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회를 돕는 텃밭 공동체
베지 아웃veg out

글·사진 신수경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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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 시 외곽, 아름다운 세인트 킬다 해변을 끼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놀이동산과 오페라 극장이 마주보는 평화로운 도시 한복판의 ‘베지 아웃Veg out’. 시민들이 설립해 스스로 운영하는 ‘특별한’ 시민 공원이자 텃밭 공동체Community garden다.

베지 아웃은 평화로운 도시의 한복판에 있다.
베지 아웃은 평화로운 도시의 한복판에 있다.

도시 속 농촌, 텃밭
“텃밭은 주인의 개성에 따라 각양각색입니다. 온갖 채소는 물론,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수확해 포도주를 만들고, 딸기를 따서 잼을 만들기도 하죠. 양봉도 합니다.”
베지 아웃의 텃밭과 회원관리, 교육과 행사 운영을 총괄하는 휴 캐닝Hugh Canning 씨의 말이다. 1998년 설립한 이곳은 총 2.5 에이커(약 3천 평) 규모로 200여 개의 작은 텃밭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약 6㎡ 남짓한 텃밭은 나무판자 또는 낮은 울타리를 이용해 구획을 정해놓았는데, 키우는 작물도 밭의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정원이 없는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곳에서 농촌 못지않은 경작 활동을 할 수 있어 좋죠.”
텃밭 주인은 1년에 50AUD(호주달러, 약 44,000원)의 임대료를 낸다. 멜버른을 떠나면 이 텃밭도 떠나게 되는데, 최근 3년간 텃밭 주인 반 이상이 바뀌었고 현재 약 60~70가구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우리’가 합니다
“이곳은 주 정부 땅입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따로 지원 받지는 않아요. 정부는 땅을 내주고, 우린 여기서 지역 사회를 위한 일을 하죠. 노인들을 대접하고 학교와 연계하여 학생에게 퍼머컬처와 농업 교육을 해요. 매주 월요일마다 노숙인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먼데이 런치Monday Lunch’ 행사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텃밭을 소유하지 않아도 연 15AUD를 내면 베지 아웃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만 2천여 명. 회원들을 위한 행사도 다양하다고 했다. 특히 연말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행사는 6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그런데 이렇게 주기적, 비정기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하는 베지 아웃에는 상근 직원이 없다.

텃밭 주인의 개성이 돋보이는 각양각색의 텃밭이 200여 개 있다.
텃밭 주인의 개성이 돋보이는 각양각색의 텃밭이 200여 개 있다.
베지 아웃 매니저 휴 캐닝 씨. 베지 아웃은 정부 지원 없이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베지 아웃 매니저 휴 캐닝 씨. 베지 아웃은 정부 지원 없이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입구에 있는 베지 아웃 안내판. “베지 아웃의 설립과 유지관리는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한다”고 쓰여 있다.
입구에 있는 베지 아웃 안내판. “베지 아웃의 설립과 유지관리는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한다”고 쓰여 있다.

휴 캐닝 씨 역시 자원 봉사자다. 캐닝 씨처럼 워킹 비Working Bee라 부르는 다수의 자원 봉사자들은 일요일마다 공동의 공간을 관리하고 음식물 찌꺼기로 유기질 퇴비를 만드는 등 주어진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을 우리가 합니다. (월급 받는) 직원이 없으니까 재정 지원은 필요 없어요. 텃밭 임대료와 회비, 파머스 마켓 입점비 등으로 필요한 자재를 사고 충분히 운영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매년 6천 달러 가량을 지역에 기부하고 있어요.”

농민과 도시민, 도시 농부와 예술가가 함께한다
베지 아웃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 베지 아웃 안에 시립 아트센터가 있어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하고, 전시회에 온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베지 아웃을 방문하게 된다.

베지 아웃 내에 있는 특이하고 상징적인 조형물은 예술가의 작품이다.
베지 아웃 내에 있는 특이하고 상징적인 조형물은 예술가의 작품이다.

“특이하고 상징적인 조형물이 들어서고 아름다운 수제 타일이 벽을 장식하는 등 곳곳에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이 더해져서 공간이 더욱 멋지게 변했어요.”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농민 시장이 열리는데, 멜버른 인근의 유기 농민들이 참가하여 지역의 유기농산물을 매개로 농민과 소비자, 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가 어울리는 장이 된다.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고 예술가들과의 활발한 네트워크로 베지 아웃은 텃밭공동체의 모델이 되고 있다.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고 예술가들과의 활발한 네트워크로 베지 아웃은 텃밭공동체의 모델이 되고 있다.

“광역 멜버른 시는 굉장히 넓은데 약 200여 개의 크고 작은 텃밭 공동체가 있어요.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도 있고요. 하지만 베지 아웃만큼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고 예술가들과 네트워킹 하면서 활발히 활동하는 곳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시청에서 문의가 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느냐고요.”
개인에게는 쉼과 힐링의 공간을, 지역 사회에는 세심한 배려와 도움을, 어린이들에게 환경과 농업에 대한 교육을, 도시민과 농민, 예술가들에게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준다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가 크지만, 휴 캐닝 씨는 베지 아웃의 의미를 지극히 개인적(?) 시각에서 설명한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여유로운 여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200가지의 다른 생각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200가지 ‘다른 생각’이 상생하는 느슨한 텃밭 공동체 베지 아웃의 또 다른 비전은, “모든 것을 우리가 한다”는 캐닝 씨의 말 속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