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전남광주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장
(제34회 대산농촌상 농업공직 부문 수상자)


한여름 볕이 뜨거운 8월 중순, 전남광주농업기술원의 시험포장에는 짙은 초록을 머금은 녹두밭이 펼쳐져 있었다. 김동관 씨가 녹두밭 고랑 사이에 앉아 녹두 잎과 줄기를 찬찬히 살폈다. “이 정도면 다음 주에는 꽃이 피겠네요.”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과연 녹두 잎 사이로 작은 주머니 모양을 한 연둣빛의 부드러운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녹두도 기계로 수확합니다
한여름 작고 노란 꽃을 피우고, 가을이 가까워지면 꼬투리를 맺는 녹두. 녹두에는 까다로운 습성이 있다. 한 포기 안에서도 꽃이 피는 시기가 들쭉날쭉해, 꼬투리가 다 같이 익지 않는다. 그래서 작기마다 세 번 이상 사람이 일일이 알곡을 수확해야 했다.
“그 넓은 면적을 일일이 손으로 다 따니까 100~200평밖에 못 하고, 제가 옆에서 같이 따봐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라고요. 안 되겠다, 이걸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김동관 씨는 2000년부터 기계로 수확이 가능한 녹두 품종 연구에 뛰어들었고, 8년 동안 국내외 유전자원을 분석해 선발·교배한 끝에 개량종 ‘다현’과 ‘산포’를 세상에 내놓았다. 익는 속도가 비슷하고, 강풍에도 꼬투리가 잘 벌어지지 않으며, 원래 덩굴처럼 퍼지던 줄기가 곧게 서서 자라 얽힘이 적은 품종이다.


“처음 녹두를 기계로 수확한다고 했을 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직접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안군 안좌도에서 실증 재배에 나섰죠.”
2009년 10월, 그는 녹두·콩 재배 농민과 유통업계, 기술센터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시연회를 열었다. 범용 콤바인이 10분 만에 500평 녹두밭을 수확하는 모습을 본 참석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남 지역 녹두 기계화 면적은 이듬해 200ha로 늘어났다. 이후로는 고랭지채소나 월동채소를 대체할 틈새 작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며 강원, 제주까지도 재배지가 확산됐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는 전국 2,000ha까지 재배 규모가 늘어났다.
“10년 전 녹두 소비량이 약 8천 톤이었는데, 지금은 1만 6천 톤 이상을 써요. 예전부터 녹두나물(숙주나물)은 콩나물에 비해 저작감이 부드러워서 수요가 늘어날 거라 봤어요. 실제로 동남아 음식 소비도 함께 늘어나면서 그 예상이 맞아떨어진 거죠.”


국산 동부, 그 이름 뒤에는
‘산포’는 국내 전체 녹두 품종 중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널리 보급됐다.
관내 영광군의 특산물인 모싯잎송편은 쌀과 모시는 지역산을 썼지만, 소로 쓰는 동부는 국내산을 구하기 어려워 미얀마나 중국산을 수입해 왔다. 지역에서 난 재료로 생산해야 인증받을 수 있는 제도라, 영광군은 동부 때문에 오랫동안 등록 문턱을 넘지 못했다.
“몇 년 동안 영광군에서 대학, 연구기관에 동부 국산화 연구를 의뢰했지만, 아무도 맡아서 해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때 제가 하겠다고 나섰어요.”
그는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와 국내 유전자원센터를 뒤져 녹두와 마찬가지로 수확이 용이한 국산 동부 ‘옥당’과 ‘선현’을 개발했다. 전체 재료가 국산화되자, 2017년에는 모싯잎송편이 지리적 표시제(104호)에 등록되었고, 부가가치가 1.5배 이상 높아지며 모시, 쌀 재배 농가 소득도 늘어났다. 그러나 옥당과 선현은 그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품종은 아니었다.
재배 면적이 작다 보니, 제조업체가 국산 동부를 위한 별도의 가공 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점도 한계였다. 하지만 한편, 그가 2018년 해외 유전자원으로 교배해 후배 연구사에게 물려줬던 동부가 재작년부터 품종으로 나오고 있다. 겉은 검고 속은 파란, 가공에 딱 좋은 ‘옥현’ 동부다.
“육종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요. 앞으로 농민들이나 제조업체도 관심을 기울여서, 국산 동부의 가능성에도 주목 해줬으면 좋겠어요.”

밭작물과 함께한 35년
김동관 씨는 1991년 입직 이래로 전남광주농업기술원에서 밭작물을 연구해 왔다.
“저는 원래 농생물학과를 나와서, 벼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육종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으니, 처음에는 녹두 연구를 맡기 싫어서 도망 다니기도 했죠.”
품종 연구에는 자신이 없으니, 연구 초반에는 녹두의 기능성 연구에 집중했다. 해독·항산화 효과를 연구하고, 버려지던 녹두 껍질에서 기능성 물질을 찾아내 화장품과 식품으로 개발했다.
“실험실에서 밤을 새면서 몇 년간 연구했어요. 그런데 기능성 연구만으로는 실질적으로 농가에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농민한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녹두 기계화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김동관 씨가 거쳐 온 밭작물 연구 분야는 녹두, 동부뿐만 아니라 다양하다. 잎들깨 육종, 완두 생산량 증대, 논콩과 고구마 등 밭작물 육종 시스템 구축까지, 35년간 주어진 연구에 최선을 다했다.
“제가 연구했던 것들은 모두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작물들이에요. 다 사람이 고생해서 하는 일들이었죠.”
그는 고향인 장흥에서 아버지를 도와 어려서부터 함께 농사를 지었다. 얼마나 자주 아버지 곁에서 농사일을 도왔는지, 마을 사람들이 그와 아버지를 두고 ‘형제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된 밭일을 함께하면서 ‘어떻게 하면 농민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그는, 입직과 함께 맡게 된 밭작물 연구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대단한 신념과 사명감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맡은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그런데 현장에서 ‘박사님은 항상 믿습니다’, 이런 말을 해주시는 농민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정말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죠.”

현장을 향한 질문, 다음 세대로
2026년 1월, 김동관 씨는 자원경영과 과장에서 지금의 연구개발국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5년간 현장을 누비며 쌓아온 노하우를 이제는 후배 연구사들에게 전수하며 지원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역할이다. 인터뷰를 하던 날, 그가 아끼는 후배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수국, 두류, 벼, 관수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후배들의 연구 성과를 하나하나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기존의 관수 시스템에서는 기껏 비싼 토양 센서를 달아놨는데, 낫질하다가 선을 잘라버릴 수도 있고, 토양마다 토성이 다르니 오류가 뜰 가능성도 높았어요. 그걸 센서 없이 기상 자료만으로 대체할 수 없을까? 해서 시작한 게 후배 연구사의 새로운 연구예요. 이런 의문과 관점이 농업 연구에서 정말 중요해요.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든요.”
오래전, 뙤약볕 아래 녹두를 따는 농민을 보면서 녹두 기계화 연구를 떠올렸던 것처럼, 농업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연구가 시작된다고 강조한 그는 “후배들이 나와 생각하는 것이 똑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여름 볕을 쬐며 한창 자라고 있는 동부의 시험포장, 김동관 씨는 모양이 들쭉날쭉한 동부를 살피며 ‘아직 육종 단계에 있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태아’ 상태’라고 소개했다. 이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육종가의 감으로 하나둘 범위가 좁혀지고, 지난한 관찰과 연구가 이어진 끝에 새로운 품종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한 알의 씨앗이 농민에게는 새로운 선택지를 열어준다. 결코 작지 않은, 희망이다.
글·사진 조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