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상상의 마을,
호비튼 Hobbiton _ 뉴질랜드, 마타마타

글·사진 신수경 편집장

난쟁이족(호빗)인 빌보 배긴스, 아담한 호빗 마을에서 평범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마법사 간달프가 찾아온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제안하는
간달프에게 
빌보가 묻는다.
“돌아온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간달프의 답은 명확하다.
“아니, 하지만 돌아온다면 지금과 달라져 있을 거네.”
고민 끝에 빌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호빗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허름한 배낭을 메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빌보에게 어딜 가냐고 묻는 이웃들.
그는 큰소리로 답한다.
“I’m going on an adventure!(모험을 떠날 거예요!)”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빌보 배긴스가 본격적인 ‘모험’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점점 흥미진진해지지만, 평화롭고 동화처럼 환상적이던 화면은 급속히 어둡고 긴박하며 무겁게 채색된다. 초반 스크린을 초록으로 가득 채운 아름다운 호빗 마을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머릿속에 선명히 남는다.

 

영화 ‘호빗’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의 집. 호비튼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 ‘호빗’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의 집. 호비튼의 상징이기도 하다.

평범한 농촌이 유명 관광지로
영화 속 호빗 마을은 뉴질랜드의 대표적 관광지 로토루아에서 멀지 않은 마타마타 지역 농촌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피터 잭슨 감독은 ‘반지의 제왕’ 영화 촬영지를 찾기 위해 수개월을 돌아다니던 중, 이곳을 발견하고 “바로 여기!”라고 외쳤다고 한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완만한 구릉지에서 새하얀 양들이 그야말로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고, 소가 느릿느릿 걸으며 풀을 뜯는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평범한 농촌마을이 영화 촬영장이 되면서, 하루 수백 대의 트럭이 촬영 장비를 실어 나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지만 몇 달간의 영화 촬영이 끝나고 세트장은 철거됐다. 그러다가 영화 ‘호빗’ 촬영으로 복원된 이후 지금의 호비튼이 되었다. 2시간 남짓한 투어 입장료는 79NZ$(약 67,000원)로 다소 비싸지만, 하루에 수천 명,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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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를 깎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직원들, 제작자의 의도에 충실한 소품
마을은 영화 세트장을 잘 보전하고 있다. 길을 따라 만나는 작고 아담한 집들은 집주인의 직업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도록 세심한 소품을 늘어놓았다. 널어놓은 빨래, 패다 만 장작더미를 지나 동그란 문을 두드리면 금방이라도 누군가 나올 듯 생생하고, 낮은 울타리며 작은 우편함은 아주 오래된 마을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듯 낡고 녹슬어 있는데, 이것 역시 제작자의 의도라고 했다.
 “250여 명의 직원들이 잔디를 깎으며 하루를 시작해요. 영화 반지의 제왕 보셨나요? (네!) 반갑네요! 이 길은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걸어 들어오던 길이에요. (대문을 가리키며) 저긴 들어가 봐도 아무것도 없어요.” 

오래된 마을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울타리를 낡아보이게 만들었다.오래된 마을을 표현하기 위해 울타리를 낡아보이게 특수 제작했다.

집 앞 마당에는 집주인의 직업과 생활을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이 있다.
집 앞 마당에는 집주인의 직업과 생활을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이 있다.

우리 일행에게 호비튼을 안내해 준 18세의 젊은 가이드는 해밀턴에 내부 세트장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도 믿기지 않아 문을 열어 확인해본다. 안은 어두컴컴하고 아무것도 없어 버려진 창고마냥 휑하다.
 마을을 휘 둘러본다. 추억을 사진에 담고 풍경을 즐길 시간은 충분하다. 중간중간 영화를 소환하는 장소에 대한 안내와 영화 촬영 뒷이야기 등도 버무려진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면 카페에서 흑맥주와 ‘진저비어’ 같은 음료수를 한 잔씩 하는 것으로 방문 여정이 끝난다.

실제로 농작물을 키우는 마을 공동텃밭(커뮤니티 가든)도 있다.
실제로 농작물을 키우는 마을 공동텃밭(커뮤니티 가든)도 있다.
호비튼은 인공적인 소품과 건축물, 뉴질랜드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풍광이 잘 어우러져 있다.
호비튼은 인공적인 소품과 건축물, 뉴질랜드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풍광이 잘 어우러져 있다.

영화 속 즐거운 상상력을 보전하는 농촌다움
영화의 힘은 가히 크다. 특히 유명한 영화일수록 반향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유명한 영화 촬영지라고 잔뜩 기대하며 찾아갔던 세트장에서 얼마나 많이 실망하고 돌아왔던가. 영화 속의 생생함이 유지되지 않는 세트장은 생명력을 잃고, 다시 발길을 주고 싶지 않은 ‘일회용’이 된다. 그런데 호비튼은 자연 그대로, 농촌다움을 유지하면서 인공적인 소품과 건축물을 잘 관리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재미있는 착각, 그리고 즐거운 상상력을 허락한다. 유명 관광지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피로감과 실망감을 다독이기 위해, 호비튼은 뉴질랜드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풍광을 정성스럽게 보전하고 있다. 그 풍광의 주인공은 물론, 농촌이다.

 작고 동그란 대문 옆에 종이 있다. 땡땡 종을 쳐본다. 순간 발이 아주 큰 난쟁이족 호빗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미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리고 이어,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오지 못한 가족과 친구, 또 소중한 누군가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아, 다시 와야겠다!” 고 결심하는 시점이다.
모험은, 다시 떠나도 멋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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