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시대, 한국 사회의 대전환과 농업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린뉴딜’의 방점은 어디에 찍혀 있나
이제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산업적 활동에 의해 배출된 온실가스는 지난 150년 사이 지구 평균 기온을 1℃ 올렸다. 이에 따라 북극의 빙하는 빠르게 녹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록적인 혹서를 경험한 북미와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유럽 국가들의 폭우 등은 서구 시민들에게 기후위기를 더욱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도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농업과 식량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농민들은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며, 식량 보장의 문제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폭우와 폭염, 한파와 태풍 등은 농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수확량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공동체의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표적인 국제협력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과 ‘2050 탄소중립 비전’이다. 여러 나라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순배출량 0(zero)을 만들기 위한 계획들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0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그 이듬해 8월 ‘탄소중립기본법’이 통과되었다. 1인당 탄소배출량 12.4t으로 세계 최상위권인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2021년 5월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이어 8월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했다. 또 10월 6일 열린 ‘그린뉴딜 엑스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탄소중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구공동체의 사명”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화석연료에 의존해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해온 한국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린뉴딜’이다. 정부는 환경과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그린뉴딜을 발표하고, 8개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공공시설 제로에너지화, 신재생에너지 확산, 전기차·수소차 보급, 녹색 선도 유망기업 육성, R&D·금융 등이 있다. 또한 대표  세부과제로 그린 스마트 스쿨, 스마트 그린 산단, 그린 리모델링, 그린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사업 등을 선정했다. 이러한 과제들은 친환경사회로의 전환에 필요한 것들이긴 하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이 과제들은 기존 산업·제조업 중심 경제의 틀을 유지한 채, 에너지원을 친환경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2020년 12월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 역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환 가속화, 고탄소 산업구조 혁신, 미래 모빌리티로 전환, 도시·국토 저탄소화, 신유망 산업 육성, 혁신 생태계 저변 구축, 순환경제 활성화, 지역 중심의 탄소중립 실현 등을 내용으로 하는데, 농업 관련된 논의는 매우 미흡하다.
  ‘그린뉴딜’과 ‘2050 탄소중립’ 관련 전략과 과제 모두 현재 한국 경제의 근본적 전환에 대한 성찰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 과도하게 팽창한 공업과 크게 위축된 농업의 균형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공업 중심 경제성장은 국민소득을 크게 증가시켰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가를 치른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고,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단적인 예가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행복 순위는 세계 60위권이다. 환경 문제 역시 심각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미세먼지로 폐 질환이 증가하고 있으며, 화학물질 유출과 수질 악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과도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이다.

농업은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해온 먹거리 생산 방식이다.
농업은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해온 먹거리 생산 방식이다.

농업,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제 산업주의와 생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요구는 이런 거대한 전환을 미룰 수 없게 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은 수소에너지 확대, 산업의 디지털화, 스마트 산업 등의 부분적 개혁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 변화의 중심에 농업이 위치한다.
  농업은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해온 먹거리 생산 방식이다. 산업혁명 이후 농업의 성격도 크게 변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 속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업과 먹거리 체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저명한 생태사회주의자 포스터(John Bellamy Foster)의 용어를 빌면 ‘물질대사의 균열’이 일어났다. 즉 도시와 농촌이라고 하는 공간적 분화가 심화되었는데, 그 결과 농촌은 식량 생산의 전담기지가 되었고 도시는 먹거리 소비의 블랙홀이 된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작물과 가축들을 기르던 농가들은 점차 단작화·전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상업적 식량 생산자가 되었다. 제한된 농지에서 최대한의 수확을 거두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투입하게 되었다. 가축 사육만을 전문으로 하는 집약적 축산농가들이 생겨났고, 곡물을 사료로 하는 고기 생산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산업적 농업은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농무성, 농기업 그리고 농과대학 간 협업의 결과이다. 고투입재 농업, 즉 다수확 품종을 심고, 농사 과정에 화학비료, 농약 그리고 농기계를 활용하는 현대적인 농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산업적 농업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녹색혁명’의 이름을 달고 저개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통일벼와 유신벼로 대표되는 한국의 녹색혁명은 이러한 국제적 맥락에서 가능했다. 녹색혁명은 쌀을 비롯한 농산물 생산량의 증가를 가져왔다. 녹색혁명형 농업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농업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소위 관행농업이라고 불리는 산업적 농업이 한국에서도 지배적인 영농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량으로 투입하여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의 관행농업은 오늘날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관행농업은 무엇보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과다 투입을 기반으로 한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1ha 당 농약 사용량은 11.8kg으로 호주(1.1㎏), 미국(2.6㎏), 영국(3.2㎏)에 비해 훨씬 많다. 비료의 사용량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1ha 당 비료 사용량은 268㎏에 달했는데, 이는 캐나다(79.2㎏)의 3.4배, 미국(136.3㎏)의 2배에 해당되는 양이다. 관행농업은 농지와 하천의 과영양화를 낳고 있다. 농업 생산에 사용된 비료 성분 중 작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유출되는 비료성분을 양분수지라고 하는데, 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양분수지는 질소 212kg/ha로 세계 1위, 인은 46kg/ha은 세계 2위 수준이다. 관행농업은 직접적으로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고, 농민들의 건강을 해치며, 소비자들의 먹거리 안전을 위협한다.
  한국의 축산업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좁은 축사와 계사에 많은 개체 수의 소, 돼지, 닭 등을 키우다 보니 당연히 가축들은 여러 감염병에 취약하다. 이에 다량의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수많은 가축들이 살처분되어 매몰되는 일이 반복된다. 또한 집약형 축산은 메탄을 비롯한 온실가스와 가축분뇨의 대량배출이라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
  사료 문제도 축산업이 안고 있는 큰 고민거리이다. 집약형 축산에서 가축들은 주로 곡물사료를 먹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료용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사료용 곡물 수입량은 1204만t에 달했다. 그 가운데 옥수수가 897만 4000t, 대두박이 187만 3000t이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에서 수입되는 사료용 곡물은 생산 관련 정보가 매우 불투명하고,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일 가능성이 높다. 사료용 곡물의 장거리 운송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과 이어진다.

먹거리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환경과 농업을 지킬 수 있다.
먹거리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환경과 농업을 지킬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과감한 전략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과감한 전략들이 필요하다. 몇 가지 제안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첫째, 농업이 가진 생태적 기여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존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92%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데, 이러한 공간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이주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저탄소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재농업화와 재농촌화를 추진해야 한다.
  둘째, 농업 자체의 근본적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즉 관행농업에서 벗어나 생태친화적인 농업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또 이제까지의 단작화와 규모화 정책에서 벗어나 중소농과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원하는 농업 정책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경종과 축산의 분화를 지양하고, 경축순환형 농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레 사료용 곡물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원거리 수송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셋째, 국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지역 먹거리(local food)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농산물 생산과정뿐 아니라 먹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라는 먹거리 생애주기 전반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소통하고, 사회적 거리를 줄이고 함께 식량주권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학습이 필요하다. 맛, 모양, 가격을 중심으로만 선택하는 먹거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며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먹거리 관련 역량과 먹거리 이해력(food literacy)의 함양이 요구된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민과 소비자들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 지식, 실천이 필요하다. 먹거리 이해력이 높은 주체를 먹거리시민(food citizen)이라고 할 수 있는데, 먹거리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환경과 농업을 지킬 수 있다. 이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김철규※ 필자 김철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발전론을 전공했고, 농업과 먹거리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음식과 사회」(세창, 2020), 「사회학의 눈으로 본 먹거리」(따비, 2018)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지속 가능성, 먹거리시민, 먹거리 소비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