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기자, ‘사표 쓰고 귀농’ 할 수 있을까요?

농부 김영남 씨(오른쪽)와 이재덕 기자가 충남 홍성 문당마을 김 씨의 논에서 피사리(잡초 뽑기)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석예다 PD
농부 김영남 씨(오른쪽)와 이재덕 기자가 충남 홍성 문당마을 김 씨의 논에서 피사리(잡초 뽑기)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석예다 PD

“농촌전문기자가 되겠다”며 호기롭게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올해로 10년 차 기자가 됐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2012~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출입기자로 활동했지만, 기획재정부 등을 함께 맡아 매일 예산과 세금 관련 기사를 쓰다 보니 발품 파는 농촌 기사를 쓰지 못했다. 도대체 기자는 다리로 취재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의자에 앉아 전화를 돌리며) 엉덩이로 취재하는 일이 더 많았다. 야근은 잦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적고, 기사는 성에 차지 않고…. 몇 년 뒤에는 후배들이 쓴 기사를 다듬고 지시를 내리는 ‘데스크’가 될 텐데 기자가 평생을 그렇게 ‘데스크’에만 앉아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사표 쓰고 귀농’할 생각에 귀농 취재를 시작했다. 사심을 담아 귀농 취재를 한 뒤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도모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기사 제목도 ‘사표 쓰고 귀농’이라고 지었다. 농촌 마을을 다니며 취재하면 행복할 줄만 알았다. 농식품부와 공동기획으로 귀농․귀촌으로 유명한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쓰고, 유튜브 영상도 찍었다. 취재를 모두 마친 뒤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제도 모르고 귀농하겠다며 설쳤구나. 농촌에 가도 내가 원하는 ‘평화’는 찾지 못하겠구나.’

이재덕 기자(오른쪽)가 전남 순천 화지마을에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석예다PD
이재덕 기자(오른쪽)가 전남 순천 화지마을에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석예다PD

“오리는 곤란하겠는데?”
‘귀농 바라기’라면 한 번쯤 충남 홍성 홍동면을 떠올린다. 풀무학교라는 지역 인재를 키우는 학교가 있고, 우리나라 첫 유기농업특구로 지정받았으며, 마을공동체가 잘 유지되고 있는 지역이다. 홍동면의 문당마을은 오리농법이 국내 처음 도입된 곳이기도 하다. 어린 오리를 모내기한 논에 풀어 벌레를 잡고 잡초를 먹인다. 7월 중순 찾은 문당마을 김영남 씨의 논에도 오리들이 일하고 있었다. 김 씨가 논둑에서 ‘꽉꽉’ 하고 외치자 900평 논에 흩어져 있던 녀석들이 모여들었다. 논에 둘러친 그물을 탈출해 우렁이가 자라는 옆 논에서 놀던 오리들도 저 부르는 소리를 알고 달려왔다. 아침 내내 논에서 일한 오리를 그렇게 모아 잠시 가둬놓고는 김 씨와 함께 반나절 동안 피사리를 했다.
  홍성을 다녀온 뒤 일을 함께 도모한 부처 공무원이 내게 말했다. “오리는 곤란하겠는데요? 방역 담당과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오리가 크게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네요.”
  농촌 현장을 모르고 하는 갑갑한 소리다. AI는 모내기 철이 아닌, 철새가 오는 늦가을부터 퍼진다. AI가 겨울 내내 극성을 부려 이듬해 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경우에는 농민들은 논에 오리 대신 우렁이를 풀어놓는다. 유연한 방식으로 AI에 대응하는 것이다. 오리농법 하던 많은 농가가 AI 이후에 우렁이농법으로 완전 전환되기도 했지만, 오리농법은 여전히 농촌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농사다.
  농식품부가 오리농법을 부담스러워한다면 환경부는 우렁이농법을 우려한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남쪽 지역에선 우렁이농법을 하느라 논에 던져 넣은 수입산 왕우렁이들이 월동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우렁이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도입한 유기농법들이 AI와 기후위기 같은 ‘환경의 역습’으로 되려 퇴출 위기에 놓이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17년 전 경북 봉화 산골로 귀농한 김현희 씨(오른쪽)가 오미자밭에서 이재덕 기자에게 오미자나무 가지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경향신문 석예다 PD
17년 전 경북 봉화 산골로 귀농한 김현희 씨(오른쪽)가 오미자밭에서 이재덕 기자에게 오미자나무 가지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경향신문 석예다 PD

“농사가 정직하다고?”
20대 후반에 전북 장수로 귀농한 사과 농민 정지성 씨는 나와 ‘대산 장학생’ 동기였다. 구례에서 섬진강이 넘쳐 농촌 마을을 덮치고 소가 축사 지붕 위에 올라간 걸 뉴스에서 보고 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후위기를 매번 느끼며 산다. 이번 장마는 유독 더 심하다”는 그의 말에 도시 살면서 너무 둔감했구나 싶었다. 정 씨가 말했다. “비를 맞으며 과수원 바로 옆 산길에서 물길을 잡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물이 터졌어. 길 한쪽이 무너지면서 사과나무를 덮쳐버렸네.”
  지난 8월 경북 봉화에서 만난 김현희 씨도 장마로 고추 농사를 망쳤다고 했다. 오미자 역시 지난해 냉해와 폭설 피해를 맞는 바람에 올해 작황이 시원찮다고 했다. 오미자나무의 잔가지를 정리하던 김 씨에게 물었다. “멘토님, 농사는 정직하다고 하잖아요? 일한 만큼, 땀 흘린 만큼 거둬들인다고…” 김 씨가 웃으며 “농사가 정직하다고요?”라고 되묻는다.
  “농촌에선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생겨요. 오미자꽃은 5월 되면 피는데 작년 5월 7일 갑자기 냉해가 왔어요. 그때 서리 때문에 지금도 애들(오미자)이 매가리가 없죠. 안 그랬으면 지금쯤 빨간 오미자가 많이 달렸을 텐데…. 올해는 4월에 냉해가 와서 사과 과수 하시는 분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어요. 겨우 수확한다고 하더라도 판매는 쉬운 줄 알아요? 농사가 정직하다고? 안 그래. 안 정직해.”
  내가 귀농하고 싶은 ‘농촌’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곳이었다. 몇 년 전 전남 구례로 귀농한 도시 출신 30대 농민도 이렇게 말했다. “저는 거의 평생을 아파트에 살면서 물난리는 뉴스로만 봤는데, (귀농 후) 내 집이 물에 잠기는 위협은 처음이라서 그런가. 그날 밤의 공포와 불안의 감정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입은 피해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상황이고, 구례에는 더 처참하게 피해 본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 집과 하우스에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사표 쓰고 귀농이나’ 하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그제야 알았다.

글로벌 무역전쟁의 최전선, 농촌
취재를 하며 만난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수입을 늘려 물가를 잡으려 하지 않겠냐”며 추석 이후 전개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해 걱정했다. 농민들은 시장개방 이후 우리 농정이 항상 그래왔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더이상 WTO(세계무역기구)와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WTO가 농민들을 죽인다”고 했던 고 이경해 농민의 외침은 잊은 지 오래다. 우리 쌀을 지키겠다며 물대포에 맞섰던 고 백남기 농민의 뜻도 정권이 바뀌자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얼마 전 신문사의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FTA가 무슨 기삿거리가 되겠어. WTO도 DDA(도하개발아젠다)가 지지부진하면서 힘이 다 빠졌어. 트럼프 이후로 TT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물 건너갔고, 다 지나간 얘기지.” 기자들에겐 ‘기삿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옛날 얘기가 됐지만, 농촌에서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가을이 왔지만 국내산 제철 캠벨 포도는 찾기 어렵다. 대신 칠레와 미국의 시들리스 포도가 연중 가리지 않고 마트 매대에 놓인다. 수입산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췄다는 농산물들도 공급이 늘면서 가격 폭락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때 블루베리와 아로니아가 그랬고 지금은 샤인머스캣이 그 길을 밟고 있다.
  “샤인머스캣도 이제 한물갔죠. 워낙 많이들 지어서 농업기술센터에서도 가격 폭락 위험이 있다고 보고 보급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충남 홍성 농민 금창영 씨), “우리 지역에도 귀농한 사람들이 값이 좋을 때 블루베리를 지었는데 지금 폭락했거든. 일어서질 못하고 있어”(전남 순천 농민 장봉식 씨). 많은 기자들과 도시 사람들에겐 잊혀진 사실이지만, 농촌은 수십 년째 글로벌 무역전쟁의 최전선에서 바둥거리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오는 장수군 천천면에 붙어있는 현수막. 농민 정지성 씨 제공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오는 장수군 천천면에 붙어있는 현수막. 농민 정지성 씨 제공

농촌에 난립하는 태양광발전시설
‘대산 장학생 동기’ 정지성 씨는 아스팔트 농사 중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태양광 발전과 사투를 벌인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업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태양광 발전 사업을 권하더니, 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농지를 구입한 외지인이 그 땅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기로 했단다. ‘수익률이 좋다’는 업자들 말에 발전소 사업에 ‘투자’하는 도시 사람들도 많다. 정 씨는 “그게 무슨 투자야. 투기고 돈놀음이지”라고 했다.
  동료 기자는 농촌에 난립하는 태양광 발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어. 태양광 패널의 빛 반사가 농작물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농민들이 잘 모르고 하는 얘기야. 농촌에 들어선 태양광 발전소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핵발전을 주장하는 보수 언론들에게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하지만 항상 ‘어쩔 수 없는 부분’ ‘대의를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은 항상 농촌의 몫이다. 정 씨가 사는 장수 천천면 지풍골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다. ‘너희 집 앞에 지금처럼 태양광이 들어온다면 너흰 가만있겠냐.’
  몇 년 전 대산농촌재단 해외농업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했던 독일의 에너지 전환 마을들은 달랐다. 핵발전 반대 운동을 하던 쇠나우마을의 주민들은 전기 사용을 줄이고,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송전선을 사들여 친환경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프라이부르크 인근 오버리드마을은 세 곳의 축산 농가가 축분을 지하 저장고에 함께 모은 뒤, 건초와 섞어 바이오가스를 만든다. 이들 농가가 생산한 바이오 가스는 공공건물이나 다른 농가에 전력과 온수를 공급하는 데 쓰인다. 독일 중부의 윤데마을은 우드 칩과 가축분뇨 등을 활용한 열병합 발전으로 연 500만㎾의 전기를 생산하고, 마을이 쓰고 남은 전기는 다른 지역에 판매한다.
  독일의 농민과 마을공동체는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에너지 전환은 지역의 농민은 배제되고 도시 사는 이들의 투기 수단이 돼 버렸다. 주민들의 동의 없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태양광 패널은 농지에서 농부를 내쫓을 뿐만 아니라, 농촌 마을 공동체도 붕괴시킨다. 지풍골에는 “지방 소멸을 조장하는 태양광발전소를 즉각 취소하라”는 현수막도 붙어 있다.
  ‘대산 장학생 시절 그렇게 점잖고 조용했던 정 씨마저 거리로 나왔구나. 도시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농촌에서 감당하고 있구나. 우리 농촌은 전혀 평화롭지 않구나.’ 에너지 전환의 최전선에서 추석 연휴에도 길거리에 나온 장수 농민들이 참 외로워 보였고 미안했다.

전남 순천에서 ‘마을 맥가이버’로 활동하는 귀농인 김현철 씨(오른쪽)와 이재덕 기자가 화지마을 뒷길에서 예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길 너머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 풍광이 기가 막혔다. ⓒ경향신문 석예다 PD
전남 순천에서 ‘마을 맥가이버’로 활동하는 귀농인 김현철 씨(오른쪽)와 이재덕 기자가 화지마을 뒷길에서 예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길 너머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 풍광이 기가 막혔다. ⓒ경향신문 석예다 PD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 속에서
농촌은 모든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이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농민 중에는 그런 갑갑한 농촌을 바꾸려는 이들도 많았다. 농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여성 농민들의 모임을 만들고 있는 충남 홍성의 20대 여성 농민도 있고, 어르신들만 사는 농촌 마을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경북 상주의 청년들도 있다. 경남 남해에서는 도시청년들이 내려와 마을 주민과 함께 하는 ‘시골살이’를 시험 중이다. 전남 순천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며 수리해야 할 것들을 살피고 고쳐주는 40대 ‘마을 맥가이버’도 있다. 지역에서 이런 소식들을 전해주는 20대 여성 프리랜서 기자도 있다.
  강원 철원의 농민이 내게 당부했다. “각자 주어진 달란트가 있거든요. 기자님은 농부가 되는 것보다, 농촌 이야기를 전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언론인이 되는 게 사명이지 않을까 싶어요. 당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허투루 보내지 말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사용하세요.” 나는 내 달란트를 지금껏 제대로 사용해왔던가.

4이재덕※필자 이재덕: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 경제부(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시중은행), 사회부 기자 등을 거쳤다. 대산 장학생 출신으로 농촌전문기자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