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핑계

글·사진 이오성

  계간 《대산농촌》 원고 청탁을 받고 고민했다. ‘기후위기라는 핑계’라니, 무척이나 민감한 주제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기후변화 부정론쯤으로 읽히기 쉬운 주제였다. 그럼에도 글을 써보리라 마음먹은 건, 농촌과 기후위기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생긴 마음 한편의 ‘의문’ 때문이었다.

농업·농촌은 ‘기후악당’인가
  얼마 전, 한 기후위기 대응 단체에 언론인 몇몇이 모였다.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이 열린 자리였다. 주제는 ‘메탄’이었다. 온실가스 효과가 많게는 이산화탄소의 80배에 달한다는 메탄을 줄여야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메탄 발생의 주된 요인은 농축산업이다.
  축산업이 메탄 발생의 원인 중 하나라는 건 이제 상식이다. 문제는 벼농사다. 벼농사를 지을 때 물을 가두는 과정에서 땅속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메탄을 발생시키므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최 측의 발표가 이어졌다. 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농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는 꽤 됐다. 몇 해 전부터 국내 지자체 등에서도 생장 기간이 짧아 담수 기간을 줄인 벼 품종인 ‘빠르미’를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물었다. 벼농사의 메탄 발생량 데이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벼농사가 친환경에 기여하는 부분은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런 논의를 진전시키려면 언론인보다는 농민을 대상으로 토론회 자리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닌지 말이다. 발표자는 농민과의 교감 부족 등을 수긍하면서도 농업 부문 온실가스를 줄여야 세계적 흐름에 발맞출 수 있음을 다시금 강조했다.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온실가스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2%다. 이 중 벼 재배가 31.8%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가축의 장내 발효(29.1%), 분뇨 처리(25.8%) 순이다. 벼 재배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0년보다 3.6% 하락했다. 벼 재배면적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 통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 가운데 벼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안팎이다. 에너지 분야(75.7%)나 산업 공정 및 제품 사용(18.5%)과 비교할 때 턱없이 작다. 벼농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비중은 폐기물 매립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비중보다도 작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벼농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비중이 10% 정도이지만 한국의 벼농사는 1%에 불과하다. 이웃한 일본도 비슷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전 세계 평균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벼농사 온실가스 배출량 차이가 이토록 큰 이유는 뭘까. 비교적 소농이 많고 경지면적이 적어 농기계 사용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적은 점, 기후 특성상 이기작이 불가능한 점 등 때문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이에 관한 정확한 연구를 찾지 못했다.

벼농사는 친환경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벼농사가 그 자체로 친환경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능은 논에 물을 가둬놓음으로써 생겨난다. 우선 홍수를 조절한다. 비가 많이 올 때 전국의 논은 웬만한 댐 수십 개가 감당할 분량의 물을 가둬둔다. 논물은 그 자체로 깨끗한 지하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논에 가둔 물의 절반 정도는 지하로 들어가서 정수된 지하수가 된다. 논에 있는 물이 증발할 때마다 주위의 열을 빼앗으면서 여름철에 더위를 식혀주는 기능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1990년대 대학 시절에 농촌활동을 나갔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벼농사의 오래된 순기능을 무시한 채 ‘농업의 온실가스 감축’만을 강조하는 것이 농촌사회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농업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과도한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고 비닐 등 농자재 폐기물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농민과 농촌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2023년 양곡관리법 논쟁이 한창일 때 일부 학자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벼농사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느냐는 주장을 펼쳤다. 기후위기 대응에 걸림돌이 되는 벼농사에 예산을 지원하지 말고 쌀을 수입해서 먹자는 주장이었다. 정부가 쌀이 남아도는 현상만을 보고 양곡관리법을 거부했듯이, 일부 학자들 역시 온실가스 배출량이라는 숫자만 보고 벼농사 포기를 언급한 셈이다. 이런 학자들이 다른 산업에도 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농민과 농촌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다. 사진은 2024년 가을 벼멸구 피해 현장. ⓒ전라남도청
농민과 농촌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다. 사진은 2024년 가을 벼멸구 피해 현장. ⓒ전라남도청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농민
  정말 심각한 이야기는 따로 있다. 농민과 농촌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라는 명백한 현실이, 사회적 논의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2024년은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해였다. 연초의 사과, 총선 직전의 대파, 여름의 배추, 가을의 벼멸구 피해가 이어지면서 먹거리 문제가 정국을 지배했다. 언론은 연일 ‘금사과’, ‘금배추’로 식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며 보도를 쏟아냈지만, 농민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수급 불안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이를 생산하는 농민의 목소리가 빠져 있었다.
  정부 대책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 정부가 농산물 수급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납품단가 지원, 둘째 할인 지원, 셋째 과일 직수입이었다. 유통업체와 마트에 돈을 지원해서 물가를 떨어뜨리고, 모자란 과일은 외국에서 수입해 온다는 대책이었다. 농사를 망쳐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농민을 위한 대책은 찾기 어려웠다.
  기후위기에 속수무책인 농민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이 농작물 재해보험이다. 그러나 이상 기후로 인한 병충해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보상 대상이 아닌 데다 자기부담률이 너무 높아(통상 20%) 사실상 궤멸적 피해를 보아야만 보험금이 지급된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발아 출현율(싹이 튼 상태)이 50% 이상 되어야만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제주도 당근밭처럼 이상고온으로 싹도 제대로 틔우지 못한 농가는 아예 보험 가입조차 어려워졌다.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문제는 또 어떤가. 올해 유통구조 개혁의 적기였다. 농산물 수급 불안으로 가락시장 도매시장 법인과 경매제의 문제점 등이 부각되면서 비로소 주요 언론에서도 유통구조 개혁 문제를 공론화했다. 농민도 소비자도 모두 울리는 유통구조 개혁의 골든타임이 왔다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유통구조를 개혁하겠다는 말은 무성했으나, 문제의 도매시장 법인도 참여하는 온라인 도매시장 활성화 말고 실제로 어떤 개혁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 모두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을 서두르라고 요구했는데 농식품부 측은 “올해 수급불안은 일조량 부족, 긴 폭염 등에 기인했다”라며 기후위기 탓을 했다. 이쯤 되면 기후위기는 손쉬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기후위기와 농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보여준 인물이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다. 그는 지난 4월 “기후변화가 심할 때 생산자 보호를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농산물) 수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정부가 국내 농가를 보호해야 하느냐’라는 의문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일부 언론은 이 총재가 ‘불편한 진실’을 말했다고 썼다.
  누가 들으면 한국이 해외 농산물을 일절 수입하지 않는 나라라고 오해할 만한 발언이다. 이미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수입 농산물에 대거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이런 정책 방향은계속 확대일로(擴大一路)다. 게다가 이창용 총재가 결정적으로 간과한 문제가 있다. 다른 나라의 농업 역시 기후위기로 인한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사과, 오렌지, 바나나, 망고 등 과일은 물론 쌀, 밀, 양파, 커피 등 주요 농산물이 세계적으로 연이은 흉작에 시달리고 있다. 2022년 5월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위기 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식량 수출을 제한한 국가가 20개국이 넘는다.

농산물 할인 지원은 정부가 농산물 수급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농산물 할인 지원은 정부가 농산물 수급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세계 주요국의 기후위기 대응은 ‘자국 농가 보호’
  세계 주요국은 기후위기에 맞서 ‘자국 농가 보호’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식용곡물의 완전 자급과 농지 총량 보전, 중앙과 지방 간 식량비축 체계의 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식량안보 보장법’을 2024년 6월부터 시행했다. 식량 소비량 증가, 기후위기로 인한 흉작 등으로 2000년 93.6%였던 중국의 식량자급률은 2020년 65.8%로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기존 농업법(Farm Bill)을 ‘농업·식품·국가안보법(Farm, Food, and National Security Act of2024)’이라는 이름으로 개정하고 농가 보호를 위해 390억 달러(약 54조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은 최근 25년 만에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을 대폭 개정했다. 농민 감소와 기후위기라는 현실 속에 ‘식량안보’를 확보하겠다는 게 이 법의 목표다. 일본의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농산물 등의 가격 상승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국산 농산물과 식자재의 생산 및 소비를 확대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농산물 가격 안정’만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우리나라 정책 당국자들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국가 기후위기 적응강화 대책’이라는 게 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적 계획을 수립하는, 꽤 중요한 정책이다. 2025년까지 적용되는 제3차 대책의 농업 분야 항목을 살펴보니 스마트 농업 시설과 재해보험을 확대하고, 안정적 수급체계를 마련하고 재해복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 골자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대책’과 ‘지당하신 말씀’을 섞어 놓은 듯한 계획이 현장 농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상고온으로 올가을까지 이어졌던 벼멸구 피해 대응은 탁상행정의 대표적 사례였다. 벼멸구를 물리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제 방법은 볏대 아랫부분까지 약제가 들어갈 수 있도록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다. 하지만 드론을 띄워 공중에서 살포하는 방제가 널리 퍼지면서 약제가 벼 밑동까지 미치지 못해 사태가 악화됐다. 이미 피해가 번질 대로 번진 뒤에야 사람이 손수 방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사후약방문이었다. 적어도 벼멸구 피해의 경우 기후위기라는 핑계를 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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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의 한 걸음’이 절실하다
  올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기후위기가 여성농민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점이다. 여성농민은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밭을 일구는 일이 많다. 직사광선과 지열에 그대로 노출된 채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은 여름철 온열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은 2024년 8월 여성농민 6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 90.8%는 기후변화로 인해 노동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97.8%는 온열질환 등 육체적 피해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우울감 등 정신적 고통이 증가했다는 응답도 87.3%였다. 흉작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는 노동시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농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야기다.
  이는 결국 농민의 농사 이탈을 가속한다. 폭우와 폭염, 병충해가 잇따르는 여름철 농업이 특히 심각하다. 강원도 내 고랭지 배추의 경우 2000년에는 재배면적이 약 1만㏊였으나 2023년에는 5242㏊로 반토막 났다. 탄저병 피해가 빈번하고 기계화가 어려운 고추도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농사 이탈 문제를 단순히 고령화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2024년 초 유럽에서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트랙터 수천 대가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집결했고, 프랑스에서는 수도 파리로 향하는 간선도로가 농민들에 의해 점령됐다. 벨기에 농민들은 유럽의 주요 무역항구를 봉쇄했다.
  시위의 원인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었다. 유럽연합이 농약, 살충제 사용을 규제하고 농업용 경유 면세 혜택을 축소하고 휴경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농민들이 탄소 감축 정책의희생양이 되었다는 분노가 폭발했다. 식량 공급 불안을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농민들의 울분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럽의 농민 시위는 아무리 올바른 길이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걸어가기 어렵다는 걸 일깨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것 자체로 환경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유럽의 농민들은 정부와 사회의 일방통행에 분노를 느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공론화하면서 치열한 사회적 토론을 거쳐온 유럽의 현실이 이럴진대 하물며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한 한국은 어떻겠는가. 기후위기 대응이야말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욱 절실한 것 아닐까.

필자 이오성: 시사주간지 《시사IN》 기자
2000년 《월간 말》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시사IN》 창간 때 입사해 기획취재팀장, 정치팀장, 사회팀장 등을 지냈다. 한때 포털사이트의 사회공헌 사업 사이트를 운영한 적도 있다. 먹을거리·기후·농업 문제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