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백아름
청년, 시골에 정착하다
어느덧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지나 봄이 왔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아도 제철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사람처럼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어찌 알아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잎을 떨구는지 매년 보면서도 신기하다. 이제 모든 생명이 움틀 준비를 한다. 나도 올 한 해 농사를 조금씩 준비한다. 밭을 정리하고, 만들어 놓은 퇴비도 뿌린다. 농촌에서 8번째 맞는 봄이지만 아직 서투르기만 하다.
시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회적기업 설명회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시골 이장님의 말을 듣고 경북 상주시에 온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그 당시 이장님은 마을 폐교에서 공부방을 운영했고, 도시 청년들이 폐교를 이용해 살아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나를 비롯한 귀농·귀촌 청년들의 멘토이자 둘도 없는 후원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시골 생활이 어설프고 낯설면서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텃밭에 키우는 오이 하나, 고추 하나 모두 다 이쁘고 마음이 벅찼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이렇게 잘 큰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밭에서 만난 채소는 도시 마트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고르던 상품이 아니었다. 농작물에 대한 소중함과 애정이 생겼다.
2017년 7월에 시작한 폐교 생활은 난방과 단열이 안 되다 보니 관사에서 지내기가 혹독했다. 그 당시 예비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어렵다 보니 투잡을 뛰기도 했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고향인 부산으로 가기 직전 멘토님과 대화를 나누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물러서기만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라는 한마디가 머릿속에 박혀 두 발이 무거워졌다. 일주일 정도 고민하던 중 자연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고, 실패할 때마다 갖은 핑계를 대며 다른 길을 찾던 모습에서 벗어나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뭉치니까 더 즐겁다
2018년 7월, 나까지 3명의 청년이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전까지 우리는 각자 예비사회적기업을 이끌었다. 한 청년은 상주 함창면의 특산물인 명주를 가지고 지역 장인들과 협력하여 배냇저고리 등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나와 다른 한 청년은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농가를 찾아 인터뷰하고, 그것을 기사화한 홍보성 잡지와 농산물을 같이 판매하는 기획을 하였다. 일본에서 먼저 시작한 아이디어였고 좋은 가치를 가진 농부를 발굴하고 도와준다는 취지를 가졌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고 지지부진한 결과에 ‘앞으로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멘토님이 모두 힘을 합쳐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시작한 것이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다.
초기에는 생태농사도 짓고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멘토님의 지인을 소개받아 참·들기름과 고춧가루, 쌀 등을 팔기 시작했고, 점차 고객이 늘어났다.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조합원들이 수십 명으로 불면서 매출액도 제법 커졌다.
청년들은 폐교를 ‘달두개학교’라고 부른다. 마을과 인접하여 약 17만 평(약 56만㎡)의 지평저수지가 있어 하늘의 달과 저수지에 비친 달, 이렇게 달 두 개가 뜬다고 하여 달두개학교라고 이름을 지었다. 달두개학교에는 달두개작은도서관과 마을과 지역주민들의 만남의 장소인 마을카페 그리고 공유부엌, 수련실, 목공방, 체험공방, 생태텃밭 등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면서 귀농·귀촌 청년들을 위한 교육과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다양한 동호회도 주관하고 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로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고 공동체의 발전에도 기여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시골살이를 버티게 하는 ‘느슨한 연대’
요즈음은 기후위기가 중요한 화두이니, 생태적이면서 느슨한 공동체인 ‘마을가원’을 지역주민들과 추진하고 있다. 마을가원은 요즈음 유행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의 다른 이름인 가원을 마을 단위로 해보는 것이다. 혼자서는 생태적으로 자급자족하는 가원을 실천하기 힘드니, 생각과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조금씩 실천한다. 공동텃밭을 같이 가꾸기도 하고,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살려 서로 물물교환을 하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닭을 키우는 사람은 달걀을,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은 옷 수선을,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은 일본어 수업 등을 나누면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느슨한 공동체를 경험한다. 이 일이 올해에 제일 재미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달두개학교의 동호회를 운영하는 것도 보람되고 재미난 일이다.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를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경험하는 시간은 정말 즐겁다. 일주일 내내 동호회에 참석하는 것이 도시라면 불가능할 텐데, 시골은 그런 점에서 시간을 충분히 여유롭게 사용하는 것 같다. 청년들은 거의 모든 동아리에 참석한다. 모두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그 시간이 늘 기다려진다. 미술, 태극권, 요가, 기타, 목공, 술 빚기도 재미있지만, 특히 인문학 동아리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평생 접하지 않았을 책들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노자 도덕경, 반야심경, 소학, 전습록, 소태산 사상, 마음공부 등 다양한 책들을 읽는다. 그런 활동 속에서 지역주민들과 더 가까워지고 정이 드는 것은 더욱 큰 소득이기도 하다.
2024년부터 상주시에서 주관하는 ‘마을리빙랩’ 교육 과정을 2년째 듣고 있다. 주민이 주도하여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다. 매주 한 번씩 5시간 교육받는 것이 벅차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유용한 교육을 받는 것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마을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다. 마을주민들과 ‘달달마을활력소’라는 단체를 만들어 마을 활력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 올봄에는 청년들이 다 같이 마을정원을 꾸며볼 예정이다. 꽃으로 덮인 마을회관 앞 정원과 마을 꽃길이 벌써 기대된다.
시골에서 사는 일이 꼭 재미있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일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시골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는 농촌의 빠르고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협동조합을 탈퇴한 청년이 비난할 때도 심란했다. 우리와 가장 친하게 지낼 법한 50대 초반 마을 청년들의 질투와 시기로 힘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늘 한결같이 옆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청년 후원회를 만들어 늘 함께하는 지역주민, 한 달에 한 번 대구에서 선물을 사 들고 방문하는 손님, 매번 안부와 함께 자주 방문해 주고 있는 살아보기 프로그램으로 인연을 맺은 청년, 새로운 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안부를 물으며 주문하는 단골손님들……. 그들을 향한 감사함으로 달두개학교 청년들의 마음은 늘 충만하다.
때때로 도시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한다. 언제 계절이 바뀌는지, 여름날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멀리서 산비둘기가 울면 봄이 온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몰랐을 것 같다.
청년, 청년의 디딤돌이 되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시골에서 사는 이 기쁨을 다른 청년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화폐경제의 홍수 속에서 늘 마음 한쪽 텅 빈 채 살아가는 우리 또래의 청년들에게 숨 쉴 공간, 언제든 찾아와 쉴 수 있는 비빌 공간을 내어주고 싶었다. 사실 청년이 농촌에 내려와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변변한 집도 구하기 어렵고, 먹고 살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또한 시골의 생활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 역시 멘토님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벌써 집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달두개학교)은 귀농·귀촌 청년의 플랫폼 역할을 자청했다. 우리가 실시하였던 ‘시골언니 프로젝트’, ‘별의별이주’, ‘팜메이트’ 모두 청년이 농촌에 이주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살아보기 프로그램이다. 지난 7년 동안 달두개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숙박, 식사 포함해서 모두 무료였다. 많은 청년들이 부담 없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짧게는 1주, 길게는 2주까지 달두개학교에서 체험도 하고 지역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낸다. 같이 먹고, 자고, 놀고, 일하니 떠날 때가 되면 정이 듬뿍 든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자주 재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과정도 보람되고, 달두개학교를 후원하는 사람으로 변해서 돌아가는 것도 기쁜 일이다.
그간 달두개학교에서 6개월 이상 살아본 청년은 20여 명에 다다른다. 어떤 청년들은 달두개학교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 청년들도 있고, ‘시골언니’ 또는 ‘별의별이주’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그대로 눌러앉은 이도 있다. 매년 30~40명의 청년이 방문하는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니 달두개학교를 그리워하고 시간 날 때마다 방문하는 이도 적지 않다.
달두개학교를 사랑하는 청년들 중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도시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 우리가 떠오른다며 늘 선물로 맛있는 것들을 보내주는 친구, 바쁠 때면 언제든지 두 팔 걷어 부치고 찾아와 도와주는 친구, 달두개학교와 함께 하고 싶어 이주를 준비하는 친구, 멀리서도 달두개학교 디자인 작업을 담당해주는 친구, 달지기들이 서울도 마다치 않고 찾아가 응원하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친구, 머나먼 외국에 있어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응원하는 친구 등 다양한 친구들과 오래도록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매년 연말에는 홈커밍데이를 한다. 달두개학교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초청 대상이다. 2024년에 연 3번째 홈커밍데이에는 약 70명이 참석하였다. 2박 3일 동안 그야말로 재미있는 파티를 열었다. 명사 초청 강의와 진지한 대화는 물론, 밤새도록 웃음꽃도 피웠다. 마지막 밤은 그동안 친해진 지역주민들과 푸짐한 잔칫상을 나눴다. 장기자랑도 빠질 수 없다.
달두개학교는 단순한 귀농·귀촌 청년들의 집합소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하며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청년들의 안식처이자 비빌 언덕이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우리의 인생과 농촌의 모습을 청년이 그려가겠다는 각오와 열의가 담긴 명칭이다. 이 글을 쓰며 새삼 8년 전 명칭을 만들었을 때의 철없던 때가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그 호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2025년은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귀농·귀촌 청년 플랫폼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보려고 한다. 청년들의 쉼터이자 비빌 언덕으로, 늘 달두개학교를 그리워하는 청년들을 위해 더욱 좋은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 싶다. 도시와 농촌의 청년들이 느슨하지만 끈끈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공간을 소망한다.
봄이 오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어김없이 사계절은 흘러가고 세상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서로 잘 어울려 사는 행복한 달두개학교를 꿈꾼다.
필자 백아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표
전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 아무것도 모르고 시골에 와 8년 동안 좌충우돌하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용감해졌다. 자연의 원리와 사람의 깊이에 관심을 두며 행복한 농촌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