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식탁

배기현

혼자라면 몰랐을 ‘제철의 맛’
    ‘벗밭’은 지속 가능한 식문화 교육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2019년, 시장에 가는 걸 좋아하는 친구, 채식을 지향하는 친구, 환경을 사랑하는 친구 등이 모임을 꾸린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먹고 있는지 돌아보고, 더 나은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식사 모임을 열기도 하고, 북토크 등 행사를 열어 이야기를 듣고 배우기도 했다.
  친구라는 뜻의 우리말 ‘벗’에 ‘밭’을 합친 ‘벗밭’이라는 이름은 밭과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사는 우리가 땅에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이 되고 밭이 되는 일에 대하여’라는 문장으로 벗밭의 활동을 소개하곤 했다. 5년이 흐른 지금, 벗밭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식사를 고민하고, 도시와 농촌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벗밭이 매달 주최하는 ‘즉흥채소·과일클럽’은 제철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으며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2025년 3월의 즉흥클럽에서는 네 가지의 만감류를 함께 먹고 청을 담그는 시간을 가졌다. ⓒ벗밭
벗밭이 매달 주최하는 ‘즉흥채소·과일클럽’은 제철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으며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2025년 3월의 즉흥클럽에서는 네 가지의 만감류를 함께 먹고 청을 담그는 시간을 가졌다. ⓒ벗밭

  벗밭이 매달 주최하는 ‘즉흥채소·과일클럽’(이하 즉흥클럽)은 지속 가능한 식사에 가까워지는 쉬운 걸음 중 하나이다. 우리는 제철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으며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임은 정말 즉흥적으로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식사’를 꿈꾸는 벗밭의 운영진이 정작 건강한 식사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모임을 열지 고민하다 ‘같이 수박을 잘라 먹자!’는 제안이 나왔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청년 1~2인 가구이기에 제철 작물을 챙겨 먹기 어렵다는 공통적인 고민이 있었다. 혼자서 수박 한 통을 다 먹는 것은 힘들지만, 함께 모인다면 오히려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다. 2022년 8월, 여름 작물인 수박, 복숭아를 먹는 모임부터 시작해서 매달 다양한 제철 작물들을 많은 벗과 나누고 있다. 자취를 갓 시작한 대학생부터 이제 막 경제적으로 독립한 직장인까지, 주로 도시의 1~2인 가구인 참가자 약 500명이 우리와 함께했다. 우리는 이들을 ‘벗’이라고 부른다.
  이 모임에선 열 명에서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서너 가지의 제철 작물을 함께 먹는다. 그 자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식탁 위에 놓인 다듬지 않은 채소와 과일이다. 벗들은 자기소개를 하고 작물에 관한 소개를 함께 돌아가며 읽는다. 그 안에는 작물의 정보뿐 아니라 농가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어서, 그해 날씨와 농부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귤의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어. 전남과 경남 해안 일부 지역에서도 감귤을 재배하고 있으니 ‘제주=감귤’이라는 공식이 점차 깨지는 셈이지. 이렇게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 속에서 귤이 있는 내일의 식탁을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오늘의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즉흥과일클럽 ‘제주 만감류’ 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제철 작물을 말 그대로 양껏 먹는다. 평소에 채소와 과일을 잘 안 먹는 벗은 1년 치를 먹은 것 같다고 한다. 물론 생으로만 먹지는 않고, 다양한 소스와 빵 등을 곁들여 먹는데, 매번 10종이 넘는 소스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다들 ‘과일에 양념을 발라 먹어요?’ 하며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의 공간은 곧바로 토마토와 고추씨, 만감류와 간장 등 다양한 조합이 등장하는 ‘식사 실험실’이 된다. 그렇게 우리만의 재미난 놀이에 한창 빠져있다 보면, 평소에 10분이면 끝나는 식사가 채소와 과일만으로 1시간을 훌쩍 넘는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어색해하지만, 서로를 궁금해하는 옅은 미소로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임이 끝날 때쯤이면 맑은 얼굴과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그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기도 하다. 어떤 벗은 행사가 끝나고 이런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벗밭의 모임은 저에게 여유와 쉼이 있는 여행 같아요.”

듣는연구소와 함께한 ‘즉흥포도클럽’의 식탁. ⓒ벗밭
듣는연구소와 함께한 ‘즉흥포도클럽’의 식탁. ⓒ벗밭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청년들
  식사하는 동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인 만큼 이야깃거리도 다양한데, 공통적으로 ‘먹는’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 내가 즐겨 먹거나 못 먹는 것, 간단한 나만의 요리법이나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애써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보통 나를 소개할 때 드러내는 어떤 지위, 외적인 모습, 직업 등을 내려놓고 ‘함께 먹는 식구’로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알아간다.
  벗밭의 커뮤니티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2023년, 듣는연구소와 함께 ‘즉흥포도클럽’과 ‘청년 식문화 토크’를 열어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의 여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요즘 어떻게 먹고 있나요?”
  “나에게 식사란 어떤 의미인가요?”

  각자 메뉴와 형태는 달라도 바라는 식사와 실제 사이에 차이가 있고, 그것이 극단에 놓여있다는 점이 비슷했다. “내가 지향하는 식사가 생각만으로 그친다는 점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 “제 식사가 더 건강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라는 ‘불행 배틀’이 이어지기도 했다. 야근, 시험 등으로 불규칙하거나 급하게 식사하는 사례,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푸는 등 식사와 노동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청년이 지향하는 ‘먹는’ 모습은 다양했다. 채식 지향, 원재료를 알 수 있는 식사, 영양성분을 알고 먹는 식사,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식사, 속이 편한 식사 등의 응답이 있었다. 참여자를 두 유형으로 나누면, 지향하는 식사를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과 더 나은 식사를 원하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는 이들로 갈렸다.
  우리는 이런 벗과 어떤 것들을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한 것은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 일어나는 시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식사가 무엇인지 알리고, 그 첫 경험을 함께할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려고 한다.
  다만, 누구에게나 첫 번째 경험은 즐겁고 가볍기를 바란다. 우리는 더 많은 이들과 먹거리 너머의 삶을 공유하려고 하지만, 그에 앞서 도시민들이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공간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흥클럽에서 토마토를 먹은 날, 한 참여자가 ‘나에게 토마토란?’ 이라는 질문을 받아들고 있는 모습.
즉흥클럽에서 토마토를 먹은 날, 한 참여자가 ‘나에게 토마토란?’ 이라는 질문을 받은 모습. ⓒ벗밭

‘식탁 너머’의 삶과 연결되다
  벗밭의 운영진은 즉흥클럽의 또 다른 참여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농촌과 거리가 아주 먼 사람들이었다. 2020년 여름, 경남 거창군의 농부들을 만나 일손을 돕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먹는 것이 수많은 환경과 그 안의 사람들과 엮여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도시에서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계속 찾고 연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건강한 식사가 우리의 문화에 스며들려면 식탁 너머의 과정을 궁금해하고 상상할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흥클럽 참여자 중 “맛있게 먹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먹거리와 연결된 농(農)이나 사람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라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의 사회에서 한 끼 식사를 선택할 때는 함께 차린 식탁보다 간편히 먹을 수 있도록 가공된 것, 혹은 이미 차려진 것을 택하기 쉽다. 시장에서 농산물을 사서 내 손으로 조리할 일은 점점 더 줄어든다.
  즉흥클럽에서 계절의 기운을 풍성히 머금은 작물을 함께 맛보면서 이것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의 손길을 거쳐 왔는지 상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보고 만지는 감각만으로도 우리의 상상력이 깨어날 수 있다. 함께 요리해 먹고, 농가에도 방문하는 경험이 쌓이면 도시와 농촌 사이의 거리를 점점 좁힐 수 있다. ‘먹는’ 행위는 ‘나’만을 향해 있던 삶의 창을 ‘우리’로 넓혀주고, 더 나아가 ‘농’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청년들과 함께 농가로 떠나는 6박 7일 생태미식여행인 ‘환대의 식탁’에서 귤을 수확하는 모습. ⓒ벗밭
청년들과 함께 농가로 떠나는 6박 7일 생태미식여행인 ‘환대의 식탁’에서 귤을 수확하는 모습. ⓒ벗밭

벗들의 크고 작은 변화
  벗밭을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벗들의 크고 작은 변화다. 즉흥클럽에 다섯 번 참여한 벗 예진은 새로운 친구를 모임에 초대하기도 하고, 즉흥클럽에서 함께 나누었던 작물을 계절마다 꼭 찾아 먹는다. 밭에 간 적이 없음에도 제철을 감각하고 먹거리 너머의 이야기를 들으며 “흙을 만지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비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등 채식에 관심이 많은 벗 수빈은 “모임에 참여한 이후 제철과 농촌 등 식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졌다”고 소감을 남겼다.
  거창의 산하늘공동체와 함께 진행한 ‘식탁너머’는 10여 명의 대학생이 농가에서 일손을 돕는 과정에서 식탁 너머의 생산 과정을 알고, 직접 식사를 준비해보는 도농교류 프로그램이다. 이 행사에 두 번 참여한 벗 민수는 이런 후기를 들려주었다.

  “1차 산업 생산자들의 고충과 수익을 위한 노력을 보고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2번째 행사에 참여하는 데 큰 동기가 되었어요. (중략) 무한경쟁의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성을 죽이고 이성으로만 살아가던 저의 잊었던 감성을 일깨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운동과 식단 관리에 관한 관심을 환경과 농업으로 확장하면서, 파치 농산물 판로 및 활용 방안을 창업 수업의 연구 주제로 선택하는 등 삶의 실천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농부시장 마르쉐에 출점하는 농부들의 제철 농산물 꾸러미를 나누고 요리하는 모임인 ‘퇴근 후 마르쉐’에서 만난 벗 서영은 모임 이후 삶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에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지금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탐구하며 긍정적인 감정을 느껴요.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그것들이 지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가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가고 있어요.”

  이전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열량 등 식사의 영양 측면에 집착하고,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저렴한 작물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제철 식재료를 찾는다고 한다. 농부들의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유기농 농산물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각자의 삶의 맥락과 환경에 따라 경험이 이끄는 여정은 다 다르지만, 식사와 농작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의 건강에서 농부님과 환경으로 열리고, 더 나아가 흙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을 보았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식사는 포기하기 쉬운 것 중 하나이다. 끼니를 챙기며 나를 돌아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그 너머의 관계를 생각한 식사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해 필요한 사랑과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퇴근후마르쉐’에서 농가에 방문한 날, 각자 가져온 반찬이 모여 풍성한 식탁이 되었다.
‘퇴근후마르쉐’에서 농가에 방문한 날, 각자 가져온 반찬이 모여 풍성한 식탁이 되었다. ⓒ벗밭

‘식구’가 되어 연결되는 사회
  사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하지 않다. 같이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를 꿈꾼다. 그 여유 한 줌을 위해 우리는 부단히도 애써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결국 그것 또한 개인의 변화가 모여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도시에는 수많은 식사 형태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우선 ‘함께 먹기’를 권한다. 혼자서는 수많은 시간과 물질, 비물질적 에너지를 들여서 나의 돌봄을 위해 애써야 하지만, 함께라면 서로의 돌봄이 가능해지고, 하나씩 준비한 반찬을 조금씩만 모아도 풍성한 식탁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티끌의 노력과 사랑을 모아 태산을 만들 수 있다.
  즉흥클럽에 왔던 이들이 봄을 맞아 세발나물과 대저토마토를 직접 구매해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농부시장에 찾아가 장을 보고, 내가 속한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 살아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작할 계기와 이를 함께할 관계다. 학교 혹은 직장 안팎,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들며 서로 ‘식구’가 되는 공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더 많은 연결이 만들어질 때 어떤 변화가 만들어질까? 서로의 식구가 되어주며 연결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식구와 나눌 ‘연결되는 식탁’을 준비한다.

배기현필자 배기현: 주식회사 벗밭 이사
벗밭에서 쓰는 별명은 ‘뜨거운 감자’다. 하지감자를 좋아하며,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더욱 쉽고 즐거운 언어로 전하고 싶어 정한 별명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내가 몰랐던 식탁 너머의 이야기를 발견한 뒤, 교육과 모임을 통해 많은 벗에게 경험한 것을 전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과 연결되고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