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 차원 높은 운동을 펼쳐야”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신수경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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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산농촌재단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1991년 우리나라 최초 농업 농촌 지원 공익재단으로 출발해 우리 농업과 농촌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현안에 주목하면서 지 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확산하는 다양한 공익사 업을 펼쳐온 재단 30년 활동을 살피며, 현대사의 중심에 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 사장을 만났다.
  정성헌 이사장(78)은 1970년대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우리밀살리기 운동 등 민주화의 산증인이자 생명운동가로서, 지난 2018년 진보 인사 최초로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맡아 화제가 되었고, 새마을운동을 생명살림운동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3년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국DMZ평화생명동산으로 돌아온 정성헌 이사장에게 농업과 농촌, 먹거리, 환경,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과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1990년대는 또 다른 격동의 시대였던 것 같다. 90년대 사회 상황은 어떠했나
90년대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80년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것이 80년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일이었다. 그리고 경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90년대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갔고,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세계를 보는 시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80년대 중반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계속되면서 개방화 물결이 거세졌다. 농업 농촌에 절실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때 농민운동 진영에서 전국적인 단일 조직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탄생했고, 당시 큰 형님 격인 가톨릭농민회는 ‘작은 가농’의 길에 들어서며 이전부터 가고자 했던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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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개방화된 농업 농촌에 대한 대응과 대책은 이루어졌나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면서 거의 모든 걸 단계적으로 다 개방하게 되었다. 대통령 직속 기구로 정부, 학계, 농민단체가 모여 농어촌발전위원회를 구성해서 대통령한테 권유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게 UR 대책위원회다. 우리도 제 역할을 못했지만, WTO 체제에 있어서 한국의 농업 정책은 그렇게 잘했다고 보지 않는다. 농업이 잘 안 되면 결국 지역도 잘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올바른 농업 정책을 중심으로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을 잘했다면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은 안 되었을 거다. 우리는 단시간에 압축 성장을 했고 그래서 이렇게 급팽창을 한 건데, 거기서 생겨난 모순덩어리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 지금 수도권 집중제는 어느 정권도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지혜롭게 용기를 가지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면 더 망가진다. 기후위기도 이렇게 집중된 상태에서는 해결이 힘들다. 생명의 3대 기본 요소가 불(에너지), 물, 밥 3가지다. 식량 자급률을 따짐과 동시에 불과 물과 밥이 이렇게 자급 순환할 수 있는 틀을 갖추는가를 봐야 한다. 농업 문제 해결도 면 단위 중심으로 해야 틀이 잡힐 수 있다고 본다. 우체국, 학교, 각종 문화 시설이 있어 밖으로 안 나가도 웬만한 것은 해결하고 순환할 수 있는 1500명에서 3000명 규모가 적당하다. 그러면 직접민주주의를 하기도 쉽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문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는 그야말로 자신의 전문 분야만 아는 사람들이다. 전문가 중심의 모델은 괜찮은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이 많다. 실제로 그 일을 겪는 사람들, 비전문가이지만 상당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야 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아주 중요한 발표를 했다. 한국판 뉴딜. 그런데 그 뜻을 알만한 사람도 잘 모른다. 거기에 참여한 전문가만 안다. 국민이 알아듣지 못하는데 정책이 잘 될 리 없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
한국DMZ평화생명동산.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앞의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이다. 세상만사를 아는 것은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아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사실 밥 이야기는 단순하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렇게 중요한 밥 한 그릇이 여기까지 오는데 너희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대해야 하고, 남기지 말아야 하고, 나눠 먹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밥에 대한 교육의 전부라 생각한다. 이러한 교육이 가정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산농촌재단이 꾸준히 하고 있는 소비자 대상 교육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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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농촌재단은 2014년부터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먹거리교육을 하고 있다.
대산농촌재단은 2014년부터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먹거리교육을 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농업 농촌의 중요성을 공감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전달 방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도술道術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도 없는 술은 아주 위험하다. 도술이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밥이란 무엇이냐 그게 도라면 푸드 마일리지 이런 건 술이다. 두 개를 같이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보통 도는 이야기하지 않고 술인 푸드 마일리지, 탄소 발자국 얘기만 한다. 칠레 사람들은 칠레에서 생산된 포도를 먹는 게 제일 이롭고. 우리는 여기서 생산된 거 먹는 게 이로운 건데. 교환 경제가 너무 이렇게 되다 보니까 이제 우리가 공산품을 팔면서 포도가 들어오는 건데 어떤 게 바람직한 삶이고 어떤 게 건강한 삶인지는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고 해야 한다.

평소에 실천을 강조하시는데, 새마을운동중앙회에서도 큰 변화를 이끄셨다고 들었다
친환경 에너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가장 기본은 절약이다. 덜 쓰는 노력 없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의미가 없다. 일례로 직원들과 합의하여 식당 테이블에 있는 휴지 등을 출구 앞에 두고 전기, 수도를 절약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했더니, 1년간 전기, 수도, 가스 사용료로 5600만 원이 절약되었다.  2년 6개월 걸려 유기농 태양광을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 설치했더니 에너지 자급률이 110%에 달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 스스로가 주인이 된 덕분이다.
 지금 영농형 태양광사업의 문제는 외부 투기자본이 대규모 태양광을 설치해서 농지를 없애는 것, 산을 깎아 대규모로 하는 태양광 사업이 문제인 것이다. 유기농 태양광은 농지도 보전하고 소농도 살릴 수 있다. 100㎾ 미만, 소규모 영농형 태양광으로 반드시 농민이, 농업진흥구역 이외의 농지에서 농지 훼손과 지목 변경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목표를 올바르게, 정책은 세밀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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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가장 기본은 절약이다.

현재의 시민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시민운동은 인생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직한 사회 변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운동인데, 이것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해진 것이 없다. 그 시대에 가장 근본적이고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다. 본질은 같아도 방법은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 지금 가장 중요한 운동은 ‘생명살림운동’이라 생각한다.

생명살림운동이 기존의 운동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한 차원 높은 목표를 지닌 운동이다. 환경을 넘어 생명으로, 평등을 넘어 평화로, 인권을 넘어 공경으로 가는 것이다. 기존의 환경운동이 인간 중심에서 환경을 대상화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면,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 생명운동이다. 이렇게 대결 구도로 치닫고 있는 사회에서 생명살림운동은 지금 가장 절실한 운동이다. 지금 이처럼 중요하고 급박한 운동은 없다. 무엇을 통해서 할지는 각각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보통 사람(평범한 사람, 내 생각을 주로 하고 남 생각을 가끔 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좋은 사람(내 생각도 하고 남 생각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훌륭한 사람(남 생각을 주로 하는 사람) 이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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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