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남태령’을 넘는 법

이재덕

  농가 농업 소득은 30년째 평균 1000만 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기후위기로 농작물 피해는 심해지고, 사람들은 농촌을 떠난다. 우리 농업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 아래서 수십 년간 몸살을 앓는 중인데, 여기에 더해 트럼프 2기를 맞아 ‘위생검역’ 같은 비관세 장벽까지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더해지고 있다. 우리 농업·농촌·농민은 그야말로 ‘복합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를 도시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일부 소비자들은 사과 가격이 비싸지면 “위생검역을 풀어 사과를 수입하자”고 하고, 한국 우유 가격이 세계 최고라며 “수입 우유를 먹겠다”고 한다. 주변에 ‘아는 농부’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을까.
  2024년 12월, 농민들이 서울 남태령에 트랙터를 끌고 왔다. ‘농촌의 삶이 참 버겁다, 농사지어 먹고 살기 참 힘들다’는 외침에, 20~30대 도시 사람들이 “우리 같이 살자, 당신이 있어야 내가 있다”고 화답했다.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도시 소비자들이 농민의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농업·농촌·먹거리 문제를 풀어가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향신문》은 2025년 신년기획으로 지난 1월 7일부터 2월 11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농업·농촌·농민 기사를 연재했다. 농촌의 현실을 남태령 너머 도시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취지에서, 농촌과 도시가 함께한다면 뭐든 못 넘겠느냐는 취지에서 신년기획의 제목은 ‘남태령을 넘어’로 정했다.

전북 순창군 두지마을 주민 박미순·장순금·박순이·김경자 아짐(왼쪽부터)이 2024년 11월 27일 ‘어르신 공공일자리’ 신청을 하러 면사무소에 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경향신문
전북 순창군 두지마을 주민 박미순·장순금·박순이·김경자 아짐(왼쪽부터)이 2024년 11월 27일 ‘어르신 공공일자리’ 신청을 하러 면사무소에 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경향신문

20대 기자의 순창 한달살이
  농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떻게 사는지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공감대를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취재팀 8명이 전국을 다니며 농민들을 만났다.
  취재팀의 박채연 기자는 ‘지역 소멸’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전북 순창군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박 기자는 풍산면 두지마을을 중심으로 풍산면·순창읍 일대를 취재했다. 두지마을은 70·80·90대 원주민 24가구, 40·50·60대 귀농·귀촌 9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박 기자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그런데 두지마을에는 구멍가게 하나 없다. 마을을 지나는 버스는 하루 8대뿐. 버스 타고 20분쯤 가면 나오는 면사무소 인근에 하나로마트가 하나 있는데, 규모는 작고 매대에는 쌀·잡곡·라면 따위만 있다. 신선 채소는 없고, 우유는 하루걸러 들어온단다. 손님이 많지 않으니 유통기한이 긴 것 위주로 진열해 두는 것이다.
  밥은 굶지 않으려나, 취재는 잘하고 있나 걱정이 돼 연차를 내고 순창에 갔다. 그가 머무는 두지마을에 도착하니 저녁 8시. 멀리서 ‘몸뻬’ 입은 한 여성이 술병과 먹을거리를 잔뜩 들고 오길래 ‘이 동네에도 젊은 아낙들이 많이 사나 보네’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박 기자였다. 이날은 청년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박 기자는 40~60대 청년회 부부들과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다. 난 새벽 2시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날 박 기자는 아침 일찍 경로당으로 출근해 70대, 80대 어르신에게 인사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머니 자식들 몇 남매랬죠?” “딸 하나, 아들 하나라니까. 어제 물어봤구망 또 물어봐. 이 똥개야.” “까먹었어요. 하하.” “어저께 알타리 무친 데서 내 물어봐 놓고…… 근데 몇 살이랬지?” “26살이요.” “저기 저 양반 막내아들이 있는데 나이가 맞으면 이어주려고 했지. 늦둥이가 37살이야.”
  두지마을 경로당에서는 매일 70대 ‘아짐’ 세 분이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군청으로부터 ‘급식 도우미’ 수당을 받아 셋이 나눈단다. 80대 ‘성님’들은 큰 방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점심이 다 되길 기다린다. 두지마을 70대 아짐 중에는 요양 보호사 일을 하는 분도 있다. 70대 할머니들이 80대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는 게 농촌 마을의 현실이었다.
  동네 아짐, 옆 마을 아재, 초등학교 교장, 지역아동센터 교사, 보건진료소 간호사, 지역신문 기자 등 박 기자를 아는 사람이 꽤 많았다. 심지어 순창 지역언론 《열린순창》이 “박 기자와 여러 행사장에서 종종 마주쳤다”며 “금세 주민 곁으로 다가서는 모습에서는 도무지 도시 청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며 박 기자를 인터뷰할 정도였다.
  그래서 ‘지역 소멸’ 취재는 잘 끝냈을까? 박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소멸’이란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열린순창》 인터뷰에서 박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이 작아질 수 있고, 작은 게 나쁜 것도 아니고요. 결국엔 ‘지역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중요하더라고요. ‘소멸’이란 말은 그런 다양한 고민을 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은 도시, 작은 시골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엔 ‘어떻게 잘 소멸될까’와도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마늘 농사를 짓는 구점숙(왼쪽)·김성 부부가 2024년 12월 20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의 논을 걸으며 마늘 작황을 살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경향신문
마늘 농사를 짓는 구점숙(왼쪽)·김성 부부가 2024년 12월 20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의 논을 걸으며 마늘 작황을 살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경향신문

모두 ‘농민’이라 불리지만
  박 기자가 두지마을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을 본 뒤, 나는 취재 중이던 전남 신안군으로 돌아가 쌀 농부들을 취재했다. 그러다 30대 청년 임차농(소농)을 인터뷰했을 때 가슴이 탁 막히고 아찔해졌다. 농부들이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있고, 그 안에서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걸 그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우리 마을은 집성촌이에요. 땅 빌려서 관개 시설 다 해놓고 농사를 지었는데, 1년도 안 돼 집안 아저씨가 그 땅을 뺏어가 자기 농사를 짓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는데 집안 어른한테 뭐라고 하기도 힘들어요.”
  그는 논 2400평에서 2024년 4월부터 11월까지 7개월 벼농사로 140만 원 순익을 냈다. 쌀로 먹고살기 어렵다 보니 밭에서 양파를 키워 돈을 번다. “쌀 팔면서 엄마한테 짜증을 냈죠. 다시는 쌀농사 안 짓는다고. 너무 허망하니까…… 수지타산이 안 맞아요. 논은 100마지기(2만 평, 약 6만6000㎡) 이상은 지어야 먹고살 수 있겠더라고요. 근데 제가 언제쯤 논 100마지기를 지을 수 있을까요. 동생한테도 도시 가서 살라고 얘기해요. 비전이 없잖아요.”
  농촌에도 계급·계층·성별 간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달랐다. 돼지 3000마리를 키우는 충남 홍성군의 한 후계농은 돼지 사료값으로 한 달에 1억 원을 쓴다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가 버는 순수익도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남의 논을 빌려 쌀과 마늘, 시금치 농사를 짓는 남해의 농민은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그렇게 힘들다 생각 안 하는데 남편이 ‘기곗값 갚아야 한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농민’이라고 불리지만, 이들이 겪는 문제는 너무나도 다르다. 농민의 이야기를 하나로 ‘퉁’쳐서 써왔던 예전의 기사들이 생각나 얼굴이 화끈해졌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유기농 양배추 농사를 짓는 강순희 씨가 2024년 12월 3일 자신의 밭에서 양배추에 있는 나방 애벌레를 잡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
제주시 구좌읍에서 유기농 양배추 농사를 짓는 강순희 씨가 2024년 12월 3일 자신의 밭에서 양배추에 있는 나방 애벌레를 잡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

애순의 양배추는 어디에?
  한편 취재팀의 전지현 기자는 제주시에 가 있었다. 제주는 당근, 무, 브로콜리, 양배추, 콜라비 등 국내 겨울철 신선채소의 약 80%를 공급하는 생산기지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양배추 농가를 찾아갔다. 그렇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이 키운 그 양배추. 관식이 “양배추 달아요” 하고 팔 정도가 되려면, 12월 초쯤 어른 주먹 크기 정도로 결구가 올라와야 하는데 그런 양배추는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구가 되지 않았거나, 초겨울 때아닌 애벌레에 구멍이 숭숭 뚫렸거나, 긴 가을장마에 뿌리가 썩어 하얗게 시들어 있었다. 
  제주의 농부들은 친환경을 포기하고 농약을 써야 할지, 시설 재배로 바꿔야 할지, 다음엔 언제 파종을 해야 할지, 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의 농사가 기후위기에 무너지는 순간, 우리 겨울 먹거리도 사라진다. 전 기자는 내게 “제주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리지 않게 쓰고 싶었다. 기후위기와 먹거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고 했다. 
  12월 말. 동료들이 쓴 기사 초안에는 농촌 주민과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의 삶이 생생하게 녹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도시 소비자들도 농촌의 현실을 알고, 농촌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안도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다. 긴 기사를 독자들이 끝까지 읽어갈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이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경향신문》의 칼럼니스트인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기획 내내 우리 팀과 함께하면서 섭외, 자문, 격려,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한 농업’일까, ‘건강한 농촌’일까. 둘은 공존할 수 있을까. ‘남태령을 넘어’ 기사에서는 결론을 내거나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도 답을 찾지 못했다.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 ‘8회’ 시리즈는 너무나 짧다.

농촌 기사가 보이지 않는 이유
  사실 《경향신문》 같은 종합일간지에서 농업·농촌·농민 이야기를 8회짜리 대형 기획으로 끌고 가는 것은 ‘내부 투쟁’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이번 기획을 준비할 때도 몇몇 기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농업·농촌이 중요한 이슈이긴 한데 신년기획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한가롭게 여겨지지 않겠어?” “독자들이 농업·농촌 기사를 보고 싶어 할까? 품만 잔뜩 들이고,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어.” 더군다나 12월에는 계엄 사태까지 터지지 않았나.
  15년 차 기자인 내가 농업·농촌 얘기를 전문으로 쓰고 싶다고 말하면 몇몇 기자들은 “세상을 넓게 보라”고 충고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도 많이 취재해봤으니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건 어떠냐”고도 한다. 농업과 농촌 기자를 하면 세상 보는 눈이 좁아지고, 반도체와 AI 기자를 하면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진다는 건 웬 해괴한 논리일까.
  앞서 반도체 출입 기자도 해봤는데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진 것 같진 않다. 현장은 가지도 못하고, 주로 업체가 내는 보도자료 위주로 기사를 쓴다. 반도체 전문가나 반도체 회사 임원들을 만나 정보를 듣는다. 용인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건 굉장히 큰 기사로 다뤄지지만, 그 반도체 공장에 용수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 댐이 생기고, 충청도 마을에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내용의 기사가 잘 나오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언론사의 이슈 선정 방식과 취재 시스템, 내부 분위기 등이 내가 넘어야 할 ‘남태령’이다.
  다행히도 《경향신문》은 ‘남태령을 넘어’를 신년기획으로 추진했고, 각 부서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기획팀을 2월 중순까지 유지했다. 편집국장은 흔들리지 않았고, 부국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다른 기자들을 설득했다.
  “농업에서 WTO와 FTA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강화하면 농산물 수입, 수출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우리가 먹는 게 농산물이다. 생활 속에 깊게 들어와 분리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 신문은 오래전부터 성 소수자나 젠더 문제, 기후 등 남들이 잘 안 쓰던 문제를 부각하고 브랜딩하며 여기까지 왔다. 기획이 시의성 있는 것만 다루는 건 아니다. 언론이 잘 다루지 않는 사안과 여러 사람이 고통받는 일을 들춰내는 의미도 있다. 마침 남태령 대치 이후 농민과 농산물 문제에 관심이 커진 상태다.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
  종합일간지 기자로서 ‘나의 남태령’을 어떻게 넘을지를 고민한다. 기존의 취재 관행 등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공간을 넓혀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번 기획 기사를 함께 좌충우돌하며 준비한 팀원들은 대부분 기자 된 지 2~7년 정도의 20~30대 기자들이다. 같이 ‘남태령’을 넘을 동료들을 찾아낸 것. 이번 기획 기사의 가장 큰 성과다.

이재덕필자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201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경제부·사회부·뉴콘텐츠팀·산업부 기자로 일했고, 2024년 11월~2025년 2월 신년기획팀에서 농업·농촌 관련 기획 시리즈인 ‘남태령을 넘어’ 제작에 참여했다.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2010~2011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