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농민수당

농민수당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구충곤 화순군수 후보. ⓒ구충곤
농민수당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구충곤 화순군수 후보. ⓒ구충곤

6.13 지방선거, 농민수당 논의 촉발
지난 6월 13일에 치러진 지방선거 과정에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남북 평화통일 노력에 대한 평가도 그렇고 각자 좋아하는 후보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필자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사항은 어느 후보가 농민수당(농민 기본소득) 공약을 내고 당선됐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상 이번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의원 후보부터 광역단체장 후보까지, 농민수당을 공약으로 내세운 첫 번째 선거였기 때문에 관심과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선거에 나온 많은 후보의 공약을 일일이 다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농민수당을 공약으로 낸 후보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농촌 지역 민중당의 많은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등의 일부 후보가 농민수당제 도입 공약을 냈으나 당선된 지자체는 화순군, 봉화군 등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파악이 되지 않은 후보도 있겠지만 농민수당제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후보는 많지 않았다.

농민수당제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지켜내고,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개선해 땀 흘려 일하는 모든 농민이 사람답게 대접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로 정당성과 시의성, 필요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농민들의 생존권, 특히 제도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중소영세농의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우선 도입되어야 할 정책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선거가 끝나고 오히려 농민수당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선거 후 필자는 경기도, 전남도, 제주도, 나주시, 청양군 등 많은 지역에서 여러 문의와 자료 요청을 받았다. 제주도에서는 미국의 알래스카주처럼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원과 자산을 가지고 농민 기본소득제를 포함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사실상 이번 6.13 지방선거는 농민수당제 도입을 촉발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농민수당제는 지역에서 더욱 활발히 논의될 것이다. 왜냐하면 농민수당제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지켜내고,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개선해 땀 흘려 일하는 모든 농민이 사람답게 대접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로 정당성과 시의성, 필요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 기본소득제는 권리 이전에 생존의 문제이다.” 지난해 농민 인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때 만난 농민의 말이다. 농민수당제는 농민들의 생존권, 특히 제도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중소영세농의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우선 도입되어야 할 정책이다.

농민수당, 학교 의무급식 실행 모델의 길을 갈 듯
농민수당제(농민 기본소득제) 도입은 결국 학교급식 모델로 갈 거라 확신한다. 학교급식은 UR 농산물 개방 협상 이후 절망에 빠진 농민들이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해 농가 소득을 향상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중앙정부는 WTO 규정을 들어 오히려 학교급식 시행을 방해했지만, 지자체는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므로 지역 농민들의 요구에 따라 해당 조례를 만들어 시행했다. 중앙정부보다 지역 농민의 절박한 심정을 더 잘 아는 지자체 단체장과 지역 의회가 움직인 것이다. 지금도 학교급식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고 지방정부가 대부분 예산을 집행한다. 이제 학교 의무급식을 하지 않는 지자체의 단체장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충남도의 경우 15개 지자체에서 13개 지자체가 학교급식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이제는 고등학교의 의무급식과 공공급식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학교급식 사례를 길게 설명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농민수당제 도입이 학교급식의 도입 과정을 따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학교급식은 실행과정에서 행정 전담, 부분 위탁, 완전 위탁 등 그 실행 모델은 다르지만, 정부가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좋은 음식을 안정적으로 제공한다는 뜻은 서로 일치한다. 농민수당의 실행모델도 마찬가지이다.

강진군의 약 7,100 농가는 올해부터 재배 면적과 재배 작물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연간 70만 원의 경영안정자금(농민수당)을 받는다. 더욱이 강진군은 70만 원 가운데 35만 원은 현금으로 통장에 입금하고 35만 원은 강진사랑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경제도 함께 살린다는 취지다.

지역경제와 여성농민도 함께 살린다
농민수당의 실행 모델은 다양하다. 첫 번째는 농가 단위 농민수당으로, 농가당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농민수당이다. 이 방식은 이미 전남 강진군에서 올해 도입했다. 2008년부터 시행한 벼 재배 경영안정자금 지원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되, 추가 재원을 마련해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강진군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5억 원~38억 원의 경영안정자금을 3ha 한도 내에서 면적에 따라 벼 재배 농가 5,000호에 지급했다. 벼 재배 농가에 대한 중앙정부의 직불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진군이 추가로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직불제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현재 쌀생산조정제를 통해 정부가 쌀 생산을 줄이고 있는데 계속해서 벼 재배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다른 하나는 형평성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크게 벼 재배 농가 간 형평성 문제와 벼 재배 농가와 밭작물 재배 농가 간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강진군은 2017년 12월 전면적인 조례 개정1)을 통해 2017년에 지급됐던 벼 재배 경영안정자금 38억 원은 그대로 유지하되 추가 재원으로 마련된 50억 원은 농업인 관련 규정에 근거해 논농사, 밭농사 구분 없이 모든 농가에 농민수당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그래서 강진군의 약 7,100 농가는 올해부터 재배 면적과 재배 작물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연간 70만 원의 경영안정자금(농민수당)을 받는다. 더욱이 강진군은 70만 원 가운데 35만 원은 현금으로 통장에 입금하고 35만 원은 강진사랑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경제도 함께 살린다는 취지다.
  두 번째 실행 모델은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이다. 즉, 농가 단위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농민 개개인에게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개별성을 강조하는 기본소득의 원칙에 근거하자면 농가 단위보다 농민 단위 농민수당이 훨씬 발전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농가주가 대부분 남성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농가 단위로 농민수당제가 실시될 경우 여성농민은 또다시 정책에서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농민단체에서 특히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제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필자도 여기에 적극 동감한다.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은 그동안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여성농민을 당당하게 농정의 주체로 인정하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농민수당이 실행된다면 여성농민의 자존감과 자부심 또한 고양될 것이다. 현재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농민권리선언>에서도 가사와 농사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농민의 권리를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만일 농민 단위 농민수당이 지급된다면 여성농민의 권리와 지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농가, 농민에 대한 개념 정립과 관리체계 필요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제를 시행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먼저, 우리나라에 농가(농업경영체)등록제는 있어도 농민등록제는 없다. 즉, 농가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만 농민 개별에 관한 사항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물론 농업경영체등록제 또한 문제가 많지만 현재 정부에서 농업경영체등록제를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여기에 개별 농민에 대한 사항까지 포함한다면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충남도는 지난해부터 기존의 벼 경영안정직불금제도를 기본소득형 직불금제도로 바꾼 농업환경실천사업을 도입하고 각 농가당 연간 약 35만 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시 과정에서 충남 도내 농업경영체가 늘어나 사업 시행에 혼선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개별 농민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해 시행한다면 더 많은 혼선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김광직 단양군수 후보는 농민수당과 아울러 거주수당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문철
김광직 단양군수 후보는 농민수당과 아울러 거주수당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문철

  농업인 기준에 따른 농민등록을 통한 농민수당제 실행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중요한 사항은 농민의 연령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농업인 기준에 연령을 정하고 있지 않다. 즉 80세이든, 90세이든 농사만 지으면 농업인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각종 농업정책의 대상이 된다. 과연 이러한 정책이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에서는 보통 65세가 되면 은퇴한다. 그 후 이들은 농업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소득과 복지가 보장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물론 최근에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시행되어 농촌고령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농촌에서 소득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기력이 다할 때까지 농사를 짓는다. 얼마 되지 않는 직불금이라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촌고령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 방기이자 넓게 말하면 학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권 차원에서도 크게 다뤄져야 할 문제이다. 농촌고령자들은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농사를 지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토지를 내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청장년층이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에 들어가고 싶어도 땅이 없어 농촌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람이 농촌에 들어올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다. 따라서 정부는 농업인의 기준에 연령을 포함하고 한계 연령 이하는 농정의 대상으로, 그 이상은 복지의 대상으로 정해야 농민수당제도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인구 감소시대를 넘어 ‘지역소멸’의 시대로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건이 불리한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지역 단위 농민(주민)수당을 지급함으로써 그 지역을 유지시켜야 할 것이다.

  마지막 실행모델은 농촌지역 단위 농민수당이다. 즉, 일정한 지역을 한정해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농민은 농촌주민의 개념이다. 즉 농민과 비농민을 포함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농촌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농민수당이다. 기본소득의 원칙에서 보자면 이 실행모델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개별성과 보편성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농촌지역에 농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농촌지역에는 30%의 농민과 나머지 70%의 비농민이 거주한다. 그러나 70%의 비농민도 직간접적으로 농업과 관련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려운 농촌지역에서 굳이 농민, 비농민 따질 필요 없이 그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행 모델은 특히 인구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단양군의 한 후보는 장기거주수당으로 연간 최대 1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2030년이 되면 우리나라 읍·면·동 세 곳 중 한 곳은 소멸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2) 인구 감소시대를 넘어 ‘지역소멸’의 시대로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건이 불리한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지역 단위 농민(주민)수당을 지급함으로써 그 지역을 유지시켜야 할 것이다.

한계限界지역 우선 시행, 방법은 다양하다
농촌지역 단위 농민수당에서 지역의 범위는 해당 지자체에서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지자체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좋겠지만 예산의 한계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특히 인구감소가 심한 지역, 학술적으로 말하면 한계限界지역 혹은 한계마을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환경적으로 피해를 많이 입었거나 거주 여건이 불리한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이미 인도의 마드야Madhya지역 8개 농촌마을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발표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지역을 대상으로 먼저 시행하고 그 효과가 긍정적일 경우 점차 확대하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복기왕 충남도지사 후보는 농민수당, 농어민 자녀수당, 한계마을 자녀수당 등 세 가지 수당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한국농업신문
복기왕 충남도지사 후보는 농민수당, 농어민 자녀수당, 한계마을 자녀수당 등 세 가지 수당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한국농업신문

  앞서 세 가지 농민수당 실행 모델을 제시했지만 실제 실행 방식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급식 실행 모델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 취지가 달라지지 않듯이 농민수당제의 실행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농업, 농촌의 가치를 보존하고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취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혼선이 있겠지만 상호학습과 제도화를 통해 농민수당제가 더욱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갈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미 농민수당제의 판은 벌어졌다. 각 지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실행할 것인가는 각자의 역량과 합의의 몫이다. 이제는 학교의무급식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상한 지도자로 보듯이, 농민수당제를 반대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때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13※ 필자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대산농촌재단 대산장학생 2기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역임 후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민 기본소득, 토종씨앗, 농민인권, 마을공동급식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3농을 매개로 한 한․중 학술교류도 진행하고 있다.

 


1) 조례명: 강진군 농업인 경영안정자금 지원 조례(2017. 12. 27)
2) “마을이 사라진다…읍면동 3곳 중 1곳 ‘소멸 위험’”(한겨레신문 2016년 10월 12일자 보도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