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제주 비자림로

글·사진 하상윤

1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삼나무 그루터기마다 파란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30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지난해 8월 제주 비자림로에 처음 전기톱 소리가 울렸다. 맥없이 쓰러진 나무 옆으로 자동차들이 속력을 냈다. 면도칼로 도려낸 듯한 숲의 절개면은 도로와 잇닿아 있었다. 사라진 숲은 도로의 일부였고, 나무 그늘 아래 도로는 숲의 일부였다.
비자림로라 불리는 이 길은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 칡오름과 거슨새미오름 사이를 지나는 지방도 1112호선. 일생을 도로와 함께했던 삼나무들이 개발을 이유로 송두리째 베어지면서 섬 바깥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다. 공사는 잠시 중단됐다. 숲에는 그루터기 915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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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베어졌다’
그해 겨울 시민들의 관심이 옅어질 때쯤, 비자림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베어졌다’는 사실 뒤에 놓인 의미를 모색하고자 했다. 당시 대다수 언론은 비자림로 문제를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사이의 갈등 구도로 보도했다. 여론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공사 재개를 촉구하는 일부 주민들은 막연히 이기적인 존재로 비쳤다. 문제의 본질은 찬성·반대 프레임 밖에 있었다.
이처럼 지역의 토건 사업이 전국적인 이슈가 된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껏 제주도에는 비자림로 확장공사보다 훨씬 큰 규모의 개발이 진행돼 왔고, 동시에 더 처참한 자연훼손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져 왔다. 비자림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지난 8월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 때 잘려나간 삼나무 915그루 중 430그루의 밑동을 기록했다.
지난 8월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 때 잘려나간 삼나무 915그루 중 430그루의 밑동을 기록했다.

과잉관광으로 생태·사회·문화가 파괴된다
한 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2016년 1585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1475만 명, 2018년 1433만 명을 기록했다. 여전히 66만 제주도 인구의 20배가 훨씬 넘는다. 제주 관광은 짧은 시간에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도로나 수도 같은 도시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활성화한 저비용항공사는 중국 관광객의 폭발적 증가와 더불어 제주도의 포화를 부추겼다.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자림로 사건이 관광에 대한 제주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생태, 사회, 문화 기반이 한꺼번에 파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지난해 필리핀으로 불법 반출돼 문제가 됐던 쓰레기의 출처가 다름 아닌 제주도라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더’를 외치며 증량增量 정책을 고수하는 제주도정의 모습이 오히려 더 놀라울 따름이다. 쓰레기가 넘쳐나면 폐기장을 더 지어 땅에 묻어버리고, 차량이 늘어나면 숲을 베어 도로를 더 넓히고, 공항이 복잡하면 농지를 메워 하나 더 지으면 그만인 그런 정책 말이다.
제주도정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라는 수평적 관점의 슬로건을 제시하지만,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지극히 수직적이다. 이미 철저하게 자연에 기대어 살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훼손할 때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비자림로 옆으로 삼나무의 공백이 흙색으로 도드라진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비자림로 옆으로 삼나무의 공백이 흙색으로 도드라진다.

신산리 마을의 갈등
국토교통부는 2018년 2830만 명인 제주공항 수요 추이를 2035년 4549만 명으로 상정하고 제주도 성산읍 일대 150만 평 부지에 4조8700억 원을 들여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난개발과 과잉관광으로 섬전체가 신음하고 있음에도 국토부와 제주도정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내세워 초대형 토건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효율성과 경쟁력의 세계관에 주민의 삶과 지역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 끼어들 틈이 있을까.
한라산 동쪽 끝 해발 159m 독자봉 아래 ‘신산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500년 넘게 이어온 공동체 문화는 이 고장의 자부심이다. 2015년 겨울, 마을 이름이 뉴스에 언급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신산리를 포함하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국책사업 부지로 지목하면서부터다. 주민들 모르게 마을이 공항 건설 예정지가 됐다. 주민들은 알고자 했다. “어째서 마을의 미래를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는가?”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가꿔온 농토를 내놓고 고향을 등져야만 하는 이유를 묻자, 국토부는 “전문가의 분석이 그렇다”는 말만 반복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곶자왈 전경. 선흘곶자왈을 반으로 쪼개 오른편으로 이미 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왼편으로는 대형 동물원인 ‘사파리월드’ 조성사업이 추진 중이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곶자왈 전경. 선흘곶자왈을 반으로 쪼개 오른편으로 이미 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왼편으로는 대형 동물원인 ‘사파리월드’ 조성사업이 추진 중이다.

신산리 마을은 유례없는 갈등을 겪고 있다. 공항 건설 예정지 주변으로 형성될 고가의 부동산 시장에대한 기대심리는 욕망을 불러 모았다. 마을은 순식간에 두 갈래 세 갈래로 찢어졌다. 공항 입지 선정 발표 이후 이 지역 땅값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제주 지역 지가 변동률은 2015년 7.57%, 2016년 8.33%로 2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공항 예정부지 인근에서 숙박업을 하는 주민 A씨는 “공항이 생기면 우리는 아주 좋아진다”면서 “땅값이 스무 배 가까이 올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더는 여기서 농사를 짓기는 어렵겠군요”라고 되물었을 때 그는 “그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의 욕망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을 자극하고 이용하는 정치에 있다.

제주 봉개동 쓰레기 매립장에서 까마귀가 날아오르고 있다. 이곳 매립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1,800〜2,000t 가량의 쓰레기가 처리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제주 봉개동 쓰레기 매립장에서 까마귀가 날아오르고 있다. 이곳 매립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1,800〜2,000t 가량의 쓰레기가 처리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야 할 것은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월 20일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환경 훼손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균형 발전을 이룩할 최적의 대안이 제2공항”이라고 발표했다. 원 지사는 “제2공항과 연계한 제주발전계획이 제주의 경제지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원보(55) 신산리 이장은 “도정이 농촌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우리의 땅을 ‘발전이 안 됐다’고 함부로 재단했다”면서 “흙 없이도, 농사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이라고 말했다. ‘균형 발전’에 대한 서로의 입장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강 이장은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야 할 것은 대형 SOC 사업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잘 보존된 마을 공동체”라고 덧붙였다. 즉, 균형은 농촌의 도시화가 아니라 문화, 보건, 교육 등의 환경 개선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의 생존 기반인 환경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농민의 사명이다.”
2년 전 대산농촌재단이 주최한 대산해외농업연수에 동행했을 당시 오스트리아 엘마우에서 만난 농부쉴트Schild 씨가 강조했던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서는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막무가내 개발주의 앞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국 농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럽 농정의 기본 목표는 ‘농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문화경관을 유지·보전하는 것’이다. 그곳의 농부들에게는 조상이 심어놓은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당장 농사일에 방해가 될지언정 나무의 생태적 가치와 그 안에 깃든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제주 보물섬학교 ‘아꼬운 방’ 학생들이 서귀포 성산읍에 위치한 유건에오름을 찾아 손을 맞잡고 각자 바람을 말하고 있다.
제주 보물섬학교 ‘아꼬운 방’ 학생들이 서귀포 성산읍에 위치한 유건에오름을 찾아 손을 맞잡고 각자 바람을 말하고 있다.

“제주도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땅이나 파먹는 농사꾼들이나 공항을 반대하지.” “제주도도 이제는 낡고 구태의연한 자연주의 노선을 버리고 발전된 도시형 복합관광지가 되어야 한다.”
제주 제2공항과 관련된 기사를 모니터링하면서 눈에 들어왔던 댓글들이다. 진심을 담았다고 믿지 않았으나 읽고 나서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의 경제는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공동체를 갈라놓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는 걸까. 오늘날까지 이어진 관광 일변도 정책의 결과를 보자. 제주에서 농민이 수십 년 일궈왔던 땅은 값비싸게 팔리는 부동산이 됐고, 자연 앞에 겸허한 농심은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변했다. 대대로 농민들이 지켜온 경관은 중국자본과 대기업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비자림로 서쪽 방면으로 웃선족이오름, 부대오름, 성불오름 등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농업, 농촌, 농민을 홀대한다.’ ‘자연환경이 파괴된다.’ 이 두 문장은 동어반복에 가깝다. 환경 훼손과 난개발을 포함해 제주가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비농업화와 반농업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답은 뻔한 데도 다시 한 번 묻는다. 농업, 농촌 그리고 농민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우리가 그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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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하상윤: 세계일보 사진부 기자.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 출신으로 2015년 겨울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보고, 듣고, 나누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제55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제주의 난개발을 다룬 기획물 ‘잘려나간 제주의 생명…개발이 행복을 가져다줄까’로 최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