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농업과 농정, 어디로 갈 것인가?

임진왜란 후 일곱 번 째 맞는 임진년,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세계 경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남북관계, 불안하게 뒤뚱거리는 정치,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로 격앙된 민심 등등, 마음이 무겁지 않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 위에 농업농촌은 한미FTA 발효와 한중FTA 추진으로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농업과 농정이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돌아온 투융자 망령
한미FTA 대책으로 정부는 22조원 규모의 투융자지원을 한다더니 정치권은 다시 플러스알파를 하여 24조원으로 늘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매우 낯익지 아니한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42조원 사업에 15조 농특세사업, 또 45조원사업, 그리고 경쟁력에 복지를 더해 119조원 사업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런 식의 반복된 대규모 투융자소동으로 농업과 농업인들이 얼마나 비판받고 구박받았던가. 이미 추진 중인 사업비까지 10여년 치를 모아 새로운 지원자금으로 포장하여 지원규모에 얼마나 거품이 많았던가? 또 지원 금액의 상당부분은 융자금이어서 결국 농가가 갚아할 돈인데 그 돈을 농가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았던가? 지원자금을 소화하기 위해 수백 가지 사업이 추진되고, 사업마다에 붙어있는 보조금에 현혹된 부실투자로 언론에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가? 그런데, 얼마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올해 농식품부 사업계획 발표를 보면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표 자료를 보면, 10년간 10조원을 농어업시설 현대화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10년 치를 모아 엄청난 금액이 새롭게 지원되는 것으로 포장되고, 이차보전에 의한 융자금인데 전부 농가 지원금인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인 것이 낯익다. 연리 3%정도의 이차를 보전하는 것이라면 시설 현대화를 지원하기 위해 연간 300억 원의 이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어야 한다. 또 왜 하필 시설현대화에 10조원일까? 투자는 농가가 하고 그 빚을 갚는 것도 농가인데 정부가 투자대상과 규모를 정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제 필시 정부는 자금지원을 잘 관리하기 위해 지원할 시설의 종류와 규격을 정하고 대상자의 자격을 세세히 규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필요한 시설종류와 규격은 농가마다 다르고 적절한 대상자가 획일적 기준으로 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농산물을 100억불 수출하고 종자산업을 육성하여 골든씨드(황금 종자)를 수출하는데 총력 지원한다고도 한다. 좋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좋아지는 것일까? 달러를 벌어들여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외환위기 대응력을 높임으로서 국가경제 안정에 이바지한다? 농산물수출액이 총 수출액의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정책이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농업의 존재이유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발표 자료를 보면, 10년간 10조원을 농어업시설 현대화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10년 치를 모아 엄청난 금액이 새롭게 지원되는 것으로 포장되고, 이차보전에
의한 융자금인데 전부 농가 지원금인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인 것이 낯익다. 연
리 3%정도의 이차를 보전하는 것이라면 시설 현대화를 지원하기 위해 연간
300억 원의 이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어야 한다.

농업의 존재이유
그 동안 정부가 농업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농가는 항상 어렵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와 경쟁하는 강한 농업, 돈 버는 농업, 수출하는 농업이 되고, 더 나아가 첨단산업,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이 되자는 획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비전은 농업문제에 지친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그러나 돈 버는 농업, 수출하는 농업이 우리의 비전이 될 수 있을까? 돈 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일 것 같은 기업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을까?
놀랍게도 일본의 대기업 소니의 비전은 기술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돈은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지 돈 자체가 비전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소니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한결 같이 돈 버는 것 이상의 가치를 분명히 비전에 담고 있다. 하물며 한 나라 농업의 비전이 단순히 돈 버는 것, 수출하는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 산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돈 버는 것이 존재의 한 가지 조건일 수는 있으나 존재가치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농업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한결 같이 돈 버는 것 이상의 가치를 분명히 비전에 담고
있다. 하물며 한 나라 농업의 비전이 단순히 돈 버는 것, 수출하는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 산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
서 돈 버는 것이 존재의 한 가지 조건일 수는 있으나 존재가치가 될 수는 없다

농업은 유일하게 탄소, 질소 등 무기물에 태양에너지를 농축시켜 식물성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그 식물성 생명체를 다시 동물성 생명체로 전환시키는 산업이다. 이 과정을 통해 지구환경이 보전되고, 사람은 태양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는 생명체를 섭취하여 다시 에너지로 환원시킴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서 농업은 유일한 탄소중립적 녹색산업이고 물질순환을 통해 환경을 보전하는 산업이며, 인간의 생명을 지지하는 산업이고, 그러기에 도시국가가 아니라면 농업은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농업의 존재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작년 가을, 배추 출하량이 줄어들자 수입은 자유화되어 있는데도 값이 폭등하여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또한 구제역으로 국내산 돼지고기 공급이 감소하자 돼지고기가 수입자유화 되어 있음에도 국내산 돼지고기가격이 두 배까지 폭등하였다. 한우고기 공급량이 반으로 준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도 한우고기와 수입 쇠고기는 3-5배의 가격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배추나 돼지고기 이상의 가격 급등이 나타날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수입농산물로 충족될 수 없는 국내산에 대한 치명적 소비자 욕구가 있음을 의미하며, 거기에 농업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또한 우리는 쾌적한 여가·휴양·거주의 공간을 원하며 이런 요구를 도시공간이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기에 농업과 농촌이, 다른 산업 그리고 도시지역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존재하는 것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수적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의 결과 아직도 160여만명이 농업에 취업하고 있고, 그들 중 60%는 60세가 넘어 다른 선택이 없으므로 이들이 농사일을 잃으면 사회보호 대상자가 단박에 몇 배로 늘어날 것이며, 그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농업의 비중이 1% 남짓 밖에 안 되는 선진국들도 모두 농업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농업을 전담하는 부처가 있고 배추파동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쇠고기문제로 촛불파동 같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은, 마치 빙산의 대부분이 수면 아래에 있듯이 GDP로 표현될 수 없는 큰 부분이 농업에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날 그 위력을 잠시 보여주고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한국농업의 기본가치와 존재이유를 통찰하고, 농업의 비전을 진지하게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스위스는 그런 합의를 바탕으로 헌법에 농업의 존재이유와 정부지원의 당위성을 명시하였음을 본받아야 한다. 비전에 합의하면 그 다음, 농업문제의 심연을 보아야 한다.

농업문제의 심연, 그리고 정부역할
농업문제는 무엇보다 농가실질소득이 아직도 ’90년대 초 수준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5분위 소득 비율이 ’95년에는 6.3배였으나 2008년에는 9.4배로 늘어나 계층간 소득격차가 도시부문(5분위 비율 5.3)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상위 소득계층의 분포는 감소하고 하위 소득계층일수록 분포가 늘어나는 하방집중현상이 진행되고, 최근에는 상위 20% 계층을 포함한 전계층에서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이렇게 농가소득이 최근에 감소한 것은, 농외소득은 늘어났지만 농업소득이 급격히 감소하였기 때문이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농업소득이 최상위보다 최하위 계층에서 네 배나 빨리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왜 농업소득이 이처럼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실질농업소득 및 불변농업생산액(부가가치)의 변화를 보면, 1995년까지는 농업소득과 농업생산액이 거의 비슷하게 변화하였으나 ’95년 이후에는 둘 사이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이 나타난 것은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이후 농산물 가격은 11% 상승한데 비해 투입재 가격은 41%나 상승하여 경영여건이 악화된 데다 소비자물가는 33% 상승하여 실질소득을 감소시켰던 것이다. 앞으로 한미, 한EU FTA등이 이행되기 시작하면 교역조건의 악화,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정부의 과제는 이러한 농업소득의 악화구조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농업에서의 정부역할에 대한 오해가 있다.
농정은 항상 농업생산 및 유통의 주체, 방법 등을 정부가 정하고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 간다는 설계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왔다. 그러나 농업생산과 유통은 기본적으로 시장참여자의 영리적 판단과 경쟁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정부역할은, 시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감시하는데 있다. 쇠고기 표시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결과 둔갑을 방지하여 한우산업의 부가가치를 1조원 이상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시장개방시대에 불가결한 또 한 가지 정부역할은 가격하락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이고, 소득보전직불제도가 그 전형이다. 시장개방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농축산물의 소비자 가치를 높이는 상품화와 마케팅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것은 농가와 시장의 몫이다. 정부는 농산물가격 하락의 일부를 보전하여 주는 소득보전직불제를 마련하여 농업경영체가 시장개방 속에서도 투자와 혁신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직불제가 불안하다.

20세기 선진국 농정은 가격하락의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지원과 농산물 수급균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고뇌의 연속이었다. 그런 고뇌의 결과 도달한 결론은 가격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 수급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하락분의 일부를 농가에 직접 보전하되 생산유인 효과가 가장 적은 이른바 ‘비연계(decoupling)’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즉 당년 재배면적과 관계없이 당초 약정된 면적을 기준으로 보전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며, 쌀직불제를 포함한 피해보전직불제는 이 원칙에 따르도록 개편되어야 한다.

정당성을 잃어가는 직불제
한미FTA 대책으로 밭직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갈수록 직불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긴 하나,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직불제 논의가 논리적, 도덕적 정당성은 외면하고 그저 늘리고 올리는 데만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직불제에 대한 보도를 보면, 국내생산이 필요한 열아홉 가지 곡물과 양념채소류를 재배한 밭에 ha당 4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결국 생산보조금을 준다는 것인데, 이 보조금을 받는 작물의 생산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지면 이미 이 작물을 잘 재배하고 있던 농가에 뜻밖의 피해를 줄것이고,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아무 효과 없는 보조금을 그저 나누어 준 것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논고정직불제가 있으니 밭직불제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미FTA를 계기로 정치권이 덥석 도입하기로는 했다. 그런데 예산부족으로 일부 작물에 제한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결국 생산 장려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논고정직불금은 논이 가지고 있는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쌀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논의 형상을 유지하여 토양침식을 막고 빗물을 저수할 뿐만 아니라 제초 등 필요한 관리를 하는 조건으로 벼 재배와는 관계없이 기준연도에 논이었던 모든 농지에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보조금도 아니고 지급의 정당성도 있었던 것이다.
밭직불제도 어떤 특정 작물을 재배해서가 아니라 밭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는 관리의무를 부과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하여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가령, 다원적 기능은커녕 토양침식과 환경부하를 일으키고 있는데 직불금을 준다면 누가 그 정당성을 인정하겠는가?
또 일각에서는 쌀소득 보전 직불제의 목표가격을 생산비 상승을 감안하여 인상하여야 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쌀소득보전직불제는 생산비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매제도 폐지와 쌀관세화시의 가격하락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목표가격은 생산비와 관계없이, 수매제 폐지 당시의 시장가격을 고려하여 산출되었다. 그리고 시장가격이 이보다 떨어지면 그 85%를 보전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제도는 정책변경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해를 보전하여야 그 변경이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킨다는 ‘보상의원리’에 따라 정당성이 있었다. 따라서 지금 생산비 상승을 반영하여 쌀소득보전직불제의 목표가격을 인상한다는 것은 이 제도의 목적과 정당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번에 확대하기로 한 피해보전직불제도 역시 보상의 원리에 따라 정당성이 있으나, 문제는 이 제도가 생산유인이 되어 과잉생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현재 쌀이 이런 문제에 빠져있다. 사실 20세기 선진국 농정은 가격하락의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지원과 농산물 수급균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고뇌의 연속이었다. 그런 고뇌의 결과 도달한 결론은 첫째, 가격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 수급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둘째,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하락분의 일부를 농가에 직접 보전하되 생산유인 효과가 가장 적은 이른바 ‘비연계(decoupling)’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즉 당년 재배면적과 관계없이 당초 약정된 면적을 기준으로 보전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며, 쌀직불제를 포함한 피해보전직불제는 이 원칙에 따르도록 개편되어야 한다.
직불제가 중요한 정책방향이긴 하지만 늘리고 올리기만 하면 좋은 것이 아니다. 직불제는 공익적 이익을 증진시키거나 보상의 원리에 합치하여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왜곡시키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제도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이정환: 재단법인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과 미국 하버드대학 및 일본 동경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고, 산업포장과 한국농업과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농업 농촌, 새로운 소득기회의 탐색』(편저), 『 농업문제의 심연을 향한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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