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정은정 씨에 이어 구점숙 씨가 ‘농촌에 관한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적은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글·사진 구점숙
나의 살던 고향은
칠레의 망명 정객이자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자서전에 적기를, 그는 러시아 우주 비행사 게르만 티토프를 만난 자리에서 “우주에서 지구를 봤을 때 확실히 칠레를 구별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티토프가 남아메리카의 상당히 높은 노란 산맥을 봤다고 답하자, 네루다는 거기가 칠레라며 조국 사랑, 고향 사랑을 자랑했습니다. 애향심과 관련된 얘기가 또 있습니다. 남북 민간교류가 한창이던 2007년, 제3차 남북농민통일대회가 열렸는데, 체류 일정 중에 백두산 산행이 있었습니다. 삼지연에서 버스로 백두산 정상을 가는데, 그 깊은 산중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일행 중 누군가가, 저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깊은 산중에 살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질문 속에는 이미 우리끼리만 아는 불손함이 있었지요. 그 동네는 죄지으면 아오지 탄광 같은 데에 보내는 사회가 아니냐고, 무슨 죄를 지어서 아오지만큼 오지인 백두산 깊은 골에 사느냐는 말을 생략했던 것입니다. 불손한 질문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사람은 본디 보장만 된다면 익숙한 자기 고장에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게르 천장 사이로 보이는 별을 보고 사는 몽골 사람은 초원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바닷가의 사람들은 또 그 고장에서 살기를 원하는 법이지요. 우리 공화국은 인민들이 요구하면 어디든 문화주택을 지어주며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 동네의 정확한 실정이야 속속들이 잘 모르고 더 알 바는 아니지만, 그 사람의 말뜻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이보다 더 정확하게 고장 사랑을 설명해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 분단의 장벽이 있음에도 이 말을 종종 인용합니다.
제가 농촌에서 살게 된 것도 농촌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까닭에 농촌 정서에 대한 저항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6남매의 막내로 농사일을 강요받은 적이 없고, 시키는 일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두 살 위의 막내오빠까지는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 이름도 영광스러운 ‘막내’는 온 식구들로부터 관대함을 선물 받는 복을 타고난 것이지요. 초등학교 1~2학년 나이의 막내에게 요구되는 일은 콩 타작 후에 멍석 밖으로 튀어 나간 콩알 줍기, 새참으로 쓸 감자 껍질 벗겨놓기 정도였지만, 콩은 서너 줌 주워 담다가 말았고, 감자알도 대여섯 개만 벗겨놓고서는 아랫마을 윗마을로 뒷짐 지고 다니며 풀섶 관찰에 나서곤 했습니다. 열일곱 살씩이나 차이가 나는 큰언니는 제 나이 때부터 밥하고 동생들 돌보며 부모님 일을 돕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어려웠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뒷짐 지고 다니며 눈에 익힌 뽀리뱅이, 제비꽃, 방동사니, 달개비 등의 풀들과 평생 벗하고 살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졸업 후 뜬금없이 결혼해서 농민으로 살겠다고 하자, 막내오빠가 그 고생스러운 삶을 어찌 감당할 거냐고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막내오빠의 기억이지, 정작 저의 기억은 풀섶의 풀들에 있었으니 굴하지 않고 농민과 결혼을 하면서 농촌에 살게 되었습니다.
“여성농민의 삶이 무에 좋냐고요?”
농촌에 살았지만 나이가 적고, 그나마도 애들을 낳아 키우느라 정작 농촌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농촌환경에서 무던하게 살기는 살았으되 농촌을 진실로 사랑하게 된 것은 그 한참 후, 여성이면서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무슨 소리? 여성농민이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기가 얼마나 퍽퍽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것이지요? 암요, 알고 말고요. 몸이 먼저 말을 할 만치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온갖 농기계가 두루 있어도 곡식 옆에 바짝 붙은 풀을 정교하게 매주는 기계는 없으니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밭을 매야 하고, 익은 딸기를 따주거나 익은 고추를 선별해서 따주는 기계도 없으니 불편한 자세로 손을 재빨리 놀립니다. 이것이 왜 여성농민의 몫이 되었는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경험치로 봤을 때 상당수의 여성농민은 전제 상황에 자신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맞춰 낼 줄 아는 능력이 남들보다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돌보는 일은 그렇게 해야지만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농사과정에서 익히게 되어서일까요? 그런데도 딱히 여성농민 몫으로 주어지는 소득도 없습니다. 게다가 종일토록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같이 집안으로 들어서면, 곧장 밥을 해야 하는 쪽도 여성농민이요, 바쁠수록 더 어질러지는 집안을 치우는 것도 여성농민의 일이며, 마을 어르신들은 죄다 시어른 대하듯 해야 하는 여성농민의 삶이 무에 그리 좋냐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것은 대놓고 부담스럽고 힘들고 싫습니다. 그뿐인가요? 농산물 값은 들쭉날쭉 요동을 치고, 날씨는 변덕스럽고, 제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없고, 물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서 생활의 요구들은 높아져만 가는데, 농민들이 따라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농민의 삶은 열패감이 쌓이기 마련이지요. 물론 성공했다는 몇몇 농민의 스토리는 거리감이 더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농사 외의 것은 다 빼고서 그 자체로만 보자면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고,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씨앗 한 톨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다시 수많은 씨앗이 되는 그 과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씨앗을 심고서는 며칠 지나지 않아 논밭으로 가보면,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이쁜 녀석들이 하루 지나면 또 얼마나 자랐는지 가보고, 또 가보고 그렇게 사랑을 나눕니다. 잘 자라주면 좋지만, 행여나 비나 바람에 생채기가 생기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부지런히 돌보다가 비로소 곡식이 되어서 제구실을 할 양이면, 너도 애썼고 나도 고생했다며 토닥토닥 서로가 무언의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고단한 삶을 사는 여성농민의 표정이 해맑을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깊이를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생명이 생명을 키우면서 다시 생명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이 여성농민의 삶인 것이지요.
마음 알아주는 당신들과 함께
혹자들, 아니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여럿이 어울려 협업하거나 돈을 모아 기계를 사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 비싼 농기계를 농가마다 세트로 갖추느라 등골이 빠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성농민들의 횡적인 연대력은 농사에서 더욱 빛납니다. 언니네텃밭 공동체가 걸어온 10여 년이 충분한 증거입니다. 작은 텃밭에서 철마다 나는 농산물을 친정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매주 싸고 또 싸면서, 어떻게 생산했으니 어떻게 해 먹으라는 편지에 마음을 담아 소비자들에게 보내는 활동을, 1년 52주 중에서 48주 동안 해내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렇게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 알아주는 소비자’가 만드는 제철 꾸러미 사업을, 처음 출발할 때의 원칙대로 13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끼리 묻곤 합니다. 이런 공동체 활동을 남성들이 했다면 몇 년을 할 수 있었을까? 길어야 3년이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너무 가혹한가요? 성차별일까요? 실상이 그러하니까 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큰돈(따지고 보면 생산비가 안 나오기로는 대부분의 농사가 다 마찬가지임에도 허상을 갖고 있습니다)이 생기지 않지만, 비교적 노동한 만큼의 대가가 나오는 일인지라 남들이 보면 하찮게 여기기 딱 좋은 일인데도, 어떻게 해서든 소비자와의 약속을 맞춰 내려고 노력해 결과를 만들어 내고야 마는 것이지요. 가령 채소가 비가 많이 와서 녹아버리거나 가뭄에 타버리기도 하는 그 황당한 상황들이 해마다 반복되어서 속앓이, 몸고생을 많이 하면서도 기꺼이 맞춰 냅니다.
어떻게 그토록 어려운 공동체 활동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낼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커다란 연대활동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단연코 여성농민의 위대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생명을 키우는 그 숭고함이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나 더 큰 힘으로 작동하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권력도 없고, 권력을 행사할 이유도 없이 서로 돕고 살아가니까요. 그래서 농사를 여성적이라고도 하나 봅니다. 농사의 전 과정이 생명을 낳아 기르는 여성의 삶과도 같다는 것이겠지요.
그 누구든 이 땅의 한 생명으로 살아가려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주변 환경을 한 올씩 풀어갈 수밖에 없지 않던가요? 그러니 수없이 복잡하게 꼬인 농업, 농촌 문제도 한 올씩 풀어가며 살아야 하겠지요, 때로 억장이 무너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에 울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농사는 생명을 키우는 위대한 일입니다. 거기에 여성농민이 있으니 더욱 멋진 일이지요.
※ 필자 구점숙: 경남 남해군에서 농사짓는 여성농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언니네텃밭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 운영위원장, 경상남도 농특위 농민인권분과 위원장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아직 철기시대에 산다」(2019, 한국농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