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자꾸 서성이게 돼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

동피랑 마을은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
동피랑 마을은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통영시
전망대에서 바라본 통영시
동피랑 마을의 구판장. 이곳의 수익금은 마을 주민에게 골고루 분배된다.
동피랑 마을의 구판장. 이곳의 수익금은 마을 주민에게 골고루 분배된다.

산등성이나 산비탈처럼 높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달동네’라 했다.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오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에야 비로소 지친 몸을 쉴 공간을 만나는 곳. 달과 가장 가까운 동네. 그래서 꿈을 꾸기 좋은 곳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곳을 떠나는 꿈을 꾸곤 했다.

경상남도의 가장자리 통영시.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 쓰여 있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을 건너, 바다를 따라 걷다가 갖가지 생선과 건어물이 즐비한 중앙시장을 지나면, 가파른 언덕길, ‘동피랑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동피랑은 벼랑의 경남 사투리인 비랑에서 비롯된 말로,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이라는 뜻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같은 이 마을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말해 주는 삶 터였다.
2007년 재개발 계획으로 마을이 ‘벼랑’에 서게 됐을 때, 마을을 살리기 위해 마을 주민이 마음을 모아 벽화 그리기 사업을 추진하자, 전국에서 찾아온 미술가와 미대생들은 마을의 벽과 언덕, 골목길에 아름답고 재미있는 옷을 입혔다. 그 뒤 동피랑 마을은 통영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하루 3천 명씩 찾아드는 관광객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쓰레기로 마을 사람들은 몸살을 앓았다.

“할머니 병원 가면서 하신 말 진짜 조용히 다녔으면 좋겠네”

겉모습은 화려해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더 고단해진 듯했다. 마을 어귀 전봇대의 글귀처럼.

동피랑 마을은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피랑 마을은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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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마을은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동피랑 마을은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마을 사람들은 주민에게 실질적인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동피랑 사람들’이다. 80가구 주민들이 지역공동체로 형성한, 통영 1호 생활 협동조합인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점방과 구판장을 운영해 수익금을 분배하면서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동피랑 사람들’은 2013년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어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게 됐다.
동피랑 마을에 더 많은 소득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니, 마을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2013년 봄, 동피랑 마을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성인다. 꽃단장한 봄 처녀 같은 마을이, 살포시 웃는다.

*정지용 ‘향수’의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