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사람들

글·사진 김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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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김정열

COP27과 코카콜라
  2022년 11월 7일부터 20일까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 다녀왔다. 이 회의는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체결한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995년부터 매년 열리는(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 한 2020년 제외) 당사국들의 총회이다.
  COP27은 예정된 일정을 이틀이나 더 연장한 끝에 합의문격인 ‘샤름엘셰이크 이행계획서’를 발표하였다. 많은 정부와 언론들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이 타결되었던 2015년 이후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COP’였다고 평가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농민인 나는 그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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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 나뒹구는 코카콜라 병. ⓒ김정열

  COP27 샤름엘셰이크 회의장에서 내가 본 첫 장면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코카콜라 병과 네슬레 커피 일회용 종이컵이었다. 코카콜라와 네슬레는 세계적으로 음료, 커피, 차를 판매하는 회사이며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식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체인을 가지고 있다. 또한 물, 토지 등 자원을 둘러싸고 지역공동체와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플라스틱을 매우 많이 배출하는 업체들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논의하겠다는 COP27은 이런 코카콜라의 후원을 받았으며 정부 대표들은 공짜로 제공되는 코카콜라를 무한히 마시며 회의를 진행하였고, 그들이 지나간 회의장에는 일회용 네슬레 커피잔이 수북했다.

COP27 행사장 곳곳에 있었던 코카콜라 무료 자판기.
COP27 행사장 곳곳에 있었던 코카콜라 무료 자판기. ⓒ김정열

  COP27 행사장은 기업박람회였다. 정부와 기관, 단체들의 전시관은 새로운 기술들의 홍보로 가득 차 있었고,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기업들의 기술에 얼마든지 돈을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공표하였다. 기업의 기술들이 여전히 화석에너지 사용에 기반하고 있고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함에도 말이다.
  기후위기로 피해를 받고 있는 가난한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과 기후정의를 외치는 시민사회의 전시관은 겨우 한쪽 벽면에 초라하게 차려져 있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행사장 안에 갇혀 있었으며 이상기후로 인한 생존권의 위협을 호소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테이블에 가닿지도 않았다.

COP27 행사 기간에 진행된 기후정의와 농업에 관한 토론회. ⓒ김정열
COP27 행사 기간에 진행된 기후정의와 농업에 관한 토론회. ⓒ김정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 사진은 행사 마지막 날에 기후정의 그룹에서 폐막 이벤트를 하는 모습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 사진은 행사 마지막 날에 기후정의 그룹에서 폐막 이벤트를 하는 모습이다.

  COP 관계자들은 30년간 이끌어 온 ‘손실과 피해’ 문제를 타결하였다고 빵빠레를 울렸다. 과연 축배를 든 사람은 누구일까? 회의에 참석한 600여 명의 화석연료 로비스트였을까? 누가 얼마만큼의 돈을 낼 것이며, 이 돈은 어디에서 관리하고 어떻게 쓰일 것인가? 이 기금의 성격은 지원인가, 보상인가, 배상인가? 어느 것 하나도 결정하지 못 하였는데도 진전된 결과라고 하였다. 무엇을 진전시켰는가? 화석연료 채굴금지에 대한 합의,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어떤 합의도 이끌어 내지 못 하였는데 말이다. COP27에 같이 참석했던 비아캄페시나 세네갈 대표는 손실과 피해 자금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프리카 대륙에 이미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기금이 들어오고 있지만 지역공동체에는 전달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기금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으며 이 기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결정하지 못 하고 있다. 식량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GMO 종자가 들어오고 있으며, 기업의 비료와 농약을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보급하는 데 이 기금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오히려 식량주권의 약화와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이 “인류의 절반이 기후위기 위험에 처해 있다. 집단 대응을 할지, 집단 자살을 할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결정에는 ‘위기감’도 ‘긴박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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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사는 또 어떨까? ⓒ김정열

기후위기, 농민의 위기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봄이 되면 가슴이 설레었다. 올해 농사는 또 어떨까? 그러나 이제는 농사를 시작하며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작년만큼이라도 되면 다행이다. 예전의 날씨와 예전의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이다.
  봄이 사라졌다. 봄은 춥거나 덥다. 여름 폭염일수는 점점 늘어나고 ‘장마 기간’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장기간 강우와 폭우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가을 역시 오지 않을 듯 뜨거운 여름이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파가 닥쳐 겨울로 이어진다. 겨울에 눈이 오지 않은지는 꽤 되었다. 겨울에 눈이 내려 땅을 덮어주어야 봄 가뭄도 견디고 속에서부터 땅이 부풀어 올라 새싹이 잘 올라오는데 이제는 이것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날씨만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에 따라 갖가지 병충해도 늘어났다. 작물들은 가뭄과 폭우를 견뎌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고 공격해 오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수확철이 되면 작물도 농민도 만신창이가 된다. 수확량과 상품성은 떨어지고 그것을 팔아서 먹고살아야 할 농민은 가난해진다.

ⓒ김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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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과수농사, 밭농사는 다 어려웠다. 과일은 이상기후로 상품성이 떨어졌고, 고추, 호박, 양파 등은 뜨거운 햇볕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익어버렸다. 가뭄과 폭염, 폭우, 태풍으로 몇 번이나 재파종을 해야 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의 어려움과 농작물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다. 기후위기로 농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피해가 있는지,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지,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기후위기의 거센 폭풍 속에 농민만이 서 있을 뿐이다.
  올해는 특히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거셌다. 8월 말과 9월 초에 계속 내린 비로 벼꽃 수정이 잘 안 되어 쭉정이가 많이 생겼다. 거기다가 나락이 여무는 시기에는 물이 필요한데 전 지역에 걸쳐 가뭄이 극심했다. 나락 수확량은 떨어졌고 병충해를 방제하기 위한 농약값은 많이 들었다. 유류대 인상, 농자재값 인상 등이 생산비를 폭증시켰지만 쌀 가격은 20% 이상 떨어졌다. 이것이 현재 농민에게 닥친 기후위기이다.
  농업과 식량 생산, 그리고 식탁에 차려지는 먹거리는 기후위기로 인해 여러 가지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지구 평균기온이 1℃ 오르면 식량 생산량은 10%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 상승하면 약 1억89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릴 것” 등의 경고이다. 곡물자급률이 20%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식량과 관련된 위기감이 더 크다. 그러나 정작 식량을 사 먹어야 하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이 위기감은 어떻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생강 수확을 도와주러 온 지인들.
생강 수확을 도와주러 온 지인들. ⓒ김정열

  최근 주위에서 진드기에 물려 고생한 분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별다른 경계심 없이 농사일을 했는데 이제는 갖가지 보호장치를 하고 일하러 간다. 팔, 목, 다리 등을 노출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달려드는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독한 살충제를 몸에 직접 뿌리는 농민까지 있다. 이렇게까지 단도리를 하고 일을 해도 반점이 돋고, 가렵고, 벌겋게 부어오르는 피부질환이 자주 나타난다. 전에는 일하다가 아무렇게나 논둑이나 밭둑에 앉아서 쉬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조심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병충해의 증가는 작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상기후로 인한 소득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농사를 더 늘리거나 소득이 되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농촌 경제는 소득이 줄어들면 줄어드는 대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농비가 증가하고 부채는 점점 쌓이며, 생활비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소득 감소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래서 여성농민들이 농사 외에 다른 일을 찾거나 농사일과 병행하면서 부가적인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결과, 여성농민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와 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농민들의 몸도 마음도 갉아 먹는다.

ⓒ김정열
필리핀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여성회의 일정 중 토지 투쟁하는 지역에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김정열

농업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멈추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탄소배출을 45%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순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의 사회·경제·정치시스템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Net Zero(탄소중립)’를 약속한 국제사회의 이행은 느리기만 하고 해결책은 모순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
  농업 분야에서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대책은 무엇일까? 탄소배출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기후스마트농업일까? 디지털농업일까? 식물공장일까? 스마트팜일까?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적 농업시스템, 초국적농기업 중심의 글로벌푸드시스템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없다. 유리온실 안에, 데이터 안에 농업을 가두어 놓는 것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기후위기는 유리온실을 뚫을 수 없는 그런 위기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는 없었던 위기이기 때문이다.
  농업과 먹거리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소농, 여성농민을 해결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그들을 농업과 먹거리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그들이 건강한 식물의 성장과 건강한 토양을 가꿈으로써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그들이 농업생태계를 다양하게 보존하여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들이 먹거리사슬을 줄여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그들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들이 지구를 식힐 수 있다.
  농민들은 자신의 삶과 경험 속에서 생명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이어 나가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생명은 땅의 숨결 속에서 만들어졌다.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존재들의 협조로 만들어졌다. 생명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손길로 이어져 나간다. 이런 것을 아는 농민들이 기후위기, 식량위기의 대안이다.

김정열필자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경북 상주에서 농사짓는 여성농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다정한 세상을 꿈꾼다. 특히 여성농민, 지역공동체, 농생태학에 관심이 많다.