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주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벌레, 버러지라며 홀대를 받던 곤충이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벌은 유용한 곤충으로 대접받았다. 물론 꿀을 모으는 꿀벌 이야기다. 그런데 벌이 꿀을 모으면서 하는 또 다른 역할이 있는데, 꽃가루를 매개하여 식물의 결실을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마토, 가지, 고추같이 꿀이 없는 작물들은 어떻게 수정을 할까.
18년간 벌을 연구해 화분 매개곤충뒤영벌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산업화하여 우리 농민의 생산비와노동력 절감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제23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농촌정책 부문을 수상한 윤형주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52)는 얼마 전 통산 3번째 최고 연구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단다. 2015년 새해를 맞은 그와 뒤영벌 이야기를 나눴다.
꿀은 없지만 부지런한 뒤영벌, 농민의 조력자가 되다
뒤영벌은 꿀을 만들지 않는 화분 매개곤충이라는데 ■ 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보통 꿀벌을 생각하죠. 뒤영벌도 꽃밀에서 꿀을 가져가긴 해요. 꿀벌처럼 육각형 벌집 안에 꿀을 모으지 않을 뿐이에요. 자기와 새끼들 먹을 양만 가져다 놓는 거죠. 그래서 화분 매개곤충, 꽃가루 수정 전용벌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뒤영벌이 유용한 이유는? ■ 벌은 약 만 육천 종이 있는데, 이 중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건 꿀벌, 뒤영벌, 가위벌 세가지예요. 벌을 이용하기 위해선 번식이 잘 되어야 하고, 개체 수가 많아야 하고, 사용이 편해야 하는데 뒤영벌은 이 세 가지 조건이 잘 맞아요. 꿀벌보다 개체 수는 적지만 몸이 크고 부지런해요. 특히 흐리거나 추운 날씨에는 꿀벌이 잘 안 움직이지만 뒤영벌은 날씨와 기온에 무던합니다. 온실같이 좁은 공간에서도 활동이 활발하죠. 그래서 시설농업에서 많이 이용해왔어요. 약 40% 활용되는 토마토를 비롯해서 현재 약 27개 작물에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 효용 범위가 더 늘어날 겁니다.
국산화의 핵심기술인 인공 월동법과 산란 유도 시스템이란? ■ 뒤영벌은 자연에서 1년을 사는데, 여왕벌이 교미하고 나면 6~7개월간 동면을 하고 이듬해 산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동면기간을 2.5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인공 월동법이에요. 월동이 끝나면 온돌원리를 이용해서 여왕벌이 산란하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는것이 산란 유도 시스템입니다. 벌들은 개체 수가 늘어나면 사는 집을 옮겨야 하는데, 그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접이식 겸용상자도 개발했죠. 대량 생산 기술은 농민이 필요한 때 벌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뒤영벌 생산, 독자기술의 위력으로 시장을 바꾸다
2002년까지 뒤영벌 시장은 네덜란드, 벨기에가 장악했었죠 ■ 뒤영벌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시설 농업이 확대되기 시작한 1994년이고 2002년까지 전량 네덜란드 코퍼트, 벨기에 바이오베스트에서 수입해 사용했어요. 수입가격이 1봉군(벌 판매단위) 당 처음엔 25만 원, 2002년엔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15만 원이었어요. 농가 생산비가 많이 들었겠죠. 국내 대량 생산이 성공한 2004년부터 꾸준히 가격이 내려가 작년엔 6만 5천 원이 되었습니다. 2014년 전국 수요량은 8만 봉군, 이중 국산이 7만 봉군 이상으로 국산화율이 87.5%에 달합니다.
우리의 독립기술, 외국기업의 견제는 없는지 ■ 연구 초기에 힘들었어요. 그림으로 이게 뒤영벌이구나 하는 거지 우리나라 어디에 분포해있고 이런 걸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들(외국 기업)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요. 우린 순진하게 다 보여줬는데(웃음). 그런데 요즘 그들이 우리나라 시장은 ‘전혀 안 먹힌다’고 대놓고 말해요. 일본만 해도 자회사 형식이니 시장 가격 조절이 가능한데 우리는 독립기술이 있으니 그게 안 되잖아요. 우리가 산업화하기 전엔 연간 3만 봉군을 팔았는데 이제는 5천 봉군 팔기가 어려우니…. 가격도 8만 5천 원, 8만 원으로 자꾸 내려간 거죠. 지자체와 업체에 기술이전, 사후 관리도 하는지 ■ 현재 전국 12개 업체와 2개 지자체에서 뒤영벌을 생산, 농가에 보급하고 있어요. 종 보존과 더 좋은 벌을 만들기 위해서 업체들의 여왕벌을 맞바꿔주기도 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16개 라인에서 공급해주기도 하지요.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도록 장치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공급가격이 너무 내려가면 벌의 질이 안 좋아져요. 생산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건 꽃가루 값이거든요. (값을 내리려고) 중국산 꽃가루를 마구잡이로 쓰면 발육이 잘 안 돼요. 농민이 신뢰하도록 업체의 벌 품질 관리를 해야 하고 농민에게도 적정한 공급가격에 대한 공감을 갖게 해야지요.
연구는 연구로 끝나면 안 된다 _ 농민의 힘을 더는 연구 실용화
뒤영벌은 시설채소는 물론이고 노지 과수에도 활용할 수 있다던데? ■ 2009년 ‘뒤영벌을 이용한 사과수분법’이란 특허를 냈고. 작년에 사과에 노지용 봉군을 만 개 이상 판매했어요. 그전에는 꿀벌을 많이 썼는데, 꿀벌에 문제도 생기고 온도가 떨어지거나 날이 흐리면 수분율이 매우 낮아요. 뒤영벌은 저온에서도 활동량이 많아서 효율적이죠. 과수 수분은 약 15일만 사용하는 대신 개체 수가 많아야 해요. 작목과 시기, 용도에 맞게 봉군을 세팅하게 합니다. 과수에서 뒤영벌을 사용하면 노동력이 93% 절감돼요. 사과는 현재 14% 정도 보급되었어요. 사람들이 인공수분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잘 안 바꿔요. 그래도 한번 써 보면 좋은 걸 알지요. 절감 효과가 확실히 있고 훨씬 편리한 걸요.
앞으로의 연구계획 ■ 벌을 연구해 보람도 있고, 뿌듯한 마음도 커요. 앞으로도 우리 삶하고 연관이 있는, 친환경 농업에서 농민들이 힘을 적게 들이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곤충을 연구하려 해요. 그리고 17%(2011년 기준)인 뒤영벌 이용률을 2018년까지 25%로 끌어 올리려고요. 그때가 정년 즈음이거든요. 그때까지 정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잡은 거예요. 1년에 1% 올리는 것도 힘들지만,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돋보기안경,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하는 각종 벌 액세서리, 걸걸한 목소리와 소탕한 웃음소리, 늘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 윤형주 박사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그림들 위에 겹쳐지는 이미지는 바로 ‘강단’이다. 언제나 연구자로서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으려 했고,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구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미 깜깜해진 늦은 저녁, 자연스레 다시 연구실로 향하는 윤형주 씨의 뒷모습을 왠지 모르게 한참, 바라봤던 것 같다.
인터뷰 · 신수경 / 사진 ·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