 등 농작물도 유기농으로 재배하여 농가에서 직거래 판매를 한다.
특히 육우의 경우 도축 및 가공 공장에서 위생, 안전성 검사를 거쳐 부위별로 포장되어 나오면 농장주가 별도의 허가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예약 주문으로 3~4시간만에 육우 1마리가 유기농 소고기로 팔리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농가에서 직접 키운 소를 판매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휴식과 치유의 농업으로
독일 트리어(Trier)에서 10분 거리에 소재한 팜(Fam)씨 농장. 8ha의 농지에서 말 11마리로 규모로 승마 프로그램과 테라피 프로그램 운영한다. 주택 1개 층을 교육장으로 리모델링하여 1주일에 2일은 일반인 대상으로, 3일은 외부지역에서 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승마 프로그램은 대상에 따라 차별화되어 있다.
특히 지적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대상으로 1주일에 1회~3회, 1시간씩 어린이 스스로 모든 과정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1년 정도 지나면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자폐증 환자나 지적 장애인이 사회복지기관의 도움을 받아 승마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초등학생은 말을 다루는 방법이나 승마 자세나 기술 등을 배우는데, 11세 이전까지는 미니 말을 타고 1년 정도 숙련한 후에는 큰말을 타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승마프로그램으로 농외 소득을 올리는 농가.
어린이를 위한 승마프로그램으로 농외 소득을 올리는 농가.
네덜란드 Weenink 관광목장에서는 목장과 스포츠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관 광객을 불러모은다.
네덜란드 Weenink 관광목장에서는 목장과 스포츠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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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편한 시간에 와서 승마를 즐기고, 시간이 날 때 말 관리를 도와주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말과 자주 접하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승마가 생활 일부분이 된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시골길과 축사를 이용하여 승마를 대중화하는 방안을 찾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 Arnhem에서 1시간 거리의 Lievelde 지 역 에 있 는 Peter씨 의 ‘Weenink 관광목장’은 목장형 유가공품판매장, 목장체험, 레스토랑, 낙농박물관, 결혼식 등의 파티장소 제공 등의 사업 등 관광 소득이 주 소득을 차지한다. 재미있는 것은 핸드볼공 크기의 공과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 스틱을 사용하는 ‘파머스 골프’를 하기 위해 1년에 약 2만 명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목장과 스포츠를 연계한 창의적 프로그램이 돋보이는 사례다.

유럽에서는 풍력 전기시설에서 전기를 생산하여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풍력 전기시설에서 전기를 생산하여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새로운 가치_재생에너지
독일 스카메데(Scharmede) 지역에 있는 마리우스(Marius) 씨 농장은 55ha 농지에 번식우 60두 규모의 축산 농가로 1년에 약 30두(18개월령, 약 260kg)의 육우를 유기농으로 직판한다. 축사와 농가주택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윈드밀 풍력전기시설도 가지고 있다. 농가소득 중 80%가 전기를 판매하여 얻는다. 마리우스 씨는 농가의 전기사업으로 1년에 10만유로(약 1억 4천 5백만원)의 순수익이 발생한다고 하며, 축사에 설치한 태양광은 내년까지 원금을 다 갚으면 그 이후에는 전기판매한 소득 대부분이 순수익이 될 수 있어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라고 했다. 바이오가스 플랜트, 태양광, 윈드밀 풍력전기시설의 전기가격은 각각 설치한 연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는데 신재생 에너지 사업으로 전기를 판매할 경우 시설비를 2% 이내의 저리 자금으로 7년간 상환하게 되어 있다. 독일 정부가 20년간 일정 가격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매월 약 5백만 원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며 이후에는 전기 판매 금액의 대부분이 수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독일 현지에서 만난 농업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판매였고 전기 생산 농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독일과 조금 사정이 달랐다. 네덜란드 르와덴(Leeuwarden)지역의 겔롭(Gerlof)씨 농장. 착유우 100두 규모로 우유 1리터당 32유로 센트(약 460원)에 우유회사에 납품하고, 윈드밀 풍력전기시설에서 연간 200만~250만KW의 전기를 KW당 10유로 센트(약 145원)에 판매한다. 겔롭(Gerlof) 씨의 농가 소득에서 낙농소득과 전기 판매 소득이 각각 50%를 차지한다고 했다.
네덜란드 르와덴(Leeuwarden) 지역의 프란(Frans)씨 농장은 200두 규모의 낙농가인데 전기 생산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였다. 원인은 바이오가스플랜트 설치 농가가 많이 늘어나면서 사일리지나 곡물 부산물 등의 원료 값 상승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번 80일간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를 돌아보면서 유럽의 농업인들도 농산물 생산만으로는 살기 어렵고, 농외소득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유럽은 농업소득 증가를 위해서 대규모화하여 경쟁력을 가지는 형태와 가족농 중심으로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농산물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형태의 이원화가 되어 있었다. 농업 소득을 높이기 위해 주로 유기농, 축산물 생산과 직접 생산한 농, 축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하고, 직거래 판매를 위한 농업인의 다양한 노력을 볼 수 있었다.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축사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축사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바이오플랜트 시설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바이오플랜트 시설

내가 찾았던 유럽의 농업인들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신재생에너지로 전기 생산을 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투입 원료비 상승과 악취문제, 윈드밀 풍력전기시설은 소음문제, 태양광은 축사나 건물을 이용해야 하는데 축사등 건물이 없는 농가는 비용문제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농업선진국이라 일컫는 유럽의 농민은 어떻게 농업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고자 했고, 세상의 모든 농민이 어렵고 힘든 길을 헤쳐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의 방법 속에서 우리 농업의 가능성도 함께 찾을 수 있었다.

※ 필자 박재준: 밀크스쿨 아트팜 기획이사. 대산장학생 출신으로 부지런히 세계 농업 현장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