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공동자원과 농촌공동체

제주의 해안마을 전경. 바다밭은 중요한 공동자원이다. ⓒ김자경
제주의 해안마을 전경. 바다밭은 중요한 공동자원이다. ⓒ김자경

김자경

제주 마을의 기원, 공동자원/커먼즈
제주는 매우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상호부조의 문화, 이른바 ‘수눌음’ 문화가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생계 경제의 시대, 즉 농업이 주된 생계 수단이었던 시대에 산물(용천수의 제주어)은 중요한 식수였으며 이 산물이 나오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목초지와 방목지에서는 가축을 위한 사료와 지붕을 이는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바다밭에서는 다양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었고, 곶자왈과 오름에서는 버섯류와 숯 등 땔감과 연료를 얻을 수 있었다. 척박함의 반전이다. 집과 연료의 재료, 그리고 먹을거리를 획득할 수 있는 생계 수단으로써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러한 자원을 공동자원(커먼즈, commons)이라 부른다. 바다밭(또는 마을공동어장), 목초지와 방목지(또는 마을공동목장), 산물은 지금도 마을의 자산이다. 주어진 자연환경을 마을공동체가 이용하고 관리해 온 덕분이다. 공동자원을 이용할 때는 상당히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며, 무임승차를 하거나 규칙을 어길 시 점증적인 벌칙이 따른다. 마을별로 향약 또는 정관이라 부르는 자치규약을 살펴보면 마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자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공동자원에 대한 권리가 강한 마을들은 자치력도 높은 편이다.
  이러한 마을은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공동자원을 중심으로 경제공동체로 운영되기도 하며, 관혼상제와 관련된 큰 집안 행사를 마을에서 함께 치르니 강한 관계성을 지닌 생활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제주의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팽나무(제주어로 ‘폭낭’이라고 함)가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라산으로 향한다. 팽나무의 나뭇가지들도 바람에 순응하며 한라산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면서 팽나무의 신령함에 의지하고자 하는 옛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마을별로 신당이 존재하는데, 팽나무도 신당이 된다. 팽나무 밑에 놓여 있는 과일이나 소주병, 촛대가 증거이다. 지금도 어르신들이 새벽의 신성함이 깃들 때 남몰래 촛불을 켜고 집안의 평안함을 기원한다. 이로써 마을은 신앙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제주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 있는 와흘본향당. 신당 앞에 놓여 있는 제물의 수만큼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C이재섭
제주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 있는 와흘본향당. 신당 앞에 놓여 있는 제물의 수만큼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재섭

  한편 제주는 마을마다 바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2016년 제주의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의 해녀는 타고난 ‘숨(바닷속 호흡)’으로 능력을 구분하여,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상군해녀는 나이에 상관없이 잠수 능력으로 결정된다. 타고난 숨에 순응하는 삶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들에게는 비교적 얕은 바다이지만 해산물이 풍부한 ‘할망바당(바당은 바다의 제주어)’이 주어진다. 이 ‘할망바당’은 배려의 바다이고, 마을이 돌봄공동체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에 마을에서 학교를 만들 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내거나, 출역을 나가 돕기도 했다. 또한 해녀들은 바다의 일정한 구역을 지정하여 그곳에서 수확된 해산물은 모두 학교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구역을 ‘학교바당’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을은 교육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마을에서 함께 살기 위한 돌봄의 마음이 배려와 형평성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마을은 공동자원을 통해 공동체가 되었다.

제주 문화의 현대적 의미
제주에는 ‘반테우기’라는 문화가 있다. ‘반’은 잔치 때 개인에게 주어지는 고기와 떡, 과일 등을 말한다. 특히 고기를 먹기 어려웠던 시절에 모두와 골고루 나눠 먹기 위해 얇게 썬 돼지고기 수육과 마른 두부, 수애(제주식 순대) 등을 한 접시에 몇 점씩 놓는다.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고깃반’을 한 접시씩 먹는다. 아파서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고기를 먹지 못하는 물애기(영유아의 제주식 표현)에게도 한 접시씩 나눠준다. 잔치에 온 사람들은 이들을 위한 고깃반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 참석하지 못한 이웃들, 가족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잔치를 함께 기뻐해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제사가 끝나면 제사에 참석한 친척들과 그 가족들 몫으로 떡과 고기적, 과일, 나물 반찬 등을 골고루 싸고, 만일 떡과 고기적 등이 모자라면 참치캔, 라면, 식용유 등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보태어 싸준다.
  잔치에서 축하받아야 할 주인공 이외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도감’이다. 도감은 고기를 모두에게 불평의 소리가 나오지 않게 골고루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이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 문화에는 평등, 공평, 형평의 가치가 보인다. 어른, 아이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같은 양을 나눠주며, 어떠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거나 부조를 하지 못해도 사정을 고려하여 고깃반을 나눠주는 것이다. 제주의 반테우기 문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가치, 즉 평등과 공평, 형평을 아우르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19 전파 위험으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고, 삶과 죽음의 의례에서도 먼발치서 바라만 보게 되었다. 기쁨을 서로 나누며 배가시키지 못했고, 슬픔을 서로 나누며 반으로 줄이지 못했다. ‘반테우기’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진다.

제주 공동목장의 모습. 소들이 제 주인들과 생生과 사死를 함께 겪어 나간다는 의미가 보이는 사진. C김수오
제주 공동목장의 모습. 소들이 제 주인들과 생生과 사死를 함께 겪어 나간다는 의미가 보이는 사진. ⓒ김수오

공동성과 마을 경영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마을에서 누구와 함께했던 집단의 경험을 통해 어떤 감정이 자라난다고 보는데, 이것을 ‘공동성’이라 부르고자 한다. 마을에서 공동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동성이 필요하다.
  정월 초하루 리사제(‘마을포제’라고도 함)가 열린다. 마을의 제사를 담당하는 제관 어르신들은 3일 전부터 몸가짐을 남달리 하며 조심한다. 그 전날 바닷가 마을에는 해신제 또는 용왕제라는 이름으로 어촌계 중심의 마을굿을 하는 곳도 있다. 주로 마을 내 여성들이 정성 들여 굿에 참석한다. 5월 어버이날에는 마을 내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가 열린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마을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육지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9월 추석 연휴 즈음에는 마을 체육대회가 열린다. 여러 마을 대항전으로 진행되며, 청년회 회원 수가 많은 마을이 기세가 센 편이다. 체육대회 말고도 마을 축제가 상당수인데, 최근 들어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다양한 마을 축제가 만들어졌다.
  제주에서 마을 조사를 하다보면 이와 같은 패턴으로 상당히 많은 행사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에서 체육대회, 마을포제, 어버이날 행사 등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함께 경험했을 때 친밀감과 유대감을 통해 ‘공동성’이 형성되고, 마을이 만들어진다.
  이 외에도 연말이나 연초에 마을총회가 열린다. 한 해 동안 지나왔던 마을 사업을 평가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마을 계획을 확정한다. 마을총회가 열리기 전에 자연마을 단위로, 자생단체 단위로 각자 총회가 열리는 곳도 상당수 존재한다. 자연마을 단위와 리 단위 마을총회가 이중으로 열리는 중층적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수오
제주 공동목장의 풍경. ⓒ김수오

  한편 행사를 거듭하다 보면 마을 단위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마을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는 돈은 거의 없다. 마을별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을 사람들이 일부 기부를 하기도 하고, 자생단체에서 기부를 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마을기금을 사용한다. 마을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제주에서는 마을의 재산을 잘 운용한다. 마을기금은 마을의 공동재산을 활용하여 벌어들인 수익이다. 따라서 공동자원을 통해 ‘공동의 부’가 창출되는 것이다. 마을에서 공동재산을 운용하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 있다. 물론 수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을총회를 거쳐 운용과 수익 배분에 대해 합의한다. 마을의 자산인 공동자원에서 나오는 수익은 공동으로 배분되는데, 그냥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마을 행사를 통해서 나눠지는 것이다. 마을의 자치규약을 살펴보면 마을재산에 대한 규약이 상당히 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배에 대한 철저한 계산은 물론이고, 무임승차자에 대한 규제, 상대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의 마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공동목장, 마을공동어장, 해수욕장, 하천(대부분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임), 곶자왈 숲, 오름, 마을회관 등 마을의 자산은 다양하다. 정부의 부처에서 운영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존재한 것들도 상당수이다. 특히 소유권은 국유, 사유, 공유, 합유, 총유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마을의 재산은 ‘근대적 소유권’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요소가 많다. 국공유지라도 마을에서 관리하고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할 권리를 가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용권은 마을의 구성원이 다른 지역으로 갈 경우 그 권리가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을 ‘총유’라고도 하는데, 근대의 소유권과는 매우 다른 권리개념이다. 마을의 자산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마을 구성원으로서의 인정과 의무가 필수적이다. 이는 마을마다 역사적 시간의 누적을 통해 정해진다. 농촌에서 공동성을 경험을 향유하지 못한 이주민들과 갈등은 이러한 농촌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종종 발생한다.

제주 동쪽지역의 오름 군락. 제2공항이 건설되면 영원히 사라질 풍경이다. C김수오
제주 동쪽지역의 오름 군락. 제2공항이 건설되면 영원히 사라질 풍경이다. ⓒ김수오

오래된 미래, 공동자원/커먼즈 문화를 다시 생각하다
제주 마을의 문화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주의 마을들은 공동의 자산을 지켜오기 위해 일제강점기, 1948년의 4·3, 군사독재시기, 민주적 개발국가 단계를 거치면서 수많은 갈등과 시련을 이겨냈다. 물론 선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폐쇄성, 개발사업과 관련한 이웃 마을 간의 갈등, 젠더 감수성의 부재, 개발위원회의 기득권 등의 문제도 상당하며,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현재는 농촌이라 하지만 대부분은 도시적 삶을 살고 있는데, 이미 생활과 생업이 한 마을 내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 역시 공동자원을 매개로 진행되었던 공동체적 품앗이가 사라지고, 노동력은 임금 노동으로 대체되었고, 농민은 개별적으로 경영적 의사결정을 하는 농업경영인이 되었다. 그 사이에 농촌의 인구는 감소하고, 농업노동력마저 외국인노동자, 미등록 외국인노동자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이다. 더불어 농촌의 오일장은 활기가 사라지고 있다.
  지자체는 관광산업 중심으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산업이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2020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000만 명이 넘는다. 농촌은 관광지로 대체되고, 농업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상호부조의 문화 역시 낡은 것,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산간 지역에 있던 마을공동목장이 리조트나 골프장으로 개발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타운하우스들이 들어오면서 난개발이 심각해지고 있다. 마을공동체가 ‘공동의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치였던 배려와 형평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자원을 중심으로 연대와 호혜의 사회적 안전망을 꾸려왔던 공동체적 삶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공동자원은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상상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공동자원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생태관광, 사회적협동조합 등 다양한 도전을 통해 공동자원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제주의 상부상조의 수눌음 문화는 기억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로서 현재에 기능할 수 있는 기획으로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김자경※ 필자 김자경: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주류 경제학 중심의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다가 로컬푸드,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공동자원/커먼즈 그리고 마을로 연구의 주제어가 계속 바뀌고 있다. 주말에는 ‘달빛숲감귤밭’에서 유기농 감귤 농사를 짓고 있으며, ‘대영농장’의 딸에서 여성농민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있는 중이다. sojuno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