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농민만 살지 않고 농민은 농사만 짓지 않는다

임경수

농촌에 사는 사람들
  예전에 농촌개발과 관련한 토론회에서 유명한 정치인이 인사말을 하면서, “오래전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유명한 소설을 읽고 있는데 농촌에서 농사만 지은 것이 아니고 농민이 다른 일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해 귀가 번쩍 띄었다. 그즈음 ‘농촌에 농민만 살지 않았고 농민도 농사만 짓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던 참이었다.1) 하지만 이어 “그래서 농촌관광이 중요하다”라고 말해 적지 않게 실망했다. 젊고 실력이 있으면서, 농업·농촌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있어 내심 기대하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내가 활동하는 전북 완주군에는 ‘벼농사두레’라는 모임이 있다. 귀촌했던 사람들이 “시골에 사니 내가 먹는 쌀농사는 직접 해보겠다”며 만든 모임이다. 한 마지기 정도 되는 논을 사거나 빌려서 농사 경력이 좀 있는 귀농인과 함께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한데 모여 볍씨를 준비해 모판을 만들고, 모내기할 때는 흩어져 있는 회원들의 논을 돌아다니며 모를 심는다. 이후에 물을 관리하고 잡초를 뽑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가을에는 모내기할 때처럼 품앗이로 추수한다. 논은 없지만, 나는 함께 일할 때 일손을 보태고 그들이 농사지은 쌀을 사 먹곤 했다. 여름에 회원들이 모이는 단합대회에 참석해 ‘이들은 농민일까?’, ‘나도 농민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1) 그 책은 《농촌은 귀농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2023년에 출간되었다.

완주 ‘벼농사두레’ 모임의 모내기 풍경. ⓒ완주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
완주 ‘벼농사두레’ 모임의 모내기 풍경. ⓒ완주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

농민이 아닌 농촌 사람, 농사만 짓지 않는 농민
  우리는 흔히 ‘농민’과 ‘농부’를 혼용해서 쓰지만, 농민은 소작농(Peasant)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농부는 농장주(Farmer)라는 뉘앙스가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특정한 면적 이상의 농지에서 농사를 지어야 농지의 소유가 가능하고 정책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는 ‘농업인’으로 인정받는다. 법적으로 농업인 개념이 등장한 지 약 20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농촌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기 위해 농업인이 아니라 산업별 취업자의 수를 통계청 자료에서 살펴보았다. 1930년 군지역의 농수산 분야 취업 인구는 757만 명으로 15세 이상 인구 1193만 명의 65.0%이고 2020년 읍면지역의 15세 이상 인구는 489만 명으로 줄어들었는데 18.6%인 92만 명이 농림어업종사자였다. 과거에도 농사를 짓지 않는 농촌 사람이 꽤 많았고, 지금은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이 농촌에 살고 있다고 통계자료는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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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세대별 전·겸업농가의 비율. (출처: 국가통계포털 자료 가공)

  농민들은 농사만 짓는 것일까. 통계는 이와 관련해 전업농과 겸업농으로 농가를 구별하는데, 1960년 232만 농가 중 171만 농가(73.2%)가 농사만 짓는 전업농이었지만 2022년 102만 농가 중 56만 농가(58.6%)가 전업농이었다. 옛날에도 농사만 짓지 않는 겸업농이 꽤 많았는데, 지난 60여 년 동안 농가는 줄어들고 겸업농의 비율은 늘어났다. 위 그림은 이를 세대별로 구별해 본 것이다. 농촌에서 주된 경제활동을 하는 30세에서 70세까지 세대별 농가의 겸업비율은 모두 50%가 넘는다. 겸업농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전업농의 농업소득은 1297만 원으로 농가의 가계지출 3014만 원의 43.0%밖에 되지 않았고 도시근로자 근로소득 7309만 원의 17.7%밖에 되지 않았다.
  귀농·귀촌 통계도 이러한 농촌의 현실로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022년 1만 2411만 가구가 귀농하였고 이 중 40대 이하는 21.8%이지만, 귀촌가구 31만 8769가구 중 40대 이하는 60.9%에 달하고 있다. 젊은 층이 다양한 이유로 농촌에 오고 있는데 생계를 유지할 수단으로 농사는 기피하고 있다.
  우리 농업·농촌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까. 다양한 영농지원사업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전업농을 주요한 대상으로 한다. 이번 정부에서 예산을 확대한 ‘청년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은 농사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인정치 않다가 2023년부터 농업·농촌에 기여하는 농외근로라는 전제를 달고 허용했다. 농촌정책은 2000년대 초에 들어 경지 정리, 농수로 정비 등의 농업 기반 확충에서 벗어났지만, 농산물 가공, 농촌관광, 치유농업 등 농업과 연관된 사업을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 농촌신활력사업, 농촌청년창업지원 등을 통해 농업외 분야도지원하는 변화가 보인다.

인적 없는 농촌의 소도읍 풍경. ⓒ윤석진(협동조합 이장)
인적 없는 농촌의 소도읍 풍경. ⓒ윤석진(협동조합 이장)

분절된 지역사회, 파편화된 지역경제
  완주로 이사하기 전, 나는 여러 소도읍이나 작은 도시에 살았다. 처음 이사한 곳은 홍성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당시 홍성에는 안과를 진료하는 병원이 없었다. 홍성의 인구와 지역경제 규모는 그러했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일주일에 하루, 홍성의료원에서 안과 진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갔다가 4시간을 기다려 겨우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지쳐 보였고 서둘러 약을 처방했다. 이후 나는 매달 어머님과 함께 천안의 안과병원에 갔다. 왕복 2시간을 오고 가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농촌의 실상을 몸으로 처음 경험하였다.
  이후에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서천으로 가게 되었는데, 하루는 춘천에서 산 큰아이의 자전거 타이어 밸브가 빠져 읍에 있는 자전거 가게를 찾아갔다. 머리가 허연 아저씨는 자전거를 고치며 연신 혼잣말을 투덜거렸다. 서천 사람들이 군산의 대형마트에서 자전거를 사고 자신의 가게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 이런 수리만 하러 온다고 했다. 우리 아이의 자전거도 그 가게에서 사지 않았기 때문에 그 푸념을 참고 들었다. 이 자전거 가게도 조만간 없어질 것이었다. 이후 서천 읍내를 자세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 가게가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가게는 무엇인지, 어느 가게는 망하고, 어떤 가게는 그래도 장사가 되는지가 궁금했다. 문방구, 옷 가게, 식당, 술집 등 규모가 크면 여지없이 망했다. 큰 가게가 망하면 당장 다른 가게가 새로 생기지 않았다. 건물주가 큰 점포를 쪼개어 작은 점포를 만들면 점원이 없어도 되는 업종이 생겼다. 미장원, 화장품 가게, 꽃집, 분식집, 토스트 가게, 부동산 등이다. 그렇게 지역경제는 부서지고 있었다.
  남도의 녹차를 생산하는 한 마을에서 마을계획을 세우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설문을 끝내고 궁금해 물어보았다. “술은 어디서 드세요?” “광양.” “농산물은 어디서 사세요?” “진주 대형마트.” “혹시 어디 사시나요?” 녹차 농가의 대다수가 진주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지역에서 녹차 농사로 벌어들인 돈은 인근 도시인 광양이나 진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농촌에서 도시로 빠져나간 돈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농촌에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농민만 없어지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농촌인구가 10만 명에서 5만 명이 되면 10만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유지되던 다양한 일과 직업도 없어진다. 그렇게 없어진 일과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지역을 떠난다. 그러면 농촌에서 뭘 하나 사고 싶어도 제대로 된 물건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없고, 교육·문화·복지 등 제대로 된 서비스도 받기 어려워진다. 어려운 살림의 사람들은 농촌에서 사느니 팍팍하더라도 도시로 가는 것이 나을 거라면서 떠난다. 그 과정에서 농촌의 돈은 더 많이 외부로 유출되고 지역경제는 외부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그렇게 지금 우리나라 농촌은 인구가 감소해 지역이 침체하고, 다시 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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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발달지원센터 이랑협동조합의 장애아동 놀이 시간. ⓒ완주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
아동발달지원센터 이랑협동조합의 장애아동 놀이 시간. ⓒ완주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

지역순환경제와 커뮤니티비즈니스
  농사짓지 않는 농촌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고 농민의 겸업을 신기루로 생각해 농촌소멸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남도의 마을에서 녹차로 100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하자, 농민들이 그 돈 20억 원으로 지역의 건축업자들에게 집을 고치면 그 지역의 전체 소득은 120억 원이 된다. 건축업자가 그 돈의 10%로 지역의 농산물을 샀다면 그 지역의 전체 소득은 122억이 된다. 꼭 외부에서 돈을 벌어야 지역이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돈이 순환해도 지역은 잘 살 수 있다. 그래서 돌고 돌아서 돈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지구 생태계가 우리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농촌경제는 농민과 농촌 사람, 농사와 여러 가지 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정책은 이런 사실을 간과한다. 크고 빠른 톱니바퀴를 가진 시장에 농민이 만든 작고 느린 톱니바퀴를 맞추려고만 한다. 거대한 시장과 농민 사이에는 지역이 있고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작은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
  이런 지역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커뮤니티비즈니스’이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이 공동체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농촌에 필요한 것을 농민의 겸업으로 만들어 농촌 사람의 지출을 줄인다면, 농사를 짓지 않는 농촌 사람이 농촌에 필요한 일을 해 농민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농촌경제가 조금은 나아지고 지역에선 경제순환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완주에선 부모들이 모여 아이를 함께 돌보는 공동육아, 요일별로 요리사가 바뀌며 특별한 음식을 파는 공유부엌, 장애아동의 부모도 맞벌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돌봄협동조합, 자전거 수리점이 없는 지역을 순회하며 자전거를 고치는 자전거 가게 협동조합, 취약계층을 돌보는 사회적농장 등 지역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동시에 일자리를 만드는 다양한 사업단이 생겨났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로컬푸드와 함께 지역사회의 파편화를 막고 지역경제를 순환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를 경제적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 춘천에 살 때 아내가 매일 직원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아내는 식재료 대부분을 가까운 재래시장에서 샀는데, 어느새 중요한 고객이 되어 장에 가면 상인들의 친절한 인사를 받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전날 거스름돈이 없어서 500원을 받지 못했던 아내는 채소를 사면서 500원을 넣어 계산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채소 가게 주인은 “그렇게 못하지. (잠시 침묵) 대신 1000원짜리 배추 2개 더 줄게”라고 답했다. 이게 사는 맛이다. 우리가 사는 것 모두가 ‘보이지 않는 손’에 지배받으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다. 돈으로만 사람은 살 수 없다. 또한 시장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시장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이미 우리는 살만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경제가 망친 문제는 경제가 해결하지 못한다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20세기 초반, 자본주의가 이렇게 발전하면, 사회 속에서 있어야 할 경제가 자신보다 큰 사회를 통제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불행해진다며 ‘사회적경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쓴 논문 중 하나의 제목이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거대한 시장경제와 개인 사이에는 지역이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농촌소멸은 이 완충지대를 망가뜨린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아닐까. 경제가 망친 문제를 우리는 어리석게도 다시 경제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큰돈을 버는 농민들이 생기면, 청년들이 창업에 성공하면 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그들이 번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이고 그들은 농촌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의 역할로 기존 주민들의 무너진 일상을 돌이킬 수 있을까.
  농촌에선 누구나 조금은 농민이고, 농민도 농사를 지으며 좋아하고 보람을 느끼는 다양한 일을 하는 농촌을 상상해 본다. 농부와 농촌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농업과 농촌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로 보지 않고, 농촌의 지역사회와 경제를 하나로 봐야 한다. 농촌은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되고 그 관계가 축적되어 발전하는 하나의 ‘통’이다. 농촌에 농민만 살지 않고 농민이 농사만 짓지 않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활기찬 농촌의 미래이다. 완주의 ‘벼농사두레’ 회원들은 자신을 장난삼아 ‘레저농’이라 부른다. 마치 산에 가듯이 알록달록한 아웃도어룩과 ‘썬그라스’로 무장하고 논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레저농’의 출현은 소멸당하고 있는 농촌의 희망일지 모른다.

임경수필자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이사장, (주)브랜드쿡 COO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화학공학, 대기오염, 유기농업을 공부했다. 호주 크리스탈워터스에서 퍼머컬처디자인을 배우고, 사회적기업, 중간지원조직, 지방정부 등에서 25년을 농촌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