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한 조건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정치권의 준비가 분주합니다. 새 정부가 선택하는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습니다.
치열했던 지난 대선결과를 두고 정치평론가들은 진보세력에 대한 보수세력의 승리라고도 하고, 청년층(20~30세) 세대에 대한 노년층(50~60세) 세대의 승리라고도 평가합니다. 또한 민주화세력에 대한 산업화세대의 승리라고도 하고, 불만에 겨워하는 세력에 대한 불안해하는 세력의 승리라고도합니다.
그러나 어떤 평가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식의 평가는 좋은 나라 만드는 일에 결코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편에 섰던 48%의 국민들을 보듬어 안아 힘을 모으지 못한다면 국민행복시대를 결코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십수년 간 진행되어온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1997년의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등 고용불안 현상이 심화되어 왔습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자본의 투기성 행위 만연으로 빈부격차도 커졌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서 돈을 잘벌고 못버는 결과가 모두 경쟁에 나선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습니다. 다양한 ‘스펙’을 쌓아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일, ‘재테크’로 부자 되는 일에 앞다투어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택받은 소수는 승자가 되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가난한 계층으로 전락했습니다. 계층탈출과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의 사다리’마저 교육비 상승으로 붙잡기 어려워졌습니다. 부(富)와가난의 대물림 현상마저 현저해졌습니다. 이래저래 경쟁에서 뒤처진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은 통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응축되어 온 것입니다.
시장개방의 확대가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간의 발전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다자간(WTO) 및 양자 간 자유무역(FTA) 협정의 확대가 국경장벽을 낮추었고, 수출산업의 시장은 보다 넓어진 대신에 내수산업의 시장은 더욱 위축되었습니다. 수출드라이버를 뒷받침하기 위한 환율정책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약한 내수산업은 더욱 침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사회계층간, 산업간, 지역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온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민생안정과 중산층 복원 및 복지확충 등 주요공약을 내건 박근혜 정부가 탄생되었습니다. 주요 공약의 핵심은 양극화 해소를 통하여 국민 다수가 행복한 시대를 만드는 것이라할 수 있습니다.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 확충을 통한 고용증대가 이루어져야 새 정부의 주요 공약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성장 없는 고용은 착시(錯視)현상일 뿐이고, 고용 없는 복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국가부도사태에서 잘 증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의 확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급한 경기 부양책보다는 기업의 투자확대를 끌어내고 인적자본 개발을 위한 정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내수산업과 중소기업이 수출대기업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운용의 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증세(增稅)를 통한 복지재정의 확충문제도 대타협의 중요의제이어야 합니다. 세금부담을 늘려서라도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고 경제적 신분과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부채를 늘리면서 복지혜택을 늘리는 일 만큼은 ‘게 제 살 파먹기’와 다름없으므로 이는 우리의 후세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국민행복시대”를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산업화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의 진입을 성공시킨 우리나라가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새로운 도전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농업을 미래산업으로 키울 큰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대선은 2000년대 이후의 각종 선거에서 최고 투표율(75.8%)을 보일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은선거였습니다. 그만큼 선거전도 치열했고 이에 따라 대선후보들도 농업·농민을 챙기겠다고 앞다투어 농정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농어업인의 땀이 헛되지 않도록 희망 농어촌을 만듭니다” 를 캐치프레이즈로 하여 15개의 세부공약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온갖 대증요법적인 정책수단만 나열하고 있을 뿐 개방시대의 농업경쟁력을 향상시켜서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큰 그림은 안타깝게도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위축일로의 농업을 어떻게 성장추세로 반전시키겠다는 농업정책의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농업계의 능력을 모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상대응책 위주의 농업 홀대의 전통이 새 정부에서도 이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2009년 이후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산업생산액의 감소추세가 성장으로 반전될 수 있을 것인지, 도·농 간 소득격차와 농가 간 소득격차 등 양극화는 완화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우려가 그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농업·농촌은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농업은 수출 촉진을 위한 시장개방정책 및 고환율정책 하에서 전형적인 내수산업으로 급속한 산업위축을 경험하고 있으며 농촌주민은 소득양극화 현상이 가장 심각한 복지사각지대(福祉死角地帶)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외에도 농업은 국민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농업은 전 국토의 대부분을 사업장으로 이용하면서 국민 식량을 생산·공급하는 식량안보 기능 외에도 국토와 환경을 보전하는 기능을 무보수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실업자수(92만명)에 필적하는 노령화된 노동력(60세 이상 88만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도시산업에서 은퇴한 노동력에 일자리와 소득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적 기능마저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격으로 환산되지않는 이러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농업생산의 위축과 동반되어 위축되기 때문에 농업의 위축은 국민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당면하고 있는 경기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수단의 하나가 바로 농업성장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시장이 통합되고 소득향상이 이루어지면서 고품질농식품에 대한 국내외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우리 농식품의 품질과 서비스 등 가치경쟁력 향상을 통한 국내외 신시장 확대가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경제의 새로운 기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한 농림수산생물자원을 이용하는 ‘기능성 식의약소재산업’과 고갈되고 있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차세대 바이오연료산업’ 등 바이오경제시대의 기반산업으로서 농업의 新가치는 녹색신성장동력을 견인할 핵심산업으로까지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농업부문 투자 확대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현재 처한 심각한 재정악화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新가치 창출을 위한 기술개발(R&D)예산으로 전기보다 두 배가 넘는 예산(45억 유로)을 차기(2013~2018)에 배정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수출 위주의 성장정책 그늘에서 위축되어온 농업부문에도 경제성장의 혜택이 적극적으로 나누어져야(Trickling down) 할 때입니다. 농산물의 가치 경쟁력 향상과 먹거리 생산 이외의 농업부문의 새로운 영역 확장을 통하여 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이끌 큰 그림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Will to economize)” 구호가 대한민국의 산야를 진동시키도록 해야 100%의 국민이 행복한 시대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업정책시스템, 이렇게 바꾸자
바야흐로 농산물 전면개방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제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가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돈 벌고 살아남은 농가들이 있습니다. 규모경제
(Economy of scale)의 효과를 누리는 농가들, 품질과 서비스 등 가치경쟁력의 비교우위를 실천하고 있는 농가들,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과 유통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Economy of scope) 농가들, 조직화의 힘으로 소농경영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농가들, 연간소득 7천 6백만 원을 실현하는 소득 상위 20%농가가 그들입니다.
이제는 전 농가와 전 품목을 대상으로 하여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현상대응적이고 평균적인 정책추진체계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경쟁력향상’ 대상농가와 ‘복지향상’ 대상농가로 정책대상을 분리·차별화하는 일이 농가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경쟁력 향상’정책 대상농가들을 소득상위계층으로 진입시킬 수 있는 정책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며 ‘복지향상’정책 대상농가들을 위한 농촌형 복지정책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첫째, 농가소득보전을 위한 직불제부터 혁신해야 합니다.
대선과정에서 양대진영은 직불제 확대를 하나같이 약속했습니다. 개방피해를 보전하고 벌어지고 있는 도·농간 소득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 직불제 확대는 가장 유효한 정책수단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직불제는 경작면적을 지급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소득보전의 필요성이 높은 영세농보다는 경작규모가 큰 대농이 최대 수혜층이 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영세소농에게는 소득보전 효과를 높여주고 대농에게는 기상이변에 대응해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소득보험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직불제 추진체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도 2013년 이후에 적용할 농업법(Farm Bill) 개정에서 새로운 농업위험보장직불제(Agricultural Risk Coverage;ARC)를 신설함으로써 작물보험을 강화하는 대신에 고정직불제, 소득보전직불제 등을 폐지하고 있습니다.
둘째, 한국농업은 토지와 노동집약적인 생산요소 결합구조로부터 기술과 자본집약적인 구조로 전환해야 미래 성장산업으로 탈바꿈될 수 있습니다.
먼저 농림어업과 식품분야의 전 가치사슬(Value chain)과정에 대한 기술개발(R&D)투자가 강화 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R&D투자 중에서 농림업 R&D투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의 7.1%에서 2010년에는 5.1%로 크게 감소되었습니다. R&D투자를 줄이면서 농업성장을 실현시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자본집약적인 농업생산구조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농가의 자본이용 접근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3천~5천억 원의 이차보전(利差補塡)예산으로 6~10조 원의 구조개선지 원자금을 조성한 뒤 농가로 하여금 시설장치 및 기계화 자금을 값싸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제는 전 농가와 전 품목을 대상으로 하여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현상대응적이고 평균적인 정책추진체계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경쟁력향상’ 대상농가와 ‘복지향상’ 대상농가로 정책대상을 분리·차별화하는 일이 농가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경쟁력 향상’ 정책 대상농가들을 소득상위계층으로 진입시킬 수 있는 정책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며 ‘복지향상’ 정책 대상농가들을 위한 농촌형 복지정책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셋째, 품목별 전문유통시스템을 구축함으로서 우리농산물의 유통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국내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여가고 있는 수입농산물은 수입국의 유통전문기업을 통해 들어옵니다. 이들과 당당히 맞서서 국내외 시장 쟁탈전을 벌일 수 있는 품목별 대표선수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뉴질랜드는 인근의 농업강국 칠레보다 땅값과 인건비가 두 배 이상 높아서 뉴질랜드 키위의 가격경쟁력은 훨씬 뒤처집니다. 그러나 뉴질랜드 키위 농가들이 만든 협동조합기업인 ‘제스프리 인터내셔널’ 을 통해서 뉴질랜드 키위는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있습니다. 닭고기의 ‘하림’ 이나 복숭아의 ‘햇사레’와 같은 품목별 전문유통주체를 만들어서 우리 농산물의 유통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소농적 경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넷째, 날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인구 과소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선심성 마을개발방식 대신에 정부 부처별로 시행되는 농어촌 지역개발사업을 통합하여 중심마을개발을 추진하는 제2의 새마을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중앙과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와 민간 간의 협치(協治)에 의한 농정추진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개방피해보전을 통한 현상유지적 농정으로는 농업을 미래 산업으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식량안보가치 이외의 새로운 농업의 가치창출과 영역확장을 꾀하는 새로운 농정비전으로 국민을 설득해야만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필자 성진근: (사)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 충북대 명예교수. 충북대 농경제학과 교수와 농협대학 석좌교수 등을 역임. 『한국농업리모델링』(2012), 『농업이 미래다』(2011), 『새농업경영론』(2011)을 비롯해 논문 130여 편, 저서 40여 편 등 활발한 저술과 활동으로 농업경제학 발전에 기여했다. 제12회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