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한 시대에서 찾는 희망의 농업

참으로 암담한 수치만이 우리 농촌 현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201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농업소득으로 가계지출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만평을 경작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상위 1% 농가의 경작면적이다. 한편, 연간 소득이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가가 전체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한미FTA로 농업이 파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한미FTA가 발효되기 이전부터 한국 농촌의 현실은 암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육우 송아지값이 삼겹살 1인분 값에 불과한 일이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마당에“한미FTA가 농촌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좌절해 있는 농민들을 꾸짖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미FTA 비준
안 통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4월 총선 때까지 가져가지 않기 위해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발효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려고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현재도 곡물자급률이 26% 정도에 불과하고,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열량의 절반정도를 외국산먹거리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FTA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면 우리의 식탁에 올라
오는 대부분의 먹거리를 외국산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낮은 자급률과이로 인한 먹거리 위험의 증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멀게는 1950년대의 잉여농산물에서부터 가깝게는 WTO체제의 출범과 신자유주의 체제의 강화와 맞물려서 진행된 일이고, 내부적으로는 농촌의 내부동력을 끊임없이 외부로 빼돌린 농정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불합리는 농가구입품의 가격지수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농산물판매가격지수는 제자리에 머무르는 구조에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역설적이게도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보다 보니, 손해를 덜보기 위해서 농사의 규모를 더 확대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예전에는 5천 평 농사로도 자식농사까지 지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농사짓는 노부부의 약값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낮은 자급률과 이로 인한 먹거리 위험의 증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멀게는 1950년대의 잉여농산물에서부터 가깝게는 WTO체제의 출범과 신자유주의 체제의 강화와 맞물려서 진행된 일이고, 내부적으로는 농촌의 내부동력을 끊임없이 외부로 빼돌린 농정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불합리는 농가구입품의 가격지수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농산물판매가격지수는 제자리에 머무르는 구조에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 농촌파괴의 세계화
농촌이 파괴되고, 건강한 가족농들이 궤멸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우리 한국에서만 나타나고있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먹거리의 생산과 가공, 유통 및 소비체계는 세계적 규모로 급속하게 통합되면서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농업생산과 관련한 전 과정이 카길이나 몬사토, 콘아그라와 같은 거대 농식품기업들의 직·간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그 폐해는 전지구적인 농촌지역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곡물수출대국인 미국의 경우, 소맥의 가공·유통을 카길, ADM, 콘아그라를 비롯한 4개 업체가 60%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대두도 ADM, 붕게, 카길, AG프로세싱 등 4개 업체가 80%를 장악하고 있다. 육류가공의 경우에도 상위 4개 업체가 85% 이상을 도축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들 거대기업의 농업지배가 강화되면서 미국 농민수가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수보다 작은 지경에 이르렀다.
더구나 최근에 빈발하고 있는 식량위기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속에서 먹거리에 대한 지배력을 공
고히 해 온 이들 거대 농식품복합체의 영향이 크다. 흔히 바이오연료로 일컬어지는 농업연료는 세계 8억대의 자동차와 가난한 20억의 인구가 똑같은 상품, 똑같은 곡물을 놓고 경쟁하는, 그래서 연료와 식량이 서로 바뀔 수 있는 새로운 경제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농업연료는 단순히 곡물가격을 인상시킨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거대 농식품복합체의 독점을 더욱 강화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 연료와 식량사이의 경쟁이 격화된 이유는 곡물재고율이 바닥에 근접하던 시점에 곡물수출대국 미국에서 식물성 연료정책이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연료는 역사적으로 거대 농식품기업들의 성장배경이 되었던 생산성 향상(녹색혁명 및 바이오혁명), 농산물의 원료화(옥수수의 사료화), 그리고 수직적 계열화 등을 한꺼번에 가능하게 하는‘원스톱 숍(onestop shop)’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농업연료 붐이 일고 대기업들이 진입하면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이 늘어나고 농민들은 저임금 소작농으로 전락했으며 공급과 거래가 지역시장을 벗어나는등 농업원료의 등장은 농민들을 더욱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더욱이 농산연료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삼림파괴와 같은 전 과정을 고려하면 탄소의 저배출도 의미가 없으며, 폐수처리 문제 등 부가적인 문제를 고려한다면 전혀 대체에너지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농업연료는 농식품 체계와 에너지 체계 양쪽 모두를 훼손시키는 거대 농식품기업의 꼼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지구상에서 가장‘경쟁력 있고’,‘ 효율적인’농민으로 인정받고 있는미국과 캐나다의 농민들조차도 농업에서더 이상의 경제적 가능성을 찾을 수 없게 되면서 농지로부터 방출되고 있으며, EU의 농민들은 매 2초마다 농가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세계농식품 체계의 대안모색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안농식품체계는 대규모 전업농이 아닌 건강한 소농들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 대안농업운동은 농업의 회생을 통해서 농촌의 회생을 꾀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새로운 농민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키는 노력을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기존의 생산공동체의 보다 깊은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농(農)’에 대한 성찰과 대안농식품체계의 구축
현재의 세계화된 농식품체계, 즉 지구적 농식품(global agri-food)체계는 환경적으로 균형잡힌영농체계를 무너뜨리고,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다량투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생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농정은 규모화와 국제화를 통해서 한국농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기존의 흐름이 계속되고 있으며, 급기야“한미FTA가 농촌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업소득이 절대적·상대적으로 감소하고, 도농간의 소득격차는 확대되면서 농업후계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게 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났으니 만큼 세계농식품체계의 대안모색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농업은 자연에서 생존하는 생물과의 직접적인관계를 통해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농업을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보다 폭넓게 농사라는 인간본래의 삶의 방식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자와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사의 외연적 확대와 내포적 심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농사의 외연적 확대는 농사를 단순히 농작물의 생산에 한정시키지 않고, 생산한 농작물을 가공과 판매뿐만 아니라, 연구개발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사업형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농사의 내포적 심화는 각종 생산 활동과 생활양식이 주위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에 오염이나 파괴를 초래하지 않게 하면서 생산물도 건강, 문화, 환경의 관점에서 우수한 것이 되게 하는 생산행태를 추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우자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대안농식품 체계의 구축은 다음과 같은 점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째, 순환의 체계를 만들면서 농사의 외연적 확대를 꾀해야 한다. 지역순환농업을 실현하기위해 고민하면서 유기경종과 유기축산이 결합한 지역순환형 농업시스템을 확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1차 농산물의 생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역에서 가공하고, 나아가 지역에서 판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서 이를 3차 산업과 연결시켜서 이른바 농업의 6차산업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는 단지 농민들에게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그치지않고,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통한 농사의 내포적 심화를 꾀해야 한다. 대안농식품체계는 단지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생태성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체제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대규모 전업농이 아닌 건강한 소농들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 대안농업운동은 농업의 회생을 통해서 농촌의 회생을 꾀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새로운 농민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기존의 생산공동체의 보다 깊은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대안농식품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안농업운동은 기존의 거대 농기업과 거대 유통자본의 영향
력에서 벗어나 생명논리에 의해 생산과정을 재구조화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자에 공급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도시와 농촌의 분리 및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환경과 농업의 친화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농업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부하를 줄이고, 자원의 내부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지역자원과 환경의 보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농업생산성과 수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는 농업경영방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식량주권의 회복
대안농식품체계의 구축은 지역이나 나라 단위의 식량주권을 확립함으로써 가능하다. 현재의 지
구적 농식품체계를 대안농식품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거대 농식품기업에 대항하는대안들을 ‘대안’ 수준에서 ‘표준’의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하는데, 그‘표준’으로 지적할 수 있는 지점이‘식량주권’이라고할수있다.‘ 식량주권’은기존의‘식량안보’가갖는한계를명확하게지적하면서세계의기아와빈곤의해결책으로서새로이제안된개념이다.‘ 식량주권’은1996년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정상회의와 나란히 개최된 식량안보에 관한 NGO포럼에서 비아캄페시나(우리말로‘소농의 길’로 번역되는 국제적인 농민운동단체로 우리나라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도 참여하고 있음)에 의해서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기존의‘식량안보’라는 개념은 식량의안정적인 공급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국내생산의 필요성과 함께 재고관리와 무역을 강조했다. 그런데 식량을 수입할 수만 있다면,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달러만 있다면 식량안보는 달성되는 것이므로 자급이라는 개념은 후순위로 물러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식량안보는 농산물 수출국과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지렛대로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는 초국적 거대농기업의 이해를 반영한 개념에 불과하고, 식량위기 시에는 통용될 수 없는 허구적인 개념이다. 이에 대해‘식량주권’은 식량 안보의 전제조건으로서 농민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국가적으로 충분한 양의 먹거리 생산과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어떤 먹거리를 생산하는가, 어떻게 생산하는가, 어떤 규모로 생산하는가의 문제도 똑같이 중요하다고본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식량안보가 농업관련산업의 모델에 의존하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농생태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식량안보가 녹색혁명형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생태적인 유기농업에 근거하고 있으며, 식량안보가 세계농식품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지역농식품체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 아울러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에는 위해서는 소농의 이해관계와 역할에 집중하면서 먹거리와 관련된 지식, 연구, 기술, 과학, 생산, 무역의 목적과 조건을 규정하고 좌우하는 주체가 거대자본이 아닌 소농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께하는 농(農)과 식(食)
식량주권을 통한 대안농식품체계의 구축은 농민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단순한 연계에서 벗어나서‘소비자의 생산, 생산자의 소비’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생산농
민-소비자 연대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사회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안농식품체계는 지역별 환경요인에 바탕을 두고 생산규모를 조정하고, 자연순환 농법과 저투입 농법을 확산시키면서, 사회경제적 정책적 구성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는 시스템으로 농촌구조가 전환을 모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로의 회복과 농촌지역의 인간권리의 회복까지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역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그 속에서 농업종사자들의 권리를 회복시키고, 소비자의 식탁에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자는 공생과 생명의 철학이 함께해야할 것이다.
희망의 불씨는 역경이 더할수록 더욱 강하게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
는 다양한 대안농업운동들이 서로의 장점은 나누고, 스스로의 단점을 함께 극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농촌에서 희망을 놓기에는 너무 이르다. 2000년대 초 지역산 농산물을 학교급식 식자재로 사용하고자 시작했던 작은 시도가 갖은 이유와 편견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친환경무상급식으로 귀결되었고, 이것이 보편적 복지논쟁으로 이어졌던 점을 상기해 보라.
지금은 지자체마다 편차를 가지고는 있지만, 친환경무상급식이 전국 여러 지역에서 농촌의 작은 희망으로 번지고 있다. 또한, 큰 농사를 짓는다면서 그동안 소홀히 했던 소비자와의 관계나 지역시장을 다시 성찰하는 움직임이 천천히 일어나면서 전국 농촌 여러 지역에서는 소비자에게 보낼 꾸러미를 만들면서 농촌에서 사라졌던 공동작업이 살아나고, 웃음이 마을에 퍼져 나간다. 기상악화에 상인들의 농간까지 가세해서 채소가격이 폭등할 때도 농촌에서 보내는 꾸러미의 고집스러움에 많은 소비자들이 감동받는 일이 여성농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농촌이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농업이 온갖 이유로 벼랑으로 몰리더라도 그 농촌과 농업을 필요로 하고, 그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식량위기가 빈발하고, 먹거리위험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는 감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이다. 먹거리와 농업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와경제문제를성찰케만드는중요한계기가된다는점을잊어서는안될것이다.“ 농촌은 뿌리”라는 말은 허튼소리가 전혀 아니다.

※필자 윤병선: 건국대학교 사회과학부(경제학전공) 교수. 건국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요발표논문으로「초국적농식품복합체의농업지배에관한고찰」,「 지역먹거리운동의과제와전략」,「 대안농업운동의 전개과정에 관한 고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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