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 쿠바 헤밍웨이 박물관

노인은 가난한 어부였다. 84일 동안 매일 바다에 나갔지만 번번이 물고기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가족도 없는 그에게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주던 소년도, 그가 계속 고기를 잡지 못하자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다른 배로 옮겨갔다. 그러나 노인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85번째의 항해에 나선다.
그 항해에서 만난 청새치. 거대한 청새치와 목숨을 건 나흘간의 사투 끝에 노인은 청새치를 굴복시킨다. 그러나 이어진 상어 떼의 습격으로 노인은 뼈만 남은 물고기와 함께 겨우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나갈 꿈을 꾼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주었던 배 필라르(Pilar)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주었던 배 필라르(Pilar)
사냥을 좋아했던 헤밍웨이 집에는 다양한 동물 박제가 벽에 걸려있다.
사냥을 좋아했던 헤밍웨이 집에는 다양한 동물 박제가 벽에 걸려있다.

간결하고 강인한 문체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의 내용은 의외로 단순하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진 작은 어촌 ‘코히마르’는 헤밍웨이가 낚시를 즐겼던 곳이다. 이곳에서 ‘노인과 바다’가 탄생했다.

헤밍웨이는 1930년대 말부터 1960년까지 20년이 넘도록 쿠바에 머물면서 활발한 집필을 했다. 쿠바 혁명으로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고, ‘글쓰기 좋은 서늘한 이른 아침’을 지닌 쿠바에서 추방 당한 헤밍웨이는, 쿠바와 가장 가까운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쿠바에서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호텔과 음식점은 관광 명소로 바뀌었고, 그가 살았던 저택 ‘핀카 비히아(전망 좋은 방이라는 뜻)’는 헤밍웨이박물관(Museo Ernest Hemingway)이 되었다.

헤밍웨이가 쓰던 타자기, 연필이 그대로 있다.
헤밍웨이가 쓰던 타자기, 연필이 그대로 있다.
헤밍웨이는 쿠바의 서늘한 아침에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쿠바의 서늘한 아침에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박물관 마당에는 평소 낚시를 즐겼던 헤밍웨이가 청새치를 잡던 배 ‘필라르(Pilar)’가 전시되어 있고, 저택의 곳곳에 사슴과 코뿔소, 표범 가죽, 호랑이 등 그가 좋아했다던 사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냥총을 든 그의 초상화, 그가 좋아했던 술병도 소파 옆에 그대로다.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방, 조금 낡았지만 손가락이 닿으면 탁탁 타다닥 경쾌한 소리가 날 것같이 멀쩡한 타자기가 테이블 위에서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듯하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과 바다,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산티아고 노인은 되뇐다. 그리고 결국 청새치를 잡는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이기자마자 뒤 이은 상어 떼의 습격.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노인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시 새해, 우리의 삶 속에 잠복해 있다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과 불행에 맞서 패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세울 때다.
그리고 그 의지를 세우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글·신수경 / 사진·2012 대산쿠바연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