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는 농부의 마음을 닮아요”

김상식 두리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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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
이름만 들어도 수북히 쌓여있는 황금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런데 이곳은 황금보다 더 귀한 건강한 먹을거리가 넉넉한 곳이다.
이곳에서 유기농으로 쌈 채소를 재배하는 김상식 씨(47). 그가 생산한 15가지 채소들은 ‘3℃ 숨쉬는 맑은 채소’라는 두리농장의 고유상표를 달고 소비자를 만난다.

무조건 농장을 방문하라
김상식 씨는 채소를 납품하는 특이한 계약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농장을 방문하라’는 것이다. “우리 채소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규모가 크나 작으나 다 농장을 방문하게 해요. 그 품목의 파종부터 출하까지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까지도 미리 다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조건에 동의하면 계약이 성사되는 거죠.”
올해 여름 비 피해가 심해 채소들이 다 녹아 내렸을 때도, 상황을 설명하고 공지하는 걸로 끝냈다. 계약 물량에 맞추기 위해서 사방을 뛰어다닌 농민의 이야기를 흔히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 싶다.
웬 배짱이 그렇게 두둑하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건 배짱이 아니라 신뢰를 지키기 위함이란다. 생산 농민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농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김상식 씨의 신념이다. 물론 이것은 품질에 대한 자신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이러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꺼낸다. 1980년대 초 김상식 씨는 알로에를 재배하여 광주의 백화점으로 납품했다. 새로운 것이라 사람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그는 일주일에 두 세번 씩 백화점에 나가 직접 알로에를 홍보했다.
“그때 우리 알로에를 샀던 분들이 결국 저희 농장으로 찾아오시더라구요. 오신 걸음이 고마워 상품가치가 별로 없는 것들을 덤으로 드렸어요. 나중엔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오지 마시라’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직접 배달을 해주었어요.”
300호가 넘는 가정에 일일이 배달하면서, 그는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그때 그 소비자들은 여전히, 그의 고객이다.

친환경농업교육관 전경
친환경농업교육관 전경
김상식 씨는 1만여평의 비닐하우스에서 약 15종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김상식 씨는 1만여 평의 비닐하우스에서 약 15종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아픈 아이, 건강한 먹을거리
김상식 씨는 천상 농사꾼이다. 아홉 남매의 막둥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다 떠나는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준 송아지 한 마리로 열여섯 마리를 만들었고 멧돼지도 종돈을 사와 늘렸다. 토마토며 쌀이며 채소며 안 해 본 농사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농사를 무척 즐겼다.
“한 1년 반 도시 나가서 생활한 적이 있었어요. 직장도 다녀보고 또 뭐 통닭집도 해보고……. 그러다가 뭐 이리 살라면 촌 갈란다, 그러고 다시 돌아왔죠.”
귀농을 결심한 이유는 첫아이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가 돌이 지나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것. 아이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라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저희 농장 채소를 드시는 분 중에 환자가 많아요. 아픈 사람과 건강한 먹을거리를 나눠서 조금이라도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요.”
김상식 씨의 아내 김민자 씨(46)의 말이다.
아픈 아이 때문에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러웠고 알로에와 신선초, 케일 등 건강채소를 재배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1990년대 초반 대형 유통 매장이 광주지역에 생기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1995년, 대나무로하우스를 직접 짓고 이듬해 유기농 쌈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채소 한 박스도 공판장 거래를 하지 않는다. 중간유통마진을 줄여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 가깝게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생협이나 인터넷, 또는 식당 등에 납품을 하는데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만 판매한다. 정직한, 자신이 생산과정을 알고 있어 믿는 농산물만 소비자에게 주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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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이 모이면 대농이 된다

2001년 그는 두리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 혼자’ 뛰어다니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은 마을에 영농조합이 3개가 되었다고 하는데, 선의의 경쟁 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김상식 씨는 평가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소농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깊게 깨달았다.
“소농이 기반이 되어 농사를 지어야 하고 소농들이 조직화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소농 대여섯 농가만 뭉쳐도 대농이 됩니다. 한 사람이 이끄는 대규모 농장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지만 가족이 기반된 소농이라면 자기 것에 대한 확실한 관리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경쟁력이 있습니다.”
소농의 조직이 합쳐져 제 목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 농업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또한 그는 농민들이 자신의 농장 브랜드를 만들 것을 권고한다. 이름을 달고 나가는 농산물에 대해 농민의 책임감이 높아지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3℃ 숨쉬는 맑은 채소’ 브랜드로 소비자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친환경농업관에서는 친환경농업관련교육과 귀농귀촌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친환경농업관에서는 친환경농업관련교육과 귀농귀촌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한 상자도 공판장에 팔지 않는다는 두리농장 채소.‘ 착한 농산물’의 가치를 아는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한 상자도 공판장에 팔지 않는다는 두리농장 채소.‘ 착한 농산물’의 가치를 아는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김상식 씨는 농업에서 돈들이지 않는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사진은 채소 수확하는 노인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만든 간이의자다.
김상식 씨는 농업에서 돈들이지 않는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사진은 채소 수확하는 노인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만든 간이의자다.

태풍에 함께 울기보다 대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그는 2008년 전라남도친환경교육관을 지었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120평의 공간에서 친환경농산물과 관련된 강의와 귀농귀촌교육 등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민은 자신의 농사에 충실해야 합니다. 계속 모임이나 회의, 강의 때문에 밖으로 나돌다보면 망가지게 마련입니다.”
외부 강의 요청이 많지만 김상식 씨는 교육관으로 찾아오는 경우에만 강의를 하며, 전남친환경농업인 연합회 총무이사, 담양군 회장 외에 어떤 모임의 감투도 쓰고 있지 않다.
“지금 제가 설립한 이 교육관은 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점진적으로 유기농업교육학교로 전환시키고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이곳에서 유통이나 가공 과정까지도 제대로 된 실습을 할 수 있는현장실습학교로 만들 것입니다.”
그는 농민들이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달라져야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땀과 노력이 담긴 친환경교육관이 그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자신한다.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합니다. 태풍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망연자실한 서로를 위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풍을 대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하는 것입니다.”
묵묵하게 농업에 정진해 온 그의 고집스런 삶이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까닭일까. 2008년에는 신지식농업인상을 받았고 지난해는 세계농업기술상도 수상했다.
농민의 힘을 키워야한다는 신념, 농사는 착한 마음을 지어야한다는 고집과 열정이 마음속에 가득한 김상식 씨.
그의 새로운 2011년이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