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 인증제도와 소농의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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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 인증제란 일정한 안전 기준을 통과한 농식품을 생산 공급하는 농가나 기업에 국가가 인증 표지를 부여하는 제도다. 수입개방과 글로벌 푸드시스템의 확산,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증대 속에서 품질 차별화로 농가소득을 안정시키고,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인증제도는 그동안 일정 부분 먹거리 안전을 담보하는 데 일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제도 역시 비용 문제 등으로 소농·가족농이 접근하기 어렵고, 대농과 기업자본에 유리하다. 국가 인증제도를 통한 획일적인 규격화가 오히려 고투입 농업을 고착화하고 먹거리 시장을 기업자본 중심으로 재편해가는 상황이다.

넘쳐나는 농식품인증제
국내 최초의 농식품 인증은 1992년 7월 도입됐다가 2008년 인증제 통합으로 폐지된 ‘농산물물품질관리인증’이고, 2001년 친환경농산물, 2006년 GAP 등 다양한 인증을 시행 중이다.
향후 국가인증은 확대될 전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까지 친환경농산물(무농약 이상) 재배면적 비율을 4.5%에서 8%(13만 3,000㏊)로 늘리고, 시장 규모를 현재 1조 4,000억 원에서 2조 5,000억 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 2018년까지 GAP 인증면적을 전체 작물 재배면적의 27%로 확대하고, 2025년까지 재배면적의 50% 이상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경우 2만 5,000여 개의 식품제조 가공업체 대비 HACCP 의무적용비율을 현재 14% 정도에서 2020년 40%, 2024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특히 달걀, 떡, 순대마저 2017년 까지 단계별로 HACCP 인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축산 분야는 사료제조업, 가축사육업, 도축업, 집유업, 식육포장처리업, 축산물가공업, 축산물 보관·운반·판매업까지 HACCP이 적용되는데, 도축장·집유장은 현재 의무적용이고, 유가공장은 2018년까지 단계별 의무적용 대상이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농산물과 식품 시장은 HACCP, GAP 등 국가인증 마크를 단 상품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농민을 소외시키는 식품 기준
문제는 인증제를 비롯한 각종 농식품 위생관련 제도가 글로벌푸드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면서 농업과 먹거리에 대한 농민과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농가 가공에 대한 규제를 들 수 있다. 식품위생법은 식품의 제조·가공·운반·판매·보존 등의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기준의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품가공을 위한 건물과 작업장을 설치해야 하고, 작업장에는 식품의 오염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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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설기준과 영업 규제는 결국 영세한 농민의 가공 참여를 가로막고, 자본 조달이 용이한 대기업이 식품가공을 독점케 하는 시스템이 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6차 산업을 육성하고 로컬푸드와 결합을 도모하려 해도, 시설과 규모를 기준으로 삼아 막대한 자본투입을 요구하는 식품위생법이 발목을 잡는다.

또 외부의 오염시설과도 일정 거리를 둬야 한다. 가공시설로 등록하려면 제2종 근린생활시설 혹은 500㎡ 이상의 건물이 있어야 한다. 농촌지역에서 마을회관이나 농기계 창고 등을 리모델링해서 가공사업장으로 사용하려 해도 건축물등록대장에 등재되지 않았거나 용도가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농민들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로 즙을 짜거나 추출물을 만든다든지, 고추장 등을 만들어 팔려고 해도, 영업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
이러한 시설기준과 영업 규제는 결국 영세한 농민의 가공 참여를 가로막고, 자본 조달이 용이한 대기업이 식품가공을 독점케 하는 시스템이 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6차 산업을 육성하고 로컬푸드와 결합을 도모하려 해도, 시설과 규모를 기준으로 삼아 막대한 자본투입을 요구하는 식품위생법이 발목을 잡는다.

누구를 위한 HACCP인가?
식약처가 불량식품을 근절한다고 의무화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HACCP 역시 농가를 식품가공에서 소외시키고, 지역의 전통식품업체를 옥죄는 제도로 작동한다. 예컨대 청국장을 만드는 소규모 가공시설에서 HACCP 인증을 받으려면 작업공간을 비롯해 위생 전실, 공간 구분, 천장, 벽면, 바닥면과 세척·소독 등 위생설비를 다 갖춰야 한다. 우리 농산물로 절임류를 만드는 한 업체는 구매업체들의 요구 때문에 HACCP 인증을 시도했지만, 시설 개보수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중도 포기했다고 한다. 이 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1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주는데도, 자부담 비용 1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통주나 전통식품에 대해 HACCP 인증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전통식품이란 국산농산물을 원료로 제조·가공되고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우리 고유의 맛, 향, 색을 내는 식품인데, 이것을 글로벌 기준에 맞춘다는 것은 난센스다. 세계 유수의 명품 지역식품과 농산물은 가장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이것을 국제기준에 맞춰 규격화한다는 것은 스스로 함정을 파는 것과 같다.
농가가 HACCP 인증을 받아도 별 혜택이 없어 나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축산의 경우 농가 HACCP을 추진 중인데, HACCP 인증을 반납한 농가가 2011년 202개소에서 2012년 196개소, 2013년 257개소, 2014년 233개소, 2015년에는 310개소까지 늘어났다. 일선 농장에서는 HACCP 인증 획득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농장과 판로나 가격 측면에서 별반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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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HACCP이나 GAP은 기업, 특히 유통자본들의 필요에 의해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글로벌갭Global G.A.P’이다. 글로벌갭은 ‘유럽소매업생산자단체’가 1997년 ‘EUREPGAP’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06년 ‘유럽갭EUROPE GAP’으로 바뀐 뒤 2007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진행 중이다. 현재는 독일 쾰른에 소재한 푸드플러스FOODPLUS사에 서 관리한다.
글로벌갭의 인증기준은 HACCP은 물론이고 위험예방, 위험분석, 병해충종합관리IPM, 작물양분종합관리INM 등을 포함하고 있어 현재 우리나라의 GAP 인증보다 범위가 넓다. 이 제도는 유통업체들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TESCO, Coop, Otto 등 상당수 유럽의 대형유통업체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안전관리기준이다. 즉 HACCP나 GAP은 유통업체 입장에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이윤추구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국제표준으로 고착화되고, 이 제도에 동승하려면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소농·가족농·중소기업보다는 대농과 대기업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다. 결국 인증제도의 확대는 농업과 먹거리 시장을 대기업 위주로 재편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HACCP 적용으로 이익을 보는 부류는 시설투자가 가능한 대기업, 시설 공급업체, 인증업무를 대행하는 컨설팅업체,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는 프랜차이즈업체라는 비판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인증제도가 부른 친환경농업의 관행화
정부주도의 인증정책은 친환경농업에도 혼선을 부르고 있다. 친환경농업이란 고투입 관행농업, 산업적인 농업과는 다른 대안적인 농업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의 농업지배 강화는 농약·비료·시설·에너지의 고투입, 대규모 단작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식 산업적 농업을 확산시켜 먹거리 안전과 생태문제를 부르고, 공동체를 해체하며, 부의 집중으로 농촌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에 비해 친환경농업은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면서 자원의 순환고리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한다. 친환경농업은 농업의 순환성, 농지 생태계의 풍부화, 외부투입 화학농자재 배제, 지역자원의 순환을 위주로 하는 농업이다. 그 철학이 되는 키워드는 ‘생태, 순환,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획일적인 친환경농산물 인증이 시행되면서, 고투입 관행화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친환경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 등 외부 농자재 투입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친화성, 지역순환성을 가치로 해야 함에도, 인증기준에 따라 허용된 농자재를 기계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 고착화됐다.

문제는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획일적인 친환경농산물 인증이 시행되면서, 고투입 관행화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친환경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 등 외부 농자재 투입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친화성, 지역순환성을 가치로 해야 함에도, 인증기준에 따라 허용된 농자재를 기계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 고착화됐다. 정부정책이 인증과 농자재 지원에 집중되면서, 정부의 친환경유기농자재 목록공시나 품질인증을 받은 비싼 자재를 구입해 사용하는 일이 일반화됐다. 획일적인 기준은 유기농의 주체인 소농·가족농과 소비자 대신 친환경농자재를 생산하는 기업, 표준화된 유기농산물을 높은 가격으로 유통하는 유통·가공자본에 이익을 주는 구조로 변질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인증은 잔류농약 여부를 중심으로 하는 실험실 분석과 결과 중심의 인증이다. 결과 중심의 인증은 친환경농업의 생태, 순환을 외면하고, 정부가 공시한 자재를 집중적으로 쓰게 만드는 원인이다. 생산자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잔류농약이 검출되면 가혹한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공을 들이는 GAP가 친환경농업을 위축시키거나 대체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GAP를 ‘농산물우수관리’라고 이름 붙이고 있지만, 이제 ‘적정농업관리’나 ‘적정생산관리’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우수하고 안전한 농산물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잘못된 농법에 비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을 과하지 않도록 적정하게 관리한다는 의미이므로 친환경농산물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GAP은 친환경농산물 인증에서 금지하는 농약, 비료뿐 아니라 GMO(유전자변형농산물) 종자 원료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순환과 공생, 소농을 살리는 인증제도를
인증제도는 농업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대농과 기업자본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한 소농·가족농에 돌아가게 하고, 생태 순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개혁돼야 한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농업의 융·복합 6차 산업화도 지역 내에서 소농·가족농을 중심으로 선순환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의미가 있다.
12현재의 인증제도는 소농·가족농이 좀 더 접근하기 쉽게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증을 받기 위해 소요되는 시설과 비용을 대폭 줄여야 한다. 세계 최강의 농산물 수출국 뉴질랜드의 경우 농가가공을 위한 HACCP 시설이 매우 간소하다. 농장에서 체험·가공장·농가숍을 운영하며 잼, 와인, 아이스크림, 농축액, 주스, 비누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20ha 규모의 뉴질랜드 블루베리 농장의 HACCP 인증 가공장 크기는 어지간한 식당의 주방 수준에 불과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소농 육성을 위해 내수 시장에 한해 저비용 유기농인증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3~5농가가 공동체를 형성, 인증기준에 맞게 농장을 관리하는지 상호 점검하고 감사를 통해 인증한다. 비용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비용의 10%면 된다.
친환경농업의 요체는 생태·순환·공생이고, 이에 적합한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소농·가족농이다. 친환경 인증제도는 친환경농업 방식, 생산자의 자질, 물리적인 환경을 포함한 생산시스템과 과정을 살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농약 검출만 따지는 인증, 외부 투입재 사용을 강요하는 인증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 순환, 생태계 보전을 따지는 인증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의 인증은 결과 중심 인증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인증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대부분 나라는 생산과정을 평가함으로써 유기적인 품질을 관리한다. 요즘 국내 생협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참여인증, 자주인증제도는 좋은 대안이다. 이 제도는 인증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와 농민이 연대하는 공생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농가의 부담을 덜고, 지역순환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농자재 지원정책이 아니라 유기농에 대한 직불금 확대, 경축순환 농업 지원, 소농과 가족농의 공동작업 촉진, 로컬푸드 지원 등이 필요하다.
6차 산업이 성공하려면 농산물의 가공권을 기업이 아닌 농민에게 줘야 한다. 일본의 경우 식품위생법에서 정한 34개 업종 외에 간단한 농가가공품의 경우 영업허가가 없어도 제조 전용공간과 시설만 있으면 가능하다.
농가가공 활성화를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14년 9월 가공규제를 완화한 ‘식품제조·가공업 시설기준 특례에 대한 표준조례·규칙’이 모든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식품위생법, 건축법을 비롯한 각종 법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

12-2※필자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편집국장을 거쳐 논설실장·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다. 2005년 ‘미디어오늘’에 ‘한국의 전문기자’로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