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보다 ‘관계’가 먼저다

조희정

관계인구는 관광 이상 이주 미만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실제로 지역에 살지 않지만 지역 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사람”, “소비와 납세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과 관계를 엮는 사람들”, “농촌에  다양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관계인구’의 탄생
  ‘인구’라는 말 앞에는 뭔가 수식어가 있다. 선거인구, 청년인구, 주간인구…….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주목받는 ‘관계인구’도 그렇다. 관계인구는 관광 이상 이주 미만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일본에서 등장한 이 말의 어원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지진 피해를 당한 지역을 돕기 위해 많은 이들이 나섰는데, 그중에는 살던 곳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도시 청년들도 많았다. 몇몇 청년들은 봉사활동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재해지역을 다시 방문했다. 지역의 삶을 공유하면서 농촌의 정을 느끼고, 농촌의 실상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지역 왕래를 반복하며 주민들과 밥도 먹고, 모내기도 거들면서 정을 붙였다. 지역에 일자리가 나오면 주민들이 청년들에게 “우리 지역에서 일하는 건 어때?” 권유하기도 했다. 지역을 오가는 청년들을 보고 주변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너는 농촌을 왜 그렇게 자주 가냐”라고 물었다. 그 청년들은 “관광도 아니고, 출장도 아니고…… 뭐랄까, 지역에 ‘관계’된 일이라고나 할까?”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들의 움직임, 거주지 밖 지역에 관한 관심, 지역주민과 맺는 일말의 우호적 관계에 주목한 연구자와 저널리스트는 “일본에서 2011년 이후부터 지역과 관계 맺는 인구층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역으로, 새로운 이동을 하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지역에 반복해서 방문하고, 창업하고, 한달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일본도 그 무렵부터 (이전에 비해) 지역으로의 새로운 이동 흐름이 형성되었다는 평가가 제기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지역과 관계 맺는 사람들이 왕왕 나타나다 보니, 일본 정부는 2018년부터 ‘관계인구 정책’을 만들어 기왕 움직이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많은 경험을 하도록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관계인구와 유사한 개념으로 ‘생활인구’ 개념을 법제화하며 2023년부터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요즘처럼 인구 감소 때문에 지방이 위기인 마당에, 자연적 인구 변화 차원에서 억지로 출산을 늘릴 수도 없고, 수명이 다하여 사망하는 것을 막을 도리도 없으니, 사회적 인구 변화 차원에서 이동 인구에 주목하여 그들과 관계 맺으며 지역 활력을 촉진하면 좋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관계인구가 되는 N개의 방법
  관계인구는 ‘관광 이상 이주 미만의 인구’라고 폭넓게 정의한다. 일회성으로 SNS에 유행하는 핫플레이스를 관광하는 것과 그 지역으로 아예 이주하는 것 외에도, 그 지역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지역에 얼마나 오래 살았나’ 하는 시간 축은 잠시 덮어두고, ‘지역과 얼마나 깊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관계 축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가장 부담이 적은 관계는 인터넷 검색으로 스마트 쇼핑이나 우체국 쇼핑 등을 통해 지역 상품을 구매하는 단계다. 마트나 일반 쇼핑 플랫폼에서 더 편하고 싸게 살 수도 있는데, 기왕이면 지역 상품을 사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지역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
  다음 단계는 조금 더 마음을 써서 지역에 기부하는 것이다. 일본 고향납세와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금은 개인이 원하는 지역에 기부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기부 천사도 아니고 그렇게 기부하는 사람이 많을까 싶은데, 일본의 경우에는 기부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주민들에게 주민세를 안 받아도 된다는 시골 마을도 있다.
  주말농장에 가거나 오도이촌(五都二村,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농촌에서 지냄) 생활을 하는 등 직접 지역으로 가서 두 지역살이를 하는 부류는 앞의 두 사례보다 훨씬 더 지역과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일본에서는 정기적으로 여는 전통 축제의 자원봉사자들도 관계인구로 평가한다.
  물건을 사고, 기부하고, 지역에서 짧게라도 살아보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 외에도 관계의 양상은 무척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열린 결말’인 것이다.

오다기리 도쿠미(小田切德美)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의 관계인구 개념도. 지역으로의 정주 지향성과 지역에 대한 관심도를 기준으로 도식화하였다.
오다기리 도쿠미(小田切德美)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의 관계인구 개념도. 지역으로의 정주 지향성과 지역에 대한 관심도를 기준으로 도식화하였다.

지역과 사람을 잇는 ‘관계안내소’
  관계인구를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면 꽤 낙관적인 계층, 현상, 개념, 정책, 사업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현미경으로 보면 ‘그게 과연 가능할까? 정말 그런 사람들이 많을까? 어떻게 관계가 지속될까? 그래서 관계가 풍부하게 형성되고 지역이 나아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부모 자식 관계, 동료 관계, 친구 관계 등 기존 관계도 무난히 이어가기 힘든 현실에서 낯선 도시인이 낯선 농어촌 주민과 협력관계를 맺고, 지역 환경을 좋게 만드는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많은 관광안내소를 볼 수 있다. 주로 외지인을 대상으로 지역 지도를 나눠주고, 규모가 좀 큰 곳은 지역특산품 등을 판매한다. 안내인은 혼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문이 항상 열려 있지는 않다. 지역에 관한 지도와 상품은 있어도, 지역주민은 보이지 않는 곳이 관광안내소다.
  일본에서는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또는 장소를 ‘관계안내소’라고 부른다. 총무성은 전국 각지의 관계안내소 목록도 공지하고 있다. 관계안내소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편한 장소다. 지역을 알리고 싶고 지역 일에 관심 있는 주민(활동인구, 관계안내인)이 상주하면서 지역살이를 안내하는 곳이다.
  그저 한 번 오는 관광객이 아니라 지역을 좀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은 어디를 방문해야 할까? 군청이나 시청에 그런 안내과가 있을까? 아니면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내하는 관광안내소에 가야 할까? 그도 아니면 지인이 있는 지역에서 알음알음으로 물어가며 지역을 알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 관계안내소다.
  관계안내소에서는 방문자와 지역과의 관계를 촉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 방법은 거창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관계라는 것은 쌍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총무성에서 운영하는 관계인구 포털(soumu.go.jp/kankeijinkou).
일본 총무성에서 운영하는 관계인구 포털(soumu.go.jp/kankeijinkou).

더 끈끈한 관계를 위한 프로젝트
  관계안내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고 있는데,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자원 발굴 프로젝트’다. 지역에서 오래 산 사람은 좋은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자원을 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마을을 돌아보며 발굴한다. 고고학자나 탐험가처럼 전문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슬렁슬렁 산책하면서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고 유무형의 자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을 낯선 시선으로 보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조사자들은 하나하나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자원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을 수 있다. 그 정보를 아카이빙(Archiving) 해서 웹사이트에 올리거나, 우리 마을만의 지역살이 교과서 또는 독창적인 마을 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 더 노력하면 마을을 알리는 소식지나 미디어도 만들 수 있다.
  다음은 ‘지역살이 공감 프로젝트’다. 가벼운 만남, 출퇴근 밋업(Meet Up), 안부 공유, 함께 식사, 케어와 상담, 문화예술 창작·전시·관람, 자연 향유, 힐링, 테라피, 캠핑, 아웃도어 액티비티 등 말랑말랑하고 부담 없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나른한 일을 계속한다고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관계는 ‘오늘부터 1일’처럼 작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만나서 밥이라도 먹고, 뭐라도 같이 만들고, 충분히 시간을 공유해야 ‘관계성’이 생길까 말까 한다.
  세 번째는 ‘지역상품 생산 프로젝트’다. 이는 지역에서 취·창업하고 싶은 사람을 지역으로 끌어당겨서 이른바 경제적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경제적 관계이기 때문에 지역의 노동력을 충원하는 것 아니냐고 좁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지역상품 생산 프로젝트의 목적은 단순한 노동력 충원이 아니다. 지역 원물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회 트렌드에 맞게 좋은 상품을 생산하며, 지역 내외에서 지역과 상품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다. 판매 수익까지 지역을 위해 잘 쓰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대로 된 지역상품 프로젝트다.
  마을 자체를 상품화하는 것이지만, 상품을 적당히 포장하여 최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내 부가가치가 순환하여 더 좋은 이득을 마을에 가져다줄 수 있는 ‘순환자본주의’를 목적으로 한다. 난도가 높은 활동이지만 지역이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프로젝트는 아마추어인 지역주민이나 외지인이 해내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마을주식회사, 마을호텔, 지역상사, 로컬벤처 등 새로운 조직 형태가 뒷받침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람 연결 프로젝트’다. 지역을 알리는 본격적인 활동으로, 주로 지역 외 공간에서 진행한다. 대도시로 가서 마을 아카데미를 진행하며 ‘요즘 우리 지역은 이런 것으로 먹고살고, 이런 걸 고민하고 있고, 이런 게 필요하다’ 등을 교실에서 몇 차례 알린 후에, 그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지역으로 초대하여 주민 상담이나 지역 일자리 체험 등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더욱 높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생기면 지역응원단(서포터즈, 팬클럽)이나 제2주민권(제2멤버십, 앰버서더, 크루, 지역 주주) 자격을 부여하여 더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과 본격적으로 환경(비치클린, 플로깅), 지속 가능성(SDGs), 취약계층, 주민 의견 수렴(리빙랩, 의제 발굴) 등 지역 현안 해결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4개 유형의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 낯설고, 난이도도 제각각이다. 이 프로젝트들은 단계별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어느 예술가가 지역 체류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예술창작을 하다가, 그 지역에 정이 들어 아예 눌러앉아 카페를 창업할 수 있다. 지역주민과 편하게 소통하는 제삼의 장소를 만들거나, 지역 원물을 활용하는 식당을 차려서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를 구현하는 지역경제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스토리가 실제로 지역 구석구석에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지역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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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현 가미야마에서 진행된 주민과 예술가의 창작 협업 사례. ⓒ사토 요코(佐藤陽子)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에서 진행된 주민과 예술가의 창작 협업 사례. ⓒ사토 요코(佐藤陽子)

숫자보다 중요한 건 ‘관계’
  관계인구는 수많은 인구 개념 중 하나일 뿐이고, 어쩌면 몇 년 후 없어질 유행일 수도 있다. 또한, 지역을 오가면서 유용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싶기도 하다. 자차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도시와 농촌의 왕복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자꾸 보아야 하는데, 내가 사는 지역도 제대로 모르면서 다른 지역이 좋다고 시간 혹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관계 형성 프로젝트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이 있다.
  덮어놓고 막연하게 낯선 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역에서 발견하지 못한 자원의 활용성, 지역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 공간,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을 함께 진행한다면 관계도 좋아지고 지역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관계인구와 지역이 무슨 프로젝트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함께하는가’다.
  관계인구를 지역발전을 위한 소모적인 일꾼 개념으로 본다면 아무도 관계인구가 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기부하는 사람, 지역상품을 구매할 사람, 지역에 와서 잠시라도 함께 일할 사람, 지역의 좋은 점을 함께 공유할 사람을 확보하려면 주민도 그만큼 움직여야 한다. 관계인구의 형성은 활동인구의 ‘적극성’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질 것이다.
  관계 형성 프로젝트는 하나하나 연구 주제가 될 정도로 새로운 아이템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관계 형성이지만,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지표는 단 하나다. 바로 ‘또 오고 싶은 지역이 되었는가’다. 이름은 바뀌어도 정부의 지방사업은 지속될 것이고, 지역마다 계속 누구든 오라는 러브콜을 도시로 보내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또 오고 싶은 지역이 되지 않으면 모두 세금과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도시나 농촌이나 시퍼렇게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관점에서 관계인구는 차선책일 뿐이다. 그러나 역으로 활동인구와 관계인구가 좋은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그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인구수 늘리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관계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조희정필자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부대표
서강대학교 정치학 박사,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2016년부터 우리 사회의 지역재생변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며, 특히 중간지원조직 및 지역경제의 변화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관계인구를 만드는 N개의 방법》(더가능연구소, 2025, 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마을의 진화》(반비, 2020, 공역), 《인구의 진화》(더가능연구소, 2021, 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