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영민
마늘이 달라?
7년 전 제주도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도로변에 잔뜩 깔린 마늘이 눈에 띄었다. ‘제주 마늘이 유명한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제주 오일장에 들러 사 온 마늘을 무심코 깠는데, 손이 너무 매워 다음날까지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뭐야, 마늘이 왜 이렇게 매워.’ 그전에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손의 감각. “아이고, 얘가 뭣도 모르고 손에 아무것도 안 끼고 마늘을 깠네. 제주 마늘은 매워~”라고 윗집 할머니가 일러줬다. ‘응? 마늘이 달라?’가 시작이었다. 의성 마늘, 서산 마늘 등 마늘의 산지가 다르고, 한지형, 난지형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는데, 처음으로 ‘다르다’라는 게 마음에 와 부딪혔다. ‘왜 다르지? 무엇이 다르지?’ 그렇게 재료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재료를 보는 ‘눈’
맛을 제법 낼 줄 안다고 여겼는데, 맛이 아니라 재료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내가 요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감자도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고, 토마토도 에어룸이라는 품종이 있고, 나물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있다니! 모든 것이 신기했다. 보이는 족족 사고, 만지고, 먹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다. ‘다르다’에 파묻혀 있다 보니, 재료가 너무 다양해서 지치기도 했고, ‘제대로 먹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고……. 이 다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방황하기 시작했다.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쯤,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 장수를 위한 식이요법) 수업에서 같은 작물이라도 음(그늘)과 양(햇빛)의 환경에 따라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됐고,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부의 워크숍에서 작물 저마다 에너지의 크기가 다르고, 그 크기만큼 클 수 있도록 잘 돌봐야 하며, 땅속에 뻗어 있는 힘만큼 지상 위로 뻗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제야 재료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기준이 섰다. ‘아! 재료만 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구나!’
그때부터 재료를 볼 때는 뿌리, 줄기, 잎, 꽃의 모양까지 익혔다. 뿌리채소는 뿌리만큼이나 무성하게 자라는 잎의 모양새도 익혔고, 나물은 꽃의 모양과 색을 꼭 찾아봤다. 재료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보였다. 재료 뒤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볼 줄 아는 ‘눈’을 갖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시골길을 돌며 남의 텃밭을 엿보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감자꽃을 보고 ‘여기는 감자를 심었네’ 이야기하고, 빽빽한 마늘밭에서는 ‘마늘종을 여적 안 뽑았네’ 하고 알아보았다. 밭모퉁이에 툭 떨어진 노란 배추꽃에 ‘배추는 씨 받으려고 몇 포기 남겨둔 건가’ 추측해보고, 유독 북주기를 안 한 대파밭을 보면서 ‘이 대파는 초록 부분이 맛난 건가. 왜 북주기를 안 했지?’ 하는 의문과 걱정을 품기도 했다. 이런저런 발견과 생각을 하면서 밭 사이사이를 돌아보며, 지역의 흙과 재료의 모양과 색을 눈에 담았다. 제대로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다름’을 조금씩 알아차렸다. 감자꽃도 하얀색만 있는 게 아니라 보라색, 분홍색 등 종류에 따라 꽃과 줄기의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싹이나 화분에 키운 토란은 몬스테라처럼 작고 어여쁜 모습이었는데, 전라도에서 키우는 토란은 내 키보다 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거대한 숲의 요정 ‘토토로’가 들었던 우산처럼 컸다. 그렇게 같은 품종이라도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늘은 일반 마늘꽃과 코끼리 마늘꽃의 크기가 다르다. 산마늘이라고도 하는 명이나물은 맛도, 꽃도 마늘과 비슷하다.
‘킁킁’ 코로 먼저 맞이하는 계절
눈으로 구분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눈으로 구분한 것만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몸이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보고 의식해서 구분하는 것보다, 코는 조금 더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감각에 스며든다.
밭에 들어가면 바람에 나부끼는 향에 기분이 좋아지고 그 향을 따라간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허브만 보면 꽃에 날아드는 벌처럼 달려들었다. 허브만 보면 손을 갖다 대고 흔들어서 손에 양껏 향을 담아 코에 대었다. 애플민트, 페퍼민트, 스피어민트, 박하는 공통으로 상쾌한 향이 나지만 그 느낌이 달라 자꾸 손에 담아 코로 맡아보면서 구분하려 애썼다. 바질, 레몬밤, 딜, 세이지 같은 허브는 요리에 많이 쓴다. 얼마나 향이 좋으면 요리에 담고 싶었을까 싶지만, 자연 속의 허브들이 훨씬 생동감 있다고 느낀다. 외국에서 온 허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허브인 쑥도 향이 참 좋다. 뭣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개똥쑥이다. 일반 쑥, 인진쑥도 분명 향이 좋지만, 개똥쑥만의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은 맡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향은 정말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그렇게 킁킁대다보니 계절을 향으로 느낀다. 추운 겨울 꽁꽁 얼어 있던 땅이 습기에 젖은 촉촉한 흙냄새를 피울 때 봄이 왔음을 느낀다. 봄 흙을 파다보면 냉이 향과 달래 향이 진하게 풍긴다. 그러다 달큼한 꿀 향 나는 생강나무꽃과 매화꽃의 향이 나면 ‘곧 따뜻해지겠구나’ 하고, 한참 따뜻해지면 줄기에서 단내가 나다가 점점 잎에서 푸르른 풀 냄새가 난다. 풋내 나는 시원한 아스파라거스와 완두콩을 먹으면서 ‘이제 여름이 오겠구나’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작열하는 태양의 냄새와 습한 냄새가 교차하는 격동의 여름을 매운 향 나는 고추와 시원한 향을 가진 오이를 먹으며 향기롭게 이겨낸다. 그 여름이 지나 바삭한 햇빛 냄새와 함께 작물들은 무르익어가고, 가을비가 몇 번 오고 나면 젖은 낙엽의 냄새가 나면서 달큼한 호박 냄새, 밥 냄새에 사람이 넉넉해지다가, 깡깡 언 공기의 냄새와 바짝 마른 나무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뼈에 스미는 겨울엔 진한 귤과 고구마를 먹으며 따뜻하게 이겨낸다.
미생물이 만드는 향도 계절을 채운다. 이른 봄에 매화 향이 코끝을 채우고 지나가 아쉬울 때는 항아리를 연다. 항아리에서 미생물이 ‘뽀글뽀글’ 열심히 일해 매화 향, 복숭아꽃 향을 가득 채운다. 한여름 뜨거울 때는 땀 뻘뻘 흘리며 밀과 여러 곡물로 누룩을 빚어두면 미생물은 또 한 번 열심히 일하여 꽃향기를 한껏 뿜는다. 겨울에는 구수한 콩이 계절의 향을 채운다. 잘 삶은 메주를 으깨어 놓으면 때론 캐러멜 향도 나고 치즈 향도 난다. 여름내 잘 띄워 가을에 잘 말려둔 누룩은 겨울에 술을 빚기 위해 빻는데, 비스킷 향을 내면서 겨울을 고소하고 달큼하게 채운다.
작물의 일생이 담긴 ‘맛’
이렇게 눈으로, 코로 느낀 건 결국 마지막으로 입에 넣어 제대로 확인한다. 음식은 모양새나 향으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입에 들어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모양이 예쁘고, 향이 엄청나도 입에 들어왔을 때 쓰거나 아무 맛이 안 나는 것도 있다. 작물 하나하나가 정말 인간과 비슷하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 잠깐 스쳐 지나간 인상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고, 진하게 겪어보고 느껴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듯이, 작물도 입으로 곱씹어봐야 모양과 향만 자라난 것인지, 진짜 속도 가득 찼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맛을 보면서 작물의 일생을 생각해본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매운맛 등을 느끼면서 작물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느껴본다. 작물은 열심히 살고 싶었겠지만, 환경에 너무 경험할 것이 적으면 작물도 자라는 데 힘을 쓰지 않아 맛이 별로 들지 않고, 혹은 환경이 너무 혹독하면 작물은 온갖 불편한 맛을 가득 머금는다. 잘 살아내야 맛이 균형을 이룬다.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날씨의 혹독함과 다양한 미생물과 벌레와의 풍요로운 교류 속에서 경험을 쌓은 기억을 작물은 맛으로 저장한다. 다양한 경험과 극한 자연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잘 살아냈을 때, 비로소 맛도 균형을 이루고 그 사이로 향이 뿜어져 나온다. 더 잘 살아낼수록 맛이 훨씬 깊고 넓으며 더 선명하고 촘촘하게 맛의 다양한 레이어가 생긴다. 그렇게 예쁘고 향도 그윽하고 맛도 깊은 작물일 수록 오래간다.
와인에만 떼루아(Terroir)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에 떼루아가 있다. 작물이 자라는 땅의 힘, 그것을 다채롭게 하는 날씨의 힘, 이 모든 것을 살필 줄 아는 농부의 눈과 손과 마음이 모여서 작물을 키운다. 그렇게 잘 자라난 작물은 정말 요리할 것이 없다. 조심스러운 손질과 섬세한 불 다루기, 필요하다면 약간의 소금이면 충분하다.
물김치’ 완성이다. ©이영민
눈, 코, 입이 즐거운 요리
여름이 왔다. 장을 보러 가니 연두색의 푸르름이 가득하다. 나는 여름이면 오이 물김치를 담근다. 반찬으로 오이를 건져 먹고, 국물은 국수에 말아서 호로록 먹는다. 오이, 양파, 부추를 소금물에만 담가두면 되니 만들기 너무 쉽고, 이렇게 저렇게 먹으면 맛도 좋으니 여름에는 필수다.
오이는 단단하고 묵직하고 길쭉하고 배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을 고른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가벼워지고 수분을 많이 먹어 배가 튀어나오지만, 지금 이때의 단단하고 모양이 잘생긴 오이로 김치를 담근다. 이제 막 수확한 탱탱한 양파도, 이제 조금씩 질기고 빳빳해지는 부추도 골라 든다. 집에 와 오이를 씻으며 손에 가칠가칠 만져지는 오이 가시들에서 싱싱함을 느낀다. 오이 밖으로 뿜어 나오는 시원한 향을 맡아본 후, 가장 중요한 맛을 본다. 쓴맛이 든 오이는 김치로 담가도 쓴맛이 난다. 제일 쓴 부분인 끝부분을 잘라 먹어 맛을 확인한다. 쓴맛이 나면 양념이 진한 소박이로 담고, 쓴맛이 나지 않으면 물김치로 담근다.
오이를 김밥처럼 썬다. 오이 껍질이 있는 편이 모양 유지가 훨씬 잘 된다. 그렇게 썬 오이를 소금물에 절인다. 다 절여지면 통에 절인 오이와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양파와 부추를 넣고 소금물을 간 맞춰서 붓는다. 진한 오이 향을 느끼려면 오이 절인 소금물로 간을 맞춰도 좋다.
그렇게 만든 것을 바깥에 놔두면, 시간이 흘러 자연히 김치는 뽀글뽀글 익는다. 다 익은 오이 물김치를 눈으로, 코로, 입으로 확인한다. 연둣빛 오이는 올리브색이 되고, 풋풋했던 향은 익어서 시원한 향이 나고, 그렇게 싱그러웠던 오이가 깊은 맛을 품으면 완성이다.
나는 눈으로, 코로, 입으로 요리한다. 전에는 화려한 기술과 비싼 도구, 온갖 조미료로 요리하는 줄 알았다면, 이제는 재료가 이미 땅에서 요리되어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눈으로, 코로, 입으로 재료를 감각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그렇게 느끼는 맛과 향과 식감 등이 계절과 땅과 사람이 돌보는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요리책보다는 산과 들을 보고, 농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맛있음에 대한 답은 거기에 있다.
필자 이영민: 공간 사부작 대표
‘부암댁’이라는 활동명을 쓴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먹을 것의, 먹을 것에 의한, 먹을 것을 위한 공간이자 ‘잘’ 먹는 사람들의 사랑방인 ‘공간 사부작’을 운영한다. 음식을 공부하고 고민한 것을 공간에서는 말과 맛으로, 인스타그램(@buam_life)에서는 글과 사진으로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