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그 이상의 가치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에 주목하라

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농업과 농촌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암울하다. 농업을 ‘이윤을창출하는 산업’으로만 접근하는 천민자본주의적 태도가 우리나라 정치, 사회, 학계, 언론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경쟁력이 낮은 산업은 도태되고, 국제경쟁력이 낮은 업종은 퇴출
해야 한다는 천박한 인식이다. 허울 좋은 ‘경쟁력’이란 잣대가 식량자급률 23.3%의 국내 농업을 ‘퇴출대상 산업’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다산茶山을 통해 본 ‘천지인天地人’ 3농 철학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임금께 드리는 ‘농책(農策, 농업 발전에 관한 방책 _ 편집자 주)’에서 “대저 농이란 천하의 근본으로서 때天時와 땅地利과 사람人和이 화합을 기해야 그 힘이 온전하게 천지에 가득하여 심고 기르는 것이 왕성하게 된다. 그래서 ‘낳는 것이 하늘이고, 기르는 것은 땅이며 키우는 것은 사람’이다. 이 삼재三才의 도가 하나로 모인 다음에야 농사일과 나랏일에 모자람이 없게 된다. 그런데 천하 사람이 차츰 나랏일의 근본을 버리고 끝만 도모하니 기름진 논밭과 살찐 흙이 묵히게 되고, 높은 모자, 좋은 옷을 입은 놀고먹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다산은 농업이 태생적으로 자연현상 등의 제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3농三農정책을 펼칠 것을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응지론농정소應旨論農政疏’)

첫째, 대저 농사란 장사보다 이익이 적으니 정부가 각종 지원정책을 베풀어 ‘수지맞는 농사’가 되
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厚農)
둘째, 농업이란 원래 공업에 비하여 농사짓기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우니, 경지정리, 관개수리, 기계화를 통하여 농사를 편히 짓고 사는 농촌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便農)
셋째, 일반적으로 농민의 지위가 선비보다 낮고 사회적으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함에 비추어 농민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上農)

다산은 농업과 농민을 우대하지 않으면 농업과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 사회기반이 무너져 나라와 민족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말했다. 이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지켜볼 때 농업 · 농촌 · 농민이야말로 나라와 겨레 발전의 필수기본조건National Minimum Requirement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증명한다.

농업은 안정적인 식량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 산업, 국민 산업의 기반이 되
고, 안정적인 농산물 공급으로 국민 삶의 질과 가계지출을 줄여준다고 했다. 또
한 아름답고 살기 좋은 자연 문화 경관을 보존하며 농촌마을을 유지해주고 환경
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이바지한다. 농업과 농촌이 농민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
두의 것이며, 농업과 농촌의 존립이 곧 국민의 삶과 연결된다는 견고한 국정운영
철학을 담고 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농업이 필요하다’는 EU의 농업·농정관
오늘날 선진국 대부분은 농업·식량 강국이다. 토지자원이 풍부한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
티나의 농업은 일부 다국적 초국경 기업에 의한 ‘독과점적 이윤창출 산업’으로 변질되고 있으나,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등과 같은 유럽국가와 중국, 일본 등은 ‘국민 농업’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건전한 가족농(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친환경 농법과 농정 철학이다. 이들 국가는 농업을 단순히 곡류나 채소, 과일, 육류를 생산하는 산업만이 아니라, 그보다 크고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본산업으로 인식한다. 국가와 민족의 형성과 그 유지 발전에 필수적인 다원적 공익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존중한다.
독일농업 전문가 황석중 박사가 『대산농촌문화』 2008년 가을호에 소개한 「독일 연방정부의 농업관(농업의 10가지 기능)」을 보자. 이글은 독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간한 안내서인데, 제목이 ‘농업, 우리가 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 Unsere Landwirtschaft. Wir brauchen sie zum Leben’이다. 그 내용을 보면, 농업은 안정적인 식량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산업, 국민산업의 기반이 되고, 안정적인 농산물 공급으로 국민 삶의 질과 가계지출을 줄여준다고 했다. 또한 아름답고 살기 좋은 자연 문화 경관을 보존하며 농촌 마을을 유지하고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이바지한다. 국민에게는 휴양의 공간을 제공하고 값비싼 공업 원료 작물을 생산하기도 하며 대체에너지 등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사례와 함께 자세히 들어있다. 농업과 농촌이 농민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며, 농업과 농촌의 존립이 곧 국민의 삶과 연결된다는 견고한 국정운영 철학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농축산물의 시장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수입 개방할 경우, 가격경쟁에
서 탈락한 우리 농축산물이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농업부문
이 국민들에게 공짜로 베풀었던 다양한 공익적인 기능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
짐을 뜻한다.

40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

우리나라도 가입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이 임박하자 농·축산업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을 공식 선포했다. 농업이 단지 식량과 섬유작물을 생산해 내는 일차 산업으로서의 기능만이 아니고, 생태계 및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식품의 안전성safety과 국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다원적인 공익기능을 수행하는 국가형성의 기본산업, 기간산업, 기초 산업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은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Non-Trade Concerns’으로 표현했다. 농업을 국가와 민족 형성의 최소한의 기본요소National Minimum Requirement라고 공인한 것이다. 그래서 각국은 사정에 따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농·축산업을 품목별로 예외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 일본, 노르웨이 등 6개국은 ‘NTC그룹’을 꾸려 WTO 발족 후 2000년까지 긴밀히 공동으로 대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UR 타결을 전후하여 농촌진흥청 프로젝트로 ‘우리나라 논(쌀)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계측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산림청도 공식적으로 산림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측정하여 발표했다. 해가 지날수록 농림업의 공적 다원기능은 점점 더 높게 평가되었다. 대체로 교역 상품으로서의 농산물값보다 농업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평가액이 3~7배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림은 NTC가 목재 등의 생산액의 13배 높은 가치를 나타냈다.
쌀의 경우, 교역 상품으로서의 평가액이 10조 원으로 계측되었던 해 논농사의 NTC 가치는 홍수
방지 효과 + 수질정화 및 지하수 공급효과 + 산사태 방지효과 + 이산화탄소 흡수 및 산소배출 효과만을 계량화하더라도, 최소 30조 원에서 70조 원으로 계측되었다. 여기에는 계량화하기 어려운 문화와 전통의 보전 가치, 농촌 지역사회 발전, 경관의 가치, 식량안전 및 안보효과 등을 포함하지 않았음에도 그러하다.
여타 밭작물과 과수 및 축산업 그리고 농기자재 등 농업 관련 산업의 전방前方 효과와 농산물 제조, 가공, 유통, 무역 등 후방後方 효과를 평가에 포함하여 계량화 한다면, 농업부문이 현 농축산물 생산액인 45조 원보다 몇 배 이상의 다원적 공익 가치로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우리나라 농축산물의 시장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수입 개방할 경우, 가격경
쟁에서 탈락한 우리 농축산물이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농업부문이 국민들에게 공짜로 베풀었던 다양한 공익적인 기능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뜻한다.

41
농가 기본소득 보장은 국가와 국민의 의무

일찍이 EU, 스위스,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물론, 기업적 대량 생산 농업을 추구하는 미국과 캐
나다도 농업의 다양한 공익기능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근거하여 어떤 형식으로든 먼저 농업인들의 기본소득과 권익 보장에 앞장서고 있다. 국민들이 농업과 농촌에 종사하면서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교육 · 문화 · 의료 · 복지 등에 차별이 없도록 배려하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가 경제가 총체적으로 부도가 난 IMF 치하의 서슬 퍼런 WTO의 감시에서도 친환경 농업 직접지불제, 논(쌀)농업 직불제, 조건 불리 지역 직불제를 도입했고, 이어서 밭농사 직불제도를 최근 실시하였다. 물론 건당 지원규모가 대단히 작고 미약하여 2013년 현재 직불금 총지원액은 평균 농가소득의 4.3%에 불과하다. 반면, EU의 평균 공적 지원액은 농가소득의 40~60%에 달한다. 미국은 40% 안팎이다. 캐나다는 아예 최저 농가소득을 보장한다. 선진국은 조건이 불리한 지역, 오지의 농가를 더 많이 배려한다. 경쟁력이나 소득 증대만을 추구하면 여건이 유리하거나 투자 가치가 높은 특정 지역, 특정 작목에 능력 있는 농가들이 몰려 대다수 소농이 도태되고 농촌을 떠나게 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최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의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적정할 것인가에 대한 관련 연구결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편의상 법정 최저임금의 50%를 농가에 보
충 지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농가 호당 약 월 50만 원, 연간 600만 원이다. 이 기본소득 수치를 전국 농가 110만호에 일괄 지급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총 6.6조 원 정도가 소요된다. 이는 2013년 평균 농가소득의 17.4%이며, 농업 총생산액의 14.6%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금액은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 평가액의 1%도 될까 말까이다.
재원은 정부의 의지 여부에 달려 있다. 즉, 기존의 각종 직불금 예산액(단, 친환경 직불금은 제외)
합계, 농가 110만 호 대비 근 10%에 달하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및 농업 관련 공공기관과 농·축·수
협 등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혁 절감 비용, 현 농림축수산예산액 중 비농어민 조직과 기업에 지출되고 있는 지원비 삭감, 기존의 농림축수산식품 예산과 기금 및 농특세(UR 사후대책) 예산액 중 일부 급하지 않은 항목의 절감, 신규 FTA 이익공유제(신설)의 수익금 등을 합치면 거뜬히 더 높이 상향 조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국가의 기본이자 기간산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이 그들이 이바지하고 있는 다양한 다원적인 공익기능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선진국이 취하고 있는 현대판 “농자천하지대본”이며, 국가와 민족 경영의 백년대계이다.

108※필자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이사장. 1998년~2000년 제50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상지대 총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워낭소리, 인생삼모작의 이야기』(2014, 따비), 『더 먹고 싶을 때그만두거라』(2009, 한국농어민신문) 등 다수가 있으며 농업과 농촌을 위한 다양한 집필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