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의 지속 가능성

– 농업문명의 회복을 중심으로

위키피디아(다국어 인터넷 백과사전_편집자 주)에 따르면 생태학적 용어로서의 지속 가능성은 ‘생태계가 생태의 작용, 기능, 생물 다양성, 생산을 미래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사회의 환경, 경제, 사회적 양상의 연속성과 관련된 체계적 개념이며 문명과 인간 활동, 즉 사회를 구성하는 수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성이란 단순히 경제․정치적 측면에서만 규정할 수 없는 매우 포괄적인 인류 문명사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농農의 지속 가능성을 단순히 산업으로서의 농업, 지역으로서의 농촌, 국민으로서의 농민만으로 국한하여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 공익적 기능, 식량주권, 농촌 지역공동체의 유지, 농민 계층의 문제 등을 강조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나 문제 제기만이라도 우리 사회가 수용한다면 농의 지속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농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류 문명사적, 농업문명사적 관점에서 농업문명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판단 아래 농업문명의 회복이 왜 필요한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농업문명, 인류문명 발달의 핵심
약 500만 년 전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인류는 끊임없이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고, 다양한 인류문명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야생의 자연에서 수렵과 채취로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 오다가, 약 1만 8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한 기후가 도래하면서부터 농지를 개간하여 작물을 재배하고 야생동물을 길들여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농경사회의 농업문명은 수천 년 동안 인류문명 발달의 핵심을 차지해 왔다. 인류문명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으로 기후․환경의 변화와 농업문명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후와 지구환경에 순응적이던 농업문명은 기계화, 화학화, 유전자조작 등을 통해 지구환경 훼손형 농업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인간이 하던 농사일을 기계가 대신하며 그 동력원인 원유나 에너지를 투입하는 고에너지 농업과 농약․제초제․화학비료 등을 사용하는 고투입 농업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녹색혁명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약 2백 년 전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문명의 발달은 농업문명과 인류문명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인간과 자연환경의 조화로운 발전보다는, 인간이 자연환경을 변화시키거나 개발하더라도 경제가 성장하기만 하면 되는 기술개발과 성장우선주의가 팽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대신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착취하고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수억 년 전에 지구생태계가 저장해 두었던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발굴하여 산업문명을 발전시켜나갔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농업문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인류문명의 역사는 농업문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이러한 산업문명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농업문명에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기후와 지구환경에 순응적이던 농업문명은 기계화, 화학화, 유전자조작 등을 통해 지구환경 훼손형 농업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인간이 하던 농사일을 기계가 대신하며 그 동력원인 원유나 에너지를 투입하는 고에너지 농업과 농약․제초제․화학비료 등을 사용하는 고투입 농업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녹색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이러한 녹색혁명을 통하여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한 측면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폭증하는 세계인구 증가를 상쇄할만한 농업기술과 농업생산력의 증대는 녹색혁명에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업기술과 생산력의 증대는 소위 선진 농업국에만 해당할 뿐 여전히 지구상의 많은 인류는 농업생산력 증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고에너지·고투입 농업은 인류의 식량,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고에너지·고투입 농업은 인류의 식량,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에서 멀어진 문명에 미래는 없었다
선진국 중심의 농업문명은 분명히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고에너지․고투입형 농업은 결국 농업도 자본이 투입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산업의 형태를 띠게 만들었다. 이와 같이 우리시대의 농업문명과 인류문명이 반환경적이고 반인간적이라면 그것은 영원할 수 없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문명이 지속된다면 지구환경이 피폐화되고 인류는 점차 비인간화될 것이다.
  인류 문명사에서도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물질과 인력이 고투입된 문명은 결국 사라지고 말았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피라미드 문명이 그렇고, 그리스․로마 문명, 인더스 문명, 아메리카의 잉카, 마야, 아스테카 문명,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문명, 만리장성을 쌓은 황하 문명의 진나라도 마찬가지로 멸망했다.
  한편 산업혁명 이후 21세기 현재까지 인류는 고도의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왔지만, 20세기 말에 출현하여 21세기 초반인 현재까지도 창궐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는 자연과 환경, 농업은 물론 인간까지도 경제적 가치만으로 평가하려는 천박한 물신주의 이념이다. 모든 가치의 핵심이 물질이다 보니 물질 이외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농식품 세계화를 통한 인류의 기아문제 해결은 요원해졌고 국가 간, 개인 간 소득 격차는 양극화로 고착되고 있다. 선진국은 자국의 기업이나 국민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인류 공영의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제3세계의 인류는 식량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농산물 국제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무역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매우 불안정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처럼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농촌과 식문화, 균형을 되찾자
인류의 음식 문화도 건강과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육식 위주의 식문화에서 곡물과 식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문화로 전환하고 패스트푸드 등 가공식품 의존율도 낮추어야 한다. 비료, 농약, 농기계를 많이 사용하는 고투입, 고에너지 농법도 바뀌어야 하며 농촌의 부흥을 통해서 기업식 대규모 영농법도 중․소량 생산의 지역 사회 영농 방식으로 점차 교체하여 농업 부문의 탈석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넓은 바다를 이용하는 지속 가능한 수산 양식의 혁명으로 지구 환경 문제와 식량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20세기 말에 출현하여 21세기 초반인 현재까지도 창궐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는 자연과 환경, 농업은 물론 인간까지도 경제적 가치만으로 평가하려는 천박한 물신주의 이념이다. 모든 가치의 핵심이 물질이다 보니 물질 이외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농식품 세계화를 통한 인류의 기아문제 해결은 요원해졌고 국가 간, 개인 간 소득 격차는 양극화로 고착되고 있다.

  특히 육식은 많은 자원과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기에 환경 파괴적이며 비효율적인 식량이다. 대략 38%의 세계 곡물 생산량(특히 옥수수, 보리, 오트밀, 수수)이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대량의 곡물을 가축 사육에 사용하고 있는 반면 저소득 국가들은 곡물이 주식인데도 불구하고 부족하여 다수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육류와 유제품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지구온난화 물질의 하나인 메탄의 배출량도 늘어난다. 결국 육식의 감소는 지구 환경 보호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농촌 사회는 다양한 생태․자원적 가치를 품는다
또한 자연 친화적인 정주형 농촌을 복원해야 한다. 도시문명의 무분별한 팽창은 결국 에너지 과소비형 문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농․어․산촌을 부흥시키고 경제와 정주 체계의 다양성을 높여 인구와 산업을 분산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향후 예상되는 기후 및 환경 변화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농촌 사회를 복원함으로써 식량과 질병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정주 생활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시화된 사회를 위한 상업적 대량 생산 체계가 불러온 작물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농촌의 부흥으로 농업, 수산업 등 식량 생산의 다양성을 복원하는 것이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식량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된다.
  농촌의 복원은 태양에너지, 풍력, 지열, 바이오, 수력 등 자연에너지의 생산과 이용 체제의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대규모 발전소 건설에 의한 중앙 집권형 에너지 이용 체계 대신, 신재생에너지의 중·소규모 발전 시설을 이용한 지방 분산적인 에너지 이용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물신주의에 입각한 경쟁력 지상주의로 생겨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며 경제의 효율 자체를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문명은 풍요로워졌지만 그 풍요로움이 일부 선진국의 것일 뿐 인류 전체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21세기 인류문명은 전환되어야 한다. 농업문명도 마찬가지다.

  분산형 자원 이용 체계는 고용 증진에도 도움을 주어 세계화 시대에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대량 실업의 사회적인 충격을 완화해주는 측면도 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 종사자를 위한 잘 정비된 전원생활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면서 국민 삶의 질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농은 협력의 문명으로 회복되어야
또한 지배의 문명을 극복하고 협력의 문명을 창출해야 한다. 물신주의에 입각한 경쟁력 지상주의로 생겨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며 경제의 효율 자체를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문명은 풍요로워졌지만 그 풍요로움이 일부 선진국의 것일 뿐 인류 전체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21세기 인류문명은 전환되어야 한다. 농업문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기대할 만하게 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싹트고 있다. 작지만 강한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신 내지는 철학이 구체적인 형태로 이미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농업문명의 회복 운동이다. 친환경유기생태농업, 로컬푸드 운동, 학교급식 운동, 어메니티 자원의 활용, 귀농․귀촌 현상, 생협운동, 시민지원농업(CSA), 슬로우 푸드․슬로우 시티 운동, 지역공동체 운동, 도농교류운동, 공정무역 등의 확산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은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꼭 가야 할 길이며, 우리의 농업․농촌․농민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열쇠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농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농업문명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농업문명의 종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본다. 농업문명의 종언은 결국 인류문명의 종언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12※필자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양양로뎀농원 농부. 중앙대 산업과학대 학장,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쌀은 주권이다』(2016,콩나물시루), 『농업문명의 전환』(2011,교우사), 『농산물 시장 개방의 정치경제론』(2008,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