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소아
농어민과 농어업 노동력, 그 연대의 첫걸음
오늘 아침에도 별걱정 없이 구수한 쌀밥, 갓 담근 김장김치, 구운 김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왔다. 쌀값은 떨어졌고, 배추가 풍작인지 흉작인지 몰라도 마트에서 쉽게 채소와 김을 살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잘 알지 못했으며, 한때는 내 안에 도사린 편견으로 농사는 그저 힘들기만 한 일, 힘만 들이면 되는 일, 그래서 나는 하기 싫은데 누군가는 하고 있는 일이라고 눙쳐서 생각하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전남 광주에 살면서 농어업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 과정에서 거듭 깨닫는 점은 농어업은 ‘인력에 의한 섬세한 작업과 동력, 기계장치를 활용해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즉, 아무나 대충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먹거리를 기르는 일, 전문적인 일, 그런데 쉽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함부로 생각하는 일. 추가되는 생산비용에 따른 실질적인 농산물 가격 인상에 대해 특별한 고민을 하지 못했던 도시 소비자로서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실태조사 보고서를 쓰고 토론회¹를 준비하고 농민들을 섭외하면서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직업이 변호사이고 게다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답’과 ‘방법’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주민과 이주민, 농어민과 소비자, 사용자와 노동자, 비용과 가격, 현실과 원칙, 복잡한 관계와 맥락, 입장과 목소리 사이에서, 선명한 입장과 분명한 답이라는 이름으로 결국은 한쪽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경우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먹거리에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도시 소비자로서, 그 먹거리를 생산하고 가격변동의 차를 견디고 있는 농어민과 농어업 노동력에 대하여 어느 누구의 입장도 지워지지 않도록 함께 방법을 고민하고 연대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토론회를 준비했고 앞으로도 질문과 고민을 함께하며 답을 향해가는 여정에 초대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맥락에서 2020 농어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노동자와 사용자
현재 농어촌에서 일하는 많은 이주민들은 체류자격²이 모두 다르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으로 초대되어 일하는 경우, 관광비자와 같은 단기비자로 들어왔다가 일하는 경우, 근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일요일에 아르바이트로 와서 일하는 경우, 유학생이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 고용허가제로 일하는 경우 등등 다양하다. 이 조사 결과는 이런 다양한 체류자격(흔히 비자라고 하는)을 가진 이들 중 비전문취업비자(E-9), 즉 고용허가제(‘외국인근로자고용에관한법률³’에 근거함)로 입국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특히 이들에 대한 노동 인권 문제를 다루었다고 미리 알린다. 농어업 이주노동자 인권 현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체류자격에 따른 일하는 조건, 노동권, 문제 되는 법률 쟁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농어민의 입장에서는 키우는 작물과 어종, 축산업 여부에 따라 그때그때 며칠씩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3~5개월만 일손이 필요한 때도 있으며, 1년 내내 상시근로자가 필요하거나, 상시근로자가 있어도 며칠 간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한 사정도 있는 등 상황과 그에 따른 욕구도 모두 다르다. 거칠게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한편, 이주노동자와 관련하여 농어민으로부터 자주 듣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일손 필요할 때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 줄 아느냐,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은 일당을 주는데 체불임금 이야기를 하느냐, 브로커들이 일당을 마음대로 조정해서 폭리를 취하는데 작물을 갈아엎을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사람을 데려올 수밖에 없다, 브로커들 장난질을 어떻게 할 수 없느냐…. 그러나 이는 1년 내내 상시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며칠, 혹은 3~5개월 단기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이 미등록이거나 단기 체류비자인 경우다. 즉, 단기 체류자격을 가진 노동자 및 그 사용자가 처한 상황과 1년 이상 장기 체류자격을 가진 노동자 및 그 사용자가 가진 처한 상황은 그에 따른 법률 인권 쟁점들도 다르다.
같은 평면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서로 섞어서 이야기한다면 모든 문제들이 나아가지 못하고 원점에서 머물게 될 수 있다. 일단 대한민국 정부가 MOU를 체결하고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한국에 비전문취업비자로 입국하여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에 우선 집중해 보았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이탈하는 원인
2020년 기준, E-9-3(농축산업), E-9-4(어업) 비자를 받은 농축산어업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20.3%가 13시간 이상 일한다고 보고했다.⁴ 이들은 제조업 이주노동자 4.3%보다 5배 정도 장시간 근로를 하지만 그에 따른 시간 외 수당은 받지 않는다. 사용자인 농어민도 근로자보다 오히려 더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농어민에게는 최저임금 정도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입장도 들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사용자가 제시한 표준근로계약서(농축산분야가 따로 정해져 있으며, 각 모국어로 번역되어 제공됨)에 기재된 월 근로시간 및 휴일이 지켜질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사업장 이탈의 원인이 된다.
현장에서 법률지원을 하다 보면 체불임금 진정을 하는 경우 사용자인 농어민은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항변하고, 이주노동자는 추가 시간 근로를 했다는 부분에 대해 항변하면서 엇갈린 주장으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례가 많다. 이런 경우 사용자가 근로 시간, 휴게 시간 공제 항목 등을 기재한 임금대장을 작성해둔다면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 법은 위와 같이 근로계약에 관한 서류(임금대장 등)를 작성 보존할 의무를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여 2021년 11월 19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한 이 규정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므로 관련 양식 등을 미리 참고하여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농어업 이주노동자가 직장건강보험이 아닌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 매월 13만 원에 이르는 보험료 전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것도 제조업의 경우와 현실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이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사용자인 농어민이 사업자등록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이면서 일정 소득액이 잡히지 않아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농어민들은 자녀들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거나 지역건강보험료 감경 혜택을 받고 있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절반의 보험료만으로도 혜택을 본다는 사실을 이주노동자들도 서로 정보 교환을 통해 알고 있다. 농어업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용자인 농어민이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거나, 당사자들의 지역 건강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농어업은 일반 사업장에 비하여 산업재해의 비율이 2.5배 높다. 그러나 농어업 자체가 산재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며, 전남의 경우 소규모 농어업 사업장이 많아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농어업 이주노동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런데 농어업 계절근로자는 사용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해야만 근로자를 배정받을 수 있어 사실상 보험 가입이 강제되고 있다. 상시근로자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계절근로자들에 비하여도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농어업 안전재해 사고가 다른 산업에 비하여 높은 비율로 발생하는 가운데 질병, 사고 치료에 있어 근로자 건강권과 안전권과 관련한 보장 제도가 있는지 여부는 일하고 싶은 사업장의 척도가 된다. 단순히 근로자의 건강권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병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인 농어민이 져야 할 책임을 분산하는 효율적인 대비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농어업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하여 산업재해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사용자인 농어민에게 그 보험료를 지원하는 등의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여 임금체불이 발생하였을 때 노동자가 임금채권보장법상의 소액체당금 제도도 이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작황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농민이 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경우, 일단 노동자가 소액체당금 제도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노동자도 숨통이 트이고 사용자도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효과가 있다(이후 구상금으로 갚아야 하지만 시간을 벌 수 있음). 그러므로 고용 허가를 함에 있어 사용자인 농어민이 산재보험을 가입하도록 강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숙소 형태와 관련하여 농축산업의 경우 43.3%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같은 임시건물에서 지내고 있다고 보고하며, 자연스럽게 숙소에 대한 불편에 대한 보고도 제조업에 비하여 많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
인터넷과 온라인 기기의 발달로 이주노동자들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각종 SNS로 노동조건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한국인이 살기 싫은 곳, 일하기 싫은 곳은 이주노동자 역시 살기 싫고 일하기 싫으며 사업장 이탈의 원인이 된다. 한국 국적을 가진 노동자와 이주민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달라서 차별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한국인이 일하기 싫은 근로조건을 가진 작업장은 이주노동자도 일하기 싫은 곳이며, 어느 곳의 일당이 더 높고 어느 곳이 일하기 좋은 곳인지 손쉽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운데, 열악한 조건을 그저 감당하며 일을 하라고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구조적으로 조금 더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며 그 추가 비용은 우리 모두가 먹거리를 농어민들에게 빚지고 있으므로 공공에서 마련이 필요하다.
농어촌에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은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농어업은 이주노동자 없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적인 환경을 바꾸는 데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만, 중소사업장이 많은 전남 지역에서 그러한 추가 비용 부담을 온전히 농어민에게 지우기보다는 전남도 차원의 지원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1) ‘전남의 사례로 본 농어업이주노동자 현황 및 농업 노동 환경 개선 방향’(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주최, 대산농촌재단 후원 / 2021년 12월 21일)
2)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체류자격에 따라 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여부와 일하는 조건과 기간이 달라진다.
3) 주의할 점은 법률의 제목이 외국인근로자 고용이라고 되어 있으나 모든 외국인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비자 중 E-9(비전문취업)과 H-2(방문취업)에만 적용된다.
4) 「전남의 사례로 본 농어업이주노동자 현황 및 농업 노동 환경 개선 방향」,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2021, 31쪽.
※ 필자 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상근변호사.
지역에서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의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전달한다는 지향으로 만들어진 비영리단체에서 일한다. 농어민의 목소리, 이주민의 목소리,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지워지지 않기 위해 민변 광주전남지부 농업법연구모임도 기웃거리고 이주노동자 네트워크도 기웃거린다. 답이 아닌 물음에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