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과 ‘비닐 없는 마켓’ 사이에서 ‘행복한 장보기’를 외치다

새벽 배송 애용자, 쓰레기 생산자 되다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한두 번 마음이 바빠지는 날이 있다. 바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민이 하나 생겼다. 확연히 늘어난 쓰레기의 양이다. 언젠가부터 일주일이 지나기 무섭게 커다란 재활용 쓰레기통 두 개가 꽉 차곤 한다.
  원인은 택배였다. 요 몇 달간 식료품은 온라인 장보기 앱을 활용하고, 생필품은 로켓․총알 배송을 애용했다. 손가락 몇 번 조작하면 다음 날 집 앞에 필요한 물건이 온다. 편리한 만큼 부작용이 따랐다. 바로 포장 쓰레기다.
  새벽 배송, 총알 배송, 로켓 배송이 일반화한 요즘이다. 당근 하나, 애호박 하나 등 소량의 신선 식품도 언제든 배송이 가능하다. 배송이 빠르다 보니 적은 양의 물건을 그때그때 주문한다. 개별 포장, 개별 배송은 더 많은 포장 쓰레기를 낳는다. 박스는 물론 아이스팩․충전재 등 부가 포장재도 상당하다. 국내 새벽 배송 시장 규모는 2015년 100억 원에서 2018년 4,000억 원으로 급 성장했다.
  온라인 장보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마트에서 산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식료품을 산 건지, 쓰레기를 산 건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버섯 한 줌, 감자 두 개, 당근 하나를 샀는데, 그에 딸려오는 비닐봉지만 세 장이다. 행사 상품인 우유 두 팩은 비닐로 묶여있고, 스티로폼 트레이 위 비닐 랩으로 감싼 소고기는 비닐 포장지에 한 번 더 담긴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장 보고 난 후 물건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나면 꽤 많은 양의 쓰레기가 수북이 남는다. 대부분 비닐이다. 아이스팩을 쓰레기봉투에 그대로 넣으려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다행인 것은 요즘에는 이런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닐 아웃․포장 테이프 실종, 달라진 마트
2019년 1월 1일부터 전국 대형마트·백화점·복합상점가를 비롯해 매장 크기 165㎡(약 50평) 이상의 대형잡화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다. 벌크로 판매하는 과일, 흙 묻은 채소 등 1차 식품과 포장 시 액체가 누수 될 수 있는 어패류·두부·정육 등에는 여전히 비닐 사용이 가능하지만, 이미 포장된 제품을 또다시 담는 일은 금지다.
  2019년 12월 25일부터는 자원재활용법이 개정되면서 폴리염화비닐(PVC)로 만든 포장재도 금지됐다. PVC 포장재는 무․브로콜리 등 농산물을 감싸는 비닐 랩부터 상자 포장 등 각종 소비재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업계에 따르면 PVC 포장재 출고량은 2017년 기준 4,589t에 달한다.
  올해 1일부터 대형마트의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도 사라졌다. 지난해 8월, 대형마트3사가 자율 포장대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환경부와 자율 협약을 맺은 결과다. 이제 마트를 방문하는 소비자들은 종량제 봉투를 사거나 장바구니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이런 규제들의 환경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에서 연간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 등은 658t으로 서울 상암 구장(9,126㎡) 857개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비닐봉지 규제는 이미 효과를 냈다. 비닐봉지 사용제한 정책이 시행된 이후인 지난해 4~5월, 한 대형마트 전 지점에서 사용된 속 비닐은 1.3㎢로, 전년 동기 대비 70% 가까이 줄었다.

친환경 보랭 패키지. ⓒCJ ENM 오쇼핑
친환경 보랭 패키지. ⓒCJ ENM 오쇼핑

과한 포장 쓰레기, 불만 있어요
소비자들의 환경에 대한 눈높이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화되면서 지나친 배송 쓰레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선 식품 온라인 몰 ‘마켓컬리’는 과도한 배송 쓰레기에 대한 불만 접수가 늘어나면서 종이 완충재와 친환경 포장재를 적극적으로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변화는 아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의 조사결과 미국 소비자의 9%는 식품이나 음료를 구매할 때 환경을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18세에서 44세 소비자들에게 특히 높게 나타났다.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라도 친환경 정책이 필수가 됐다.
  마켓컬리는 재생지로 만들어 재활용이 가능한 에코 박스를 도입했다. 일반 쓰레기로 취급되는 고흡수 폴리머 아이스팩 대신 하수구에 바로 버릴 수 있는 물을 넣은 아이스팩도 도입했다. CJ ENM 오쇼핑은 상품 포장에 종이 완충재와 종이테이프를 사용한다. 지난해 1월부터는 일부 식품배송에 친환경 보랭 패키지를 도입, 스티로폼 박스대신 보랭 종이 박스와 물을 넣은 아이스팩, 종이테이프를 사용한다.

플라스틱이 아닌 바구니에 소담히 담긴 채소들. 농부시장 마르쉐@
플라스틱이 아닌 바구니에 소담히 담긴 채소들. ⓒ농부시장 마르쉐@

좀 더 친환경적인 시장은 없을까
정부의 규제와 더불어 기업의 친환경 행보도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과한 이중 포장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흙 묻고 물기있는 신선 식품에는 비닐이 제공된다. 온라인 몰 역시 친환경 배송 포장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쓰레기가 남는다.
  그러다 최근 하나둘 생기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시장에 들러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열리는 ‘채우장’은 말 그대로 용기를 가져가 채워가는 시장이다. 마트에서 흔하게 제공되는 비닐이 없어 에코백이나 천 주머니, 유리 용기 등을 챙겨간다. 서울 대학로와 성수동 등지에서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도 비닐 없는 시장이다. 바코드와 포장재 없는 시장으로 플라스틱 아닌 바구니에 소담히 담긴 채소가 보기 좋다.
  구매할 때도 미리 챙겨간 천 주머니와 종이 가방에 담아온다. 천 주머니를 챙겨오는 손님들에게는 물건을 하나 더 얹어주는 인심도 있다. 이곳에서 장을 보면 놀랍게도 비닐 쓰레기 한 장이 나오지 않는다. 불편하지만 보다 확실한 방법이다. 의외로 아주 불편하지만도 않다. 장 본 후 정리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채우장에서 산 참깨는 이미 용기에 담아왔기에 그대로 찬장에 넣으면 된다. 속 비닐 없이 천 주머니에 담아 온 채소들은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 꺼내 쓴다. 마트에 다녀온 뒤 포장된 것을 벗기고 다른 용기에 옮겨 담는데 썼던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벗겨낸 포장 비닐 한 뭉치를 재활용 박스에 넣으며 느꼈던 죄책감을 한결 던다는 점이다.

채우장에는 에코백이나 천 주머니, 유리 용기 등을 챙겨가야 한다.
채우장은 한 달에 한 번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다.

온라인 장보기는 정녕 답이 없나
그렇다고 매번 제로 웨이스트 마켓을 가기엔 너무 바쁘다. 그때그때 필요한 식료품을 공수하려면 온라인 장보기의 도움이 절실하다. 편리하지만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온라인 장보기의 약점을 극복할 순 없을까.
  최근 주목받는 친환경 포장재가 답이 될 수 있다. 특히 비닐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했던 신선식품과 농축산물을 위한 친환경 포장재들이 눈에 띈다. 미국 ‘에코버티브’의 버섯 스티로폼이 대표적이다. 버섯의 뿌리처럼 생긴 균사체를 특정 모양과 크기로 배양해 각종 포장재 및 완충 재로 사용한다. 플라스틱 알갱이를 부풀려 만드는 일반 스티로폼과 달리 버리면 100% 생분해되어 퇴비가 된다.
  비닐을 대체하는 포장재도 있다. 지난해 6월에는 ‘GS리테일’이 식품 기업 ‘델몬트’와 손잡고 바나나에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했다. 옥수수에서 추출한 100% 자연분해 필름으로 바나나를 포장했다. 매립하면 땅속에서 14주 만에 분해된다.
  친환경 포장재 시장은 성장 중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친환경 포장재 시장은 오는 2022년까지 2,378억 달러(약 275조 9,6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아름다운 시장을 꿈꾸다
지난주 로이터는 세계자연기금(WWF)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우리가 매주 한 스푼가량, 평생 약 20kg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언제부턴가 장 본 뒤 수북이 쌓이는 비닐 쓰레기에 마음이 무거운 이유다. 비닐에 가지런히 포장된 깻잎은 깔끔하지만 분명 이
땅에는 독이 될 터다.
  사람 냄새 나는 시장, 편하고 깔끔한 시장 등 다양한 시장의 모습이 있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시장은 환경을 생각하는 시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장 우선으로는 불필요한 포장재가 적은 시장을 그려본다. 장본 뒤 수북이 쌓인 비닐 쓰레기를 두고 오늘 또 이만큼의 플라스틱을 지구에 버린다는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그런 시장 말이다.
  사람들의 의식도, 정부의 규제도, 기업의 친환경 행보도, 이런 행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도 모두 운은 떼었다. 물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고, 이런 분위기를 널리 파급시켜야 하는 숙제는 남아있다. 정부의 보다 촘촘한 규제도 기대한다.

 

29※필자 유지연: 중앙일보 라이프 스타일팀 기자. 일상과 맞닿은 환경 문제를 거시적 담론이 아닌 생활밀착형으로 풀어보는 ‘必환경 라이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포장 쓰레기와 친환경 호텔, 중고 의류, 도시 양봉 등 다양한 주제의 환경 이슈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