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권’으로 ‘지역공동체’ 자치를

지역의 모든 권력은 지역주민으로부터

“서울 외 지방은 전부 식민지’이고 ‘식민지 독립투쟁’이 지방을 넘어서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헌법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 빈껍데기, 아니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면서, “지방은 정치·경제·문화·교육·언론 등 전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 식민지’”라고 개탄한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
123조 제2항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 제11조 제1항이다. 헌법에 이렇게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 왜 지역은 자꾸 낙후되는 걸까. 강 교수는 “지방정부의 자율성도 낮을뿐더러 재정 독립성도 약하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인사와 예산의 종속은 지방정부의 ‘중앙에 줄대기’ 경향을 키웠다는 것이다.

지역 균형 발전과 지방 분권이 ‘지방 독립’의 열쇠
오늘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전 국토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면적에 인구, 취업인원, 지역 내 총생산의 절반을 끌어안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토 이용의 불균등, 비효율, 불평등, 부조리는 심각하다. 좁은 국토와 한정된 자원을 균형적으로 조화롭고 폭넓게 활용하는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 강화는 국가의 숙원이다.
지난날 지역발전 불균형으로 지역 간 격차와 지역 불평등은 곧 경제적 기회, 정치적 접근성, 문화적 향유의 격차로 직결되었다. 이는 지역감정이라는 사회적 갈등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국가의 통합적 발전을 저해한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지역 불균형 또는 차별의 원인이 결국 권력의 중앙 집중에 있으므로 지방의 자율과 분권은 불가피하다. 그래야 지방은 ‘서울, 수도권의 식민지’에서 독립할 수 있다.
우선 ‘지방’이란 용어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지역’이라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방이란 용어는
‘서울’을 중앙으로 보고 나머지 지역은 변두리 또는 들러리로 무시하고 홀대하는 시각과 인식이 깔린것이다. 그동안 지역마다 외부나 상부에 의존하는 외생적 지역발전전략의 폐해와 상처는 심각했다.

지역간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의 주권을 찾아야하고, 이를 위해 마
을과 권역을 넘어 이른바 ‘지자체 또는 지역 단위 협동경영체’ 모델을 개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군이나 읍·면의 기초지자체 지역 단위와 범위에서 지역주
민들이 서로를 위해, 그리고 지역공동체를 위해 설립한 공동사업의 주체를 뜻한다.

특히 상부, 즉 중앙정부의 시혜적 배분에 의존하는 외생적, 기생적 지역발전 전략은 지역의 창의력,능동성, 독립성을 마비시켰다.

지역주민의 ‘지역주권’부터 되찾자
그러자면 우선 지역공동체의 주권부터 찾아야 한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정부부처마다 경쟁하듯 지원한 수천 곳의 마을·지역공동체사업 현장에서는 지역주권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앙이나 외부에 의존하는 지역발전 전략의 한계와 폐해만이 극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물론 지역주민들이 ‘지역주권’을 발휘해 자율적이고 상향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라는 사업지침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지자체 행정과 지역주민들의 역량이나 수준, 그리고 지역주권의 정도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보조금이 살포되었을 뿐이다.
영국은 지역주민들이 지역공동체 사업에 필요하면 토지구매대금을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지역의 자산을 그 지역의 주민들이 우선해 매입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민들이 힘을 모아 ‘공공의 자산’으로 만든 토지나 건물을 토대로 공동체사업을 벌일 수 있다. 영국 정부와 지방정부, 공동체 등이 함께 2011년 제정한 로컬리즘 액트(Localism Act, 지역주권법)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지역에서 가치가 있는 자산이 매각될 때, 6개월 동안 토지 소유자는 개인에 팔 수 없도록 유예기간을 두어 공동체가 돈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게 법의 골자이자 목적이다. 이 법은 커뮤니티(지역공동체) 또는 지역주민들이 서비스 제공이나 토지 소유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한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국가가 지역공동체에 가치 있는 자산 2600여 개를선정해 ‘지역의 주권’을 부여했다.
우리 농촌에도 쓸만한 유휴시설들이 전국에 산재, 방치되어 있다. 일단 영국의 ‘지역주권법’ 같은
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따라 ‘(가칭)유휴시설 지역공유 사회적 경제자산은행’ 같은 전담 중간지원기구를 설립하면 합리적인 출구와 효과적인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돈도 없고 방법도 몰라 공동체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지역주민들도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북 진안군의 진안마을주식회사는 ‘기초지자체 단위 협동경영체’의 모범적인 사
례로 꼽을 수 있다. 2011년 진안군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1000여 명의 진안군민
등이 공동출자한 농업회사법인으로 일종의 ‘군민주식회사’이다. 2015년에는 마이
산 관광단지 안에 로컬푸드 직매장, 농가레스토랑, 흑돼지 육가공장 등도 새로 차
렸다. 이곳에서 많은 진안군민의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됐음은 물론이다.

‘지자체형 협동경영체’를 꾸리자
특히 기존에 마을 또는 권역 단위로 주로 이루어진 농촌지역개발사업 등은 시작부터 근본적인 한계와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바로 주민 역량의 한계, 적정 사업조직 구성 역부족, 규모의 경제 부적합 등이 내재된 실패 요인으로 작용한다.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권역 단위로 적재적소에 배치할만한 기본적 업무인력이나 역량 있는 경영자, 기획자, 관리자를 구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마을과 권역을 넘어 이른바 ‘지자체 또는 지역 단위 협동경영체’ 모델을 개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군이나 읍·면의 기초지자체 지역단위와 범위에서 지역주민들이 서로를 위해,그리고 지역공동체를 위해 설립한 공동사업의 주체를 뜻한다. 일종의 ‘지역 단위 네트워크 기반의 사회적 경제조직형 공동사업체’로서 마을과 지역공동체의 공익에 기여하는 사업목적과 가치를 추구한다. 남원 산내면의 이른바 ‘실상사 들녘공동체’, 홍성 홍동면의 ‘협동경제사회네트워크 등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북 진안군의 진안마을주식회사는 ‘기초지자체 단위 협동경영체’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 수있다. 2011년 진안군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1000여 명의 진안군민 등이 공동출자한 농업회사법인으로 일종의 ‘군민주식회사’이다. 2015년에는 마이산 관광단지 안에 로컬푸드 직매장, 농가레스토랑, 흑돼지 육가공장 등도 새로 차렸다. 이곳에서 많은 진안군민의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됐음은 물론이다.

진안, 임실, 구례는 마을에서 지역으로 넓히고 있다
마을 단위 사업의 선도 사례지인 임실 치즈마을도 자연마을과 행정리를 넘어 지역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2015년 치즈마을의 마을운영위원회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 임실치즈레인보우 주식회사’라는 출자 회사를 새로 설립한 것이다.

진안군 진안마을주식회사는 ‘기초지자체 단위 협동경영체’의 모범 사 례로 꼽힌다.
진안군 진안마을주식회사는 ‘기초지자체 단위 협동경영체’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지자체와 민간의 협력으로 문을 연 구례 자연드림파크의 지역 일자리 창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지자체와 민간의 협력으로 문을 연 구례 자연드림파크의 지역 일자리창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지역의 공익에 기여하려는 ‘협동 경영체’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 고려한 법인에는 치즈마을 운영위원회와 일반 주민은 물론, 임실축협 등 지역의 협력네트워크, 심지어 지역의 임실군민과 지역 밖의 도시민들도 참여한다. ‘지역과 외부에 열려 있는 공공기업’이라 할 수 있다.
지자체와 민간의 협력사업으로 2014년 문을 연 구례 자연드림파크의 지역 일자리 창출 사례는 단연 주목할 만하다. 아이쿱생협에서 조성한 국내 최초의 ‘친환경유기식품 클러스터’인 이곳에는 4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250여 명이 구례군 주민이고. 직원의 10퍼센트가 외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직원들 평균연령은 37세 정도이고 모두 정규직으로 정부 최저임금보다 25퍼센트 가량 더 많은 ‘생활임금’시급을 지급하고 있다. 수익금을 재원으로 구례읍 보건소에 산부인과 전문의 고용을 지원하고, 청소년수련원도 세울 계획이다. 귀농인들이 모여 살 공동체 마을도 따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먹고살 만한 일자리’가 창출되는 구례에 청년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제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15-3※필자 정기석: 마을연구소(Commune Lab) 대표,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정책연구소 정책분과장이다. 저서로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2011년, 이매진), 『사람 사는 대안마을』(2014년, 피플파워), 『농부의 나라』(2015년, 한티재) 등이 있고 <마을주의자>, <행복사회, 유럽>,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이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