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할머니로부터

글·사진 이예하

‘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필자 진남현 씨에 이어 이예하 씨가 ‘다채롭게 즐기는 농(農)’을 주제로 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몸의 고향, 마음의 고향
  벚꽃이 만개한 길, 그 아래 오토바이. 오토바이에는 할아버지와 작은 아이가 타고 있다. 아이는 웃으며 말한다. “할아버지, 꽃이 비처럼 떨어진다!” 그거면 되었다는 듯 웃는 할아버지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웃는 아이의 이야기. 나는 벚꽃처럼 피어나고 쏟아지는 조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 나는 두 분의 떡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어수선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혼자만의 세상을 꾸리곤 했다. 전쟁터처럼 치열했던 그곳에서 혼자만의 놀이터를 짓던 사람, 그게 나였다. 먹는 것을 유난스레 좋아했던 아이이기도 했다. 된장찌개 하나면 하루가 해결되던 아이. 자연스럽게도 어릴 적 내 꿈은 조부모님처럼 한 상의 따뜻함을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두 분이 뭐든 쉽고 빠르게 만들어냈다보니, 그게 참 쉬워 보였다. 그 안에 어떤 마음이 있었는지 깨달은 건 먼 훗날의 이야기. 몇 번의 계절이 더 흐르고, 나는 몸의 고향인 의정부로 돌아가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별한 점은 방학만 되면 빠짐없이 조부모님의 집을 찾았다는 것. 마음의 고향을 찾는 사람처럼.

홍순 씨(할머니)와 함께 데이트하던 날

할머니의 삶 속으로 입학하다
  다채롭던 유년을 지나 20대를 맞이했을 때 나는 어딘가 심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너무 빨랐고 그사이에 내 자리는 없어 보였다. 지친 줄도 모르게 지쳐있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하야 밥은 먹었고?” 여느 때처럼 밥으로 안부를 묻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잘 지내지?”라고 되묻자 그가 말했다. “요즘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마음을 바로잡았다. 사그라진 줄만 알았던 어린 날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손맛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할머니에게 돌아가야겠다는 결심. 이왕 갈 거라면,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보자는 욕심. 나는 그렇게 대학교 대신 할머니의 삶 속으로 입학했다. 내가 동경해왔고 닮고 싶었던 사람에게로.

걷기, 인사하기, 관찰하기
  진주. 내가 유년을 보낸 경남의 도시. 이곳으로 돌아와 가장 처음 한 일은 많이 걷기였다. 익숙한 길도, 새로운 길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할머니의 요리를 기록하는 것이 중심이었지만, 그러려면 먼저 이 땅의 공기와 계절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고 싶다는 핑계도 조금 있었다. 지도는 던져버린 채로 발이 닿는 대로 동네를, 진주를 걸었다. 모험한답시고 구석진 샛길로 기어들어 가다가 남의 밭에 들어가 혼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같은 길도 방향을 바꾸면 다른 얼굴을 가진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니 모든 길의 표정이 새로워졌다. 하늘보다는 땅을 보면서 걸었다. 내게는 잡초로 보였던 풀들의 이름을 묻다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 별미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에 헛되이 태어난 생명이 하나 없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아는 풀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사람처럼 뛰었다. 당시에 혼자였던 내게 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나의 친구가 되어줬다. 나는 최고의 길이 아니라 유일한 길을 걷고 싶었다는 것을, 걸으면서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걷는 법을 새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

할머니의 어릴 적 별미였던 풀들을 배우던 날. 들풀이라고 부르던 친구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한 일은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기였다. “안 하던 짓을 해야 변화가 생긴다”는 문장을 어디선가 읽었던 참이라 더더욱 그랬다. 나는 안 하던 짓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활동 범위가 있었는데, 바로 우리 동네였다. 무표정하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순간, 그 순간을 좋아하게 된 게 이쯤이었을까. 인사는 웃을 이유를 선물하는 일이다. 다들 마음 편히 웃고 싶은데 이유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이왕 사는 거 단단한 마음보다 보들보들한 마음을 크게 가지면 좋지 않은가. 덕분에 이제는 동네를 벗어나도 인사를 꽤 잘하는 청년이 되었다. 내 인사에 그들은 답하곤 한다. “인사해줘서 고마워요.”
  또 하나 하는 일은, 동네 어르신 관찰하기다. 자주 하는 관찰은 옆집 할머니의 마당을 슬쩍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는 할머니이기 이전에 유능한 농부여서, 마당만 봐도 지금 무엇이 가장 제철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들깨가, 참깨가, 고추가, 나락이, 무청이 널려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의 농사를 짓고는 했다. 오늘은 또 어떤 계절이 누워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손이 닿지 않아도 눈과 마음이 닿으니 땅과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순간 속에는 항상 땅이 있었다.

마당에서 나락을 말리는 옆집 어르신.

땅으로부터 시작된 요리
  온 동네를 휘젓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꼭 무언가를 손에 쥐고서는 내게 달려왔다. 그러고서는 시작되는 설명. “이거는 그 작은할머니가 너랑 같이 먹으라고 준 거고, 저거는 너랑 먹으려고 아껴둔 거야.” 스스로 말이 없는 편이라고 선언한 할머니지만 내 앞에서는 래퍼처럼 하루를 읊어내는 재주가 생긴다. 그 무언가는 대개 땅에서 갓 뽑아온 작물이었는데, 이웃집 어르신들이 손수 키운 것들이었다. 친구와 포장된 선물만 주고 받아봤지, 땅에서 갓 캔 작물이라니! 요리의 시작은 좋은 재료가 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할머니의 요리는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재료가 생길 때마다 물었다. “할머니 이걸로 뭘 해 먹으면 좋아?”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하고는 했다. “무쳐 먹고, 끓여 먹으면 되지. 별거 없다~” 나에게는 별것투성이였던 것들이 그에게는 삶 그 자체였다. 바쁘고 치열했던 할머니의 생에서 요리란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하며 일단 해보는 거였다. 계절마다 자라나는 작물은 그 맛과 향이 매년 다르기에 정형화된 레시피란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손끝의 감각을 기억하며 오늘의 마음을 담고는 했다. 나는 그 마음이 궁금했다. 좋은 재료에 진정성 있는 마음이 더해지면 맛이 달라진다고 믿었기에. 아무리 할머니를 따라 해도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만 커서, 담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아카시아 시루떡을 만들던 날. 꽃이 쏟아진다. 여름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아카시아 시루떡을 만들던 날. 꽃이 쏟아진다. 여름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잠들어있던 생명이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계절. 할머니는 봄이 되면 늘 말했다.
“봄에 자라나는 것들은 보약이야.”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생명력이 싹트는 힘이 몸에 들어오면, 우리 몸도 저절로 깨어날 준비를 한다고 말이다. 천지에 널린 쑥을 캐서 쑥털털이를 해 먹기도 하고, 뿌리가 실한 냉이를 시장에서 구해다가 콩가루를 묻혀 쪄먹기도 했다. 키워놓고 먹는 걸 깜빡한 봄동에서 자라난 꽃을 뜯어 쌈밥을 하기도 하면서. 대부분 보기만 하던 꽃을 입에 담는 재미를 이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우리의 본격적인 꽃 요리의 시작이기도 했다. 꽃을 좋아했던 할머니를 따라 나도 접시 위에 꽃을 담았다. 멋보다 맛이 먼저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지금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을 마음껏 느끼며 살고 싶었다. 가끔은 틀린 줄 알면서도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여름, 내게 여름은 아카시아가 지나가고 나면 시작된다.(‘아까시’가 맞는 명칭이나 익숙한 ‘아카시아’라고 부르겠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아카시아 시루떡을 해 먹으며 여름을 여는 것이다. “오빠가 책거리를 하던 날, 어머니가 이 아카시아 시루떡을 해줬는데, 그 기억이 잊히질 않아”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눈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세 번 먹을 수 있었다. 여름에는 이웃집 할머니들에게서 쏟아지는 가지를 열심히 볶아보기도, 목련 꽃잎을 토르티야 삼아 타코를 만들어 보기도, 호박 대신 호박꽃으로 부침개와 만두를 빚기도 한다. 그새 가을이 오고 있었다.
  가을, 쉬어 갈 준비를 하는 계절. 커다래진 늙은 호박을 듬성듬성 잘라 죽도 끓이고 부침개도 해 먹는 계절. 할머니는 이 호박죽을 볼 때면 할머니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줬다.(정말 먹을 때마다 들려준다. 25번쯤 들은 것 같다.) 할머니가 죽을 끓여서 우리 식구들 다 먹였다면서, 엄마보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가을은 그런 묵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를 지난 기억 속으로 데려가 다시 잘 살아 보자고 보듬어주곤 했다.
  겨울, 겨울의 입구에서는 김장을 한다. 바람이 쌀쌀해질 때 하는 김치는 그 맛이 더 오래간다고, 늘 이쯤이면 배추며 고춧가루며 온갖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김치는 한 해의 기쁨과 슬픔을 한데 버무리는 요리다. 기쁨만 있지도, 슬픔만 있지도 않지만 조화를 이뤄 풍성해지는 맛. 마치 이날을 위해 준비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한 해를 닫아주는 커튼콜 같다. 할머니 곁에 있으면 온 계절이 이토록 부지런하고 바빠진다. 내가 손맛이라고 여겨온 것들은 전부 시간과 정성의 결과였다. 덕분에 나는 챙기고 먹이는 일상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김치의 맛, 우리의 일 년을 버무리고 있다.

맛있는 요리란 무엇인가?
  많은 이가 내게 물어본다. “요리를 배울 정도면…… 할머니 손맛이 좋은가봐요!” 나는 덤덤하게 답한다. 먹어온 맛의 기억이 맛의 기준을 정하는 것 같다고.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가정의 수만큼 맛있는 맛이 존재하지 않겠냐고. 적어도 나의 세상에 있어서 할머니의 요리는 최고의 맛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이다. 변화무쌍한 계절처럼 할머니의 요리 또한 변화무쌍하다. 맛이 제대로 든 날은 우리 대단하다며 웃기도 하다가, 맛이 아쉽게 나온 날은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함께이기에. 때때로 마음에 생채기도 나지만 그래도 함께이기에 나아갈 수 있다. 싱거우면 소금을, 짜면 물을 더 부으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므로. 어쩌면 할머니와 지낸 지난 3년은 요리가 아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전직 떡집 사장님이었던 할머니에게 배우는 떡. 진주에 와서 가장 흥미롭게 들었고, 공부하고 있는 과목 중 하나다. 이날은 접골목과 쑥을 올린 팥시루떡이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기쁨
  그간 세상에 뿌려온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수확할 시기를 맞이한 사람, 그게 어르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수확한 것을 자신의 손에 하나라도 더 쥐기보다는 누군가의 빈손을 채워주기를 택한다. 계절을 몸으로 감각하며 일궈낸 시간을 나누는 것. 그것이 그들이 깨달은 기쁨이었다. 비워내는 데서 오는 기쁨, 움켜쥐는 힘이 아니라 놓아줄 때 싹트는 기쁨. 그들은 안다. 진짜 풍요는 가지는 순간이 아니라 나누는 순간에 피어나는 것임을.
  내가 어르신만 보면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빠르거나 스마트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지금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 모습을 통해 내가 걷고 싶은 길을 미리 들여다보곤 했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지면 마음도 함께 넓어지는 걸까. 아니면 누구보다 오랫동안 땅과 나란히 걸어온 사람들이라서 그런 걸까. 그들의 걸음은 늘 조용하고, 그 속도가 느린 만큼 단단하고 섬세하다. 손끝이 뭉툭해지도록 일하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누군가를 챙기는 마음을 넣어둔다. 그들에게 배운 삶의 기쁨을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나누면서 살고 싶다. 최고가 아니라 유일한 맛을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도록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난 오늘도 할머니의 곁에서, 당신이 일궈낸 기쁨을 먹는다.

[이어짓기] 이예하필자 이예하: 요리 연구가
진주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어르신들에게 배운 지혜와 레시피를 요리 교실과 인스타그램(@yeha5_9)을 통해 나눈다. 함께한 시간이 쌓여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2023, 수오서재)라는 책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