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민철
원고 청탁을 받고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아니면 농촌이 준비해야 하는 것을 적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청년은 주거공간, 일자리, 네트워크, 문화 공간, 창업 자금, 농지 등 필요한 것을 무수히 나열할 것이다. 행정은 주소부터 옮겨주기를, 또 청년 관련 행사에 나와 끝날 때까지 버티는 순응이 필요하다 할 것이고, 농촌 주민은 나와 경쟁하는 존재가 아닌 내 일이 더 잘 되게 도와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주어가 누구든 냉수를 뿌려가며 서로의 허상을 깨는 찬물 끼얹기가 우선 ‘진짜로’ 필요하다.
로컬에 떠다니는 ‘글로벌 인재’
‘로컬local’이나 ‘지역사회’라는 단어와 ‘청년’이라는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고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1994년 새해 뜬금없이 등장한 세계화(Segyehwa)¹라는 단어는 해석부터 격한 대립을 불러왔다. 이후 OECD, WTO, FTA 등 내용을 알 수 없는 영어 약어로 대표되는 지구촌(?) 세상으로 흘러갔다. 마을과 지역을 벗어나 국가와 민족을 중심에 둔 교육을 주야장천 받고 자란 그 당시 청년에게, 세계화라는 말은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것 같은 소소한 희망과 무한경쟁이라는 불안감을 동시에 던져 주었다. 글로벌global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글로벌 인재를 목표로 교육받으며 청소년 시기를 보낸 세대가 현재 청년이 되었다. 스스로 동의한 바 없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했더니 이젠 ‘로컬이 미래’(2018,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고, ‘로컬을 지향하는 시대’(2017, 미쓰나가 게이코)고, ‘비즈니스는 로컬’(2012, 존 A. 퀠치, 캐서린 E. 조크스)이고, ‘음식은 로컬푸드를 먹어야 정의’(2006, 브라이언 핼웨일)이고, ‘교육은 로컬에듀’(2017, 추창훈)인 세상이 펼쳐졌다. 삶의 방식으로 보자면 서울과 1만1046㎞ 떨어진 뉴욕이 121km 떨어져 있는 -내가 일하고 있는- 홍성군 장곡면보다 훨씬 더 친숙한, 그렇게 바랐던 글로벌 인재가 된 청년에게 쌈짓돈을 손에 쥐어주며 로컬이 미래이니 지방에서 길을 찾아보라고 제안한다. <응팔>²의 쌍문동 골목길 삶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청년에게 골목이라는 로컬이 한국경제를 견인할 것이라며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멋진 명함을 쥐어준다. 하지만 그들에게 로컬의 삶과 로컬 인재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로컬에 글로벌 인재만 떠다닌다.
마을 환경을 함께 고민하는 ‘로컬 인재’
지방이나 농촌이란 단어 뒤에 소멸, 고령화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익숙하다. 청년이라는 단어가 붙는, 역시나 당혹스러웠던 일도 근 5년이 되어 간다. 농촌을 두리뭉실하게 시, 군 같은 기초지자체로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읍邑으로 대표되는 도시화된 공간도 있다. 농農이 있어야 하는 촌村인 농촌農村을 좀 더 엄밀히 보면 면面이나 리里가 그 현장이다. 도시와 농촌이 아니라 서울과 지방으로 구분하는 이에겐 이런 구분도 무의미하다. 10년 전 장곡면 인구는 3400명 정도였는데 2021년 자료에는 2855명으로 바뀌었다. 1년에 평균 50명 정도 감소한다는 내용이다. 최근엔 70명이 되었다고 덧붙인다. 장곡면 면적은 54.93㎢로 서울시 송파구(33.87㎢)와 동작구(16.35㎢)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2개 구의 인구는 100만 명이 넘는다.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청년에게 이 정도 저밀도의 농촌은 무인지대, 즉 빈 공간이 많고, 사람 역시 감소하니 빈집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빈집이나 빈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기존 주인의 생활 방식(삶의 형태)으로 관리, 유지되던 공간이라 그 방식이 아니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주기적으로 제초를 하지 않으면 마당과 주변은 풀밭이 되고, 정기적으로 보수하지 않으면 흙담은 무너지고, 매일 신경을 쓰지 않으면 보일러는 겨울마다 터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빈집이지만 팔지는 않으니 임차해서 수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무허가 주택이니 정부 사업비 투입도 불가능하다. 도시에서 살던 방식을 고수할 수 있는 빈집과 빈 공간은 없다. 그러니 청년을 위해 정부에선 신규 주택을 짓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청년이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주거시설에서 옆집 노인은 여전히 살고 있는데, 방금 진입한 청년의 힘들다는 말에 정부에서 새집을 지어줄 때, 60년째 그곳을 묵묵히 지켜온 노인의 상대적 박탈감을 말이다. ‘진짜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이나 산 속, 아니면 기본 주거형태가 아파트인 읍내라면 상관 없다. 어차피 관심을 가질 사람도 없으니. 만약, 정착하고 싶은 곳이 농촌이라면 마을 사람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집 관리에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입해야 하고, 덥고 추운 집에서 생존 가능한 청년만 농촌에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상상해보자. 청년 정착을 위한 청년 주택을 지을 때 청년을 받아준 마을 주민의 주택도 같이 수리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내가 살 집만이 아니라 아니, 내가 살 집을 위해서라도 마을의 주거환경을 동시에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로컬 인재이다.
로컬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동일한 면적 인구 밀도의 절대적 차이는 삶의 방식을 다르게 한다. 인구 밀도를 높여 사회가 작동하게 설계된 도시의 시장 방식과 달리 인구 밀도가 낮은 곳에서는 생존을 위한, 좀 더 고상하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회 시스템이 다르게 작동한다. 간혹 한적해서 좋겠다는 반응도 있지만 인구 감소는 시장으로 작동하는 생활 서비스의 가파른 축소로 이어진다. 서울시 2개 구 면적에 가게와 식당은 달랑 2~3곳만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가게는 저녁 6시면 문을 닫고, 식당은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강화되지 않아도 저녁 9시면 문을 닫는다. 물론, 16km 떨어진 읍내로 간다면 도시와 큰(?) 차이 없이 대충 구색은 갖추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한 청년의 반응은 며칠만에 극명하게 변한다. 가로등 없어 캄캄하니 별이 잘 보여 좋다는 첫날의 느낌은 곧 너무 어두워 무서운 공포감으로 바뀐다. 도시에서 잠들던 시간에 깨어나 일을 시작하니 새벽의 맑은 공기와 더불어 하루가 길어진 것 같아 뿌듯했던 첫날의 느낌은 곧 이 몸뚱아리가 며칠이나 버틸지,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같은 근심으로 변한다. 저녁이 길어 여유롭다는 첫날의 느낌은 모든 것이 차려져 있어 선택만 하면 되는 곳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차려야 하는 야생에 혼자 남았다는 두려움이 된다. 서비스를 받는 것에 익숙한 청년에겐 서비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농촌은 내팽개쳐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서비스 체계가 없어 불편하다는 점에 의해 농촌은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사업 아이템도 경쟁 상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은 기회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잠시 머물고 떠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전자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몰려 오게 할 멋진 레시피와 기막힌 마케팅 전략은 별로 소용이 없다. 충남의 행정구역 면(농촌)은 평균적으로 3500명 정도의 저밀도 인구와 65세 이상이 50%를 넘는 인구 구조로 유동 인구는 없고, 거리에 내걸 플래카드를 제외하고 뾰족한 정보 전달 방법도 없다. 그러니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보통의 선택은 여전히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사업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풍광 좋은 곳, 국보급 문화재를 가진 또는 요즘 유행하는 한적한 오지를 찾으면 된다. 로컬에 멋진 카페가 있고 이곳에 많은 도시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로컬 창업이라 하기엔 무언가 허전하다. 왜냐하면 보통의 농촌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유일한 마을자원인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농촌에서의 창업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업종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모든 업종이 필요에 따라 만들고 유지되는 것이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농촌 주민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농촌에는 모든 것을 자립적으로 만들고, 없어도 자족하는 용가리 통뼈인 사람만 있지 않다. 단지, 경제성이 없으니 사라진 것이고, 오랫동안 없는 상태로 적응한 것 뿐이다. 농촌에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청년 창업이 동시에 농촌 주민의 삶의 질도 높이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도시에서 흔한 업종이 농촌사회 주민 삶의 방식과 어울려 지속할 수 있는 운영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로컬 창업이다. 농촌은 이전부터 저밀도의 인구 구조 -장곡면 인구가 가장 많았던 60년대에도 1만4400명 정도였다- 에서 작동하는 생존 또는 삶의 질 유지를 위한 사회 시스템이 존재했다. 비록 많이 사라졌지만 농촌마을공동체라는 삶의 방식은 여전히 물밑에서 작동하고 있다. 인구 밀도가 낮아 빈곳처럼 보이지만,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해 답답할 정도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업종은 도시에서 복제할 수 있으나 운영방식은 새로워야 한다. 청년에게는 새로울 수 있지만 농촌 주민에게는 예전부터 하던 방식이다. 지역사회가 다양한 만큼 운영방식도 다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만나기 위해 도시 사람들이 로컬을 방문하게 하는 것, 그것이 로컬 창업이었으면 한다.
청년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
“농촌에 와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농사 말고 무슨 일거리가 있냐”고 청년은 되묻곤 한다. 장곡면 가구의 50% 정도가 농사를 짓고, 주변에 변변한 공장도 없으니 취업할 일자리가 없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엔 농지와 농업기술이라고 답한다. 스마트팜과 같은 하이테크놀로지 농업기술도 배울 곳은 많다. 단지, 이 기술을 활용할 농지와 시설에 투입할 자본이 없는 청년에겐 써먹을 곳이 없다는 점에서 큰돈이 들어간 대학 졸업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여러 융자정책이 있지만 농사를 통해 일정 기간 내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정도로 수익성이 보장되었다면 농가부채와 탈농은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다. 선진적 농업기술은 알지만, 순이익이 아닌 농산물 연간 매출액이 30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 농가의 80%를 차지하는 현실은 잘 모른다. 몇 억 매출을 올렸다는 청년농부에 관한 신문 기사는 봤지만 1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농가는 전체 농가 중 3%도 안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누구나 3%에 속할 거라 기대하지만 자본 없이 출발한다면 80%에 속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로컬푸드나 파머스마켓, 인터넷 판매 등 새로운 먹거리 경로를 만든다 할지라도 말이다. 65세 이상 농민이 전체 농민의 60%에 이르는 심각한 고령화로 청년농부를 육성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것 역시 사실이다.
농사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고, 농촌에는 일자리(취업)가 없어도 일거리는 많다. 일거리를 일자리로 만드는 창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농촌지역사회에 발을 깊이 담가야 한다. 지역사회로 뿌리 내릴 수 있는 여러 경로 중 가장 빠른 길은 마을 주민 50%가 종사하는 농사를 짓는 것이다. 익숙해져 기존 주민은 느끼지 못하는 그러나 필요로 한 일거리가 그때 보인다. 농촌지역사회 주민 대부분이 대상자인 복지를 비롯하여 환경, 경관, 주택, 체험, 마을 관리 등을 주제로 한 많은 일거리들이 일자리가 되지 못한 채 문젯거리로 떠돌고 있다. 관련 행정 사업도 많이 있지만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사람이 아니라 정책사업 진행전문가만 배회한다. 농사를 작게 지을 수 밖에 없으니 농촌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직접 만들어 가는 반농반촌半農半村의 삶, 이것이 마을(로컬)농사다.
청년과 지역이 만나지 못하는 이유
한겨울 냉수를 끼얹는다고 정신은 차려질지 몰라도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농촌(지역사회)과 청년이 서로를 원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할 때는 학습이 필요하다. 학습이 이루어지는 보편적 장소인 학교와 학원에서는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농촌지역) 사회에 있으면서 배울 수 밖에 없다. 농촌은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농사와 복잡한 농촌지역사회의 속살을 알아 갈 수 있는 학습의 기회를 더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 청년은 완성된 자신을 맞이할 일자리와 귀한 청년이 들어갈 집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선, 배움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배웠는데 또 뭘 배우냐고 투덜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글로벌 인재 교육만 받았지 로컬 인재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 투덜거림은 교육부와 교육전문가를 향하는 것이 맞다.
1) 과거 김영삼 정부는 국정 철학인 세계화를 영어로 ‘Segyehwa’라고 썼다.
2) 1988년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약어.
※ 필자 정민철: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이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 연결되어 홍성군 홍동면으로 이주하였다. 10년간 학교에서 일하고 2011년 청년 몇과 함께 장곡면에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을 만들어 농사짓고 있다. 농사를 배우기 위해 농장에 오는 청년과 함께 다양한 마을 일을 만들어 가고, 마을에 남은 청년들과 학습을 지속하기 위해 평민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