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공동체”

이태근 흙살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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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다. 공부하는 틈틈이 농사일을 도우면서, 농사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를 몸으로 느끼며 성장한 소년은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소농이 왜 잘 살지 못하는 건지 답답했다.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면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농부가 잘 사는 세상을 꿈꿨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1970~80년대 젊은 날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평범한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이태근 흙
살림 회장(52)의 특별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다.
“대학 다닐 때부터 농민운동을 한 10년간 했지요. 그런데 이런 운동만으로 사회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구나, 생각했어요. 정치적인 운동의 방식보다는 정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해보
면 좋겠다, 그래서 충북 괴산으로 내려왔지요.”
1991년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시 관행농업에 대한 연구와 지원은 정부에서 하고 있었다.
반면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을 때였지만 이론적 학술적인 체계가 없이 일본의 농법이니 농자재를 그대로 가져다가 주먹구구식으로 유기농을 할 때였다. 그는 유기농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유기농의 핵심이 다름 아닌 흙이라는 믿음으로 괴산미생물연구소를 만들었고, 이것이 1993년 사단법인 ‘흙살림’으로 재탄생했다.
“흙살림은 실제적인 연구를 통해 무엇인가를 해보자는 곳입니다. 유기농 중에서도 흙, 미생물,
퇴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지요.”

농민운동과 사업을 접목시키다
흙을 살리는 운동으로 시작한 흙살림. 그런데 이 운동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우리가 연구한 것을 단순한 농민운동이 아니라 사업으로 접목시켜보자, 수익이 나면 그것으로
운동을 지원하고 활성화 했어요.”
흙살림은 유기농업에 필요한 액비, 미생물을 활용한 흙만들기, 생태적인 병충해 방제 기술, 제초기술을 개발했고, 또 농민이 만든 기술을 체계화해서 농민들에게 보급하기도 했다. 그렇게 20년, 흙살림은 우리나라 유기농시장을 확대시키는 생산의 기본 틀을 마련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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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근 회장은 토종연구소를 세우고 5천년을 묵묵히 지켜온‘토종’에 대한 활발한 보존작업과 연구를 하고 있다.
이태근 회장은 토종연구소를 세우고 5천년을 묵묵히 지켜온‘토종’에 대한 활발한 보존작업과 연구를 하고 있다.

생활꾸러미와 토종연구
현재 흙살림의 회원은 1만 2천명을 넘고, 직원만도 100여 명에 이른다. 충북 청원과 괴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흙살림은 2008년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아 지역의 노동력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젊은 인력이 많아 미래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는다.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흙살림은 기존의 인증, 생산지원 중심을 유지하면서 생산농민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유통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 일환으로 나온 것이 “생활꾸러미”다. 일주일에 한 번 회원들에게 유기농 채소, 방사유정란, 두부 등 한 주동안 먹을 정도의 제철 농산물을 집으로 배달해준다. 현재 이 생활꾸러미 회원은 1천여 가구. 지난 달에는 회원들에게 김장용 절임배추를 공급하기도 했다. 또한 쌈지농부와 ‘농부로부터’라는 친환경농산물판매장을 열고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그는 2010년 캐나다 유기농 연수를 다녀온 뒤 ‘그로우백’이라 부르는 텃밭화분을 개발해 도시민들에게 보급했다. 동그란 주머니 모양의 화분 보급으로 베란다나 옥상, 작은 마당에서 간편하게
채소를 키워 먹을 수 있는 도시농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 하나 이태근 회장이 주력하는 것은 토종 연구다. 5천 년 동안 우리땅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점
점 희미해지고 있는 토종. 괴산 흙살림연구소는 300여 가지의 토종작물을 보존하고 있다. 농사가 끝난 지금은 새해 농사에 쓰일 종자를 채집하고 보관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토종은 원래 우리 토양에 가장 잘 맞는 거지요. 그런데 흙이 바뀌고, 생산력에 있어서 밀리니까
사라져갔어요.”
그는 지금도 전국을 돌며 농가에서 자가 채종한 토종 씨앗을 모으는데 힘쓴다. 우리 몸과 토양
에 잘 맞는 토종 작물을 복원하는 것이 미래와 후손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로우백’이라 불리는 텃밭화분. 도시에서도 손쉽게 채소를 길러 먹을수 있게 해준다
그로우백’이라 불리는 텃밭화분. 도시에서도 손쉽게 채소를 길러 먹을수 있게 해준다
텃밭화분에서 청보리가 자라고 있다.
텃밭화분에서 청보리가 자라고 있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화해야
지금 농촌, 농업이 왜 이렇게 힘들까. 이태근 회장은 잘못된 행정과 제도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정부는 줄곧 농산물 저가 정책을 유지했어요. 식량자급률 26%밖에 안되는
어려운 나라인데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수입을 해서 가격을 낮추는 저곡가제도를 고집한거죠. 그러니 도시 노동자와 농민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요.”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여러 지표가 있겠지만 이태근 회장은 가장 큰 차이를 ‘빈부의 격차’로 꼽는다.
“개발도상국을 직접 가보면 놀라요. 거기도 잘사는 사람은 정말 잘살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왜 선진국이 아닐까요. 바로 빈부의 격차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농업, 농민의 문제가 빠질 수 없지요.”
한미 FTA에 대처하기 위해 농업에 22조원을 투입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이것이 정말 농업의발전을 위해 제대로 쓰이는가,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이는가 면밀히 살펴봐야할 일이다.
또한 좀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농업과 농촌을 바라봐야한다는 것이 이태근 회장의 생각이다. 농
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농산물을 수입해 가격을 낮추고, 이듬해 과잉생산으로 밭을 갈아엎게 되는 상황의 반복, 쌀이 남아돈다며 논을 없애는 일, 모두 근시안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1가마 입니다. 자급할려면 연간 50만 가마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 85만ha의 농지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선진국에선 국가가 이 문제를 고민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농민이 해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식량보안의 문제는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농민들의 노력과 함께 소비자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농업은 농민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언어가 되어야 하고,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태근회장의 생각이다.
“농민이 세금 까먹는 존재로 인식되어선 안됩니다. 요즈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공무원이지요? 공무원은 봉사하는 사람이예요. 농민은 땅을 지키고 우리 사회를 지키고 우리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봉사자 역할을 합니다.농민의 가치를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그 가치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거죠.”
국민적 동의를 얻는 농업, 지금 선진국이 보여주고 있는 농업의 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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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은 유기농산물 생산 인증, 기술개발에서 소비자와 직접만나는 유통까지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흙살림은 유기농산물 생산 인증, 기술개발에서 소비자와 직접만나는 유통까지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환경을 살리는,유기농이 미래다
우리는 예로부터 소를 키우는 외양간 밑에 둠벙을 만들어 미꾸라지를 키웠고, 또 그 밑에는 미나리를 키웠다. 아무것도 버려지지 않고 계속되는 순환, 그것이 바로 유기농이다.
“지금 현재 우리 농업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사료에 의존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농업은 환경을 살리는 방식으로 가야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흙살림은 도시민들에게 농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농민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며 세상과 함께 상생하는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새로운 도약의 시기에 서있는 이태근 회장. 자신이 젊은 시절 꿈꾸었던, ‘모두가 가난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의 몸과 마음이 더욱 바빠진다.

글 · 사진 신수경(skshin7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