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청년언론인이 말하는 우리 시대 언론과 농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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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1년 4월 1일(목)14:00~18:00
•장소 :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참석자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조형진 전주MBC PD
하상윤 세계일보 기자
함규원 농민신문 기자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2021년 현재, 지속 가능한 농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투영되고 있을까. 재단은 피상적인 농업 관련 기사에서 벗어나 심도 있게 농업과 농촌을 취재하고 농이 지닌 가치에 대한 공감을 확산할 수 있는 전문언론인을 20년간 10명 이상 배출하겠다는 목표로 2009년부터 12년간 양성해 왔다. 그동안 총 20명이 농업전문언론인 양성 과정을 수료했고, 이 중 15명이 일간지와 방송사, 농업전문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재단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농, 사회를 비추는 언론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반갑습니다. 오늘은 현직 언론인 네 분을 모시고 우리 시대의 농과 언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들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지면과 영상을 통해 잘 보고 있습니다. 언론장학생일 때 연수를 했던 추억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또 언론인이 되어서 바라보는 농촌 현장은 느낌이 다를 것 같고요. 먼저 각자 하는 일을 소개해주시죠.

이재덕(경향신문 기자): 저는 2011년에 입사해 경제부 기자로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다가 사회부 기자를 거쳐, 현재는 신문사 뉴콘텐츠팀에서 SNS, 영상, 뉴미디어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작년에 <사표 쓰고 귀농>이라는 영상과 기사를 제작하면서 전국 네다섯 군데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취재했어요. 개인적으로 귀농에 관심이 있어서 귀농운동본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은 <귀농통문> 편집위원도 하고 있어요.

. ⓒ경향신문
<사표 쓰고 귀농>. ⓒ경향신문

조형진(전주MBC PD): 제가 올해로 입사 10년이더라고요. 그런데 2019년까지 농업, 농촌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없었어요. 몇 년 전부터 농업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목소리를 내다보니까 지난해에 지역MBC 16개사가 공동기획하는 <농업이 미래다>에서 농업교육 편을 맡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농식품부랑 공동으로 <두근두근 팜팜>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함규원(농민신문 기자): 저는 주로 농업정책을 다루는 정경부에서 6년째 계속 일하고 있어요. 국회랑 학계 취재를 많이 했고, 올해는 농업금융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농업인 안전보험과 농민에게 필요한 정책자금 등에 대한 정보 등을 연중기획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상윤(세계일보 기자): 저는 2015년 사진부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이미지로 사회 현장을 기록하고, 생태·환경 등을 다룬 기획물을 제작해왔습니다. 2019년부터는 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을 가르치는 일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농업, 농촌, 농정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현장에 나갈 때면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이슈가 아닐지라도 농과의 연결성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조형진 전주 MBC PD
조형진 전주 MBC PD

‘돈이 되어야’ 움직이는 언론사
펙터클한 장면보다 농촌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신수경: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론사 내에서 뭔가 농업, 농촌 관련한 주제를 반기거나 관심을 집중하는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조형진: 지역 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몇 개 안 되는데, 그중에서 농업 프로그램 한두 개 만드는 게 쉽지 않거든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소위 ‘돈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어요. 어디선가 제작비를 조달해야 제작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농업, 농촌을 농민의 시선에서 다루기는 더더욱 힘들어졌죠. 신문, 방송 같은 기존 언론이 자본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른 매체를 통해서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건강하게 농업을 바라보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재덕: 그동안의 취재 시스템과 관행, 비용의 문제도 볼 필요가 있어요. 보통 기자실에 앉아 전화를 돌리거나, 보도자료를 받아서 기사를 써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적은 공력과 시간을 투입해 뉴스 콘텐츠를 생산해요. 서울에 무슨 일이 생기면 택시라도 타고 가볼 텐데, 지역 취재는 시간과 인력 문제를 생각하면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소수의 언론사가 정보를 독점하던 과거의 언론 환경에서 굳어진 취재 시스템인데요. 여전히 많은 언론사들이 이런 취재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언론사들이 기자들에게 대도시 내 관공서, 기업, 학교 등 맡아야 할 ‘나와바리’를 배당하고요. 같은 구역을 배당받은 각 사의 여러 기자들이 기자실에 앉아 똑같은 기사들을 만들어내죠.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기자들이 새로운 걸 해본다거나, 도시 밖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굳이 찾아가 볼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독자들이 변하고 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사들은 외면하거든요. 이제야 언론사들도, 기자들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이렇게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걸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아요.

하상윤: 농촌을 다루는 기사는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어서 소비하는 사람이 적고, 그래서 돈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스펙터클하지 않은 곳에서 스펙터클한 걸 찾으려고 하니까 재미가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농촌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좋을 수도 있거든요. tvN <삼시세끼>라는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했잖아요. 그게 진짜 특별한 내용은 없거든요. 농촌에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스펙터클한 뭔가가 도시에는 충분히 넘쳐나는데. 농촌에서까지 그런 걸 찾으려고 하니까 안 맞죠.

이재덕: <사표 쓰고 귀농>을 하면서 취재 대상을 선정할 때 기준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귀농인이 아니라, 선주민과 함께 어울리면서 마을 공동체를 같이 만들어나가는 귀농, 귀촌인이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보여줄 수 있고, 고령화, 기후위기, 교육 문제 등 우리 농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종합일간지에서 제대로 된 농업, 농촌 기사를 쓰기 힘들어요. 그래도 비집고 들어갈 작은 틈은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 <사표 쓰고 귀농> 같은 농촌 콘텐츠를 제안해서 만들고 성과를 내보니, 앞으로 경제부, 정치부, 사회부 등 어느 부서에 가서도 로컬, 농촌, 농업 관련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2011년 7월 청매실농원(전남 광양).
2011년 7월 청매실농원(전남 광양).
2010년 8월 영광포도원(전북 완주).
2010년 8월 영광포도원(전북 완주).

아름다운 농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언론
농촌에서의 삶이 대상화되지 않도록 균형점 찾아야

신수경: 그래서 그런가, 요즘에 농촌에서 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유튜브 같은 플랫폼으로도 확장되고 있는데 이 양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함규원: 저는 아름다운 농촌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는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삼시세끼> 촬영지 중에 강원 정선군 덕우리 마을에 취재간 적이 있거든요. 이장님이 마을에 대해서 큰 자부심이 있더라고요. 마을 주민들이 노력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었다고요. 젊은 사람도 많이 와서 살고, 마을에 동아리도 되게 많다고 하셨는데 촬영지는 그 자랑거리 중 하나였어요. 마을 주민들은 도시민이 오는 걸 꽤 좋아하고, 관광수익도 올린다고 하니 선순환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신수경: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많은 도시민이 농촌 생활이 험하고 힘들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런 낭만과 편안한 힐링이 있구나. <삼시세끼>를 보면서 저기 한 번 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는 건 도시민을 농촌과 단절된 공간이 아닌, 친근하고 선망하는 존재로 이미지를 바꾸는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죠.

조형진: 농촌에서 찍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농촌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는 생활이 빠져 있잖아요. 예능을 위한 노동, 희화화된 노동만 있고요. 참 어려운 일이에요. 언론에서 농업, 농촌의 매력을 찾아줘야 하는데 단순히 이미지만 소비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고민의 지점을 조금 더 정돈하고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이재덕: 농촌은 예쁘고 아름답지만 문제는 그것만 보여준다는 거죠. 이런 면이 나왔으면 다른 면도 보여주고 싶은데, 언론에서 같은 모습만 보여주니까 도시 사람들에게 농촌에 관한 고정관념을 갖게 하고, 거기서 어떤 치열한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뭐 하나가 성공하면 언론에서는 그 이미지를 재탕, 삼탕 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하상윤: 농촌에 사는 분들의 일상이 관광 거리로 소비되는 걸 많이 봤거든요. 최근에 방문한 제주의 어느 섬에서는 해녀들이 작업하는 걸 볼 수 있는 해저 전망대를 만든다는 거예요. 해녀의 삶이 관광의 소재가 된 거죠.

신수경: 농촌 마을이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면 주민들의 자부심도 커지는 순기능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 촬영과정에서 주민들이 굉장히 많이 지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재미 위주로 소비되거나 주민들이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해요. 농촌의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농업 기사를 읽는 독자는 누구인가
농업·농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함규원: 이런 대화가 신선하게 느껴져요. 농업전문지가 농촌 사회를 잘 안 다루는 이유는 대부분의 독자가 농민이기 때문도 좀 있어요. 농민들이 신문을 보는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거든요. 농민들은 농업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 요새 어떤 신기술이 있는지 궁금해해요. 스마트팜 듣도 보도 못했는데 이런 게 있다더라. 농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은 안 준다더니 준다네. 추경 어떻게 됐지. 국회 본회의 열고. 농협 회장이 직선제로 바뀐다네. 이런 정보나 아니면 뭐 유통, 시세, 햇마늘 경매가 처음 이뤄졌는데 첫 번째 가격이 어떻게 됐다더라. 그런 정보를 주로 원하기 때문에 농촌 사회를 다루는 비중이 낮은 편이죠.

이재덕: 농업전문지 기자인 후배가 자기네 회사도 드디어 SNS를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아직까지 SNS를 안 했어?’ 하고 놀랐는데 전문지는 대부분 독자를 농민으로 한정해 기사를 쓰니까, 대부분이 고령농이다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농촌에 고령농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잖아요. 청년들도 있고, 농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저는 농업전문지를 자주 봐요. 농업전문지가 좋은 취재를 많이 하면 우리도 그걸 보고 따라가니까. 그런데 읽다 보면 타깃 독자가 너무 제한적이고요. 어떻게 만들어야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을지, 농촌에 살거나 로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SNS를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온라인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적절한 유통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죠. 60, 70대 이상 농민을 타깃으로 하고 기사를 쓰는데 트위터 같은 채널에 태워 유통한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니까요.

하상윤: 그런데 모든 기사가 잘 팔려야 하는가?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꼭 읽어야 할 사람이 농도 짙게 읽으면 그 기사는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이것에 대해 진짜 궁금해지고, 자기만의 시선이 생겼을 때 기사를 찾아보고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요.

함규원 농민신문 기자
함규원 농민신문 기자

함규원: 제가 가끔 일간지, 특히 경제지 기사들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거든요. 최근에 보고 좀 놀랐던 게 ‘농업인 월급제’에 대한 경제지 기사였어요. 농업인 월급제 도입이 전국 확산되면서 월급 받는 농민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 전형적인 농업 퍼주기, 포퓰리즘이다, 이게 기사의 핵심이더라고요. 그런데 농업인월급제는 지자체나 정부가 돈을 만들어서 농민에게 퍼주는 게 아니라 수확기에 한꺼번에 들어오는 대금 1년치를 월급 형태로 나눠서 주는 일종의 리스크 분산 개념이잖아요. 그런데 기사를 그렇게 써버리니까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되게 오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대체 이런 기사는 왜 나오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게 농업전문지들의 역할이 아닐까. 우리는 농업을 지키기 위한 1차 전선이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재덕: 경제지에 ‘농업전문기자’라는 직함이 있어요. 어떤 면에서 되게 부러워요. 농업과 농촌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농업전문기자라는 이름에 농업과 농촌에 대한 어떤 편견들이 들어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농의 범위가 넓잖아요. 농업만 해도 경종, 축산, 식품 등 넓은 영역을 포함하는데 뭉뚱그려 ‘전문’ 기자를 하는 게 가능할까. 농촌은 농산물 가격, 글로벌 무역, 이주민 노동자, 다문화 가정, 기후위기, 지방소멸, 젠더, 교육 등 굉장히 많은 이슈들이 서로 얽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인데 전문기자 한 명이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오히려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등에 소속된 많은 기자들이 관심 갖고 공부하고 협업하고 취재하면서 얽힌 매듭을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교육 문제는 언론사 각 부서가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왜 농촌의 교육 문제는 ‘전문기자’의 영역인 것처럼 한쪽에 치워둘까. 이런 의문이 들어요.

신수경: 경제지에서 농업에 관심을 갖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건 나쁘다 할 수 없는데, 농업과 농촌이 지니는 가치를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기사가 관련 기관과 긴밀히 협력하여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재덕: 농업이 ‘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경제지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데요. 최근에는 일간지들도 농업, 농촌 콘텐츠에 대한 독자 수요가 꽤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얼마 전 모 방송사 PD가 시골의 폐가를 고쳐 사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고 꽤 많은 인기를 얻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 회사 안에서도 좋은 농촌 콘텐츠는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거든요. 농이 가지는 공익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과 경제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잘 잡아갈 것인지 고민해야겠죠.

강원 정선군 숙암리 가리왕산 일대. ⓒ세계일보(하상윤 기자 촬영)
강원 정선군 숙암리 가리왕산 일대. ⓒ세계일보(하상윤 기자 촬영)

사라지는 농촌, 기록하는 기자
어떤 농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상윤: 농촌마을이 개발이 되면 주민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죠. 생활 터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거예요. 최근에는 강원 정선군에 있는 가리왕산이라는 곳을 다녀왔어요. 평창올림픽 때 알파인스키 경기장으로 썼던 곳인데, 원래 거기에는 숙암리라는 마을이 있었어요. 경기 시설과 리조트를 보면서 ‘여기에 마을이 있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더니 맞대요. 4대, 5대에 걸쳐서 농사짓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요. 그곳은 마을 사람들과 가리왕산이라는 숲이 오랫동안 상호작용해서 만들어진 걸 텐데, 숲만 복원한다고 해서 그 상호작용의 결과물이 돌아올까 싶었어요.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났고, 공동체는 파괴됐어요. 대회가 끝나고 복원하겠다는 약속은 물론 안 지켜졌어요.

신수경: 사라진 마을, 마을에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건가요?

하상윤 세계일보 기자
하상윤 세계일보 기자

하상윤: 조금이라도 땅이 있었던 사람들은 마을 선산 자리에 새로 집을 짓고 살고 있고, 임차농들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가리왕산 입구에서 “가리왕산 복원 결사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민들이에요. 그들의 말은, 곤돌라가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줄 유산이라는 거예요. 가리왕산 꼭대기에 주목이라는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종이 있어요. 내륙에서는 유일하게 세대별로 주목이 다양하게 관찰됩니다. 그 생물다양성이야말로 미래유산인데, 곤돌라 같은 올림픽 시설물에 밀리는 게 현실이에요. 그렇다고 그들만 탓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신수경: 농사를 지어 먹고 살만하다면 생태적 가치같이 더 깊이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텐데 그 사람들한테 ‘주목나무가 더 중요한 미래가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겠죠.

이재덕: LH 사태에서 나타났듯, 수도권에 남아있는 농지를 누가 작물이 자라나는 땅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잠재 가치가 있는 투자지역이라고 생각을 하지. 우리도 아파트를 이렇게 보면서 아유, 몇 년 전에 저기가 다 논이었는데. 저걸 내가 진작 샀으면…. 그렇게 생각들을 하지, 신도시가 개발되면 여기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임차농은 어디에서 농사를 짓지? 그런 질문들은 잘 안 하잖아요. 신도시 개발이 중요하다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도시를 넓히고 서울 근교에 아파트를 세우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고요. 수도권에만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지역이 죽는다고 하니까 ‘그러면 지역을 어떻게 살려야 되지? 그럼, 수도권 같은 메가시티를 지역에도 만들자’ 이렇게 논리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요. 그 속에서 다른 목소리는 다 묻혀버리죠. ‘돈’이나 ‘개발’이 아니라, 그곳에 터전이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다른 고민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농업가치 헌법반영’을 1면 주요 기사로 다룬 농민신문 지면. ⓒ농민신문
‘농업가치 헌법반영’을 1면 주요 기사로 다룬 농민신문 지면. ⓒ농민신문

함규원: 저는 일간지로 치면 정치부에만 6년 있었던 셈이라. 사실 재미있는 기사를 써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제가 주로 썼던 기사는 ‘농업, 농촌 이래서 힘들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기사는 개헌 논의가 있을 때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움직임을 담은 거예요. 처음에는 저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농업계가 목소리를 내면서, 농업 가치가 정부 개헌안 초안에 포함되었어요. 개헌 자체가 안 되어서 결국 없던 일이 되었지만, 저는 어떤 가능성을 봤어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매년 농업, 농촌 관련 국민인식조사를 하잖아요. 사람들이 농업, 농촌의 가치에 공감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업예산 증액에 동의하냐’ 이런 물음에는 긍정적인 응답률이 낮거든요. 그 간격을 메우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재덕: 입사하고 신년기획 기사를 내라 해서 농촌 관련 아이템을 제출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신년이나 창간기획은 뭔가 희망찬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데 농촌 얘기를 한다고 딱 써놓으니까, 선배가 ‘재덕아, 내가 농촌 출신이지만 농촌이란 말만 들어도 암울하고 아득하고 미래가 없어 보여’라면서 반대를 하는 거예요. 제가 만약 장학생 연수를 안 다녔다면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농업경제학과를 나와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 농업에 무슨 미래가 있어? 그런데 농업에서 진로를 찾고 있는 농업리더장학생들과 함께 연수를 다니고, 우리가 방문했던 분들에게서 농업과 음식에 대한 철학, 환경에 대한 철학을 듣고 변화를 도모해 보려는 분도 만나고, 친환경 유기농 마을공동체 같은 대안적 삶을 사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 우리 농업, 농촌은 미래가 있구나,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유럽의 문화경관. ⓒ하상윤
유럽의 문화경관. ⓒ하상윤

하상윤: 지난 2017년에 대산해외농업연수 동행 취재를 했을 때 가장 마음에 남는 키워드가 ‘문화경관’이었어요. 사람과 자연환경이 상호작용을 해서 만들어 낸 경관을 뜻해요. 그곳 농부들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감명받았어요. 2019년 제주 비자림로에서 베어지는 나무들에 대해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사실 스펙터클한 장면을 생각하고 갔던 거예요. 40년, 50년 된 나무를 어떻게 저렇게 한 번에 잘라낼 수 있나 싶어서요. 나무가 베어질 때 사람들이 길에 나와서 손뼉을 치더라고요. 그중에는 농부도 있었을 거예요. 나무를 자르는 건 별거 아니고, 길을 넓히는 게 우선이라고 했어요. 숲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그 생각에서 다시 출발한 거예요. 1000그루 가까이 되는 나무가 잘리고 난 뒤 남은 그루터기를 기록했어요. 훼손의 잔해를 모아서 보여주면 또 어떤 상호작용이 있을까 싶었죠. 시민모임에서 저를 따라 작은 나무들의 그루터기를 찍기 시작했고, 벌목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큰오색딱따구리 새끼를 발견했어요. 그건 제주의 상징인 새예요. 그럼 숲에 사는 다른 보이지 않는 생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어요. 찾다 보니까, 숲에는 제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부분의 보호종이 다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그 공사는 2년 넘게 멈춰있는 상태고, 더는 공사를 못 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코너 ‘농부의 꿈’. ⓒ전주MBC
<두근두근 팜팜> 코너 ‘농부의 꿈’. ⓒ전주MBC

조형진: 제가 <두근두근 팜팜>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총 다섯 편을 만들기로 했는데 제작 시스템 상 시간이 너무나 모자랐죠. 그래서 전체적인 기획은 다 했지만 한 편만 직접 제작하고 다른 편은 외주제작을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도 배운 게 많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예쁘고 아름다운 농촌과 맛있는 음식만 생각하다가, 철학자 같은 농민들을 만나면서 방향을 바꾸었죠. 어렸을 때 농촌에서 살아서 ‘농업’ 하면 힘들다는 생각을 했는데 재단 연수를 다니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이어가는 분들의 생각을 듣고 나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이분들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화면에 잘 담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한 것 같아요. 저는 이제야 농업 프로그램 제작을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언론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역언론과 SNS
작은 가능성 찾아가며 큰 변화 이끌어내야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신수경: 언론인 입장에서는 좀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이 시대 언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덕: 제가 생각하는 언론은 우리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요, 그들의 삶을 통해서 큰 틀의 변화를 감지하고 거기에 관련해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져줘요. 그러면서 시대와 함께 고민하고 배우고, 또 스스로 변화하고요. 그런데 지금의 언론이 그 역할을 하고 있나? 아니라고 봐요. 우리가 그동안 너무 관성에 젖어서 쉽게 기사를 쓰고 돈을 벌어오지 않았나 싶어요.

조형진: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소셜 딜레마>를 봤는데, SNS에서 소비되는 뉴스들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SNS를 하다 보면 내가 받는 피드백은 결국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죠. 그래서 사회적 이슈가 더욱 극단적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언론도 그렇게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언론이 자본에 종속되고 기사 조회수에 엮여 있는 것 같고요.

이재덕: 언론이 항상 한계를 말하지만 이미 그 한계를 뛰어넘어서 뭔가를 하는 곳들이 있어요. 코로나19 이후부터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그런 사람, 그런 지역의 움직임들을 저도 하나씩 찾아가 보고 싶어요. 사실 우리 언론이, 특히 서울에서 발행하는 종합일간지가 농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잖아요. 농촌에서 하는 희망적인 움직임들은 몇몇 지역의 작은 매체들이, 자치 언론의 성격을 띤 매체들이 보도하고 뭔가 만들어가며 나아가고 있거든요. 여기 있는 우리도 한계를 계속 얘기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찾아서, 조금이라도 시도해서 작은 성공이라도 해보는 게 뭔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5년 2월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충남 논산).
2015년 2월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충남 논산).

함규원: 공감이 많이 돼요. 저도 농촌의 변화를 함께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출입처에 매몰되지 말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상윤: 제가 봐왔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농촌의 모습들이 있어요. 농촌에는 농민만 사는 게 아니거든요.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마을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보여주는 농촌의 다양한 모습을 세상에 더 많이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형진: 모든 언론인이 농업, 농촌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산농촌재단에서 언론장학생을 키우는 게 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각자의 위치에서 농업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의미 있는 기사를 하나라도 더 내려고 하잖아요. 서로의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농업, 농촌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신수경: 오늘 여러분과 언론이 비추는 농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서의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과 지향점을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재단 창립 30주년 기획으로 오늘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좋은 씨앗이 되어서 다양하고 촘촘한 농업, 농촌, 농민의 목소리가 더 잘 전파되리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정리·사진 이진선

※ 본 좌담은 정부의 코로나19 감염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