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다양한 농민시장이 열린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장터에 온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농민시장. 서울에서 꾸준히 열리고 있는 농민시장을 찾아 현장을 담았다.
농민과 소비자가 대화하는 시장 _ 마르쉐@
마르쉐@ 장터는 농민을 중심으로 요리사와 수공예가가 함께하는 도시형 장터로, 매달 둘째 주 일요일과 넷째 주 토요일 혜화 마로니에 공원과 성수동 언더스탠드 애비뉴에서 열린다. 3월 12일, ‘이어가는 씨앗’을 주제로 토종 씨앗 나눔행사와 함께 열린 장터는 직접 농사지은 우리밀로 구운 빵과 쿠키, 궐나도·여명·흑갱 등 30여 종이 넘는 토종 벼, 토종 쌀 막걸리 등 직접 생산한 먹거리를 파는 농민과 궁금한 것을 농민에게 직접 묻고 대화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모님이 키운 유기농산물로 만든 효소와 제철요리를 파는 보리햇살농장의 신민주(28) 씨는 5년째 꾸준히 마르쉐@에 참여하는 이유로 ‘만남’과 ‘대화’를 꼽았다.
“마르쉐@에 나오면 농민들이 재배한 것에 관해 꼼꼼히 묻고 알아봐주는 소비자를 만나니 뿌듯하죠. 유기농으로 재배한 과정에 대해 대화하며 직접 설명해줄 수 있으니 소비자도 단순히 ‘비싸다’고만 보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니까요. 농민과 소비자가 서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시장의 분위기가 곧 건강한 농산물의 가치와 가격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신뢰를 받으니 스스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생기고요.”
농부와 함께하는 시장_ 서울시 농부의 시장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일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서울시 농부의 시장. 이곳에서는 지자체의 보증을 받은 전국 70여 개 지역의 농산물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김치와 장류부터 들기름과 토종 잡곡, 봄나물, 요구르트, 아로니아즙, 직접 키운 잎채소로 만든 즉석비빔밥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한다.
4월 둘째주 일요일, 서울시 농부의 시장 운영을 지원하는 서포터즈 ‘농부처럼’으로 참여한 민지홍(33) 씨는 ‘여행하는 농부들의 이동부엌’ 부스를 차려 채소 카레를 팔았다. 버섯, 꿀, 요구르트 등 요리 재료의 상당부분은 장터의 농민에게서 직접 구입했다.
“장터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 기획했어요. 농산물을 가공하거나 요리하면 더 잘 팔리는 걸 알아도 농민들은 여력이 없어 못하는데, 저희처럼 농민의 재료를 직접 사서 장터에서 요리하는 부스가 있어 좋다고 하는 농민들이 계셔서 기뻤죠.”
민지홍 씨는 앞으로도 장터에서 요리하며 건강한 농사를 짓는 농민과 함께할 예정이다.
만나면서 배우는 시장 _ 얼굴있는 농부시장
4월 둘째 주 토요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친환경, 슬로푸드를 지향하며 청년 농부의 참여와 교류를 중점 지원하는 소농 직거래 시장, ‘얼장(얼굴있는 농부시장)’이 열렸다. 얼장은 12월까지 매달 둘째 주, 넷째 주 토요일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다.
이날 유독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따뜻한 시골 농부 형제’ 김대겸(27), 김대휴(24) 씨. 상주에서 함께 감 농사를 짓는 두 형제는 손수 키운 농산물에 대한 피드백을 소비자로부터 직접 받고, 장터에서 다양한 농민들을 만나 관계 맺으며 성장할 수 있는 점을 농민시장의 장점으로 꼽았다.
“인터넷 직거래로 팔 때는 농산물을 직접 보여줄 수 없어 한계를 느꼈는데, 장터에서는 시식으로 직접 홍보하고 또 반응이 바로 오니까 다음에 어떻게 발전시켜야할지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돼요. 무엇보다도 저희는 초보농부라 궁금한 게 많은데 장터에서 경험 많은 농부님을 만나 배울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청송에서 온 6년차 농사꾼 황창성(33) 씨는 얼장을 통해 도심의 젊은 세대에게 농산물을 홍보할 수 있어 좋지만, 장터에 온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농사의 과정보다는 가격에 더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장터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먹거리를 볼 때 가격 이전에 어떻게 농사지었는지를 궁금해 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최근, 도시 안팎에서는 다양한 농민시장이 열린다. 이러한 시장은 농민과 소비자, 농민과 농민간의 직접적인 ‘만남’을 연결함으로써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소농에게는 판로를, 젊은 농민에게는 다른 농민들과의 교류를 통한 배움을, 소비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와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를 제공하며, 규모화, 세계화 된 농업과 먹거리 문화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민시장이 ‘문화’로 정착된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농민시장은 아직 운영 초기 단계로 여러 가지 한계점을 안고 있지만, 계속 성장하며 확산되고 있다. 농민시장이 본연의 뜻을 잃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국민적 공감과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지리라 기대한다.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