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전문기관이 전문가를 만든다
“우리나라와 모든 것이 정반대”라는 나라. 남위 34°~47°에 위치하여 북위 33°~43°위치한 우리나라와 적도와의 거리가 거의 같은 나라, 뉴질랜드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는 뉴질랜드는 계절만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해가 동쪽으로 떠서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진다는 아주 보편적인 사실조차도 뉴질랜드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해가 동북쪽에서 뜨고 북쪽을 거쳐 서북쪽으로 지는 뉴질랜드에서는 북향집이 가장 인기가 좋다. 우리의 고정화된 상식을 깨는 나라, 뉴질랜드의 주력 산업은 농축산업이다. 농업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뉴질랜드의 농업후계자 육성 시스템은 어떨까.
정해진 교과서가 없는 학교
뉴질랜드의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통합과정, 대학 등 3단계로 나뉜다. 만 5세가 되면 입학하여 13년간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받는다.
특이한 것은 학교의 자율운영 권한이 강하다는 것. 쉬운 예로 국정교과서가 없다. 교사가 큰 틀안에서 자율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교과서 역시 교사가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년 같은 학년의 교과과정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교사의 재량에 따라 단원의 순서도 얼마든지 바뀐다. 학과목 역시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그 지역에서 원예가 발달한 경우, 학교 교과목에 원예학이 개설되는 식이다.
농업만 가르치는 농업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합고등학교 개념으로 몇 개의 과 중에 농업전공 과가 있는 형태로 교육이 진행된다. 우리의 중3에 해당하는 10학년 때부터 농업에 대한 일반 개론을 배우기 시작하고 11학년부터는 농업을 전공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농업 교육이 실시된다.
국가기술자격으로 농업을 전문화한다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푸켓코헤에 위치한 푸켓코헤 고등학교(Pukrkohe Highschool)는 중고등학교 과정이 함께 있는 일반고등학교로 9학년에서 13학년까지 있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광활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거대한 잔디밭 운동장이었다. 그리고 그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노는 학생들은 낯선 이방인을 보고 친철하게 손을 흔들며 환영해주었다. 뉴질랜드는 워낙 이주민이 많은 터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존중한다는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그 운동장을 가로질러 11학년 학생들이 실습하고 있다는 채소밭으로 안내받았다. 작은 나무울타리로 둘러싸인 네모난 상자밭에는 상추며 토마토, 호박, 오이, 해바라기 같은 다양한 채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식물의 생장을 살피고 배운다. 조금 떨어진 곳에 12학년이 재배하는 과수단지도 있었다.
뉴질랜드의 농업교육은 고등학교 입학시 농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채 1년을 지내고 난 뒤 11학년부터 선택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뉴질랜드는Level 1~5까지 단계를 두어 국가 기술자격증제도를 운영하는데, 농업계 학생들이 이수하는 교육과정을 국가자격체계와 연관시켜 전문화하고 있다는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고등학교에서 농업을 선택한 학생은 졸업하면서 Level 3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후 학생들은 대학교 또는 폴리텍과 같은 기술대학에 진학하거나 ITO에서 상위 레벨의 국가 기술을 취득한다. 뉴질랜드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년 정도 여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농업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농장에서 2~3년에 걸쳐 실습을 하면서 ITO교육을 받는다.
전문농업인을 육성하는 ITO
ITO는 비영리조직으로 산업별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훈련조직이다. 뉴질랜드에서 농업(Agriculture)은 주로 축산업을 말하고 채소나과일, 화훼는 원예(Horticulture)로 구분 되는데 뉴질랜드 농업교육의 근간을 형성하는 주요기관인 ITO도 이 두 분야로 나뉘어져 있으며 뉴질랜
드 정부가 70%, 산업계가 30%의 비율로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남쪽 110km 떨어진 해밀턴 시에 위치한 Agriculture ITO는 적합한 훈련을 통해서 전문농업인의 자격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Agriculture ITO에는 현재 약 8천명 이상의 학생들이 농업전문 지식과 기술 교육을 받고 있는데, 뉴질랜드내에 이런 기관이 16개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단순한 농장고용인도 가능성이 보이면 농장주가 더 나은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권고하고 배려하여ITO에서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서는 고등학교 수준인 Level 2부터 고급기술인 Level 5까지 단계적인 교육을 한다. 신규로 영농분야에 진입하는 젊은 농업인은 반드시 국가자격을 갖추도록 유도되는데 ITO는 이러한 젊은이들이 국가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들어오는 농업계 고교 졸업자들은 보통 Level 3을 마치고 4단계부터 교육을 받는다. 가장 높은 수준인 Level 5에서는 그간의 실습 위주의 교육에서 실제 농가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농업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경영, 마케팅 등을 수업한다.
전문교육의 과정을 거쳐 농장주가 된 핏 모건 씨
이곳의 지도교수인 핏 모건(Pete Morgan) 씨는 150ha에서 900여 마리 낙농업을 하고 있는 농업인이다. 농가경영과 농가 컨설팅도 하는 Agriculture ITO 의 교수자격은 장시간 농업분야에 종사한 사람으로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다.
“ITO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동물 건강(복지)이며 사료에 대한 교육도 함께 합니다.
5단계를 다 수료하면 지역 내 네트워킹이 활발해지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만,
거세 등 실제적인 노하우를 전수하고, 또한 16세~21세 사이의 견습생들의 개인 삶의 설계를 위한
멘토를 만날 수 있도록 도우며 전진대회 준비를 위한 강의도 합니다.”
ITO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농장에 취직하는데, 좋은 급여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핏모간 씨의설명이다. 경력을 차근차근 쌓으면 대기업 부장급의 급여를 받을 수 있고, ITO에서 5단계 자격증을 얻은 사람은 쉐어 밀커(Share Milker 농장관리자)로 농장주와 수익을 5:5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농장주가 될 수 있는데, 핏모건 교수 역시 이러한 과정을 밟아 농장주가 되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농장주가 된다는 것은 수입과 명예를 함께 얻는 훌륭한 직업인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핏 모건 씨는 광활한 목장에 소들을 자유롭게 놔두고 풀을 먹인다. 4%만 곡물사료를 쓴다고 했다. 하루에 두 번 젖을 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모건 씨는 농한기인 6월에서 8월까지는 하루에 한 번만 젖을 짠다. 그 이유는 바로‘상생’이다.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소의 생명을 오래도록 유지시키고 농부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누구보다 멋진 사무실에서 근무한다”고 말하는 핏모건 씨의 표정에서 여유와 자부심을 읽을 수있었다.
농업이 산업의 근간이었고, 지금도 농업이 주요산업인 뉴질랜드. 체계적인 농업인 육성을 위한노력과 농업인 에 대한 존경, 농업인의 비전 등이 뉴질랜드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