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 창립 31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현장
“농민이 아닌 국민을 위한 EU농업정책” / 요세프 히머
“독일의 농민자격증, 전문가 농민이 만들어 내는 힘” / 칼 립헤어
“에너지자립 828% 지역공동체의 비결” / 토마스 프뤼거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방향을 제시하는 특별한 행사가 2022년 10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있었다. 재단 창립 31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EU와 국내 농업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고 독일과 한국의 현장 전문가가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은 행사로써, 높은 관심 속에 농민, 활동가, 연구자, 언론인 등 총 150여 명이 참여하였고 독일어와 한국어 순차 통역으로 진행했다.
심포지엄은 1세션 ‘EU의 농업·농촌정책과 국민의식’ 2세션 ‘농민자격증, 품격과 책임’ 3세션 ‘지속 가능한 지역공동체_에너지자립시市 빌트폴츠리트 사례 중심’ 등 3개의 세션과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으며, 요세프 히머Dr. Josef Hiemer 전 알고이 농업국 국장, 칼 립헤어Karl Liebherr 켐프텐농업직업학교 명예교감과 토마스 프뤼거Thomas Pfluger 빌트폴츠리트 시의원이 각각 세션의 주제발표를 맡았다. 또한 김창길 서울대학교 특임교수가 심포지엄 좌장을, 통역은 박동수 독일어 전문통역가가 맡았다. 지정토론자로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이재식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과 과장,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부 국장, 김현묵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교사,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부설 고산퍼머컬처센터 센터장 등 여섯 명의 국내 전문가가 나섰고, 종합토론에서는 청중과 함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나누는 장이 마련되었다.
SessionⅠ EU의 농업·농촌정책과 국민의식
2023년부터 새로운 CAP 적용
유기농, 소농, 청년농 지원 강화
탄소중립의 목표 달성을 위한 중점 지원
□ 발표: 요세프 히머 전 알고이 농업국 국장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정책전환 기간을 거쳐 새로운 5년(2023~2027년)의 공동농업정책(CAP)을 확정하고 “새로운 CAP는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할 것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중요한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 2030년까지 유기농업 확대, 안전한 식량 공급, 식품 부문의 더 나은 사회적 조건 등을 내세웠다. 탄소중립이라는 전 세계적 목표 달성을 위해 환경친화적 농업방식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과 소농을 지원하는 재분배 프리미엄 정책을 중점 지원한다. 경작지의 4%를 휴경하고, 2030년까지 농약과 제초제 사용을 50% 절감하는 한편, 현재 독일 전체 13% 수준인 유기농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면적 대비 직불금을 줄이고 자발적으로 생태보전활동에 참여하는 농민들에 대한 추가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소농 직불금의 비율을 높이는 ‘재분배 프리미엄’ 예산 비중을 7%에서 12%로 높였다. 청년농의 경우 ㏊당 134€를 최대 5년간 정액으로 지급하는 등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독일에서 농민을 기르는 것은 교육,
한국에서처럼 창업농은 많지 않아…대부분 승계농
자식이 없으면 청년농업인에게 양도하고 노후를 책임지게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은 지난 30년 사이에 농지면적 25%가 줄어들었는데, 대부분 신도시 개발과 공장, 상업용지로 전용되고 있다. 또한, 40세 미만 청년농업인의 비율은 1%가 안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다기능 농업을 이야기할 수 있나, 고민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농민이 줄어드는 문제와 농지가격 상승을 농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기능농업 활동에 대한 농민의 생각이 궁금하다.
요세프 히머: 독일 역시 농민의 수가 줄고 있지만,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독일에서 청년농업인은 대부분 승계농을 말한다. 독일 농민은 65세가 되면 은퇴해 농민연금을 받는데 이 금액이 월 600€ 정도다. 여기에 땅을 물려준 자식에게 생활비를 받는다. 만약 농업을 이을 자식이 없으면 땅이 없는 청년농업인에게 양도하고 생활비를 받는 방식으로 노후대책을 마련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승계자의 문제는 없는 편이다. 다기능농업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농민들이 문화경관을 지키며 농업을 하는 상황이고, 이러한 것들에 지원책들이 더 많아지고 있어 농민들은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본다.
이재식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과 과장: EU농정과 한국의 현재 농정을 비교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EU의 CAP가 있듯, 한국은 2023-2027 농업·농촌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세웠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청년농업인 육성과 친환경농업 전환, 농가 경영 안전망 강화와 안심먹거리 공급체계 확립, 쾌적하고 매력적인 농촌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또한, 공익직불제 중 전략작물 직불제 확대, 탄소중립직불제 신설, 친환경직불제 확대, 농촌경관직불제 확대, 동물복지 신설, 영농정착지원사업 확대, 농지 이양 은퇴직불제 확대 등 농업직불제 확대·개편 로드맵을 마련했다.
SessionⅡ 농민자격증, 품격과 책임
학교–현장–감독기관, 농민이 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
보험사의 철저한 관리, 실습 현장 사고는 거의 없어
□ 발표: 칼 립헤어 켐프텐농업직업학교 명예교감
전문적인 농민을 길러내는 독일 교육과정의 핵심은 학교와 농업현장을 동시에 경험하는 ‘듀얼시스템’이다. 1학년은 일주일 중 4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하루는 농장에서 실습하고 2~3학년은 주 4일을 농업현장에서, 1일만 학교에서 이론을 공부한다. 작물생산뿐 아니라, 경영과 마케팅, 정보부터 유기농이나 문화경관, 재생에너지 등 폭넓고 자세히 배운다. 학교와 현장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독일 각 주의 농림부나 농업조합 등의 감독기관은 직업훈련 수행과정을 지속해서 점검한다. 실습생을 받는 농장은 농장주가 마이스터 자격증을 갖추고 감독기관의 실습 가능 환경 인증을 받아야 하며, 보험도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또 임금, 휴가 기간 등이 명시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의무다. 농업직업학교 3년의 과정을 마치고 학교와 실습농장에서의 시험을 통과하면 졸업과 함께 농업인으로서 자격을 얻게 된다. 졸업 후 마이스터, 테크니커(기술자), 대학진학 등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유럽에서 농업인은 어떻게 양성되나
청년농들의 높은 진입장벽 해결방안은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부 국장: 우리나라의 농업교육은 사설 교육기관 같은 곳에서 자금을 받기 위해 시간을 채우는 용도로 이루어진다. 유럽에서 농업인은 어떻게 키워지는가를 통해 ‘시간 채우기식’에 급급한 한국의 귀농·귀촌 교육을 반성하고, 농촌에 유입된 청년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영농승계율이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의 청년농들은 높은 진입장벽이 고민이다. 독일에서 승계농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영농에 진입하는지, 농업직업학교 외에 농민이 될 수 있는 경로가 있는지 궁금하다.
칼 립헤어: 켐프텐농업직업학교의 경우 학생 중 약 15%가 부모가 농업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농장에 취직하여 유통이나 경영을 하거나, 농장에서 일하면서 수익을 나누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보통 40㏊ 정도가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땅을 사서 농업을 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에서 농업인이 되려면 농림부에서 운영하는 현장실습을 통해 농민 자격 고시에 합격하는 방법이 있다. 독일에는 농업인끼리 결혼해서 전문농가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고 농업보험이 발달해 있다.
김현묵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교사: 국내에서도 현장 중심 교육 활동 WPL, 마이스터 농가, 선도 농가 및 농업 전문기관 등 산업체에 단기 체류하며 도제 형식으로 실습 중심 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나 실제 졸업 후 청년농으로 진입하는 것이 미미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농업실습을 나간 학생에게 사고가 나면 엄청나게 쟁점이 되고 다음부터는 학생을 내보내는 것이 굉장히 위축되고 있다. 안정적으로 안심하고 현장실습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비가 필요하다.
칼 립헤어: 교사로 근무한 32년간 사고는 단 3건이었다. 실습 현장에서 사고는 거의 나지 않는다. 각 농장 보험사가 사전에 모든 것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SessionⅢ 지속 가능한 지역공동체 – 에너지자립시 빌트폴츠리트 사례 중심
시민, 전문가, 시의회가 합심하여 재생에너지로 전기생산 828% 달성
수익금 연간 700만€, 지역에 머물러 주민의 삶의 질 높여
□ 발표: 토마스 프뤼거 빌트폴츠리트 시의원
빌트폴츠리트시市는 바람·태양·바이오가스 등을 이용해 2020년 100% 재생에너지로 전기생산 828%를 달성하고 지역난방의 60%를 자급한다. 2000년도에 독일에서 재생에너지법이라고 불리는 ‘전력매입법(EEG)’이 통과되면서 빌트폴츠리트시 의회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후보호모델(WID)’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실행했다. 이러한 프로젝트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민의 적극적 참여였고, 이러한 움직임에 정치인, 시장, 공무원이 각각 제 역할을 다해 이룰 수 있었다. 2020년 재생에너지법이 시효 만료되었지만 빌트폴츠리트의 주민들은 ‘마을개발 유한회사’를 만들어 재생에너지 투자에 참여했다. 재생에너지 수익은 연간 약 700만€(약 100억 원)에 이르며, 이 돈이 지역에서 순환하며 경제를 활성화한다. 그렇게 지역은 점점 더 발전하게 된다.
먹거리와 에너지를 같이 고민하는 농촌
부처 간 칸막이를 깨는 제도적 설계 필요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들려는 여러 시도가 한국에서 실패한 이유는 에너지를 전담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현장인 농촌을 모르고 농림부는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부처 간 칸막이를 깰 수 있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에너지자립마을을 방문했을 때, 목장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이 있었고, 농장 간판에 “우유도 전기도 지역에서”라고 쓰여 있었다. 먹거리와 에너지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농촌을 꼭 만들고 논의를 활발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부설 고산퍼머컬처센터 센터장: 사례 발표 내용을 보면 에너지전환을 전력 중심으로만 하지 않고 가스나 열 등 다양한 에너지원에 맞는 수요와 저장방식을 활용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있어 개인적, 시장적 접근을 제한하고 농촌의 공동체를 활용하는 사회적 경제 방식을 활성화하여 그 수익을 지역 사회 서비스와 에너지전환에 재투자가 필요하다. 또 태양광 발전시설은 공공시설과 도시적 토지이용에 우선 설치하고 농지의 경우 식량안보를 고려하여 그 허용에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빌트폴츠리트 사례에서 거버넌스는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에너지전환 시도가 소비구조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농지 태양광 발전은 어떤 기준으로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토마스 프뤼거: 지역민을 설득하는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다. 전문가는 내부에서 나올 수 있고 외부에서 초청할 수도 있는데, 반대하는 사람을 오랜 시간 설득하여 계속 협의체를 만들어간다. 농촌에서 나오는 자연재료로 그 장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지역의 인프라(난방, 전기, 수도)를 함께 설비하면서 경제성이 훨씬 좋아졌다. 권장하는 태양광 설치 방식은 건물에 하는 것이고, 최근에 농지에 많이 하는 추세인데, 과수원에 설치해 우박 피해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금지하기보다는 농작물 재배와 에너지를 얻는 데 좋은 방법을 찾아주고 있다.
□ 종합토론
주제발표자와 지정토론자, 청중이 함께한 종합토론에서는 농업 농촌에 대한 국민 의식, 직불금 관리방법, 재생에너지 관련한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Q: 농업·농촌에 대한 독일 국민의 인식은 어떤가?
요세프 히머: 전체 국민의 60∼70%가 농업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그러나 일부 미디어, 동물보호나 환경 단체 등 동물복지 면에서 극히 일부의 문제를 전체로 비약해 전달하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하여 농업에 대한 인식을 좋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에서는 사람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를 똑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Q: 직불금 악용사례 발생 시 삼진아웃제 같은 제도가 적용되나?
요세프 히머: 보조금 악용 문제는 거의 없는데, 매우 강력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농가를 감독하고, 지자체와 중앙정부와 관련 없는 제3자 전문가가 감독하고 EU위원이 또 다시 감독한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세 번이 아니라 바로 조치를 취한다.
Q: 에너지자립을 위해 주민참여가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는데, 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을 생각해야하나?
토마스 프뤼거: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있기 이전에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사업비가 얼마나 들 것이냐, 어떤 방향으로 원자재는 어떤 것을 쓸 것이냐. 결국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유진: 에너지원마다 특징이 있다. 먼저 지역에 있는 자원을 파악하고, 에너지 이용 방법을 판단하고 결정한 다음, 정보를 모으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 설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Q: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원자력이 그린 에너지에 포함된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나?
토마스 프뤼거: 에너지의 분류는 생물학적으로 이뤄질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적으로 원자력을 그린 에너지로 분류했지만, 독일에서는 자연에서 나오는 것을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보고 있어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그린 에너지로 보지 않는다.
지난 6월, 2022년 유럽연수에 함께 참여한 연수자들의 의견조사를 시작으로, 독일 현지와 지속해서 소통하고 내용을 조율하는 한편, 국내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약 5개월간 심포지엄을 꾸준히 준비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대산농촌재단이 31년간 꾸준히 대산농업연수를 통해 확산해온 지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더욱 폭넓게 알리고,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았다. 심포지엄을 통해 확인한 연대와 협력의 힘이 어떻게 변주되고 확장될지, 2023년을 기대한다.
* 심포지엄의 흐름과 내용에 따라 재구성하였습니다. 종합토론을 포함한 심포지엄 전체 내용은 대산농촌재단 유튜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리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