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먹거리의 악순환 넘어서기

윤병선

통계가 보여주는 농업과 먹거리
  통계라는 것이 사람의 손을 탈 수밖에 없으니,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왜곡이 발생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 해석에는 주의해야 한다. 2024년 5월, 통계청이 2023년 농가경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농가의 연평균소득이 5082만 원으로 처음으로 5000만 원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더해졌다. 2022년보다 농가소득은 10.1%, 농업소득은 18.7% 증가한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 이것은 최악의 성적을 보였던 2022년의 각종 지표에 따른 기저효과이며, 불안정한 농가살림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2023년의 농업소득(1114만 원)은 2021년의 수준(1296만 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농업소득이 농가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의 27.1%에 한참 못 미치는 21.9%에 불과하다. 농업을 살리고 농촌을 활기차게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동력은 농업소득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데, 농업소득이 농가소득의 20%를 가까스로 넘기고 있다는 것은 농사로 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농사만 지어서 농가살림을 유지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은 농가소득을 통해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농사는 하늘과 땅, 사람이 짓는 것이라고 하는데, 최근 기상이변은 위기를 넘어서서 재난이라고 일컬어질 정도에 이르렀다. ‘극한기후’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겨울에도 때를 가리지 않고 내리는 비로 인해 밭작물, 특히 마늘, 양파, 밀의 피해가 컸고, 봄에는 일조량 부족과 병해충, 때아닌 폭설 등으로 과채류 생산도 여의찮은 상황에 놓였다. 기후재난의 영향은 밥상물가를 위협했고, 속칭 ‘금사과’까지 지면의 화두로 등장했다. 올해는 사과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예측은 작년도 재해의 후유증과 주산지의 과수화상병과 냉해 때문에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0
사과값이 폭등하자, 일각에서는 검역상의 문제로 수입이 불가한 사과의 수입을 강하게 재촉했다.

수입산 먹거리가 만드는 농업의 악순환
  사과값이 폭등하자, 일각에서는 검역상의 문제로 수입이 불가한 사과의 수입을 강하게 재촉했다. 국내에 과수화상병이 발생하게 된 것도 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묘목을 통해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만큼 검역 절차를 무시한 수입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한국은행 총재는 “이제는 농산물 수입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라면서 농산물 가격은 재정금융정책으로 잡을 수 없다는 궤변을 내놓았다. 금융통화위원회에 농산물 가격을 잡아달라고 요청한 농민이나 소비자는 없거니와 관여할 권한도 능력도 없다. 이미 농산물의 국경은 활짝 열려 있고, 대파나 양파, 고추 등은 가격이 오르기도 전에 저율관세할당(TRQ)으로 수입한 물량을 시장에 풀고 있다.
  국내 생산물량이 감소해서 발생한 시장 가격의 상승을 억누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수입이지만, 이것이 국내 생산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욱이 농산물은 품목 간 대체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과값 잡겠다고 풀어놓은 수입산 과일 덕에 여름 과일의 수요가 예전과 다르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입이 이루어지더라도 생산비는 건질 수 있는 적정한 가격 수준이 유지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농민의 생산 의욕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확량 감소에 따른 물량 부족으로 오른 가격을 잡으려고 수입농산물을 시장에 풀어놓으면 수확량 감소로 인한 농민의 경제적 손실은 더욱 커지고, 농업 포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수입이 수입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진다.
  속칭 ‘금사과’ 사태를 보면서, 사과였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었다면 그 혼란이 얼마나 컸겠는가? 올해의 세계 기상 상태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가 대두를 가장 많이 수입해 오고 있는 브라질의 대두 산지는 폭우에 많이 망가졌고, 호주의 밀 주산지는 가뭄으로 파종을 못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후위기와 맞물린 식량위기,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보니 미국은 ‘가격손실보장제도’를, 일본은 ‘수입감소영향완화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자국의 먹거리는 자국민 스스로 안정적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다소 국수주의적으로 읽혔던 사고가 이제는 글로벌 표준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와 정책의 난맥상, 농업과 먹거리의 악순환
  기상재해 등 외적 요인으로 발생한 가격 폭등에 유통업체들의 이익이 증대되는 구조는 누구에게도 정의롭지 못하다. 2023년 가을에 미국으로 수출한 한국 사과가 ‘금사과 소동’과는 관계없이 미국 내에서는 수입 가격에 따라 팔린 점에서 보듯이 유통업체들이 계약재배를 통해서 생산을 뒷받침하면서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사과값이 고공행진을 하던 2024년 3월 정부는 대규모 할인행사에 지원금을 투입하고, 지원금 덕에 대형유통업체들은 사과 할인판매라는 깜짝 행사를 진행하고, 할인행사에 참여한 대형유통업체는 이를 미끼상품으로 활용하고, 결국 사과 소비를 자극해서 할인행사 후에는 오히려 시장 가격이 더 높아졌다. 국민 모두에게 필수적인 기초식량이라면 할인쿠폰을 지급해서라도 부담을 덜어줘야 하겠지만,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대형유통업체의 배 불리는 일에 정부의 예산이 사용된 것이다. 오히려 그 돈으로 공익광고라도 편성해서 사과값의 폭등은 기상재해 등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30%나 줄어들어 발생한 것인 만큼 이것은 사과만의 문제가 아니며, 기후위기는 농민들만이 감당해야 하는 피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기후위기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현장농민의 어려움에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정책이 악순환을 개선하거나 완화하지 않고 오히려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령화와 인구소멸로 특징되는 현재의 농촌 상황과 곡물자급률 20%라는 식량위기 상황은 분절적이고, 미시적인 임기응변식 정책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점, 그리고 기후위기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망가진 선순환의 회복은 가능할까?
  농업생산의 확대가 농업소득의 증가로 연결되는 구조라면 규모를 확대해 가면서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현실에서는 규모의 확대가 농업소득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담보하지 못한다. 경지규모와 농업소득은 비례하지도 않고, 농업소득이 농업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농업소득률도 마찬가지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2023년 통계를 보면 상위 1% 농가에 해당하는 10ha 이상을 경작하는 농가의 농업소득률은 1.5~3ha를 경작하는 농가의 농업소득률보다 낮았다(표 참조). 규모를 키우는 것이 농가경영의 안정을 가져오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표

  농가경제에서 우리 농가의 농업의존도(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는 평균 22%인데, 10ha를 경작하는 농가의 농업의존도가 44.3%였고, 경지규모가 7~10ha인 농가의 농업의존도가 가장 높은 51%였다. 상위 2% 농가(7ha 이상인 농가 비율)마저 농업소득이 농가소득의 절반 혹은 그 이하를 차지하고 있다는 암담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상위 2%의 농가만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할 수 있지만, 나머지 98%는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하지 못한다. 농가경영의 안정은 농외소득의 지속적인 확보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포기 정책이 아니라, 농업의 6차산업화나 융복합화 등의 정책을 통해서 농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업영역 발굴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생소한 사업영역은 농업생산에 우선 집중해야 할 농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농업생산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다각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업생산의 연장, 농민가공과 농외소득
  가장 대표적인 예로 농민가공을 들 수 있다. 그동안 농민가공에 대한 농민들의 관심과 열의가 높았다. 기껏 키운 농산물의 제값을 받기 어려우니, 가공이라는 부가적인 활동을 통해서 소득을 보전하자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식품위생법에서 요구하는 식품제조·가공업 영업등록을 해서 가공을 한다는 것은 자금 부담이 커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민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부담이 적은 즉석판매제조·가공업(즉판업) 신고를 하면 가공식품을 우편과 택배로 판매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전국의 870여 개에 달하는 로컬푸드직매장에서 판매는 불가능했다. 2022년도에 대산농촌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자, 여성농민과 함께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를 위한 개선 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에서 전국의 여러 농민이나 농민조직이 농민가공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식품위생법에 따른 제조·판매 허가를 받기 위한 필요 시설자금은 농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라는 점, 지자체에서 예외를 두는 조례를 만들더라도 식품위생법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 택배보다 훨씬 신뢰도가 높은 직거래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농민들의 직매장 판매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다행히 2024년 4월 말에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농민이 직접 만든 가공식품을 로컬푸드직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농민이 즉판업 영업을 신고한 건수가 약 3700건에 달한다고 하니 그간 직매장 판매를 얼마나 아쉬워했을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이 변화하면 정책이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데, 농업과 먹거리와 관련한 변화를 제도가 담아내지 못했던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농외소득이 농업소득의 1.8배에 달하고 농외소득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를 정도로 농외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농외소득 기준이 여전히 3700만 원에 묶여있어 직불금, 보조사업 등 각종 정책의 제한 기준이 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농외소득원을 찾아 나섰는데, 그것 때문에 비농민으로 대우하는 것은 농촌소멸을 재촉하는, 제도에 의한 강제 탈농책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농민이 주도하는 ‘스마트한’ 농업이어야
  한국 농업의 대안처럼 회자되고 있는 스마트농업이라는 것도 대규모 자본의 투입을 전제로 한다면 현재의 가격구조에서는 이자라도 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책자금에 의존하지 않고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델이다. 과거 유리온실사업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자본이 주도하는 스마트농업이 아니라, 농민이 주도하는 과학기술로서의 스마트 농업, 농민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청년 취업의 미끼가 아니라, 농촌이 청년의 자존심과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마트한 농업이어야 한다. 현재의 암울한 농가경제에 고민이 없는 기술 담론은 농업의 악순환을 심화할 뿐이다. 식품안전을 자본의 시각에서만 보면 농민가공이 눈에 보이지 않았듯이, 자본의 입장에서 농업을보게 되면 이윤만이 보일 뿐, 사람도 없고, 생명도 없다.

윤병선필자 윤병선: 건국대학교 인문사회융합대학 교수(경제학박사)
세계 농식품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농식품체계의 구축을 위한 연구와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울력, 2015), 《푸드플랜, 농업과 먹거리 문제의 대안 모색》(울력, 2020), 《농민권리: 유엔농민권리선언의 이해》(한국농정,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