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하고 넉넉한 밭담 앞에서

‘제주 밭담’은 2014년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되었다.
‘제주 밭담’은 2014년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되었다.ⓒ박시몬

글·사진 박시몬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는 ‘제주 밭담’은 지역별 토양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그 길이는 약 2만2000km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는 ‘제주 밭담’은 지역별 토양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그 길이는 약 2만2000km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박시몬

  어린 시절 밭담은 늘 내 가까이에 있었다. 분주한 등굣길에는 밭담을 넘어 지름길을 달렸고, 하굣길에는 친구와 함께 밭담의 돌을 밀어 넘어뜨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 시절 밭담은 내게 단절을 의미하는 ‘담’이 아니었다. 누구든 오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쌓아 올린 돌들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나오기도 했다. 때로는 추운 새벽부터 당근밭에 나간 할머니를 찬 바람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했다.

ⓒ박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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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담은 서로 다른 모양의 돌을 여러 번 돌려가며 한땀 한땀 쌓아 올린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쌓은 밭담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편히 오갈 수 있는 넉넉함도 품었다. 모나고 성긴 돌들이지만 하나씩 천천히 쌓아 올리니 길이 됐고, 안온한 보금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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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가볍게 지나쳤던 밭담 앞에서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때로 엉성해 빈틈이 많이 보이는 우리네 삶일지라도 하루하루 정성으로 쌓아가다 보면 누군가 환대할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박시몬필자 박시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재학생.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 제주에서 자랐고 제주를 좋아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이들의 소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며 일기장처럼 언젠가 다시 꺼내 볼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기자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