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

2021년 10월, 정부는 수도권 집중화에 맞서 △충청권(대전·세종·충북·충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등의 ‘메 가시티’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10월, 정부는 수도권 집중화에 맞서 △충청권(대전·세종·충북·충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등의 ‘메 가시티’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황민호

지역민을 현혹하는 달콤한 말
권역별 시·도를 묶는 ‘메가시티’ 논의가 활발하다. 예전의 나라면 응당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시골 군 단위 지역이야 인근 광역시 중심으로 통합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서울 중심 일극이 너무 강하니까 다극 중심으로 되는 것이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광역 중심으로 교통망을 확충하여 코어를 더 강화시켜서 각 지역의 서울을 만드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고, 이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했었다.
  그때 나는 대전광역시민이었고 바로 인근 옥천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나에게 농촌과 농업, 지역 감수성은 하나도 없었다. 서울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인 서울’ 하거나 대전이 더 커지는 것을 내심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농촌에 꼭 와서 살아봐라’ 하는 말에 반발이 일곤 했다.
  ‘꼭 살아봐야 아나?’ 보고 듣고 배운 것만으로 합리적, 상식적 유추가 가능한데 어떤 열등감의 발로이거나 피해의식의 발현이라고 넘겨짚곤 했다. ‘살아보고 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은 논리 싸움에서 지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고집 피우는 것이라고 한 수 아래로 접어 보곤 했다.
  옥천에 온지 20년 다 되어간다. 중간에 신문사를 그만두었을 때도 왠지 연고도 없는 옥천을 떠나기 싫었다. 익명에 가려진 끊어진 관계성이나 그들만의 리그로 점철된 도시 문화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거니와 그냥 흙내 묻은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속의 관계망에 더 애착이 갔는지도 모른다. 사실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지역소멸이란 말이 우습고 메가시티니 중핵도시니 하는 말들이 탁상공론, 또 다른 식민 구축에 맞는 이론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그것은 내가 변방에 살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수성이다. 그런데 가끔 그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기도 한다. 광역전철이 연결되면 편의성과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이점 때문에, 대전에 편입되면 군민이 아니라 광역시민이 된다는 어떤 이미지 때문에, 지역에 사는 사람도 훅 그렇게 바라게 된다.
  그런데 그런 신기루와 환상을 걷어내도 퍽퍽한 현실에 대해서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 주권을 빼앗긴 국가가 그러하듯이 변방의 편입된 영토에 대해 누가 그렇게 관심을 두겠는가 말이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할 터이고 온갖 혐오시설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변방에 설치하려고 할 것이다.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말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의 어느 나라나 일본에 비교하더라도 기초지자체 평균 인구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유럽에는 기초지자체 평균 인구가 1만 명 이하인 곳이 많다. 우리는 5만 명 선이 무너지네, 3만 명 선이 무너졌네, 엄청난 호들갑을 떨면서 지역이 지도상에서 금방 사라질 것처럼 걱정하지만,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지역이 다른 나라에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지역은 매우 중요한 화두이다. 도식적인 민주주의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엉터리 정치체계를 생활정치로 전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사실상 가능한 곳이 바로 지역이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굴절되지 않고 실시간으로 전달될 수 있는 곳이 지역이다.

옥천 농민들이 직접 만든 로컬푸드 직매장. 전문가들이 탁상공론을 할 때 현장에서는 자급과 자치의 기치를 세우고 있다. c황민호
옥천 농민들이 직접 만든 로컬푸드 직매장. 전문가들이 탁상공론을 할 때 현장에서는 자급과 자치의 기치를 세우고 있다. ⓒ황민호

정부와 언론이 내세우는 ‘탁상공론’
2021년 10월 18일 행정안전부는 지역소멸대응기금 10조 원을 조성하여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89개 자치단체에 10년 동안 지원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큰 선심 쓰듯 이야기했지만, 막상 까놓고 보면 지자체당 연간 100억 원 남짓 지원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어딘가 싶지만, 이런 기금의 사업들은 사실 연간 이래저래 내려져 오는 국비로 볼 때 많은 돈도 아니다.
  보도자료에는 “지역과 지역, 지역과 중앙 간 연계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자체 간 특별지자체 설치 등 상호협력을 추진토록 유도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 광역지자체 배분 재원을 활용해 복수 지자체 간 생활권 협력사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문장이 은밀하게 삽입된다. 이것은 사실 전해철 행안부 장관이 브리핑한 내용 중의 핵심이다. 결국 대응책이라는 건 중핵도시와 메가시티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성호 지방자치분권실장이 내놓은 말에 이 내용이 녹아들어 있다.
  “핵심은 지역이 앞으로 지속 가능해야 하는 것인데 지자체가 모든 것을 다 갖추는 것은 시대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해당 지역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 특성화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인구활력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할 것이다.”
  이것을 넙죽 받아 챙기는 언론이 있다. 10월 19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전문가들은 지역의 인구감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역 간 생활권을 묶는 이른바 ‘메가시티’ 구성 등 다양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10개 대규모 광역권 구축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영국도 주요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어서 화룡점정의 멘트,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의 말은 정부를 은근히 비판하면서 메가시티를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 감소지역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엔 지역 간 협업과 연계가 필요하다. 정치적 문제나 지역적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상당 기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메가시티 구축 등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경향신문이 야심 차게 준비한 기획기사 ‘절반의 한국’의 마무리도 흥미롭다. “메가시티 역시 새로운 위계 피라미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는 문장을 살짝 걸쳐놓고 있지만,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위해 선도모델이 필요하다는 반론을 제시한다. 기사에서 김태영 경남연구원 미래전략본부장은 “메가시티 아니면 대안이 뭐냐고 묻고 싶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상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언론에 실린 전문가들의 발언을 모아 보면 지역소멸의 답은 메가시티다. 중핵도시보다 더 큰 이름, 메가시티를 그야말로 모두가 원하고 있다. 정말 메가시티 아니면 답이 없는가. 난 그들이 시군 단위에 살아본 적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도시에서 탁상공론을 하면 그런 이론이나 평론이 나올 거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런 하나마나한 말들로 공론장을 어지럽히면 되겠는가.

여러 지자체에서 공간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교통망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 공간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교통망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15분 도시’ 정책
메가시티 정책은 최근 도시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 프로젝트와 완전히 역행한다. 15분 도시는 파리 소르본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도시를 소규모 생활권 단위로 나눠 주거, 문화, 건강, 교육 관련 공공편의시설을 조성하고 주민들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15분 이내에 갈 수 있게 하자는 계획이다. ‘걸어서’와 ‘자전거를 탄다’는 이동 수단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시간에 방점을 찍고 지역을 빠르게 연결하겠다고 한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소규모 생활권을 조성하는 것은 기초단위 커뮤니티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철도와 자동차 등을 이용해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광역이 기초를 꿀꺽 삼키겠다는 의도로 완전히 상반된다. 기후위기의 상황으로 놓고 볼 때도 이 정책의 차이는 확연하다. 부산에서는 파리 정책을 차용하여 시속 1280㎞의 하이퍼루프 기술을 이용해 이동 시간을 15분으로 단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데 이 정책을 이렇게 곡해할 수 있나 싶다.
  결국 예산을 어디에 쓰느냐에 판가름이 난다. 소규모 생활권 강화 정책은 기초단위 주민의 편의를 강화하는 데 쓰여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반면, 메가시티 정책은 예산 대부분을 교통망에 투자하게 되면서 토건업자와 코어에 사는 자본가들을 배 불리는 정책이 될 것이다. 토건사업에 매몰되는 생태계와 농지를, 그 예산으로 빼앗기는 주민들의 복지를 생각한다. 15분 도시의 핵심은 주민들 주변에 학교, 직장, 의료, 상점 등 각종 여가시설 등이 존재해 그들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골 면 지역의 경우 마을마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면 소재지에 이런 공공시설을 갖춰놓고 무상 저상버스를 운영하면 될 것이다. 전동차와 자전거 도로를 확보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메가시티라니. 메가시티의 개념을 이해하면 옥천군과 영동군은 대전의 교통망을 따라 대전에 편입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지역의 정체성은 단박에 사라질 것이다.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군민들은 객처럼 대전의 편의시설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옥천에 있는 수영장과 영화관, 문화예술회관도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광역전철을 타고 너무도 쉽게 대전의 상업적 자본이 만든 세련된 시장과 공공편의시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반드시 좋은 것인가? 자기 제어권을 잃어버리고 자치의 길은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지역 안에 공공시설은 지역주민의 목소리로 피드백을 하면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구조지만, 지역을 벗어나면 그냥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옥천문화원 부설 옥천학연구소는 지역학을 새롭게 세우고 주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역사적 걸음을 내디뎠다. ⓒ황민호
옥천문화원 부설 옥천학연구소는 지역학을 새롭게 세우고 주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역사적 걸음을 내디뎠다. ⓒ황민호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지역의 개념을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권 중심의 지역사회로 다시 설정하고, 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은 저 너머로 보내고, 이제 자치와 자급, 협동과 연대, 순환과 공생의 가치를 꺼내 들 타이밍이다. 그 전제로 우리의 목소리를 획득하고 지켜내고 순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자본들이 읍내 면 소재지까지 프랜차이즈를 진열하고, 온라인 자본들은 하이퍼로컬 운운하면서 동네 골목까지 시장으로 편입시켰다. 지역은 그렇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자본들에 의해, 마을을 낭만화하며 저항하고 투쟁하지 못하는 올망졸망한 공동체로 묶어놓은 권력 체계에 의해 한 번 더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지역은 최전선에 있다. 그래서 지역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 미디어, 학문이 필요하다. 공동체 지역학교와 공동체 저널리즘, 새로운 지역학이 이를 대체해야 한다. 이젠 민족자결주의를 넘어서 지역자결주의 식민지로 오래전에 전락해 버린 지역에서 새로운 자치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미디어운동의 방향은 이제 계급운동과 소수자운동과 함께 지역 밀착형 자치를 어떻게 미디어에서 다양하게 공론장의 재현으로 구현할 것이냐로 귀결될 것이다.
  ‘언론에서 공론으로’ 더 가까이, 더 낮게 다가가는 일일 것이다. 씨줄과 날줄이 그렇게 얽어매질 때 다양한 삶의 그물망은 기본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탁상에서 그려놓은 지역, 대상화한 지역에 맞서 지역에 사는 우리는 밀착과 애착으로 자본과 권력의 힘을 극복해야 한다.

※ 필자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황민호
2002년부터 옥천신문 기자로 재직해왔다. 10년이 되던 해 옥천살림에서 공공급식배달을 3년 동안 하고 다시 신문사로 복귀해 일을 하고 있다. 3년 동안 청산면에서의 생활, 3년 동안 공공급식배달이 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지역의 공공성을 키우고 살맛 나는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